희망에 부푼 루시.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물을 건너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난 루시.
하지만 루시는 곧 외롭고 고독하다.
고독함을 타고난 사람이다.
그러다 존 선생을 만나 기적같은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빌레뜨에도 샬럿 브론테는 루시가 누워 있는 방을 해저 동굴이라고 표현한 페이지(284 쪽)가 인상적이다.
감금된 방, 감금된 동굴.
여성에게 치명적인 장소일 수 있는데
해저 동굴이라 묘사하며 신비감을 나타낸다.
그래서인가? 85 페이지의 시가 다시 읽힌다.
일부러 이렇게 적은 것인가?
문득 작가가 동굴을 긍정적으로 힘주어 말하는 것처럼 읽힌다.

돌벽이 있다고 감옥이 되는 건 아니고
철창이 있다고 새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네.




돌벽이 있다고 감옥이 되는 건 아니고
철창이 있다고 새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네.

몸이 건강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한, 특히 자유의 날개를
빌릴 수 있고 희망의 별빛의 인도를 받는 한, 위험과 외로움과 불안한 미래는 우리를 짓누르는 악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 P85

내 마음은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비참한 갈망으로 너무 혹사당하고 있었다. 9월의 그날들은 얼마나 길었던가! 얼마나 고요하고 얼마나 생기라곤 없었던가! 황량한 건물들은 얼마나 거대하고 공허해 보였던가! 버려진 정원, 여름이 지나간 도시의 먼지로 이제 회색빛을 띤 정원은 얼마나 음울했던가! 그 여덟주가 시작될 때 앞을 내다보니 어떻게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기분이 점점 가라앉고 있는데다, 이제 일이라는 버팀목이 무너지자더 빠른 속도로 우울해졌다. 앞날을 내다보아도 희망이 없었다. 출구 없는 미래는 아무런 위안도 주지 않았고, 아무런 약속도 제시하지 않았으며, 미래의 선에 의지해 현재의 악을 견딜만한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슬프게도 나의 존재에 대해 자주 무관심한 마음이들었고, 지상 모든 것의 종말에 일찌감치 도달하고 싶다는 절망적인 자포자기의 심정이 밀려왔다. 아, 아! 나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인생을 바라볼 여유가 생기니 그것은 희망 없는 사막에 불과한 것이었다. 초록 들판도, 종려수도, 샘도 보이지 않는 황갈색 사막일 뿐이었다. 젊음에 꼭 필요하고 젊음을 지탱해주고 이끌어주는 희망이란 것을 나는 알지 못했고, 감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가끔씩 희망이 마음을 두드려도 퉁명스럽게 안에서 빗장을닫아걸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거절당한 희망은 뒤돌아서고 때때로 슬퍼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손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희망을 넘보는 연약함과 죄가 몹시 두려웠다. - P246

내 작은 방은 어찌 보면 해저동굴 같았다. 방은 거품이 이는 파도와 깊은 바다를 연상시키는 흰색과 연녹색을 제외하고는 색깔이랄 것이 없었다. 흰 베갯잇에는 조가비 모양의 장식이 있었고, 천장구석마다 돌고래 모양의 하얀 부조가 있었다. 유일하게 색깔이 있는 새턴 바늘겨레조차 붉은 것이 산호색과 비슷했고, 검게 빛나는거울은 인어라도 비출 것만 같았다. 눈을 감자, 바위에 파도가 부딪히듯이 강풍이 집 전면에 불어닥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침내 잠잠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물러가 멀리, 저 멀리 사라지는 소리는 천상의 해변에서 썰물이 빠지는 소리와도 같았다. 하지만 해변이 너무 높이 있다보니 바다 밑의 집에서는 중얼거리는 소리나 자장가처럼 잔잔하게만 들렸다.
이런 꿈을 꾸다보니 저녁이 되었고, 마사가 램프를 가지고 왔다.
그녀의 도움을 받아 나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고, 아침보다는 기운이 나서 부축을 받지 않고 응접실로 내려갔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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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08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브로테 작품 중에서
빌레트를 좀 더 좋아합니다
제인에어는 읽을 때마다 로체스터에 대한 미움이 왕창 왕창 ㅎㅎㅎㅎ

브론테 실제 경험이 아주 많이 들어간 작품이죠 빌레트 ^^

책읽는나무 2022-12-09 00:16   좋아요 0 | URL
빌레뜨는 아직 1 권만 읽어서 2 권을 읽어봐야 총평가가 매겨질 것 같아요.
아직까진 저는 제인 에어가 좀 더 낫지 않나? 싶거든요.
근데 다른 분들도 그렇고, 스콧님처럼 빌레뜨를 더 쳐주기도 하고, 다들 재밌다고들 하시네요?
2 권에선 뭔가? 더 극적 재미가 있나 보다? 기대 중입니다^^
루시의 우울하면서 고독한 심경 변화가 브론테의 내면이랑 비슷한가? 싶은 맘도 드네요?

서니데이 2022-12-09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론테 자매의 책들은 많이 알려진 책만 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제인에어라거나.^^;
잘읽었습니다.
내일은 따뜻한 날씨일 거라고 조금 전에 뉴스에서 나왔어요.
하지만 다음주에는 많이 추워질 거라고 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책읽는나무 2022-12-09 23:01   좋아요 1 | URL
간단하게 기록으로 남긴 감상이어 많이 부족합니다.
브론테 자매들의 소설을 다시 읽어볼 계획을 세웠네요.
폭풍의 언덕도 읽어야 하고, 아그네스 그레이도 읽어야 하고, 교수도 읽어야 합니다. 책들이 줄을 섰는데 어째 요즘은 읽는 속도가 자꾸 늦어집니다.
요며칠은 계속 따뜻해서 산책하기 참 좋았었는데 다음 주 추워진다니..ㅜㅜ
서니님도 건강 유의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