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석 작가는 현재 심장과 대동맥 수술을 하는 흉부외과 의사다.
의사의 입장에서 먹는 음식들과 환자 입장에서 먹는 음식들로 구분하여, 병원에서 먹는 밥이란 주제로 엮은 에세이집이다.
글을 재미나면서 감동적으로 잘 쓰는 사람이라 의사가 맞나? 의심이 든다. 꼭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 나오는 이익준 의사(조정석) 같달까? 아, 드라마에서 흉부외과 의사는 김준완 의사(정경호) 였지!!!
암튼 슬의생 드라마 시즌1에도 참여 하였고, 실제로 의사의 에피소드들이 드라마 대본 집필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던데, 정말 책을 읽는데 눈앞에 슬의생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는 것 같아 다채로웠다. 띵 시리즈 아직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가장 감동스런 책이지 싶다.

흔한 일이다. 가끔은 나도 가는 길 중간쯤 문자를 보내야 할 때가 있다. "응급이네요. 죄송" 교통 체증을 뚫고 도착해보면 약속 장소에 아무도 없는 경우도 있다. 아예 연락 두절인 사람에게 전화해보면 "000 선생님 응급수술 중이십니다." 하는 수술실 간호사의 낭랑한 목소리가 마취 모니터에서 나오는 기계음에 섞여 들린다. 식당에 앉아 밑반찬만 먹으며 기다리다 보면 이제 수술 끝나서 출발한다고 연락이 오기도 한다. 오랜만에 선후배들을 만날 거라는 기대는 대부분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진다. 식당 테이블에 앉아 사장님의 눈치를 보며 원래 예상한 예약 인원에 맞춰 4~5인분의 음식을 시킨다. 겨우 도착한 두세 명만 자리에 앉아 "수술 잘해." 등의 문자를 보내다가다시 밤이 오면 각자의 병원을 향해 헤어진다. 물론그사이에 밥 먹다가 병원으로 호출되어 황급히 떠나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기대하는 것과 예상하는 것은 다르다. - P82
우리는 항상 기대하면서 그 기대를 예상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이렇게 하면 살아나실 수 있을 거야. 이렇게 하면 빨리 회복되실 거야. 그래, 새로운 방법은 아직 써보지 않았으니까…. 기대와 예상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나,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예상조차 하지못하는 나의 이기심을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 정작 기대로 가득한 저녁시간에 응급 상황이 생길지도 예상하지 못하며 회식 약속을 잡고 살아가면서. 예상과 달라 힘들다는 것과 기대와 달라 힘들다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결코 우리가 그 간격을 좁히지는 못하지만, - P83
병원의 모든 환자들을 위한 음식을 배식했다고 주방의 아침이 끝난 것은 아니다. 밤새 일한 병원 식구들, 새벽 출근한 직원을 위한 아침식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들마저 식당을 떠나고 나면 마침내 여양사와 조리사들도 아침밥을 먹으며 쉴 시간이 생긴다. 그것도 잠시, 곧 환자와 의료진과 함께 일하는 직원과 병원을 찾아올 보호자를 위한 점심식사를 만드는 일이 다시 시작된다.
"아침식사를 드리러 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시신이 운구되어 내려왔어요. 병원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 무심히 생각하고 환자들께 배식을 하는데, 한 침대가 비워져 있고 매일 보던 할머님이 안 계시더라고요. 새벽에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다른 환자들이 알려줬죠. 엘리베이터에서 스친 시신이 그 할머니였던 거예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주인 잃은 아침식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가지고 식당으로 내려왔죠. 그 밥을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 P114
불쑥 말을 건 나에게 조리사 한 분이 들려준 이 야기다. 가장 쓸쓸하지만, 가장 따뜻할 음식. 두렵지만, 희망의 방향에 놓여 있다고 믿게 하는 음식. 그음식의 이름은 환자식이다. - P115
수술 중, 음악을 듣기도 한다. 차가운 적막보다 음악이 때로는 10시간도 넘는 수술의 집중을 도와준다. 언젠가 이런 가사를 들었다.
돌아오는 길은 항상 가는 길보다 길지 않아
집을 떠나 어딘가 가보았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떠날 때의 여정보다 짧게 느껴지는 현상을 경험했을 것이다. 친구와 여행을 가도, 멀리 출장을 가도, 집 앞 산책을 해도, 돌아오는 시간은 언제나짧다. 이미 길을 알고 있다는 익숙함과 집으로 향한다는 안도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예외 없이 어딘가로 향하는 여정보다 항상 짧게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더 힘들고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긴 시간을 밖에서 보낸 다음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바로 환자들 이야기다. 병원에 들어오는 일은 빠르고 즉각적이다. 때로는 우연히, 때로는 큰 걱정을 앞세우고, - P189
응급실 또는 진료실을 통해 입원한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기약이 없다. 시간은 더디게 흐르고, 매일매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돌아갈 길은 멀기만 하다. 어떤 이들은 영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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