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에 그의 주치의에게 보낸 크리스마스카드에는 "내가 스스로 결정한 이 고요가 뭔가 도움이 되는 걸 확실히 느낍니다. 그러나 이 절대적인 외로움은 또 한편으로 피곤하기도 합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에게 에켈리에서의 은둔 생활은 단지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던, 외로움과 고독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뭉크는 어린 시절집 안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며 외로움을 달래던 그 마음으로 다시에켈리에서 30년을 살았다. 그리고 에켈리에서 홀로 외로이 세상을 떠났다. - P289
고흐는 그의 짧은 일생 동안 자신의 화염을 꺼뜨리지 않았다. 그는 화염과 숯을 그의 붓에 불붙였고, 예술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불살랐다. 나는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고그보다 좀 더 오래 살고 있지만, 고흐처럼 생각하고 열망한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내 불꽃들이 소멸하지 않고 불타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기를. - 뭉크의 노트(MMT 2748. 1933. 10. 28) - P305
나는 예술로 삶과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내그림들이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좀 더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뭉크의 노트(MMT 46, 1930 ~ 1934) - P307
뭉크의 그림은 수용의 수준에서만 의미 있는 게 아니다. 서양 미술사에서 뭉크가 이룬 가장 획기적인 발전은 미술의 대상을 자신의경험에서 찾고, 또 그것을 시각적인 방법으로 표현해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각에 대한 이야기이다. 화가란 눈과 손으로만 그림을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뭉크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새로운 조형 언어와 재료, 기법, 매체로 표현했고, 이를 통해 20세기 현대 미술이 꽃필 수 있는토대를 마련했다. - P308
03 불안 뭉크는 평생을 신경 쇠약과 불안증에 시달렸다. 특히 20대에 여러 가지 좌절과 이별을 겪으면서 불안 증상이 악화되었고, 종종 길에서졸도했다. 뭉크는 공황에 빠진 상태에서 겪은느낌들을 기억해서 그림으로 그려내게 된다. 이렇게 그려진 <절규> <칼 요한 거리의 저녁〉〈불안〉 〈절망〉 같은 그림에서는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진 사람들, 혼돈에 뒤얽힌 산과 바다, 불안정하게 경사진 구도 등 그가 느꼈던 불안과 공황의 공포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 P311
0 4 절규 평소 신경 쇠약에 시달리던 뭉크는 어느 날 친구두 명과 저녁 무렵 에케베르그 언덕을 산책하다가강렬한 저녁노을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는다. 이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자연이 질러대는 거대하고끝없는 비명이라고 청각적‘으로 느낀 뭉크가 이때의 경험을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이 바로 <절규>이다. 이 그림은 현대에 들어 여러 대중매체에서 수없이 패러디되고 재생산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비록 뭉크가<절규>에서 표현하고자 한 공포와 불안보다는 과장되게 놀라거나 광기 어린 모습으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어쨌든 뭉크를 널리 알리게 된 뭉크의 아이콘과 같은 작품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 P312
06 외로움 뭉크의 인생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한창 친구들과어울릴 10대 초반, 뭉크 가족은 부르주아 계급이었지만 노동자 계급의 주거지로 이사를 오게 된다. 계급 차이가 존재했던 시대였고 뭉크는 병약하여 가정 학습을받았기 때문에 교우마저도 없었다. 뭉크는 집 안에서그림을 그리며 외로움을 이겨내다가 결국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한편, 뭉크는 자신의 예술이 정체되었다. 고 느낄 때마다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리고 결국 말년에는 에켈리의 집에서 고립과 은둔을 선택하여 홀로외로이 죽음을 맞는다. 그의 외로움과 고독이 잘 묻어나는 그림들로는 〈생 클루의 밤> <별이 빛나는 밤>과같은 그림들을 들 수 있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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