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일은 3월 3일로 찍혔지만 예고한 대로 이번주에 <문학에 빠져죽지 않기>(교유서가)가 출간된다. 알라딘에서도 오늘부터 구매가 가능하다. 앞서도 적은 대로(또 책머리에 자세히 적었다) <책에 빠져죽지 않기>(2018)의 별권이면서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2012)에 이어지는 책이다. 그래서 부제가 ‘로쟈의 문학 읽기 2012-2020‘이다.

<책에 빠져죽지 않기>가 나왔을 때 일부 눈썰미 있는 독자들이 ‘문학‘ 편이 빠져서 아쉽다고 했었다. 순전히 분량 때문이었는데 오랜만에 서평집을 내게 된 탓에 문학 리뷰까지 포함하면 분량이 1000쪽이 넘어갈 태세였다. 그래서 자연스레 문학 리뷰들을 분리하기로 했는데 별도로 출간하기에는 또 분량이 넉넉지 않았다. 이후 1년반 가량의 ‘숙성‘ 기간을 가진 것은 그 때문이다.

숙성이라고 표현했지만 가만놓아둔 건 아니고 계속 원고를 보탰다. 특히 지난 일년여 동안은 의도적으로 문학 리뷰를 많이 쓰기도 했다. 한달에 평균 세 차례 쓰는 원고의 2/3가 문학작품에 대한 것이었다. 딴은 강의가 너무 많아서 다른 분야의 책을 따로 읽을 여유가 없기도 했다. 그렇게 더 쓴 원고를 추가하고 작품해제를 쓴 원고를 몇 편 포함하니 븐량이 480쪽이 넘어갔다. 중복되는 원고 일부를 제외한 결과여도 그랬다.

아무튼 지난 8년간의 작업이 결과물을 갖게 돼 다행스럽다. 이만한 분량의 책을 내려면 산술적으로는 다시 8년이 필요할 듯싶지만 아마도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문학 강의의 상당 부분을 강의책으로 정리하면 따로 자투리 글을 쓸 필요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다루고자 하는 범위에 비하면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이 정도라도 책으로 묶을 수 있었다는 데서 나대로는 의미를 찾고 싶다. 부족한 부분은 두고두고 보완할 수 있기를 바랄 밖에.

올해 두권의 책을 (고비는 있었지만) 큰탈 없이 마무리했고 이제 다음 책으로 넘어가려 한다. 이번 봄에도 두어 권의 책을 무탈하게 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6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wingles 2020-02-24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샘 책 기다렸다 읽는 즐거움이 가득하네요^^

로쟈 2020-02-24 17:49   좋아요 0 | URL
감사.~

파란마음 2020-02-2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을 좋아하는 저에게 큰 선물이네요 감사합니다

로쟈 2020-02-24 23:21   좋아요 0 | URL
기대에 보답하면 좋겠습니다.~

2020-02-25 0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5 0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5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5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빵가게재습격 2020-03-04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늦었지만, 책 출간 축하드려요. 몸 건강히 지내시길 빕니다. 오랜만에 들러 인사드리고 갑니다. : )
 

지난주에 주문한 신간 가운데(원서와 같이 주문했다) 가장 고대하는 책은 얀 지에른카의 <반혁명>(부산대출판문화원)이다. ‘우리시대의 질문총서‘의 하나로 출간되었는데 가장 궁금한 질문을 바로 짚었다(지난해부터 ‘반계몽주의‘와 ‘반혁명‘이 관심주제 가운데 하나다).

˝왜 반자유주의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고 있는가? 왜 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자유주의는 쇠퇴하는가? 최근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혁명적 사회변화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담았다. 얀 지에론카는 점점 강력해지는 반혁명세력에 대항해 승리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고 21세기 유럽에 걸맞는 새로운 자유주의의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폴란드 출신으로 현재는 옥스퍼드대학의 유럽정치 전공 교수로 재직중이다. 폴란드 출신 학자로는 지그문트 바우만 이후에 기억하게 되는 이름이다. ‘새로운 자유주의 의제‘라는 게 바우만의 견해와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덕분에 다시 상기하게 된 책은 프랑스혁명사가 자크 고드쇼의 <반혁명>(아카넷)이다. ˝프랑스 혁명기에 혁명만큼이나 다양하고 극적으로 전개된 반혁명의 투쟁 양상을 전반적이고 체계적으로 조명한 것으로, 반혁명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책이다.

책은 2012년말에 나오고 나는 2013년 봄에 구입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2014년에 이사를 한 탓이 크다). 책의 행방을 찾아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류블랴나학파 혹은 '지젝과 그의 친구들'

14년 전에 쓴 글이다. 한때는 류블랴나학파 총서가 나오기도 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영재의 첫 시집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창비)에서 표제시를 찾다가, 따로 없다는 걸 알고서 그냥 둘러보다가(야구경기장을 둘러보듯이) 나는 ‘생각되되 생각될 것‘ 같은 시가 시인의 태도나 문제의식을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공이 던져지고

나는 관객된 도리로, 연기되는 나를 잘 지켜보는 편이다. 지루함을 견디는 것마저 장점이 될 수 있다고 독백하며 저 쪽의 내가
떨어지는 공을 받는다

놀라운가, 아니다
박수가 터지기 전에 다음 독백을 시작할 것이다 던져진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다시 공을 던지기로 약속되었다

생각이 가해지는 공과
생각이 사라지고
다시 생각이 가해지는 공 사이에

(...)

생각되되
생각될 것이다 우연 없이도 던져진 공은 떨어지는 공으로 약속되었으므로, 건너의 내가 건너의 내 역할을 독백할 필요조차 없으니
어떤 자학도 하지 말 것

보라, 던져질 공이 이제 내 손 위에 있다

중간에 다섯 연을 건너뛰었지만 시의 인상을 전하는 데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그의 시는 무엇을 묘사하거나 어떤 감정을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지 않다. 말씨에도 관심이 없다(말씨를 고려하면 ‘생각되되‘ 같은 표현은 쓸 수 없다). 관심은 공처럼 던져진 말(언어)을 관찰하는 데 있다. 공을 말의 비유라 치고 교체해보자.

생각이 가해지는 말과
생각이 사라지고
다시 생각이 가해지는 말 사이에

우리가 보통 말을 할 때 생각을 말에 싣는다고(가한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말을 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생각을 전달하는가? 그래서 공을 던지고 받는 것처럼 말을 주고받는가? 독백과 같은 자문자답에서라면 일인이역이 되어 공을 주고받는 것에 견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러한 전달이 목적이라면 공의 물성은 어떻게 되는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또 거꾸로 언어 이전에 사유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유의 언어의존성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사태는 좀더 복잡해진다. 이 경우에 우리는 말을 갖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말에 의해 생각되는 것이기에. 생각이란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사유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다. 공은 던져지고 우리는 다만 떨어지는 공을 받는다. 그것은 약속이고 필연이다. 그리고 이 필연의 세계는 지루함의 세계다. 생락한 연 가운데 두 연은 이렇다.

하품이 난다 참아야 한다 하품이 나지 않는다
참을 필요가 없다

하품을 하며
하품하는 역할에 충실한 나를 바라볼 필요가
이봐, 저 시체는
약속 이상으로 피를 많이 흘린다

약속 이상으로 피 흘리기? 나는 그것이 필연성의 세계에 낀 주체의 자리 같다. ˝생각되되 생각될 것˝에 불과하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나‘는 어떤가? 의심되되 의심될 것으로서의 나. 그래서 공의 주고받기에 견주어진 말의 주고받기는 주체가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변증법의 공간을 연출한다. 마지막 연은 그래서 자연스럽고 필연적이다.

보라, 던져질 공이 이제 내 손 위에 있다

언어의 지시성 문제를 물고늘어지려 한다는 점에서 이영재의 시는 오규원을 떠올리게 한다(이상에서 오규원으로 이어지는 한국시의 계보에서 한국어는 정서가 실린 말보다는 중성적 ‘기호‘에 해당한다). 실제로 테이블이나 토마토 같은 전형적인 오규원 시의 오브제들을 등장시킨 시도 있다.

뒷표지에는 오규원 계보에 속하는 이원 시인의 추천사도 실려 있는데 나는 이원과 이영재, 두 시인 모두 같은 과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오규원 시의 행방이 궁금한 독자라면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를 반길 만하다. 제목에 빠진 보어를 채워넣는다면, ‘나는 오규원이 되어가는 기분이다‘로 읽어도 좋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02-24 1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4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4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25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래픽전기로 나온 <조지 오웰>(마농지) 덕분에 비탈리 콘스탄티노프의 <도스토옙스키>(미메시스)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마침 도스토옙스키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터라 뒤늦게 손이 갔다. 피에르 크리스탱의 <조지 오웰>의 소개는 이렇다.

˝이 책은 조지 오웰 70주기를 맞아 프랑스를 대표하는 만화 작가들이 의기투합해 그의 삶과 시대와 작품세계를 재현한 그래픽 전기다. 삶과 사유의 핵심을 꿰뚫는 깊이 있는 글과 정교한 흑백 그림을 날실로, 그의 작품의 결정적 장면들을 포착하는 강렬한 컬러 그림을 씨실 삼아 조지 오웰의 입체적 초상을 그려냈다.˝

오웰의 평전은 몇종 나와있는데 가장 자세한 건 고세훈 교수의 <조지 오웰>(한길사)이다. 비교해가며 읽어볼 수 있겠다. 유감스러운 건 도스토옙스키. 콘스탄티노프의 그래픽노블과 대조해서 읽어볼 만한 평전이 모두 절판된 상태다. E. H. 카의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열린책들)부터 모출스키의 <도스토예프스키>까지 모두.

가장 강력한(그리고 방대한) 조셉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 평전이 탄생 200주년이 되는 내년까지는 나왔으면 싶지만 아직 움직임이 없는 듯하다. ‘서프라이즈‘라도 기대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