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씩 짬 나는 시간을 이용하여 읽는 중에 죄책감이 든다.
이 책은 그럴 책이 아닌데....
그래도 손을 댄 이상 뒤로 미룰 수 없는 ‘밝은 밤‘이라
짬짬이 읽고 있다.
짧은 시간 속 이야기들은 그때마다 느낌이 다르다가도
또 무심하게 다음 화편으로 잘 연결된다.
지연이와 할머니가 며칠에 한 번씩 만나 같이 식사를 하고,
할머니가 들려 주시는 증조할머니의 일대기가 단편 영화처럼
쭉쭉 이어지는 것처럼 ‘밝은 밤‘도 내게 시간 맞춰 다가온다.
그 시절 아득했었던 여인들의 삶을 들으면
그저 희망을 잃은 무표정한 여인의 얼굴이 그려진다.
헌데 오늘은 읽으면서 문득 지연의 할머니의 경이롭고 해사한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 하다.
˝이게 다 뭐야....˝
˝보이세요?˝
˝어....이게 달이야?˝
˝네˝
˝손에 잡힐 것 같아.˝
할머니가 망원경 옆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만지는 시늉을 했다.
˝세상에.˝
그러고는 입을 벌린 채 접안렌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오늘 같은 날씨면 목성도 볼 수 있어요. 한 번 보실래요?˝
..............................................
할머니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네가 하는 일이 그런 거니?˝
˝그렇게 대단한 거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할머니가 망원경을 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 엄마도 지금 태어났으면 너 같은 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뭐든 궁금해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90~92쪽)
그날 할머니와 나는 목성을 봤다. 목성의 흐린 줄무늬를 봤다. 할머니는 아이처럼 감탄하면서 접안렌즈에서 오래도록 시선을 떼지 못했다.
(99쪽)
할머니가 지연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반짝였을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종일 할머니의 얼굴을 상상했다.
종일 소설의 풍경을 머릿속에서 맴돌게 하는
‘밝은 밤‘......
이 소설을 위해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쓰면서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을 최은영 작가의 마음도 헤아려 보면
책의 표지 풍경 또한 경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