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한 '로쟈의 러시아문학클럽' 시즌3이 종강했다. 20세기 러시아문학 편이었는데, 내달에는 시즌4로 '로쟈의 러시아문학클럽: 세계문학 커넥션' 편을 강의한다(몇년 전에 강의한 '도스토예프스키 커넥션'의 확장판이기도 하다). 올초부터 러시아문학클럽 강의를 세 차례에 걸쳐 해왔고, 이번이 마지막 시즌 강의다(http://www.hanter21.co.kr/jsp/huser2/educulture/educulture_view.jsp?&category=academyGate8&tolclass=0002&lessclass=0003&subj=F91416&gryear=2013&subjseq=0001&booking=).

 

일정은 10월 8일부터 11월 26일까지 8주간 매주 화요일 저녁 7:30-9:30이다. 강의 소개와 커리큘럼은 아래와 같다.

이번 강의의 주제는 세계문학과 러시아문학의 관계, 주고 받은 영향을 살펴보는 세계문학 커넥션이다. 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 푸슈킨부터 20세기의 솔제니친에 이르기까지의 러시아 문학 여행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멕베스>부터 죠지 오웰의 <1984>까지. 푸슈킨의 <보리스 고두노프>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까지. 세계문학의 대표작 8편과 러시아문학의 대표작 8편을 비교 분석하며 살펴본다. 예를 들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알베르 카뮈의 <전락>을 함께 펼쳐놓고 두 작품간의 연관성을 살펴보면서, 두 작품의 주제 연관성, 형식과 스타일의 유사성 등을 비교해 읽다보면,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이 보다 넓어질 것이다.  

제1강_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vs 푸슈킨의 <보리스 고두노프>

 

 

 

제2강_ 셰익스피어의 <헴릿> vs 체호프의 <갈매기>

 

 


제3강_ 티르소 데 몰리나의 <돈 후안> vs 푸슈킨의 <석상손님>

 

 

제4강_ 괴테의 <파우스트> vs 투르게네프의 <파우스트>

 

 

제5강_ 루쉰의 <광인일기> vs 고골의 <광인일기>

 

 

제6강_ 카뮈의 <전락> vs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제7강_ 카뮈의 <페스트> vs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제8강_ 오웰의 <1984> vs 자먀찐의 <우리들>

 

 

13. 0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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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에 <미야자키 하야오 출발점 1979-1996>과 <미야자키 하야오 반환점 1997-2008>이 출간된 김에 미야자키 하야오와 저패니메이션에 관한 책 수집에 들어갔는데, 마침 그의 <책으로 가는 문>(현암사, 2013)이 출간됐다.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가 부제. '미야자키 하야오가 꼽은 어린이책 50권'이라는 게 컨셉트.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부이자 세계인이 예찬하는 '상상력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 작지만 깊은 이야기와 따스한 애정을 담은 이 종이책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가장 재미나고 감동적으로 읽은 세계 명작 50권을 가려 꼽아 짤막한 독후감을 덧붙여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추천한다.

그의 영화적 상상력의 모태가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끄는 책이다. 물론 어린이책을 고르는 데도 유익한 시사점이 던져주겠고. 그리고 <출발점>과 <반환점>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한 책이다. 에세이와 강연, 대담 등을 모두 망라해서 엮은 책.

 

 

미야자키에 관한 책은 몇 권 나온 적이 있다. 문고본으로 나온 김윤아의 <미야자키 하야오>(살림, 2005)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을 통해 일본의 신화와 그 이면을 소개한 책. <원령공주>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세 편을 다루고 있다. 시미즈 마사시의 <미야자키 하야오 세계로의 초대>(좋은책만들기, 2004)는 본격적인 비평서. 시미즈는 <도스또예프스끼가 말하지 않은 것들>(열린책들, 2011)의 저자이기도 한데, 책소개는 이렇다.  

예술학과 교수인 저자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각각을 분석한 책. 각각의 작품을 처음부터 샅샅이 뒤집어 보면서 개성있는 시각으로 비평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처음 등장하는 '이웃집 토토로'의 경우, 지은이는 애니메이션 첫 부분의 '이사' 장면을 언급하며 사츠키와 메이의 엄마는 이미 죽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리고 잇따른 장면 분석을 통해 메이 역시 이미 죽어 있으며, 사츠키도 아마 죽어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이웃집 토토로'는 아내와 귀여운 두 딸을 잃어버린 아빠의 간절한 바람을 받아들여 그들을 부활시킨 내용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분석이다.

무라세 마나부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숨은 그림 찾기>(한울, 2006)도 작품세계에 대한 해설서.

 

 

 

저패니메이션을 다룬 책으론 수잔 네피어의 <아니메>(루비박스, 2005)가 필독서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절판된 상태다. 아니메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가 인문학적인 맥락으로 일본 문화와 사회 읽기를 시도한 책이다. 다시 출간되면 좋겠다. 김준양의 <이미지의 제국>(한나래, 2006)은 애니메이션 영화 연구가가 쓴 저패니메이션 안내서. 저패니메이션의 역사와 대표 작가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저패니메이션의 대표 작가를 다룬 책으론 박기령의 <일본 애니메이션의 크리에이터들>(아담북스, 2013)이 있다. 또다른 거장 데즈카 오사무의 자서전 <만화가의 길>(황금가지, 2002)도 오래전에 출간됐었는데, 현재는 절판. 이 역시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긴가민가해서 선뜻 손이 가지는 않지만 오시이 마모루를 다룬 류우동의 <아니메의 시인 오시이 마모루>(백산출판사, 2005)도 관련서이다...

 

13. 0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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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하위징아의 <에라스뮈스>(연암서가, 2013)가 번역돼 나왔다. 원저는 1924년에 나왔으며 <중세의 가을>(1919)의 후속작이라 한다. "중세의 가을 직후에 도래한 르네상스와 휴머니스트 시대의 놀이 정신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가 에라스뮈스라고. 우리에겐 '에라스무스'란 이름으로 그리고 <우신예찬>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전과 롤란드 베인턴의 전기를 제외하면 별달리 참고할 만한 책이 없다. 하위징하의 <에라스뮈스>가 이 공백을 채워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 참에 에라스뮈스 읽기 리스트도 만들어놓는다.

 


1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에라스뮈스- 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8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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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
에라스무스 지음, 김남우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8월
14,800원 → 13,320원(10%할인) / 마일리지 74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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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휴머니즘에 대한 종합적 해석- 에라스무스적 휴머니스트들의 종교사상을 중심으로
박찬문 지음 / 혜안 / 2011년 5월
30,000원 → 28,500원(5%할인) / 마일리지 86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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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지음, 차기태 옮김 / 필맥 / 2011년 5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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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의 가을 강좌는 '20세기 러시아문학 강의'다. 여름에 진행한 '로쟈의 러시아문학 읽기'(http://blog.aladin.co.kr/mramor/6389785)에 이어지는 것인데, 8명의 대표작가의 대표작 8편을 커리로 골랐다. 강의는 9월 9일부터 10월 28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9시 30분에 진행된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공지(http://cafe.daum.net/purunacademy/8Bko/111)를 참고하시길.  

러시아 문학 하면 우리는 푸슈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홉 같은 19세기 작가들을 떠올립니다. 그만큼 20세기 러시아 문학은 우리에게 단절된 채로 남아 있습니다. 루카치는 <변혁기 러시아 리얼리즘>에서 "러시아 문학은 오직 1917년의 시점에서만 파악될 수 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 스탈린이 죽음을 맞는 1953년, 소비에트 러시아가 해체되는 1991년. 러시아 문학는 다양한 국면을 맞이하며 변화합니다. 격동의 20세기 러시아 문학, 로쟈 선생님이 꼽은 8명의 작가로 만나 보세요.^^

 

1강: 9월 09일_ 고리키, <어머니>

 

 


2강: 9월 16일_ 자먀찐, <우리들>

 


3강: 9월 23일_ 파스테르나크, <닥터지바고>

 

 

4강: 9월 30일_ 불가코프, <거장과 마르가리타>

 


5강: 10월 07일_ 플라토노프, <체벤구르>

 

 


6강: 10월 14일_ 숄로호프, <고요한 돈강>

 

 

7강: 10월 21일_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8강: 10월 28일_ 나보코프, <롤리타>   

 

 

13. 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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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카페의 '한국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코너에 <안나 카레니나> 읽기를 실었다(http://cafe.naver.com/mhdn/70879). 제목은 토마스 만의 말을 빌려 '가장 위대한 사회소설이 말해주는 것'이라고 붙였다.

 

 

 

너무도 유명한 작가와 소설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기, 이게 내게 주어진 미션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은 소감을 적는다는 미션. “『안나 카레니나』는 예술작품으로서 완전무결하다”는 도스토옙스키의 평이 『안나 카레니나』 뒤표지에 박혀 있는데, 이건 사실 톨스토이 자신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작품의 주제가 뭐냐는 질문에, 그걸 말하려면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읽어야 한다고 했다던가. 요컨대 군더더기라곤 한군데도 없는 완벽한 작품이라는 뜻이리라.

 

완벽한 작품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다. 경탄이 아니라면 경탄에 경탄 정도?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토마스 만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안나 카레니나』는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사회소설이다”라는 게 그가 남긴 경탄이다. 무얼 덧붙이겠는가. 햄릿의 말처럼 “그리고 침묵.” 위대한 작품에 대해선 침묵하는 게 옳다. 일단은 그렇다. 그럼에도 몇 마디 거들려고 한다면 뭔가 다른 빌미가 필요한데, 이번에도 출처는 톨스토이 자신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쓰고 난 직후 소위 ‘정신적 위기’를 경험한 톨스토이는 『참회록』을 쓰면서 모든 예술을 부정한다. 너무도 ‘과격한’ 톨스토이였기에 자신의 작품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예술작품으로서의 소설은 더이상 쓰지 않겠다는 게 그의 결단이었다. 만년에 그가 서가에서 빼낸 책을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표지를 보니 『안나 카레니나』였다는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가장 완벽한 작품이지만 동시에 작가에게는 잊힌 작품. 근대 소설의 정점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작가에게는 그 한계를 깨닫게 해준 작품. 『안나 카레니나』의 문제성이다. 이걸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너무도 유명한 첫 문장이 실마리이자 맥거핀이다. 실마리처럼 보이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 히치콕이 즐겨 구사했던 맥거핀이다. 톨스토이는 이렇게 적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이 문장은 1부의 첫 문장이기에 전체 8부로 구성된 소설 전체의 첫 문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통상 작품의 대략적인 내용과 주제까지 암시해주는 문장으로 읽힌다.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이라는 것. 소설의 초점은 물론 불행한 가정들에 맞춰진다.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기에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소설의 재미는 무엇보다 남들의 가지가지 불행한 가정사를 읽는 재미다. 아이들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우다 들통이 나는 바람에 곤경에 처한 스티바와 돌리 커플의 이야기부터가 얼마나 흥미로운가! 오빠 부부를 중재하기 위해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기차를 타고 달려온 안나가 젊은 장교 브론스키와 눈이 맞아 열애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는 또한 얼마나 위력적인가! 고위 관리이면서 가정에서도 사무적인 남편 카레닌이 안나의 불륜에 대한 응징으로 이혼을 거부함으로써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지고 점차 삐걱거리게 된다. 브론스키의 애정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에 상심한 안나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결국은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만다.

 

대략 이런 줄거리라면 러시아식 ‘막장 드라마’의 소재로도 변주될 만하다. 여주인공 이야기의 기본구조만 보자면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 『안나 카레니나』의 거리는 몇 뼘 되지 않는다. 그런데 플로베르와 다르게 톨스토이는 안나의 이야기에 또다른 이야기를 병치시키고자 했다. 그것도 동등한 비중으로. 바로 레빈의 이야기인데, 건축에서 비유를 들자면 안나 이야기와 레빈 이야기는 『안나 카레니나』를 떠받치고 있는 두 기둥이다. 공정하게 제목을 붙이자면 『안나와 레빈』이라고 해야 맞을 만큼 레빈은 이 작품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놀라운 것은 이 두 주인공이 거의 만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7부에 가서야 레빈은 안나를 찾아가 독대하고 그녀의 솔직함에 좋은 인상을 받는다. 바로 7부 끝부분에서 안나가 자살하게 되므로 둘의 만남은 분명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대체 안나와 레빈의 이야기를 한데 묶어주는 ‘연결의 미로’는 무엇인가? 어째서 두 인물은 주인공이면서 각기 다른 장면에 나오는가?

 

물론 이런 의문을 작가가 의식하지 못했을 리 없다. 톨스토이는 소설의 두 기둥을 덮어주는 지붕이 작품에 존재한다고 시사했다. 잘 찾아보라고?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자면 이 작품에선 레빈만이 아니라 안나 또한 작가 톨스토이의 분신이다. 곧 레빈이 정신적 자아를 대표한다면, 안나는 육체적 자아를 대표한다. 톨스토이 자신이 레빈처럼 삶의 의미라는 형이상학적 물음에 과도하게 사로잡힌 인물이었고, 안나처럼 강렬한 육체적 욕망의 소유자였다. 문제는 이 두 자아의 통합이다.

 

육체적 욕망에 의해 결합된 안나와 브론스키 커플이 결국 파국에 봉착하는 데 반해서 레빈과 키티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교감을 통해 이상적인 커플 상을 보여주는 듯싶다. ‘행복한 가정’의 모델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8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레빈은 자신의 깨달음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한다. 비록 사랑스러운 아내이지만 키티는 형이상학적 물음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레빈의 고뇌를 특이한 성벽 정도로 이해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야 역시 남편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가정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얼핏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을 대비시키려는 듯 보이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의 가능성 자체에 회의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마무리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란 첫 문장이 맥거핀이라고 말한 이유다. 불행한 가정에 대한 소설적 탐구는 작가 톨스토이로 하여금 ‘가정의 불행’이란 결론으로 이끈다. 모든 가정은 필연적으로 어긋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가 도달한 결론이다. 하지만 이 결론을 그는 『안나 카레니나』 안에는 적어두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정도의 문장이지 않을까. “무릇 모든 가정이 행복을 꿈꾸지만 행복은 가정 안에 깃들지 않는다.”

 

톨스토이에게 인생의 진리와 함께하지 않는 행복이란 가능하지 않으며,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기만에 불과하다. 그리고 가정은 그런 진정한 행복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참회록』에서 예술과 함께 가정을 삶의 진리를 은폐하는 기만으로 간주한다. 『안나 카레니나』를 떠나면서 톨스토이는 예술로부터, 그리고 가정으로부터 떠난다. ‘죽음’이라는 인생의 진리 앞에서 완벽한 예술도 행복한 가정도 모두가 기만에 불과하다. ‘위대함의 허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안나 카레니나』는 한번 더 위대한 소설이다.

 

13. 0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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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소 2018-06-28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안나카레니나를 읽지 않았습니다.
근데 로쟈님의 리뷰를 읽으니 이제는 읽어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몇년 전 부산 시립도서관에서 강연하셨던 말씀도 생각이 납니다. 인간이 책이란걸 읽기에는 아직 진화가 덜 되었다고. 혹시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두 배 세 배로 읽어야 된다고.
늘 건강하세요. ^^

로쟈 2018-06-30 18:12   좋아요 0 | URL
네, 빠져서 읽어보실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