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애독자는 아니지만 가끔 묵직한 책들은 손에 든다. 오늘 손에 든 건 엠마뉘엘 르파주의 <체르노빌의 봄>(길찾기, 2013)이다. 물론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소재로 한 책이다. 찾아보니 체르노빌 관련서 가운데는 만화도 몇권 포함돼 있다(<체르노빌의 봄> 서두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로부터의 인용이다). (그래픽 노블에 견주어) '그래픽 르포르타주'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아이들도 좀 읽고 다시금 경각심을 갖는 게 좋겠다(러시아쪽에서는 제대로 된 통계가 안 나오고 있지만, 2010년 뉴욕의 사이언스 아카데미에서는 체르노빌 참사로 1986년부터 2004년까지 백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죽었다고 발표했다). 인간이 얼마나 참혹한 재앙을 스스로 자초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겸사겸사 체르노빌 관련서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체르노빌의 봄
엠마뉘엘 르파주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3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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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체르노빌 후쿠시마 한국
강은주 지음 / 아카이브 / 2012년 3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3년 03월 18일에 저장

체르노빌 : 금지구역- 2012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해바라기상 수상
프란시스코 산체스 지음, 나타차 부스토스 그림, 김희진 옮김 / 현암사 / 2012년 3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3년 03월 18일에 저장
절판
마르지 1984-1987 1- 공산 폴란드에서 보낸 어린 시절
실뱅 사부아 그림, 마르제나 소바 글, 김지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7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3년 03월 18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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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매주 골라놓고 있지만 사실 이주의 저자도 몇 명씩은 꼽아볼 수 있다. 첫 손가락에 꼽을 만한 저자는 <시간의 향기>(문학과지성사, 2013)의 한병철이다.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의 전작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2012)가 작년에 화제를 모은 덕분에(알라딘에서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일년만에 다시 신작이 번역돼 나왔다. 분량과 문체, 문제의식에서 <피로사회>와 짝을 이룰 만한데, 독어본은 <피로사회>보다 일년 먼저 나왔다. 

 

 

두 책 사이의 관계를 역자 김태환 교수는 이렇게 정리했다. "<피로사회>가 근대에서 후근대(포스트모더니티)로의 이행을 바이러스, 적대자, 억압과 착취, 결핍과 같은 부정성의 소멸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한다면, <시간의 향기>는 동일한 이행 과정이 시간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고찰되고 있다."

 

시간의 위기는 현대인에게 보통 '시간 없음'으로 인지된다. 왜 없는가. 일에 치여서, 곧 일의 시간이 다른 모든 시간이 압도하기에 그렇다. 한병철 교수의 표현으론 그래서 '시간의 향기'를 잃고 있다. 그렇다고 '쉬는 시간'이나 '느리게 살기'도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적는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와는 달리, 느리게 살기는 오늘날 당면한 시간의 위기, 시간의 질병을 극복할 수 없다. 느리게 살기 운동은 증상일 뿐이다. 증상으로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다른 시간, 일의 시간이 아닌 새로운 시간을 생성하는 시간 혁명이다. 시간에 향기를 되돌려주는 시간 혁명.  

그 시간 혁명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한 독자라면 일독해볼 만하다. 서문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것이지만 한병철의 문장은 정말 짧다. 독어로 글을 쓰는 인문학자 가운데 이 정도로 단문을 구사하는 저자가 또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국내 독자들에게 가깝게 여겨지는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두번째 저자는 중국 작가 왕멍이다. <장자>에 관한 책 <나는 장자다>(들녘, 2011)이 기억나는데, 손에 들지 않았던 탓에 그가 소설가 왕멍과 동일인이라는 건 이번에 알았다(인생론 <나는 학생이다>(들녘, 2004)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왕멍의 쾌활한 장자 읽기>(들녘, 2013)의 저자 왕멍이 <변신인형>(문학과지성사, 2004)과 <나비>(문학과지성사, 2005)의 작가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겸하여 저명한 정치인이기도 하다는 왕멍의 이번 책은 이렇게 소개된다. 

왕멍은 80여 년의 인생 가운데 60년을 중국 현대사의 풍운 속에 살면서 극단의 영욕을 온몸으로 겪은 중국 지성계의 살아 있는 전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언급되며 하버드대학교를 비롯한 유수의 대학에서 특별 초청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가 들여다보는 <장자>는 기존 책들과는 관점과 해석의 깊이를 달리한다. 왕멍은 인류가 구축해놓은 역사와 철학을 필두로 문화혁명 때 신장자치구에 유배되어 노동자로 전락되었다가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복권된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 그리고 중국문화의 특성과 기질을 <장자>에 투영한다. 즉 장자사상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 사상의 기저에 깔린 핵심 이념,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특성과 흐름, 장자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갖는 의미뿐 아니라 중국 현대사를 관통한 저자의 인생에서 <장자>의 사상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자세하게 들려준다.

<장자>에 관한 책이 다수 나와 있지만 왕멍의 <장자> 읽기에도 눈길이 간다. <장자의 거침없는 질주>(자음과모음, 2013)까지 연이어 나왔는데, 장자에 관해서라면 정말 거침이 없다! <장자> 얘기가 나온 김에 몇 권 덧붙이자면 고전연구가 신동준의 새 번역 <장자>(인간사랑, 2012)가 작년에 나왔고, 왕카이의 <소요유, 장자의 미학>(성균관대출판부, 2013)도 '동아시아 예술미학 총서'의 하나로 출간됐다. 개인적으로는 장자의 철학이 예술철학이라고 생각하기에 '장자의 미학'은 낯설지 않지만, 중국 학자의 관점이 궁금하다. 신정근 교수의 번역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정진배 교수의 <장자, 순간 속 영원>(문학동네, 2013)도 있다. 인문교양 총서 '위대한 순간'의 한권으로 나온 책으로 장자의 현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 저자도 꼽는다면 <유교 탄생의 비밀>(바다출판사, 2013)의 저자 김경일 교수도 손에 꼽을 수 있다. 오래 전 화제작이었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바다출판사, 1999)의 저자를 다시 의식한 건 작년에 나온 <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바다출판사, 2012) 때문인데, 아직 읽지는 못했어도 바로 구입한 책이다. 최근 동양 고전 읽기 붐에 좀 유보적인 입장인지라 동양사상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가 관심을 끌었다.

 

<유교 탄생의 비밀>은 그 연장선상에 놓일 텐데, 갑골학 전공자인 저자는 유교문화의 기본 글자들을 그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들여다봄으로써 유교적 조상숭배 의식의 발생과 변환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저자의 결론은 "유교는 어느 한 인물, 지금까지 언급되어 왔던 공자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다. 유교는 마치 공기와도 같은 거대한 문화적 흐름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어 온 하나의 이데올로기"(326쪽)라는 것이다. 사유의 계보학적 전복을 위한 문자고고학적 탐구라고 할까.

 

세 권 이상 책을 낸 인문서 저자들 가운데 '이주의 저자'를 골라 몇마디 적어보았다... 

 

13.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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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배송을 기대하고 주문한 책들이 대거 '펑크'가 나서 좀 허전한 저녁이다(한두 권씩 주문한 책은 왔지만 예닐곱 권씩 주문한 책은 어쩐 일인지 다 준비된 상태에서도 '상품준비중'에서 멈춰 있다). 사실 배송됐더라도 읽을 여유는 없는 편이니 크게 상심할 건 아니지만, '면접'의 즐거움을 놓친 건 아쉽다. 이매뉴얼 쉬의 <근현대 중국사>(까치글방, 2013) 같은 책들이 그렇다.

 

 

 

그렇게 주문한 책들 말고 장바구니에 새로 넣어둔 책 가운데 스콧 허친스의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북폴리오, 2013)이 있다. '쓸 만한 이론서'인가 싶어 들여다보니 이론서가 아니라 소설이다. 제목의 배신이라고 할까. 선례가 없진 않다. 필립 커의 <철학적 탐구>(책세상, 2003)가 나왔을 때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에 관한 책인 줄 알았으니까(대학 구내서점에서 철학코너에 꽂혀 있기도 했다). 어떤 소설인가.

2011년 세계 최대 도서전인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에서 화제를 모았던 스콧 허친스의 소설. 뉴욕타임스, AP통신을 비롯한 여러 미디어에서 지적이고 감성적인, 대단한 소설이 탄생했다고 입을 모아 호평했다. 친밀한 관계가 두려운 이혼남이 아버지의 기억을 가진 로봇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가족과 우정, 욕망, 슬픔, 그리고 용서에 관한 탁월한 스토리를 완성했다. 아버지를 점점 닮아가는 로봇과의 대화를 통해 그 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 어머니의 참모습과 그 이면의 진실을 찾게 되고, 그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에서 절대 경험해볼 수 없었던 진정한 사랑도 깨닫게 된다.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는 만큼 참고할 만한 다른 정보도 없다. 리뷰가 좀 뜨는 걸 보고 구입을 결정할 생각이다. '사랑에 관한 읽을 만한 소설'인지 아닌지 말이다. 이미지를 찾아보니 독자와의 만남을 갖는 작가 사진이 눈에 띈다.

 

 

13. 03. 16.

 

P.S.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과 함께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은 <원시인 다이어트>, <우리가 공유하는 모든 것>, <권력의 투사법>, <영장류 게임>, <이것이 힉스다> 등이다. 모두 페이퍼감이지만, 책을 손에 들게 되면 말을 더 보태도록 하겠다. 그러고 보니 '이주의 책'의 이면쯤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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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은 이원규의 <조봉암 평전>(한길사, 2013)의 부제에서 가져왔다. 소설가가 "판화처럼 복원해낸 진보주의자 조봉암의 생애"로 "딱딱하게 마련인 일반 평전형식과 달리, 소설과 르포가 섞여 있으면서도 철저한 고증과 주석을 뒷받침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른 평전으론 김삼웅의 <죽산 조봉암 평전>(시대의창, 2010)이 나와 있고, 서중석의 <조봉암과 1950년대>(역사비평사, 1999)도 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죽산만큼 큰 자취를 남긴 현대사의 거인으로 씨알 함석헌 선생에 대한 평전도 나왔다. 김삼웅의 <저항인 함석헌 평전>(현암사, 2013). '싸우는 평화주의자 함석헌의 거대한 생애와 사상'이 부제다. 죽산과 씨알의 '잃어버린 꿈'을 되찾을 수 있을까. 두 권의 평전을 앞세운 김에 나머지 세 권도 한국사회의 현실을 들여다본 책들로 골랐다. 분석심리학자 이나미 박사의 <한국 사회와 그 적들>(추수밭, 2013)은 한국인의 심성을 진단하고 분석한 책이다. 한국인의 콤플렉스를 무려 12가지나 나열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네번째와 다섯번째는 기자들의 책이다. 한겨레 법조팀 기자였던 이춘재, 김남일의 <기울어진 저울>(한겨레출판, 2013)은 부제대로 '대법원 개혁과 좌절의 역사'를 다룬다. 박근혜정부가 과연 검찰개혁, 더 나아가 사법개혁에 나설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지만, 그래도 주권자(국민)으로서 왜 사법개혁이 필요한지 그 내막은 알아두는 게 좋겠다. 한겨레21 기자였던 김기태의 <병원장사>(씨네21북스, 2013)은 '대한민국 의료 상업화 보고서'다. "과잉진료와 의료사고, 거대 병원들의 무한경쟁 속에 사라져가는 동네병원, 돈 안 되는 응급의료나 산부인과가 줄어드는 현상, ‘공짜 스케일링’을 내세워 고가의 시술을 강권하는 네트워크 병원들…"이 '병원장사'의 현황이다. 저자가 하어영 기자와 같이 쓴 '대한민국 성매매 보고서' <은밀한 호황>(이후, 2012)까지 더하면 한국사회의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질 만하다. 무엇이 왜 달라져야 하는지도 가늠해볼 수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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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평전- 잃어버린 진보의 꿈
이원규 지음 / 한길사 / 2013년 3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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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인 함석헌 평전- 싸우는 평화주의자 함석헌의 거대한 생애와 사상
김삼웅 지음 / 현암사 / 2013년 3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2013년 03월 16일에 저장
절판

한국 사회와 그 적들- 콤플렉스 덩어리 한국 사회에서 상처받지 않고 사는 법
이나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3년 3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3년 03월 16일에 저장
품절

기울어진 저울- 대법원 개혁과 좌절의 역사
이춘재.김남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3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3년 03월 1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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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세넷의 신작 <투게더>(현암사, 2013)에 대한 리뷰를 옮겨놓는다. '협력'이란 주제를 다룬다면 예상할 수 있는 대로 세넷은 협력이란 무엇인지 정의한 다음에 현대사회에서 그것이 어떻게 약화돼 왔으며 또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지를 탐색한다. 리뷰에서는 '약해진 협력'에 주로 초점을 맞추었는데, 아무래도 책의 풍부한 내용을 짧은 리뷰로는 다 카바하기 어렵다. 박식한 사회학자의 우아한 글쓰기란 어떤 것인지는 직접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중앙일보(13. 03. 16) 현대사회는 어떻게 사람을 갈라놓았나


책 주제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라면 예사롭게 넘길 수 있겠지만 저자가 리처드 세넷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지그문트 바우만과 함께 필독 목록에 올려놓고 있는 사회학자다. 바우만은 폴란드 태생으로 영국의 리즈대에 오래 몸담았다. 반면 세넷은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도 널리 읽히는 미국 사회학자로, 뉴욕대와 런던정경대에서 강의한다.

두 학자는 관심 분야는 다르지만 ‘근대’라는 공통 화두를 붙들고 있다. 깊이 있는 사유와 우아한 글쓰기로도 평판이 높다. 바우만이 ‘액체근대’ 혹은 ‘유동하는 근대’ 시리즈에 오랫동안 천착하고 있다면, 노동 및 도시화 연구 권위자인 세넷의 최근 화두는 ‘호모 파베르’, 곧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다. 다른 표현으론 ‘구체적 실천을 통해 생명을 만드는 존재’다.

 

 


국내에도 소개된 『장인』이 ‘호모 파베르 프로젝트’ 첫 권이라면 『투게더』는 그 두 번째 책이다. 세넷은 도시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룬 세 번째 책을 마저 집필할 예정이다. 이 3부작을 통해서 그는 무엇을 다루고자 하는가. 세넷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노력, 사회적 관계, 물리적 환경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명시한다. 특별히 그가 강조하는 것은 기술과 능력이다. ‘협력’의 문제를 다룬 『투게더』에서도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반응 능력과 대화를 나눌 때 남의 말을 듣는 기술에 초점이 맞춰진다. 여느 사회학 저작에서는 보기 드문 주제이고 문제의식이다.



문제의식뿐 아니라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세넷 스타일은 눈에 띈다. 그는 런던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신의 손자 얘기로 말문을 연다. 손자의 친구 녀석이 학교 방송에서 “엿 먹어, 엿이나 실컷 처먹어, 왜냐하면 네가 진짜 싫으니까, 너네 패거리 전부가 진짜 싫거든!”이란 가사의 노래를 틀어서 학교 당국을 기겁하게 했다는 것이다.

가수의 원래 의도와는 달리 아이들은 ‘엿 먹어’란 가사를 통해서 종교·인종·계급적 차이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려고 했다. 실제로 런던은 그런 혐오와 갈등이 주기적으로 폭력과 폭동으로 치닫는 도시다. 런던보다 사정이 나을지 모르지만 우리도 그런 상황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비슷한 사람들만으로는 도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세넷의 강조대로 도시는 시민들에게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충분히 숙고하고 상대할 것을 요구한다. 협력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협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원인은 무엇인가. 세넷은 물질적·제도적·문화적 이유 때문에 현대인이 협력의 기술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일단 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미국 사회를 기준으로 하면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어 다수가 보유한 자산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상위 1%, 혹은 0.1%의 재산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오늘날 중간층 출신인 학생이 자기 부모들만큼 수입을 올릴 확률은 40%에 불과하지만 상위 5%의 학생들은 그 확률이 90% 이상이다. 이렇게 벌어진 격차는 자연스레 ‘사회적 거리’를 만들어내고 이 거리는 협력과 사회적 연대를 어렵게 한다.

제도적으로는 현대의 조직 구조가 협력을 금지한다. 단기적이거나 임시적인 일자리만 늘어나면서 ‘장기근속’이라는 말은 이미 듣기 어려워졌다. 2000년에 직장에 들어간 젊은이는 평생 12번에서 15번 가량 직장을 옮기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러한 단기적 노동시간은 또 사회관계를 피상적으로 만들고 정보를 다른 개인이나 부서와 공유하지 않는 ‘사일로 효과’를 강화한다. 당연히 조직에 대한 열의나 헌신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문화적으로는 차이 때문에 생기는 불안감을 줄이려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움츠러들거나 문화적 획일화에 편승한다. 그러는 가운데 다른 사람과 대면하고 그들과 협력하려는 욕망은 힘을 잃는다.

그렇게 약화된 협력을 어떻게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을까. 세넷은 유럽 문화사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대화와 협력 방식을 끌어와 재조명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아시아인의 사례다. 중국은 ‘공격적인 자본주의 국가’이지만 강력한 사회적 단결 코드도 갖고 있다. 바로 관계나 연줄을 뜻하는 ‘꽌시(關係)’다. 이 비공식적인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중국인들은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사회적 결속이 어떻게 경제적 삶을 형성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 다른 사례는 미국의 한국 이민자들이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 주로 정착하여 가게를 연 그들은 자기끼리는 잘 협력했지만 가난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고객을 상대할 때는 멸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 결과 1992년 LA폭동 때 많은 한국인 상점이 파괴당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친선이 구축되지는 않았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단계까지는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노와 편견을 뒤로 제쳐놓고 서로 침묵하기로 했다. 서로가 못마땅한 부분이 있더라도 말하지 않는 사회적 예절로서의 침묵 또한 사회적 협력의 중요한 바탕이다.

지역·인종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 다민족이라는 단어가 보통명사처럼 통용되는 시대, 이른바 사회적 협력을 통해서 어떻게 보다 더 튼튼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필독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13. 0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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