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가 살인자를 분석한다고?
우와~
죄와 벌의 21세기형의 부활이라니 놀라운 작품같아서 설렌다.
말로상 수상 작품이라고... 그런 상도 있었군.
‘나’, ‘마크 크라머’의 살인 이야기다.
창조할 수 없다면 파괴하라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한 살인이라...
라스콜리니코프의 고뇌가 엿보이는 작품이라니...
코 꿰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보자!!!

고립된 장소에서 펼쳐지는 범죄와 기억상실에 관한 이야기.
이런 문구로 유혹하지말란 말이오~
꼭 <뉴욕삼부작>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소재가 나를 이끈다.
고립된 방에서 기억을 찾아야 하는 노인... 그리고 감시 카메라...
무엇을 찾아야 하고 무엇을 감시해야 하는 걸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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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4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인자가 살인자를 죽이는 덱스터가 생각나네요..야간여행..관심가네요^^

물만두 2007-03-24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로버님 저도 무척 관심이 갑니다^^

하늘바람 2007-03-24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간비행인줄 알았어요^^ 표지 근사하네요.

물만두 2007-03-24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저도요^^ 표지 괜찮죠^^

애쉬 2007-03-2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 오스터의 새책도 기대되는데요. 작가를 믿고 봐야죠, 뭐.

물만두 2007-03-25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쉬님 작가보다 미스터리란 점이 땡깁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 <누군가>에서 아빠 사부로는 딸 모모코에게 호호아줌마를 매일 밤 읽어준다.

그 책은 그가 어린 시절 읽었던 딸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작품이다.

책을 보며 생각했다.

지금의 부모들은 참 행복하겠다고.

우리는 부모들과 이런 정서적 교감이 힘들었다.

시골에서 살던 부모와 도시에서 산 자식...

먹고 살기 바빠 책 읽어줄 엄두도 못내고 책에 대해 공유할 어떤 것도 없던 우리와 우리 부모들...

이제 살만해서 요즘 부모들은 자신이 어릴적 읽었던 책이나 만화를 아이들과 공유한다.

로버트 태권 브이를 같이 보러간 부모도 그런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은 이유였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참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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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theme 2007-03-23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의 두권은 저희집 종은이에게도 읽어준 것들이네요.

물만두 2007-03-2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티테마님 역시 요즘 부모님이십니다^^

이매지 2007-03-23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아줌마도 책으로 있군요^^ 어릴 때 만화로 본 기억이 나는데^^

물만두 2007-03-23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 저도 캐릭터는 기억이 납니다. 저는 티비에서 본 것 같아요^^

아영엄마 2007-03-24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만화로 재미있게 봐서 아이들에게 책으로라도 접해주고 싶더라구요. 저희집에는 첫 권만 있네요.

물만두 2007-03-24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역시^^

마노아 2007-03-24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아줌마 노래 너무 좋았어요. 방글방글 아줌마, 투덜투덜 아저씨, 아줌마가 펼치는 꿈속같은 이야기~ 꼬마 친구 숲속 친구 모두모두 즐거워, 꼬마친구 숲속 친구 모두모두 즐거워~

물만두 2007-03-24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노래는 생각이 안나요^^;;;
 
선악의 정원
존 베런트 지음, 정영문 옮김 / 황금나침반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같은 장소, 같은 사건, 같은 사람들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고 평가된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미국 남부의 서배너라는 곳을 들여다볼 때 작가는 처음 <보물섬>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생각하고 그 우아하게 남아 있는 고상한 도시에 머물기로 한다. 그리고 그곳을 떠날 때도 같은 마음을 갖고 떠난다. 그에게는 어떤 것이 중요했을지 몰라도 있는 그대로의 1980년대의 서배너의 모습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KKK단의 우아하게 포장한 모습과 다르지 않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그들의 모습은 우월감 그 자체였다. 서배너의 상류사회인사들은 그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클럽이 있었고 자자손손 그곳의 상류층이어야 했다. 그것 하나로 모든 것이 인정되는 곳이고 그것 없이 능력과 부만 있는 사람에게 그곳은 지독하게 배타적이었다. 심지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공적을 폄하하기도 하고 그들 사이에 흑인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흑인들은 여전히 흑인들끼리 모임을 갖고 백인들을 흉내 내서 코티용 파티를 열지만 백인들은 그들이 그런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다. 동성애자가 유혹을 했다는 이유로 레인저 부대원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해도 배심원들은 그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았지만 정당방위로 살인을 했다는 그들의 이웃이지만 상류층은 아닌 부를 과시하는 골동품 상인에게는 살인죄를 적용해서 재판을 한다.

 

이 책이 출판된 뒤에 서배너에 관광을 간 사람들 숫자가 늘었다고 한다. 그들이 보고자 한 것은 백인들의 우아한 상류층의 옛 건물과 옛 향수가 아니었을까 싶다.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고. 나이가 들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면 그 영화가 명화가 아닌 역겨움만을 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스카렛 오하라나 레트 버틀러에게 눈길이 가는 것이 아니라 흑인들의 순종적이고 초라한 행색에 눈길이 가게 된다. 그것도 역사였다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되풀이 하지는 말아야 한다.

 

작가가 연대를 정확하게 책에 표현하고 그 시대를 이야기한다는 점을 강조했더라면 읽다가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바네사 윌리엄스는 1984년 미스 아메리카인데 여기에서 언급되는 것이 의아했다. 아마도 재판이 그만큼 오래 끌었기 때문에 작가가 혼동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오타도 많고 번역의 미숙함도 엿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만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 속 서배너를 있는 그대로 자신의 사견 없이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럼으로써 더욱 서배너가 지니고 있는 점이 부각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작가만이 지니고 있는 감각이리라 생각된다. <선악의 정원>에는 선과 악의 공정함이 없다. 그 정원에 있는 선과 악은 가진 자의 선이고 있는 자의 악뿐이다. 선악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아님을 이 작품을 알게 해준다. 서배너라는 선악의 정원은 고인 물과 같다. 고인 물은 언젠가 썩게 마련이다. 그 썩고 난 자리에 좀 더 공평한 선악의 정원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나는 서배너로 관광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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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의 대죄 1 밀리언셀러 클럽 39
로렌스 샌더스 지음, 최인석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pride(교만), covetousness(탐욕), lust(욕망), anger(분노), gluttony(폭식), envy(질투), sloth(태만)의 일곱 가지 죄(칠죄종)로 이루어진 The Deadly Sins 중 첫 번째 대죄인 Pride 즉, 교만에 대한 죄를 소재로 한 로렌스 샌더스의 대죄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대죄 시리즈 중에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꼽는 이 작품을 뒤늦게 읽게 된 것은 그의 처녀작인 <앤더슨의 테이프>를 읽고 뒤늦게 그를 인지한 탓이다. 사실 그의 작품으로 가장 먼저 읽은 것은 <맥널리의 비밀>이었다. 그 작품을 읽고 실망을 해서 작가를 과소평가하고 말았다. 이것도 첫 번째 대죄에 속하는 나의 잘못일 것이다.

사실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때 왜 제목이 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내가 기독교도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마지막 델러니 서장의 말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는 인간의, 아니 자신의 근본적인 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교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대니얼 블랭크를 신이 아닌 한낱 인간인 자신이 단죄하려 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니얼 블랭크는 5명을 얼음도끼로 때려죽인 살인자다. 그렇다고 그것이 또 다른 사람이 그를 벌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닌 것이다. 이것은 피해자 측에서 인정하는 죄다. 그렇다면 가해자인 블랭크의 죄는 무엇일까. 단순히 5명의 사람을 죽인 죄뿐일까. 아니다. 그의 가장 근본적인 죄는 자신이 사랑을 받지 못한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 하지 않은 교만이다. 아니 살인을 피해자에게 사랑을 베푸는 행위로 생각한 교만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예수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 교만이다. 그 교만이 살인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도 죽어 가면서 깨닫는다. 자신은 일개 자연의 일부분임을. 어떤 것이 되려고 몸부림칠 필요도 없는 아주 작은 미미한 존재임을...

그런 점에서 보면 델러니 서장이 대니얼 블랭크에게 친근함을 느낀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델러니와 대니얼 블랭크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동질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누구나 근본적으로는 같다. 가해자가 피해자이고 피해자가 가해자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그만큼 악하다고도 생각하고 산다. 왜냐하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교만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에게, 사회가 다른 사회에, 국가가 다른 국가에, 민족이, 문명이 그 교만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죄를 짓는 것을 멈출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델러니는 자신의 교만이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니라 언제부턴가 생겨난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교만은 인간인 한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없이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짓고 태어나는 것이라는 기독교의 원죄론은 이런 의미에서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교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이 살인자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 살인은 교만과는 별개의 것이다. 이 작품에서 블랭크는 살인자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고, 부모의 장례식에조차 참석하지 않을 만큼 냉혹하고, 화가 나면 자제하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하고, 변태적이고, 그러면서 남의 눈에는 부유하고, 점잖고, 상냥하게 보인다. 그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인 것이다. 이렇듯 살인이란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면 이런 블랭크와 같은 요소들을 빠짐없이 갖춰야만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교만과 살인은 별개의 문제다. 교만은 인간에 대한 이해, 측은지심과 관련이 있는 요소다. 델러니의 고민도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누군가 언제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라고. 교만은 이런 인간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를 억압하기 때문에 위험하고 죄가 되는 것이다.

작품의 구성은 먼저 살인자인 대니얼 블랭크가 살인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고 델러니 서장이 살인자를 잡는 과정을 교대로 나열하고 있다. 이 작품의 이런 긴박함을 잘 섞이게 하고 보완하는 완충의 역할을 하는 것은 델러니의 아내 바바라가 병이 들어 점차 죽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그것은 마치 인간이 태어나고 죽는 것, 죄가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 사랑이 싹트고 시드는 것, 그런 반복을 인지시킴으로 인간을 경건하게,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질 것을 바라는 작가의 감상적인 소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대단히 재미있고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델러니라는 인물이 마음에 들었고, 죄를 짓는 사람, 단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에 대해 진지한 작가의 견해가 마음에 들었다. 다시 한번 인간에 대해, 인간의 죄에 대해 생각하면서 읽고 싶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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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인사이드 메피스토(Mephisto) 15
로버트 실버버그 지음, 장호연 옮김 / 책세상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우리에게 무언가 있다가 사라지면 화를 낸다. 그 상실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진다. 끊임없이 왜? 를 되풀이하면서 누군가에게 이런 법은 없다고 따지게 된다. 누구나 모두 마찬가지다. 빼앗기는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데이비드 셀리그는 초능력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초능력을 타고 났다. 누군가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생각을 읽는 능력으로 그는 세월을 보냈지만 그 능력 때문에 행복하지도 않았고 그 능력을 자기에게 맞게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그에게 저주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다 늙어 마흔이 넘은 그에게 그가 가진 단 하나의 남과 다른 능력이 사라지려 한다. 왜 하필이면 이제야? 그는 혼란스럽고 그래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자신을 돌아본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절망감. 나이가 들어 점점 죽음을 향해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 상실한 젊음에 대한 느낌일 수도 있고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인해 보통의 삶조차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할 때도 있고 이상이 망상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오는 자괴감일 수도 있다. 그러니 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사는 거다. 거기에 더할 말은 필요 없다. 왜 나만? 이라는 질문보다 더 멍청한 질문은 없으니까. 그럼 너 아닌 다른 사람의 상실은 있어도 상관없다는 얘기잖아. 그거 잔인한 생각이다. 위험한 발상이고.

 

그런데 셀리그, 누구나 겪는 일을 개똥철학 펼치듯 한가득 풀어놓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다 그렇게 살아. 누구는 그렇게 안사냐고. 저자가 참 마음에 안 든다. SF로 봐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겠다. 셀리그가 초능력을 가졌다는 것 빼면 SF적인 것은 거의 없다. 이래도 되는 거냐고...

 

다잉 인사이드... 다잉 아웃사이드는 없고? 인간이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 가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고 그 주변부, 내면이든 외면이든 그것은 각자 알아서 생각하고 만들어 나가면 그뿐이 아닐까 싶다. 너무 냉소적인가? 마지막의 침묵 속에 살아가겠다니 그건 기특한 일이다. 하긴 나이나 지적인 능력 같은 것이 인격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니까.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홍학을 봤다. 홍학이 멸종 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하더군.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한 거구나. 홍학, 우리는 솔직히 말하면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산다. 태초부터 얼마나 많은 종이 멸종하고 지금도 멸종하고 있는 지 알 수는 없지만 홍학을 본 순간 홍학은 저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루 중 얼마를 먹는데 할애하고 기타 등등 어쩌구저쩌구를 떠나 그냥 저 붉은 무리가 이 지구에 있다는 사실이 멋있었다.

 

홍학도 그러하니 쓸데없는 지구에서 바퀴벌레만도 못한 인간일망정 그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한 거 아닐까. 아시겠습니까? 셀리그씨? 실버버그씨? 이 몸은 그리 생각합니다요. 그리고 사회적인 면은 지금의 미국을 보면 그다지 논하고 싶은 생각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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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7-03-22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나만? 에서...나에게도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겠지요...
그런 진리를 이성으로만 깨우치고 감성으로는 늘...헤매게 되긴 하지만요...
전 늘 님의 리뷰 볼 때...별 숫자부터 헤어봐요,,ㅎㅎㅎ

물만두 2007-03-22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전 늘 누군가 제 옆에서 그럴때마다 그건 너무 뻔뻔하다고 말합니다. 저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받아들여야 자신이 편해지잖아요^^
별점은 늘 4개 아님 5갠데요^^ㅋㅋㅋ

모딘 2007-03-22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 오해도 없고 그로인해 서로 상처주는 일도 없지 않을까하는. 셀리그는 왜 좀더 현명할 수 없었을까요? 남들보다 좀 더 나은 위치였을텐데. 상대가 듣고 싶은 말만 할 수 도 있을테고, 그가 원하는 행동을 더 앞서나가 할 수 도 있었을텐데. 상대방의 생각을 그대로 알 수 있다는 것 역시 저주인가 봅니다. 셀리그의 내부로부터 죽어가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죽어가는 자신의 능력인가, 더이상 타인과의 소통을 포기한 자신의 마음인가하는 점이 말입니다.

늘 물만두님을 스토킹하다 오늘에서야 글을 남기네요. 거의 매일 읽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하고요. 건강조심하세요. 날씨가 변덕이 심하네요.

물만두 2007-03-22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모님 그게 초능력을 가진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요? 더 가져 더 좋아진다면 불공평한 세상이 더 불공평하잖아요. 셀리그는 어쩌면 작가의 그런 의도를 반영한 인물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밖에 안나가서 날씨는 상관없는데 님은 환절기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