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자네는 저 의원들이 말한 대로 민중을 선동한 사실이 있는가?"
"나는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의 비극적인 인생을 내것으로 하여......
그것을 사랑해 온 것뿐이오."
"황제는 오래 못갈 것이라 했다는데?"
"황제보다도 예루살렘보다도 로마보다도 오래오래 존재하는 게 있다고 했을 뿐이오..‘
빌라도는 고개를 흔들었다. 파리가 깃소리를 내면서 벽에 멎어 안움직인다.
"무엇이 로마보다도 오래오래 존재한다는 겐가?‘
"인간의 슬픔을 만진 내 자국."
사나이는 침착한 소리로 중얼댔다.
"내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아파한 그 상처, 그것은 지워지지않을 거라고 했소." - P172

"바라바."
그리고 군중도 거기에 응했다.
"바라바를, 바라바를 주시오."
빌라도는 뒤돌아보며 광대 같은 꼴의 사나이에게 말했다.
"어쩔 수 없네. 나는 자네를 버릴 수밖에 없네."
그리고 나서 다시 발코니보다는 어두운 실내로 돌아와서 또다시 작은 목소리로 중얼댔다.
"나는 자네를 버릴 수밖에 없어....…."
그것을 입에 담자 그는 문득 옛날 일이 생각났다. 애지중지 자기를길러준 모친에게도 같은 말을 했던 그날을 떠올렸다.
"나는 한 인간 때문에 뜻하잖은 소동을 피우고 싶진 않아요. 총독의 자릴 지키려니 하는 수 없습니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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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날 화가가 자신의 집 창문 너머로 바라본 것은 나이 든 여인의 연약함이나 초라함이 아닙니다. 젊음과 두 다리라는 날개는 잃었을지언정 자신의 세계 안에서 나름의방식으로 날고자 했던 그녀의 강인한 생명력을 화가는 포착했던 게 아닐까요? 크리스티나의 몸짓은 장애와 시련 앞에 무릎 꿇은 좌절이 아니라 허락된생을 살아가는 숭고함이자 희망인 것입니다.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20세기범람하던 미국 유수의 현대 미술을 제치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공감하는 회화로,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당당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이 그림은 많은 이들이 절망적이라 여기는삶을 극복했던 그녀의 특별함을 인정하고자 하는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 앤드류 와이어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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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운명은 항상 그런 거라구. 처음엔 좋아졌다가 다음엔 버림당하지. 그 작은 사례를 이 사마리아에서 볼 수 있단 말이야.
도다의 버릇인 그 비웃음을 보자 나는 이제 그의 생각의 전부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어제부터 도다는 예수의 생애를 한쪽 방향으로만몰고 가며 그것을 내게 보여 주려 애쓰고 있다. 나사렛에서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당한 예수, 광야의 교단에서도 안 붙여준 예수. 이 사마리아에서도 결국은 배신당한 예수, 도다. 자신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현세에서는 무력하고 무능했던 사나이의 형편없는 모습이었다.
"그게 진짜 예수의 ..….‘
"그렇다구."
그는 20여 년 전과 마찬가지로 단정적인 말투로 말을 강하게 잘랐다. - P146

나병원에서의 나, 10분 간의 나, 나는 내가 쥐수도사와 별 다른 데가 없잖은가라고 운전하는 도다의 옆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야 그런것쯤은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지나온 세월 동안 나에겐 이 보다 더 큰 비열한 행위가 수두룩했지 않은가.…..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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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에 그의 주치의에게 보낸 크리스마스카드에는 "내가 스스로 결정한 이 고요가 뭔가 도움이 되는 걸 확실히 느낍니다. 그러나 이 절대적인 외로움은 또 한편으로 피곤하기도 합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에게 에켈리에서의 은둔 생활은 단지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던, 외로움과 고독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뭉크는 어린 시절집 안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며 외로움을 달래던 그 마음으로 다시에켈리에서 30년을 살았다. 그리고 에켈리에서 홀로 외로이 세상을 떠났다.
- P289

고흐는 그의 짧은 일생 동안 자신의 화염을 꺼뜨리지 않았다. 그는 화염과 숯을 그의 붓에 불붙였고, 예술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불살랐다. 나는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고그보다 좀 더 오래 살고 있지만, 고흐처럼 생각하고 열망한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내 불꽃들이 소멸하지 않고 불타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기를.
- 뭉크의 노트(MMT 2748. 1933. 10. 28) - P305

나는 예술로 삶과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내그림들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좀 더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뭉크의 노트(MMT 46, 1930 ~ 1934) - P307

뭉크의 그림은 수용의 수준에서만 의미 있는 게 아니다. 서양 미술사에서 뭉크가 이룬 가장 획기적인 발전은 미술의 대상을 자신의경험에서 찾고, 또 그것을 시각적인 방법으로 표현해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각에 대한 이야기이다. 화가란 눈과 손으로만 그림을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뭉크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새로운 조형 언어와 재료, 기법, 매체로 표현했고, 이를 통해 20세기 현대 미술이 꽃필 수 있는토대를 마련했다.
- P308

03 불안
뭉크는 평생을 신경 쇠약과 불안증에 시달렸다. 특히 20대에 여러 가지 좌절과 이별을 겪으면서 불안 증상이 악화되었고, 종종 길에서졸도했다. 뭉크는 공황에 빠진 상태에서 겪은느낌들을 기억해서 그림으로 그려내게 된다.
이렇게 그려진 <절규> <칼 요한 거리의 저녁〉〈불안〉 〈절망〉 같은 그림에서는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진 사람들, 혼돈에 뒤얽힌 산과 바다, 불안정하게 경사진 구도 등 그가 느꼈던 불안과 공황의 공포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 P311

0 4 절규
평소 신경 쇠약에 시달리던 뭉크는 어느 날 친구두 명과 저녁 무렵 에케베르그 언덕을 산책하다가강렬한 저녁노을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는다. 이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자연이 질러대는 거대하고끝없는 비명이라고 청각적‘으로 느낀 뭉크가 이때의 경험을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이 바로 <절규>이다. 이 그림은 현대에 들어 여러 대중매체에서 수없이 패러디되고 재생산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비록 뭉크가<절규>에서 표현하고자 한 공포와 불안보다는 과장되게 놀라거나 광기 어린 모습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어쨌든 뭉크를 널리 알리게 된 뭉크의 아이콘과 같은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 P312

06 외로움
뭉크의 인생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한창 친구들과어울릴 10대 초반, 뭉크 가족은 부르주아 계급이었지만 노동자 계급의 주거지로 이사를 오게 된다. 계급 차이가 존재했던 시대였고 뭉크는 병약하여 가정 학습을받았기 때문에 교우마저도 없었다. 뭉크는 집 안에서그림을 그리며 외로움을 이겨내다가 결국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한편, 뭉크는 자신의 예술이 정체되었다.
고 느낄 때마다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리고 결국 말년에는 에켈리의 집에서 고립과 은둔을 선택하여 홀로외로이 죽음을 맞는다. 그의 외로움과 고독이 잘 묻어나는 그림들로는 〈생 클루의 밤> <별이 빛나는 밤>과같은 그림들을 들 수 있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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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우리는 대부분 전쟁을 모르며, 죽음의 작은 흔적조차 지우려 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죽음에 다가가는 병마의시간은 병원과 양로원에서 고독하게 치러지고, 생을 함께 나눈 친지의 마지막 모습은 장례식장 뒤 화장터로 밀려나 일순간 가루가 되어 버리는 과정쯤으로 이해되고야 맙니다. 이런 현실은 죽음 앞에서조차 죽음이 실감 나지않는 아이러니를 만들어 내곤 합니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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