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얼룩진 세상에 머물다 일상으로 돌아와 평범한 생활을 누리긴 힘들 것이다. 다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노출되어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 텔레비젼에서 한비야 구호 활동가도 냄새에 민감하다고 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워낙 아비규환의 현장 속에서 재해로 인해 사상자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시체 냄새에 예민해져서 평소에도 그런 냄새가 나는 듯 하다고 하였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 그 냄새가 꼭 시체 썩는 냄새를 상기시켜 트라우마가 작동되는 듯 하여 남편은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담당은 무조건 자신이 한다고 했었던 점이 인상 깊었다.
늘 밝게 웃으며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한비야님도 어쩌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하물며 전쟁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말로 해서 무엇하랴!
빨간색만 보아도 양팔에 반점이 돋고, 물집이 생겨 버리는 알러지 반응은 충분히 납득되면서도 안타깝다.
전쟁은 왜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일까?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인데,
누구를 위하여 수많은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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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차에서 곧장 최전선으로 가겠다고 요청했어・・・・・・ 곧바로 가겠다고……… 때마침 이동중인 부대가 있어서 즉시 거기로 합류했지. 생각해보니까, 후방에서 집에 가는 것보다 최전선에서 가는 게 하루라도더 빠를 것 같더라고. 집에 엄마 혼자 계셨거든 내 친구들은 지금도 내가 위생중대를 떠나고 싶어했다며 당시를 떠올리곤 해. 맞는 말이야 나는 위생중대에 가면 얼른 씻기만 하고 속옷을 챙겨서 다시 내 참호로돌아갔으니까. 최전선의 진지로, 나는 몸을 사리는 법이 없었어. 기어다니고 뛰어다니고..…..… 하지만 피냄새는 피냄새만큼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더라고…………전쟁이 끝나고 산부인과 병동에서 조산원으로 일했어. 하지만 얼마못하고 그만뒀지. 아주 잠깐 일했어...... 아주 잠깐...... 나는 피냄새에 - P532
알레르기가 있거든. 내 몸이 피를 거부해 피라면 전쟁터에서 몸서리가쳐지게 겪었으니까. 더이상 몸이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산부인과를 나와 ‘구급센터‘로 옮겼어. 역시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고 숨을 쉴 수가 없었지. 언젠가 빨간색 천으로 블라우스를 만들어 입었는데, 다음날 양팔에반점 같은 게 돋았더라고. 물집도 생기고, 내 몸은 빨간 사라사는 물론, 장미나 패랭이꽃 같은 빨간 꽃에도 거부 반응을 보여 빨간색이나 피 색깔은 어느 것도 견디질 못하지...… 그래서 우리집엔 빨간색이 하나도없어. 눈 씻고 찾아봐도 없을 거야. 사람의 피는 아주 선명하지. 자연 풍경에서도 화가들 그림에서도 나는 피처럼 선명한 색은 아직 본 적이 없어. 석류즙이 조금 비슷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야. 아주 잘 익은 석류즙도.……" 마리야 야코블레브나 예조바, 근위대 중위, 위생소대 지휘관 - P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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