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을 매주 골라놓고 있지만 사실 이주의 저자도 몇 명씩은 꼽아볼 수 있다. 첫 손가락에 꼽을 만한 저자는 <시간의 향기>(문학과지성사, 2013)의 한병철이다.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의 전작 <피로사회>(문학과지성사, 2012)가 작년에 화제를 모은 덕분에(알라딘에서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다) 일년만에 다시 신작이 번역돼 나왔다. 분량과 문체, 문제의식에서 <피로사회>와 짝을 이룰 만한데, 독어본은 <피로사회>보다 일년 먼저 나왔다. 

 

 

두 책 사이의 관계를 역자 김태환 교수는 이렇게 정리했다. "<피로사회>가 근대에서 후근대(포스트모더니티)로의 이행을 바이러스, 적대자, 억압과 착취, 결핍과 같은 부정성의 소멸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한다면, <시간의 향기>는 동일한 이행 과정이 시간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고찰되고 있다."

 

시간의 위기는 현대인에게 보통 '시간 없음'으로 인지된다. 왜 없는가. 일에 치여서, 곧 일의 시간이 다른 모든 시간이 압도하기에 그렇다. 한병철 교수의 표현으론 그래서 '시간의 향기'를 잃고 있다. 그렇다고 '쉬는 시간'이나 '느리게 살기'도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적는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와는 달리, 느리게 살기는 오늘날 당면한 시간의 위기, 시간의 질병을 극복할 수 없다. 느리게 살기 운동은 증상일 뿐이다. 증상으로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다른 시간, 일의 시간이 아닌 새로운 시간을 생성하는 시간 혁명이다. 시간에 향기를 되돌려주는 시간 혁명.  

그 시간 혁명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한 독자라면 일독해볼 만하다. 서문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것이지만 한병철의 문장은 정말 짧다. 독어로 글을 쓰는 인문학자 가운데 이 정도로 단문을 구사하는 저자가 또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국내 독자들에게 가깝게 여겨지는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두번째 저자는 중국 작가 왕멍이다. <장자>에 관한 책 <나는 장자다>(들녘, 2011)이 기억나는데, 손에 들지 않았던 탓에 그가 소설가 왕멍과 동일인이라는 건 이번에 알았다(인생론 <나는 학생이다>(들녘, 2004)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왕멍의 쾌활한 장자 읽기>(들녘, 2013)의 저자 왕멍이 <변신인형>(문학과지성사, 2004)과 <나비>(문학과지성사, 2005)의 작가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겸하여 저명한 정치인이기도 하다는 왕멍의 이번 책은 이렇게 소개된다. 

왕멍은 80여 년의 인생 가운데 60년을 중국 현대사의 풍운 속에 살면서 극단의 영욕을 온몸으로 겪은 중국 지성계의 살아 있는 전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언급되며 하버드대학교를 비롯한 유수의 대학에서 특별 초청을 받고 있는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가 들여다보는 <장자>는 기존 책들과는 관점과 해석의 깊이를 달리한다. 왕멍은 인류가 구축해놓은 역사와 철학을 필두로 문화혁명 때 신장자치구에 유배되어 노동자로 전락되었다가 공산당 중앙위원으로 복권된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 그리고 중국문화의 특성과 기질을 <장자>에 투영한다. 즉 장자사상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 사상의 기저에 깔린 핵심 이념,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특성과 흐름, 장자사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갖는 의미뿐 아니라 중국 현대사를 관통한 저자의 인생에서 <장자>의 사상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자세하게 들려준다.

<장자>에 관한 책이 다수 나와 있지만 왕멍의 <장자> 읽기에도 눈길이 간다. <장자의 거침없는 질주>(자음과모음, 2013)까지 연이어 나왔는데, 장자에 관해서라면 정말 거침이 없다! <장자> 얘기가 나온 김에 몇 권 덧붙이자면 고전연구가 신동준의 새 번역 <장자>(인간사랑, 2012)가 작년에 나왔고, 왕카이의 <소요유, 장자의 미학>(성균관대출판부, 2013)도 '동아시아 예술미학 총서'의 하나로 출간됐다. 개인적으로는 장자의 철학이 예술철학이라고 생각하기에 '장자의 미학'은 낯설지 않지만, 중국 학자의 관점이 궁금하다. 신정근 교수의 번역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정진배 교수의 <장자, 순간 속 영원>(문학동네, 2013)도 있다. 인문교양 총서 '위대한 순간'의 한권으로 나온 책으로 장자의 현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 저자도 꼽는다면 <유교 탄생의 비밀>(바다출판사, 2013)의 저자 김경일 교수도 손에 꼽을 수 있다. 오래 전 화제작이었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바다출판사, 1999)의 저자를 다시 의식한 건 작년에 나온 <나는 동양사상을 믿지 않는다>(바다출판사, 2012) 때문인데, 아직 읽지는 못했어도 바로 구입한 책이다. 최근 동양 고전 읽기 붐에 좀 유보적인 입장인지라 동양사상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가 관심을 끌었다.

 

<유교 탄생의 비밀>은 그 연장선상에 놓일 텐데, 갑골학 전공자인 저자는 유교문화의 기본 글자들을 그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들여다봄으로써 유교적 조상숭배 의식의 발생과 변환 과정을 살피고자 한다. 저자의 결론은 "유교는 어느 한 인물, 지금까지 언급되어 왔던 공자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다. 유교는 마치 공기와도 같은 거대한 문화적 흐름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어 온 하나의 이데올로기"(326쪽)라는 것이다. 사유의 계보학적 전복을 위한 문자고고학적 탐구라고 할까.

 

세 권 이상 책을 낸 인문서 저자들 가운데 '이주의 저자'를 골라 몇마디 적어보았다... 

 

13.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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