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동방미디어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소년이 책을 읽고 있다. “뭘 봐, 책 읽는 거 처음 봐 ?” 물론 내게 한 말은 아니다. 그때 그가 읽고 있던 책이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였다. 블루가 들어갔으니 우울한 책이겠군. 생각을 하면서 그 책을 찾아 봤다.
나는 누가 읽었다는 말만 들으면 그 책을 읽고 싶어지는 버릇이 있다. 처음 대하는 무라카미 류 라는 사람의 소설이었다. 아, 그 “상실의 시대”를 쓴 사람 ! 난 착각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로. 대강의 그 내용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열 일곱 살 소년이 이런 소설을 읽어도 되나 하는 걱정을 했다. 내가 그 나이 때 카뮈의 “이방인”을 읽자 염세주의에 빠진다고 책을 감춰버린 엄마처럼. 호기심이 생겼지만 오래 망설였다. 책을 읽고 실망할까봐. 하지만 그 아이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드디어 읽고 말았다.
책에는 ‘19세 이하 구독불가’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주인공 류는 19살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심의위원들이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17세에서 25세 이하만이 읽어야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이를 먹으면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라는 색이 어떤 색인지 알 수 없게 되니까 말이다.
류는 자신을 행복한 노란 인형이라고 말했다. 흑인 미군에게 짓밟히는. 하지만 그 흑인은 미국에서는 백인에게 지배당하는 피지배자일 뿐이다. 그리고 노란 인형이 되어버린 일본인도 20세기 포에 조선인을 지배한 인간들이었고, 4세기경에는 백제가 일본을 지배했다는 설도 있다. 검은 새는 인간이 삶을 지속하는 한, 인간이 지키려는 자신만의 문화라는 것을 가지고있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고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타협을 아직 알지 못하는 인간에게는 마약과 섹스의 허무함으로 남을 것이다.
“감각의 제국”이라는 일본 영화가 상영됐었다. 그것 본 어떤 사람은 무지 야하지만 계속 보고 있으면 야하다는 느낌보다는 너무나 처절한 삶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고 했다. 류의 이 작품도 그런 느낌이었다. 섹스나 마약과 문란함보다는 그 속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처절한 상실감을 느끼게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