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자국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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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 건강하고 아름답지만 정장을 입고도 어묵을 우적우적 먹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음식을 우적우적 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촌부. 어머니는 칼 하나를 이십오 년 넘게 써 왔다.

얼추 내나이와 비슷한 세월이다. 썰고, 가르고, 다지는 동안 칼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 주는 음식과 함께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혈관을 타고 다니며 나를 건드린다. 내게 어미가 아픈 것은 그 때문이다. 기관들이 다 아는 것이다. 나는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물리적으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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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9-10-18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라니,
이 작가는 시를 써야 했을 작가 같아요 ㅎㅎ

책읽는나무 2019-10-18 11:54   좋아요 0 | URL
역쉬~~~^^
김애란 작가는...그저 사랑스러운 작가에요.
읽어도 읽어도 더 읽고 싶게 글을 참 잘쓰는 작가 중 한 명이지 싶어요.
<잊기 좋은 이름>산문집을 냈던데 그 책에도 시 같은 문장들이 수두룩~~~~
그 책에서 ‘칼자국‘이 자전적 소설이라고 밝혔더라구요.사다놓고 애들한테 강요만 하고 계속 읽어야할텐데!!만 반복하던 중 찾아 읽었더니.....눈물 나올뻔 했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