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에 읽어보려고 했던 영화 리뷰를 좀 뒤늦게 시간을 내서 읽고 옮겨놓는다. 얼마전 개봉됐던 영국 감독 대니얼 고든의 <푸른 눈의 평양시민>(2006)에 관한 것인데, 전작인 <천리마 축구단>(2002)과 <어떤 나라>(2004)를 포함하면 '북한 3부작'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김동원 감독과 대니얼 고든의 대담은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rticle_id=33175 참조). 여하튼 2년 터울로 북한에 관한 영화를 꾸준히 제작해낸 열정은 감탄할 만하다. 나로선 아직 한 편도 보지 못했지만 이왕이면 TV에서 방영해도 되는 게 아닐까 한다. 제2차 남북 정상회담도 곧 다가오고 하니 말이다.  

<푸른 눈의 평양시민>은 평양에 살고 있는 미국인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컬처뉴스(07. 08. 30) 삶에서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

영국 감독인 대니얼 고든의 북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66년 월드컵에서 8강 신화를 이룩한 북한 선수들을 촬영한 <천리마 축구단>(2002),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북한 매스게임의 두 소녀를 기록한 <어떤 나라>(2004)에 이어 그는 1960년대 초중반에 월북한 미국인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푸른 눈의 평양시민>을 2006년에 완성했다. 서양인이 입국하기도 어려운 북한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것도 보통일이 아니지만, 연이어 세 편을, 그것도 거의 6년여의 시간을 들여서 기록했다는 것은 엄청난 작가적 고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니얼 고든은 하고 많은 나라 가운데 왜 북한을 선택한 것일까? 그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축구광이었던 그의 처음 관심사는 1966년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8강에 올랐던 북한 축구였다. 당시 놀라운 활약을 했던 선수들이 이후 국제대회에서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아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는 그들이 당시 어떻게 8강에 오를 수 있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고든의 순수한 관심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북한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게 된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대상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엄청난 규모의 매스게임을 벌이는 북한을 보면서 그는 북한이 다른 나라와는 전혀 다른 나라라는 것을 차츰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북한을 알 수 있는, 다르게 말하면 북한을 서구에 소개하는 소재로서 매스게임을 하는 두 소녀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를 만들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의 영어 제목인 <정신의 나라 A State of Mind>는 북한의 현실을 그 어떤 것보다 정확히 집어낸다. 미국의 통제 때문에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이겨내려는 정신을 지닌, 단체 활동의 나라이며, 그것을 매스게임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오늘날 북한의 모습 아닌가.

평양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고든은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1960년대에 월북한 미군들이 평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감독은 즉시 이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 얼마나 좋은 소재인가. 미제국주의를 원수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미국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도 남한의 DMZ에서 스스로 월북해서 수도 평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푸른 눈의 평양시민>의 원제가 <경계를 넘어서 Crossing The Line>인 것도 그들이 남한의 휴전선을 넘어 북한으로 망명했기 때문이다.

 

 

 

 

 

 

 

 

 

 

사실 고든은 북한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도 북한 사회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가령 <천리마 축구단>에서 이제는 늙어버린 축구선수들이 자신들을 격려해주었던 김일성 주석을 기리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때문에 고든은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은 같은 구미(歐美)인이지만 평양에서 살고 있는 이들을 통해 풀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솔직한 입장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때문에 <푸른 눈의 평양시민>은 평양에 살고 있는 미국인에 대한 다큐멘터리이자 자신과 미국인의 격차를 해소하거나 확인하는 작업이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1962년 38선을 넘어 월북한 제임스 드레스녹이다. 그는 자신이 월북한 상황을 솔직하게 말한다. 그는 감독에게 “난 당신들을 믿소. 진실을 찾아온 거니까”라고 말한다. 그의 생애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고아였던 그는 첫째 양부모에게 학대당해 둘째 양부모가 길렀지만 중학교밖에 다닐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입대해서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서독으로 파병 간 사이 부인은 다른 사람을 만나 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으로 온 그는 허가 없이 휴가를 나갔다가 이것이 발각돼 군사법정에 설 위기에 처했다. 군사 재판 하루 전날 결국 그는 DMZ을 넘어 월북했다. 그는 북한 체제가 좋아서 월북한 것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월북했다. 이것은 다른 세 명의 경우도 비슷한데, 영화에서 인터뷰를 통해 솔직하게 드러난다.

미국에서 하층민이었던 드레스녹은 북한에서의 생활에 대해 큰 불만이 없다. 미국으로 돌아갔으면 하층민으로 살았을 것이 뻔하지만, 북한에서의 생활은 중산층 이상이다. 자식들은 엘리트 코스인 평양외국어대학에 다니고 있고, 그는 보통강변에서 낚시를 하며 여유 있는 생활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국가에서 배급을 주기 때문에 걱정 없이 살 수 있고(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그는 많은 쌀을 배급받았다고 한다), 건강이 좋지 않지만 언제든지 병원을 찾을 수 있다. 하층민으로 살았을 미국이나, 자신이 겪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생활이다. 그가 북한 체제에 만족을 표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선택이며 그의 환경의 영향 때문이다.

감독은 그것을 아주 편하게 보여준다. 이 다큐멘터리를 위해 감독은 미국의 드레스녹의 집, 그의 어린 시절 친구들, 같이 군에서 근무했던 동료들을 인터뷰한다. 심지어 DMZ으로 들어가서 월북하던 상황을 재현하기도 하고, 당시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감독은 평양에 살고 있는 미국인은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이것이 억압적인 체제 속에서 속마음을 토로하지 못하는 위선이 아니라 진짜 그의 진솔한 고백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고든의 이전 영화와 달리 매우 정치적이다. 하긴 소재 자체가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들 존재 자체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사건은 발생하고 만다. 드레스녹과 비슷한 시기에 월북한 젠킨스이 일본으로 가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정치적인 해석의 장에 놓이게 된다. 제킨스의 부인이었던 소가가 일본에서 납치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일본으로 간 젠킨스는 북한 생활은 지옥이었고, 드레스녹에게 많이 맞았다고 증언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다. 북한이 외국인을 납치해 망명자들과 결혼하게 했고, 그렇게 해서 낳은 2세들을 스파이로 활용할 계획이었다는 소문이 이어졌다. 젠킨스의 아내 소가도 북한 스파이들에게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납치되었다는 것이다.

감독은 이 문제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 입장을 취하고자 노력한다. 일본으로 가기 전의 드레스녹과 젠킨스의 진술을 담고, 이후 엇갈린 진술을 다시 담는다. 그렇게 해서 감독은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 가급적 객관적으로 상황을 담아 관객이 직접 판단하도록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라스트 장면에서 묘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 내내 김일성 수령에 대해 특별한 말을 하지 않던 드레스녹이 “위대한 수령께선 늘 우리를 각별히 염려해주셨어. 죽는 날까지 나라에서 지켜줄 거야”라는 말을 하고 넓은 광장을 걸어간다.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광장의 확성기에서 “북한은 지상 낙원입니다”라는 내용의 선전문구가 나온다.

감독은 객관적일 수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이 장면을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드레스녹의 말이 모두 허구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이제까지 드레스녹이 했던 말이 모두 체제의 선전 도구로 사용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드레스녹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자의 자포자기적 발언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 드레스녹의 말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이 장면을 통해 이제까지의 모든 것이 회의의 대상이 된 것이다. 

전작을 통해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북한을 이해하려고 했던 고든은 3부작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북한 체제에 대해 다소 회의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 주도하는 통제된 국제 사회도 싫지만, 그렇다고 미국을 반대편에 세운 후 그것을 핑계로 주민을 통제하고 신격화하는 북한의 모습도 긍정할 수 없는 현실이 고든이 접한 상황이다. 고든은 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인간다운 삶인지, 그런 삶에서 이데올로기는 무엇인지 이 영화를 통해 묻고 있다.(강성률_영화평론가) 

07. 09. 06.

P.S. 참고로 '필름2.0'에 실렸던 감독 대니얼 고든과의 인터뷰기사도 옮겨놓는다(기사를 읽어보니 대니얼 고든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필름2.0(07. 08. 24) "다음엔 평양 밖에서 촬영할 것이다"

<푸른 눈의 평양 시민>으로 ‘북한 삼부작’이 완성됐다.
계획한 건 아니지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앞으로도 내게 엄청난 이야기라고 판단되는 소재라면 북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들 생각이다.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을 기획하면서 의도한 건 무엇인가?
북한으로 망명한 미국인 네 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다. 소재가 민감하지만 어떤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고자 한 건 아니다. 처음부터 있는 그대로를 얘기했고 몰래 생각하고 있다가 나중에 덧붙인 것은 없다.

지금 와서 이들에 대한 사연을 밝히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항상 사실을 이야기하려 하고 대상을 솔직하게 대하려 한다. 어떤 사실을 파헤치려고 이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나는 한국전쟁을 경험한 역사적 기억이 없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이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단지 이 사람들의 얘기가 놀랍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췄다.

편견이 없다는 것이 당신 영화의 강점이다. 하지만 미국인이 북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어떠한 편견도 갖지 않는다는 게 가능한가?
물론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드레스녹에 대해 워낙에 알려진 바가 없었고 1962년 망명 후에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인물이라 외모가 어떤지도 몰랐다. 물론 촬영 전 그의 스무 살 사진을 본 적은 있지만 실제 만나보고 몸이 그렇게 큰 줄(키 196cm, 몸무게 128kg) 짐작도 못 했다. 그만큼 그가 주는 분위기가 강렬했다. 2004년이 돼서야 만났는데 버지니아 억양으로 1950년대 영어를 쓰면서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했다.

젠킨스는 어땠나?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젠킨스가 북한을 떠남으로 인해 스토리가 바뀐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젠킨스의 미국 고향에 가서 가족들도 만나고 군대 친구들도 만나며 언젠가 젠킨스가 돌아오리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젠킨스는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았고 그가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드레스녹과 젠킨스 간의 진실공방을 끝까지 파헤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체제의 우월이 아닌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의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인가?
바로 그게 의도였다. 양쪽의 소리를 모두 들려줬기 때문에 관객이 알아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드레스녹과 젠킨스의 직속 상관을 만나 인터뷰를 했지만 영화에 넣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서 밝힌다면, 드레스녹 상관의 경우, 드레스녹의 월북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져 곤란함을 겪었지만 40년 넘게 북한에서 생활한 것만으로 충분히 벌 받을 만큼 받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반면 젠킨스의 상관은 죽는 날까지 젠킨스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한 가지 의문은, 북한 삼부작이 평양에 거주하고 있는 일종의 특권층만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생활을 가감 없이 보여주려면 그 외 지역의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도 다뤄야 하지 않았을까?
영화상에서 밝히지 않았지만 평양이 특별한 도시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 거다. 북한 내에서도 모든 사람이 평양에 살고 싶어하고 평양 주민들도 자신들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북한 삼부작에 나오는 사람들은 평양 내에서도 평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드레스녹의 경우, 식구가 다섯이지만 방은 두 개밖에 없는 집에서 산다. 물론 평양 외에 대여섯 도시를 방문했었고 31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백두산에도 가봤다. 북한에서 기차를 탄 서양인은 내가 처음이었고 다시 말해, 외부인들이 전혀 본 적이 없는 광경을 봤다는 얘기다. 당연히 평양 밖에서 촬영을 하고 싶은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기도 해봤지만 평양 외의 지역에서 영화를 만드는 건 너무나 어려웠다. 그나마 북한에서 영화를 촬영할 수 있는 곳은 평양이 유일하다. 그래도 다시 한 번 북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다면 평양 외의 도시에서 진행할 것 같다.

당신이 겪어본 북한 주민들은 어떤 사람이던가?
우리가 만난 북한 사람들은 외교관들이 접한 북한 사람이나, 자선단체가 접한 북한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들은 뭐든지 급하게 하려는 생각이 없다. 자기들이 준비가 되면 자기 방식대로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남한 사람과는 정반대다.(웃음) 우리는 북한 사람을 대할 때 먼저 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솔직하게 다가갔다. 처음부터 뭔가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삼부작이 가능했다고 본다.

그래서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던 드레스녹이 지금은 찍기 싫다고 하자 바로 촬영을 중단한 건가?
그건 다른 문젠데 나는 촬영 대상이 불편해하면 당연히 찍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미안하기도 하고.

그것 외에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자신만이 고수하는 원칙이 있나?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시하는 건 이야기의 핵심에 도달하는 것이고 원래 했던 이야기가 무언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재밌게 만들려고 한다. 관객들이 내 영화에 한 시간 반이나 투자하는데 즐겁게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내레이션으로 크리스천 슬레이터를 기용한 건 그 때문인가?
미국인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에 미국인의 내레이션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슬레이터의 열혈 팬인데 그의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가 영화에 무게감을 부여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출연료를 줄 수 없어도 참여해줄 수 있냐고 물으니 영화가 좋으면 상관없다 그러더라. 그 답례로 김정일이 쓴 <감독의 자세>와 <배우의 자세> 책 두 권을 선물했다.

미국에서는 8월 10일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이 개봉했다. 그쪽의 반응을 접했는지?
그에 대한 반응을 알 수 없는 것이 인터뷰를 위해 8월 11일 영국에서 서울로 출발했다. 접하진 못했지만 당연히 다들 좋아했을 것이라고 본다.(웃음) 뉴욕에서는 3주 전 브루클린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옥상에서 300명이 모인 가운데 상영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참석했다. 완전히 매진됐고 반응 역시 무척이나 좋았다.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 때문에 미국 정부나 군부가 관심을 가질만한데 공식반응을 나타낸 적이 있나?
내가 알기로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천리마 축구단>과 <어떤 나라>도 물론이고. 하지만 <어떤 나라>의 경우, 영국 정부에서 미국 정부에 보내준 것으로 알고 있으며 특히 영국 외교부는 북한의 일상을 보여주기 위해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북한 삼부작을 만드느라 영국에 갈 시간이 있기라도 했나?(웃음)
안 그래도 영국에서 한 편을 만들었다.(웃음) 한 달 후에 완성될 예정인데 영국 북부의 광산지역에서 개 경주를 하는 내용이다. 너무 외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영국에서 찍었는데 주로 밤에 촬영하는 바람에 이번에도 역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없었다.

우간다 출신의 육상선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지 않았나?
이 작품을 마친 뒤에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우간다 출신의 육상선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역시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다.
그렇다. 아프리카인으로는 최초로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이다. 아버지의 부인이 8명이고 자녀가 43명이나 될 만큼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장애물 400m 육상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는 엄청난 업적을 이뤘다. 그런데 이디아민 정권 때문에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했고 자기 타이틀을 지킬 수 있는 기회도 박탈당했다. 전세계적으로 기억돼야 할 위인임에도 그렇지 않아 영화로 만들게 됐다.(허남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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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난 김에 '한 줄 오역'을 지적하려고 하니까 부지기수다. 어제 학교에서 들고 온 리처드 커니의 <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한나래, 1998)의 첫 장도 예외는 아닌데, '스스로에게 이방인이 되어(Strangers to ourselves)'란 제목의 이 장은 크리스테바와의 대담이다(크리스테바는 같은 제목의 책을 썼다). 한 대목만을 따라가본다. 이 대목은 민족주의와 코스모폴리타니즘에 대한 것이고 전체 대담은 1991년 파리에서 이루어졌다. 참고로 이 책은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있다.

커니: 프랑스 국민으로서의 당신의 코스모폴리타니즘과, 당신의 출신지(*불가리아)에 대한 충성을 어떻게 결합시키겠는가? 민족적 또는 지역적 출신 기원을 어느 정도 인식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당신은 민족주의가 병적 현상이라는 견해를 보였지만, 그건 단지 우리가 어떤 민족적 정체성을 위해 기본적인 인간적 요구를 부정할 경우에만 그렇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크리스테바: 내가 보기에 발틱, 시베리아,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의 민족주의는 퇴행적이고 우울증적 태도다. 잠시 옆길로 새서 약간의 정신분석을 해보아도 좋다면, 이 분리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정체성이 굴욕을 당해온 사람들이다.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는 이런 정체성을 인식하지 않았고, 그래서 현재 조증의 형태를 띤 반울증적 반작용이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표현해도 좋다면 말이다.(29쪽)

일단 여기서 끝으면, 먼저 오역은 '세르비아(Serbian)'를 '시베리아'로 옮긴 것이다. '발틱(Baltic)'도 형평에 맞게 옮기자면 '발트국' 내지는 '발트 3국'이라고 해야겠다. 마지막 문장의 원문은 "Soviet Marxism did not recognize this identity, so they have now an anti-depressive reaction which takes manic forms, if I may put it like that."(9쪽)인데, 여기서 'recognize'는 내가 보기에 '인식하다'가 아니라 '인정하다'로 옮겨야 한다. 소비에트 블록 하에서 구 동구권 국가들의 민족적 정체성이 인정되지 않고 억압돼 왔으며 이것이 사회주의 몰락, 사회주의 블록 해체와 함께 거의 조증의 형태로 폭발했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상의 문제점?

출신 기원과 의고적 민속 가치를 찬양하는 것은 폭력의 형식을 띨 수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적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이상 공산주의가 적이 아니므로 다른 것이 적이 된다. 다른 종족 집단, 다른 민족, 희생양 등등 말이다. 이 병적 상태는 오래 갈 수 있고 또 이런 낡은 원한을 품는 것은 그 나라들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문화적 발전을 막거나, 또는 분명히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 이 병적 상태가 좀더 빨리 지나가도록 돕기 위해 사람들은 그 과정을 가속화시키려 노력할 수 있고, 정체 상태에 빠지는 것을 피하려 애쓸 수 있다. 그리고 그 차원에서 한편으론 교회가, 한편으론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내가 보기에 '동유럽' 가톨릭 교회는 공산주의 반대 저항운동에서 주된 역할을 했다. 오늘날 민족주의를 초월하는 일에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상 - 순전히 종족의 것이거나 낡은 민족적 이상이 아닌 - 을 부여하는 일에서 교회가 맡은 바 역할이 크다. 최근에 작성된 교황의 회칙을 보면, 교회가 전체주의에 대항하면서 또한 일종의 '아메리카니즘'에도 대항하는 도덕적 투쟁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도 기독교 교회가 저 민족주의들 - 지나치게 신속히 없애 버려서는 안되겠으나 초월하고자 노력해야만 하는 -을 위한 치료책으로 이러한 코스모폴리탄, 보편주의의 이념을 제시한 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29-30쪽)

대담 번역에서 하이픈(-)을 집어넣는 것은 '현명한' 처사는 아닌 듯싶다. 여하튼 당연해보이는 것은 스스로를 언제나 '이방인'으로 간주하는 크리스테바가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보편주의로서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옹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그러한 보편주의의 이념을 제시하는 데 기독교, 특히 동유럽 가톨릭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대목: "교회가 전체주의에 대항하면서 또한 일종의 '아메리카니즘'에도 대항하는 도덕적 투쟁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도 기독교 교회가 저 민족주의들을 위한 치료책으로 이러한 코스모폴리탄, 보편주의의 이념을 제시한 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기독교의 보편주의(=바울주의)에 대해서는 바디우나 지젝 등이 최근에 강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와 관련된 부분만 조금 더 읽어본다.

커니: 당신은 종교가 특정 종파나 분파를 넘어서 어떤 공통의 보편적 비전을 투사함으로써 어떤 긍정적 역할을 할수 있으리라고 시사하는 것인가?

크리스테바: 배타적 종교들에는, 당신이 그들의 전제들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당신을 이방인으로 만들 그런 어떤 동질성이 있다. 말하자면 우리의 유일신 종교들은 타자 개념을 발전시키려 노력해 왔던 것이며, 바로 이것이 우리가 풍부하게 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서구 사상의 유산이다. 계몽주의자들은 그것을 추론해내려고 애썼고,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다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기독교적 사랑'이라는 카리타스(caritas)의 이념은 오늘날 기독교 교회에 어떤 힘을 준다. 이를테면 '가톨린 구호단' 또는 프랑스의 기독교인들이 외국인들을 위해 조직하는 여타의 행동 양식들을 보면 이것이 발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주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읽기를 가르치고, 물질적 도움을 제공하는 등의 그런 일들 말이다. 나는 종교 문화의 이런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대중적 지지를 누리고 또 협소한 민족주의의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한에서는 말이다.(31-32쪽)  

 

크리스테바는 이러한 관점에서 개인에 주목하며 그 단독성(singularity)의 차원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가라타니 고진도 같은 의견이지만, 오직 단독성의 차원만이 보편성을 보장한다). 그녀의 '사랑의 정신분석', 혹은 '사랑으로서의 정신분석'이 뜻하는 바가 그런 것인데, 거기서 정신분석은 기독교적 사랑(카리타스)과 만난다. 사실 크리스테바 자신이 프랑스 도미니크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다녔고 그러한 교육에 의해서 그녀의 삶 자체가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이러한 그녀의 독특성(singularity)이 보편적 이론의 차원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가를 확인해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07. 09.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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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한 제목이 없어서 그냥 '헌팅턴과 미국의 정체성 위기'라고 붙였다(이때의 정체성은 당연히 '국가 정체성'을 말한다). 실상은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김영사, 2004)의 한 문단 읽기이고, 재미있는 한 오역에 대한 지적이다. 마침 9.11과 관련된 내용이라 '시의성'은 있는 듯해서 적어둔다.

 

헌팅턴의 책은 '우리는 누구인가(Who Are We?)'란 원제와 (직역하면) '미국의 국가정체성에 대한 도전들(The Challenges to America's National Identity)'이란 부제(국역본에는 '미국의 정체성 위기'라고 돼 있다)에 충실한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 그의 지적대로, 이 정체성 위기가 세계적인 차원의 것이라면 비단 미국의 국가정체성에 별로 관심이 없는 독자라 하더라도 참조할 만하다. 내가 읽을 대목은 '국가정체성의 위기'란 1장의 한 문단인데,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에 영원한 사회는 없다. 루소는 이렇게 얘기했다. "스파르타와 로마가 명망했는데, 어떤 나라가 영원히 계속될 수 있겠는가?" 가장 성공한 사회들조차도 언젠가는 내부 분열과 해체의 위협에, 그리고 더 격렬하고 무자비한 외부의 야만적 힘에 노출된다. 결국에는 미국도 스파르타와 로마, 그밖의 인간 공동체들과 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28쪽)

여기까지는 흔히 말하는 '제국의 종말'론을 따른다(더 나가면 '문명의 붕괴'가 되겠다). 헌팅턴의 입장은 그래도 그러한 '자연적인' 종말을 좀 지연시켜보자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미국의 정체성 실체는 인종, 민족, 언어와 종교로 대변되는 문화, 그리고 이념이 규정했다. 그중에서 인종과 민족에 의한 미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문화에 의한 미국은 위협을 받고 있다. 소련의 경험이 잘 보여주듯이, 이념은 공동체의 인종, 민족, 문화의 원천이 부족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힘이 부족하다. 그래서, 로버트 캐플런이 주장했듯이, 일부에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미국은 처음부터 죽기 위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헌틴턴이 국가정체성의 구성소로 카운트하고 있는 것은 (1)인종(race), (2)민족(ethnicity), (3)문화(culture), (4)이념(ideology), 네 가지이다(문화의 가장 중요한 구성소는 언어와 종교이다). 이 중 미국의 경우에 인종, 민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다인종, 다민족 국가인 만큼 인종과 민족은 더이상 미국의 국가정체성의 변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겠다), '미국식' 문화라는 것도 쇠잔해간다는 것. 그렇다면 남는 건 이념, 곧 이데올로기뿐인데. 이건 소련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확실한' 구성소가 못된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국가정체성이라는 게 아주 취약하다는 얘기이다. 인용문의 '로버트 캐플런'은 최근에도 <제국의 최전선>(갈라파고스, 2007)이 우리에게 소개된 '로버트 카플란'을 가리킨다.   

"그러나 일부 사회는 자신들의 존재를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때 국가정체성, 국가의 목표, 그리고 공동의 문화 가치를 갱신해 붕괴와 해체를 연기시키고 중단시킬 수 있다. 미국인들은 9.11사태 후에 그렇게 했다. 그리고 다가올 3001년에도 그들이 마찬가지로 직면한 도전은 공격을 받지 않아도 국가와 공동의 정체성을 계속 갱신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28쪽)

이 대목은 오역이 포함돼 있으므로 원문을 같이 인용한다(예전과 달리 영문 인용이 깨져보이는 건 유감스럽다). "Yet some societies, confronted with serious challenges to their existence, are also able to postpone their demise and halt disintegration, by renewing their sense of national identity, their national purpose, and the cultural values they have in common. Americans did this after September 11. The challenge they face in the first years of the third millennium is whether they can continue to do this if they are not under attack."(12쪽)

'재미있는 오역'이라고 한 건 맨마지막 문장을 가리킨다. "그리고 다가올 3001년에도 그들이 마찬가지로 직면한 도전은 공격을 받지 않아도 국가와 공동의 정체성을 계속 갱신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옮겼는데, 뜸금없이 '3001년'이 왜 나오는가?(현실정치를 다루는 정치학자가 천년 후의 일을 왜 걱정하겠는가?) 역자가 좀 무신경하게 옮긴 경우인데, 'third millennium', 곧 '세번째 밀레니엄'은 3000년대가 아니라 2000년대이다. 그리고 'the first years'를 '3001년'이라고 해놓았는데 전문번역가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는다(하청을 주었다면 몰라도).

다시 옮기면, "2000년대 초반에 그들이 당면한 도전은 외부의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그들이 그러한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국가라는 건 쇠퇴해가기 마련이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러한 과정을 연기하거나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게 헌팅턴의 생각이다. 그리고 9.11이라는 국가적 도전에 직면해서 미국사회는 일시적으로나마 '단합'함으로써 확고한 국가정체성("우리는 미국인이다!")을 확인시켜주었다고 평가한다. 문제는 그러한 '단합'을 어떻게 상시화하느냐이다. 즉, 외부로부터 공격받거나, 9.11과 같은 비상시국이 아니더라도 어떻게 미국의 전통적인 가치와 국가정체성을 확고하게 유지해나갈 것이냐 하는 것. 그러한 문제의식(위기진단)과 나름의 해법제시가 책의 골자이다.  

물론 그 이면은 국가적 단합을 '상시화'하기 위해서 차선의 방책으로 계속적인 외부의 공격과 위협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부적으로 어찌해보겠다는 거야 누가 말리겠는가...

07.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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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 2007-09-05 22:02   좋아요 0 | URL
"third millennium" 말씀이지요?

로쟈 2007-09-05 22:2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귀가하는 사이에 '퀴즈'가 돼 버렸나요?^^
 

9.11과 테러리즘 관련으로 읽을 책 모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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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시대의 철학- 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화
지오반나 보라도리 지음, 손철성.김은주.김준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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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테러
테리 이글턴 지음, 서정은 옮김 / 생각의나무 / 2007년 9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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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거룩한 테러- 9.11 이후 종교와 폭력에 관한 성찰
브루스 링컨 지음, 김윤성 옮김 / 돌베개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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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테러- 노엄 촘스키와의 대화
노암 촘스키 지음, 존 준커먼.다케이 마사카즈 엮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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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9월 06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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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전철에서 읽은 기사 하나를 옮겨놓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의 한 사람인 '이자벨 위페르 특별전'이 열린다는 소식이다(위페르에 대해서는 예전에 옐리네크와 함께 잠깐 다룬 적이 있다. http://blog.aladin.co.kr/mramor/926588 침조). 특히 초기작 <레이스 짜는 여인>(1977)의 상영 소식이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위페르를 처음 '발견'한 영화이기도 한데, 아마도 1989년에 TV에서 보았던 듯하다. 어즈버 18년 전이다.

찾아보니 위페르 특별전은 프랑스문화원에서 기획해서 전세계 순회를 하는 모양이다(호주 시네마테크에서 지난달에 열린 바 있다. http://www.qag.qld.gov.au/cinematheque/past_programs/2007/isabelle_huppert 참조). 클로드 샤브롤의 <마담 보바리>는 비디오로 갖고 있지만 <레이스 짜는 여인>은 어디서 구해보나? 상영일정이 (이미 지나간) 오늘과 일요일(9일)에만 잡혀 있다. 사소한 일로 조금 불행해지는군...  

문화일보(07. 09. 04) 佛디바 위페르 ‘30년 연기’ 한눈에

프랑스의 대표적 여배우 중 한 명인 이자벨 위페르의 매혹적인 연기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행사가 열린다. 4일부터 11월11일까지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나다 극장에서 진행되는 ‘순수와 관능을 넘나드는 디바 - 이자벨 위페르 특별전’이 그것. 주한 프랑스문화원과 영화사 진진이 매주 화요일마다 진행해 온 ‘시네 프랑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된 행사다.

이자벨 위페르는 1971년 데뷔한 이후 30여년 동안 60여편의 작품에 출연해 왔다. 그는 순결한 처녀와 귀족 부인, ‘팜므 파탈’과 강박증을 지닌 중년 여성, 가족을 살해하는 살인마까지 다양한 인물을 자신만의 색깔로 창조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 배우다. 차가운 듯 열정적인 이미지는 다른 여배우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독특한 매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는 칸, 베를린, 베니스 국제영화제 등 세계 3대 영화제의 연기상을 모두 수상했고 프랑스의 권위있는 영화축제인 세자르영화제 여우주연상에 12번이나 이름이 올랐을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칸 영화제 본선에도 그의 출연작 16편이 올라 가장 많이 출품된 배우로 기록돼 있다.



이번 특별전엔 총 10편의 작품이 소개된다. 우선 그에게 두번째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겼던 ‘피아니스트’(2001년)는 국내 팬들도 가장 많이 기억할 작품. 위페르는 젊은 남자 제자와 비극적인 사랑에 빠지는 피아니스트로 출연, 중년 여성의 위태로운 심리와 욕망을 탁월하게 연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위페르의 초기작 중 하나인 ‘레이스 짜는 여인’(1977년)도 상영된다. 미용실 보조로 일하는 순진한 소녀 베아트리스 역을 연기하는 앳된 모습의 위페르를 감상할 수 있다. 클로드 샤브롤 감독과 호흡을 맞춘 ‘마담 보바리’(1992년)와 ‘의식’(1995년)도 매작품마다 변신을 거듭하는 위페르의 연기력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장 뤼크 고다르 감독의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인생’, 모리스 피알라 감독의 ‘룰루’ 등도 관객들을 만난다. ‘첫 눈에 반하다’ ‘이별’ ‘왕의 딸’ ‘약속된 인생’ 등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어서 더욱 관심이 모아진다. 영화는 매주 화요일 오후 7시와 일요일 오후 4시에 상영된다. 특별전 기간 중엔 이자벨 위페르의 미니 사진전이 열린다. www.dsartcenter.co.kr, www.france.or.kr (강연곤기자)

07. 09. 04.

P.S. <레이스 짜는 여자>의 원작소설은 파스칼 레네(1942- )의 <레이스 뜨는 여자>(예하, 1989)이다('레이스 짜는'보다는 '레이스 뜨는'이 더 우아하지 않나?). 150쪽이 안되는 분량이지만 1974년 공쿠르상 수상작이다. 현재는 절판중인데 이 참에 다시 나와도 좋을 듯싶다.

제목은 '진주 귀고리 소녀'처럼 베르메르의 그림 '레이스 뜨는 여인'에서 따온 것이다(어째 우리말 제목이 다 다를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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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9-05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 시간이 참 만만치 않군녀...

로쟈 2007-09-05 16:12   좋아요 0 | URL
핑계일 수도 있지만, 사실 목숨 걸로 영화를 볼 나이는 지났죠.^^;

nada 2007-09-05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위뻬르 언니가 레이스를 뜨다니.
그 손은 왠지 남정네 뺨 때리는 데나 적격인 거 같아서. -.-
젊은 시절의 위뻬르 언니가 궁금하네요.
EBS 9월 프로그램에 이자벨 위뻬르 영화가 한 편 있던걸요?
16일에 <사기>란 영화요. 로쟈 님께서 위뻬르 언니 팬이시라고 하니 살짝 귀띔해 드려요.

로쟈 2007-09-05 16:12   좋아요 0 | URL
그래도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귀뜀은 감사합니다...

anyone 2007-09-05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 명화극장에선가 본 <레이스 짜는 여인>은 이상하게 생생합니다. 거기에 나온 여자가 이자벨 위페르였군요. 이번 주말에 꼭 챙겨보아야겠습니다.

로쟈 2007-09-05 16:10   좋아요 0 | URL
저도 다시 봤으면 싶지만 가능하지 않은 시간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