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차분이 출간됐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도련님>, <풀베개>, <태풍> 네 권인데, 2016년 사후 100주년까지 완간되는 듯하다. 일본 국민문학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질 만큼 문제적인 작가인지라 한번 모아두고 읽고 싶었는데, 이번 현암사판 전집이 표준판의 역할을 해줄 듯싶다. 출간을 기념하여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소세키에 관한 소개서로는 시바타 쇼지의 <무라카미 하루키 & 나쓰메 소세키 다시 읽기>(늘봄, 2013)가 최근에 나온 책이다. 학술서를 제외하면 그밖에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사계절, 2009), 고모리 요이치의 <나는 소세키로소이다>(이매진, 2006)를 참고할 수 있는데, 고모리 요이치의 책은 절판된 상태다. 전집도 나오는 김에 재출간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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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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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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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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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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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책&(422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애초에는 감정이란 주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려고 했지만, 분량상 경제와 협상에서 감정의 문제를 다룬 몇 권의 책을 살펴보는 데 그쳤다. 더 넓게 다루자면, <감정의 인문학>(봄아필, 2013) 같은 책이 더 보태질 수 있다...

 

 

 

책&(13년 9월호) 감정과 행동

 

무엇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가?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개인적 차원은 물론 사회적 차원에서도 우리가 더 나은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흔히 어떤 상황에서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경제적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에 대한 가정이다. 하지만 우리의 상식과 일상 경험은 많은 경우 우리를 지배하는 건 이성이 아닌 비이성, 혹은 감정이라는 걸 알려준다. 이 감정은 합리적 사고와 객관적 인식을 왜곡시키는 장애물일까? 감정을 배제하고 판단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9월에는 행동의 동인으로서 감정(비이성)이 어떤 역할을 하며, 이에 대한 대처법은 무엇인지 경제와 협상 관련서 몇 권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행동경제학은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시킨 새로운 연구영역으로 주류 경제학과는 달리 인간이 비이성적인 존재라는 걸 전제한다. 행동경제학의 대략적인 윤곽을 소개해주는 책이 댄 애리얼리의 <경제심리학>(청림출판, 2011)이다. 우리가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장기적인 목표보다는 단기적인 즐거움에 빠지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가령 어떤 병에 걸렸을 때 의사의 처방이 채소를 많이 먹고, 물을 많이 마시고, 하루에 몇 킬로미터씩 걸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하자. 그렇게 행동하면 분명 건강이 나아질 거라는 건 모두가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은 안락과 편의를 선택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만약 우리가 그만큼 이성적인 존재라면 수백만 장의 헬스클럽 회원권이 사용되지 않은 채 만기를 맞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습관이나 데이트 상대의 선택, 동기의식, 기부 행위, 애착행동과 복수욕 등 다양한 비이성적 행동을 검토한 뒤에 저자가 얻어내는 교훈은 두 가지다. 우리는 비이성적인 성향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과 이러한 비이성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 그에 따라 저자는 직관을 맹신하지 말고 우리의 사고와 논리의 한계를 인식하고서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이성적인 특성이 보통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기에 예측가능하다는 점이다.


댄 애리얼리의 베스트셀러 <상식 밖의 경제학>(청림출판, 2008)은 바로 그러한 비이성적 행동의 패턴과 함정을 다룬다. 한 대학에서 이루어진 실험을 보자. 컴퓨터 화면 왼쪽에 있는 원을 마우스를 이용해서 오른쪽의 네모상자에 포개놓는 일을 참가자들에게 주문하면서 각기 다른 시장규칙을 적용했다. 5분 동안 이 따분한 일을 하는 대가로 첫 번째 그룹에는 5달러를, 두 번째 그룹에는 50센트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세 번째 그룹에는 물질적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저 시간을 좀 내달라고만 부탁했다. 결과는? 5달러를 받은 참가자들은 평균 159개의 원을 끌어다놓았고, 50센트를 받은 참가자들은 평균 101개의 원을 끌어다놓았다. 반면,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은 참가자들은 가장 열심히 작업을 해서 평균 168개의 원을 끌어다놓았다. 돈이 아니라 명분이 오히려 더 효과적인 행동의 원인으로 작용한 사례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이 인센티브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계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희망적인 부분이다.

 

 

 

월스트리트의 ‘멘탈 트레이너’ 로버트 코펠의 <투자와 비이성적 마인드>(비즈니스북스, 2013)은 금융 거래에서 우리의 비이성성을 어떻게 극복한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익은 내고 손실은 줄이고 자본을 늘려라’라는 게 투자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 투자에서도 비이성적 행동과 그러한 행동을 유발하는 뇌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한 대학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돈을 벌 때 두뇌가 경험하는 감정은 사랑에 빠졌을 때 갖는 감정과 똑같다고 한다. 참가자들에게 종이 지폐를 세게 하고 두뇌를 촬영한 결과 사랑에 빠졌을 때 반응이 오는 부분과 똑같은 곳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돈이 사랑이라는 또 다른 고통 완화제의 대체재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실험 결론 이상의 암시를 던져준다고 할까.


하버드대학교 협상연구소의 저자들이 펴낸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한국경제신문, 2013)도 어떤 종류에서의 협상에서건 감정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따라서 유용한 감정을 자극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은 관심사를 돌려놓거나 관계를 악화시키는 등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협상에서 위대한 자산이 될 수도 있다. 협상에 대한 실질적인 관심을 높여주고 상호관계를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인정, 친밀감, 자율성, 지위, 역할 등 5가지 핵심관심에 집중함으로써 긍정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최철규, 김한솔의 <협상은 감정이다>(쌤앤파커스, 2013)는 내 것을 많이 챙기는 것을 목표로 한 분배적 협상(협상1.0)과 공정하게 나누는 것을 지향하는 통합적 협상(협상2.0)을 넘어서 상대의 감정과 심리적 만족감을 극대화하는 가치 중심의 협상을 ‘협상3.0’이라고 명명한다. 요컨대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감정도 만족도도 만족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13. 0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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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극단 '코끼리 만보'의 연극 <말들의 무덤>을 보았다. 한국 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창작노트에 따르면 "민간인 학살의 순간들을 직간접적으로 겪고 견뎌야만 했던 생존자들의 증언과, 학살의 순간을 바라본 또 다른 타자들의 증언, 사진 등의 이미지 증언을 토대로 구성된 연극"이다. 역사의 상처에 대한 윤리적 책임과 그 연극적 형상화라는 미학적 물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기하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지난주에 주간경향에서 읽은 리뷰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말들의 무덤>은 한국전쟁 중에 일어난 양민학살을 목격한 증언자들의 녹취록을 바탕으로 그동안 침묵되었던 역사를 연극적으로 복원한 작품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먼저 전쟁이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의 이면에 ‘사라져간 사람’과 ‘사라짐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음에 주목한다. 한국전쟁 기간 중 소리 없이 사라진 존재들과 이들의 죽음을 목격한 채 살아가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말과 기억을 현재의 시간, 그리고 무대라는 공간 속에서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다. 때문에 작품의 구성 역시 서사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 양민학살 목격 녹취록을 13명의 배우들이 재현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21세기를 살아가는 배우 자신이 한국전쟁 중 죽어간 사람들을 그들의 ‘말’로 기억하고 복원해내는 구성이다.

이 작품을 위해 배우들은 진실화해조사위원회가 보유하고 있는 방대한 인터뷰 자료와 녹취록을 조사, 연구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말’로 다듬어내는 긴 과정을 거쳤다. 단순히 배역을 맡고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 스스로의 적극적인 의지와 능동적인 참여를 필요로 하는 이러한 방식은 공동창작을 지향하는 극단 코끼리만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오랜만에 공연되는 이들의 신작 <말들의 무덤>은 비록 느린 발걸음일지언정, 삶 자체를 재현하는 연극보다는 삶의 틈새와 여백, 삶에서 채워지지 않은 앙금 같은 것을 무대에 그려내고자 하는 극단 코끼리만보의 묵직한 행보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9월 6일부터 15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김주연_연극 칼럼니스트)

 

팸플릿에는 작품에서 인용된 녹취록과 사진, 영상 등의 출처가 밝혀져 있는데, 그 중 몇 권을 같이 모아놓는다.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위해서라면 이런 연극이야말로 단체관람이 필요하다...

 

 

 

13. 0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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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신작 소설집이 출간됐다. <도자기 박물관>(문학동네, 2013). 일곱번째 소설집이다. 그의 소설집만 따로 리스트로 묶어도 좋겠다 싶다. 작가의 말 전문은 이렇다. 독자도 작가와 함께 늙는다...

 

 

<대설주의보>이후 대략 삼 년 오 개월 만에 일곱번째 소설집을 내게 되었다. 그사이 내게는 부인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했는데, 바로 오십대의 나이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그 젊음과 늙음의 경계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공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뚜렷이 떠오르는 바가 없다. 다만 고통에 대한 사유와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잦았던 것 같다. 여기에 수록된 소설들은 그러한 시간의 집적이자 흔적이 되겠다.
마지막 교정을 보는 과정에서 여전히 대부분의 소설들이 길 위에서 쓰여졌음을 확인했다. 그래서 내게는 길이 곧 집(우주)이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고, 여로에 서 있음이 나의 운명임을 수긍하기에 이르렀다. 비바람과 눈보라의 그 여로에서 우연히 만났다 뜨겁게 헤어졌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은 비록 여럿이었으나 결국 단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내 감정은 그들과 만나 다만 조용히 눈물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근래 속울음이 빈번한데, 막상 속시원히 울어볼 기회가 없었다. 그들 모두가 내게는 단 하나의 별이었음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리라. 그처럼 찰나의 순간이었을지라도 그때 나와 함께 이 세상에 가난히 머물러준 이들에게 이 남루한 책으로나마 일일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내가 작가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커다란 위안으로 다가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독자를 포함한 모든 그들에게, 요즘 내가 즐겨 듣고 있는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기타 연주곡 'Lagrima(눈물)'를 전해주고 싶다. 자, 이제 그럼 몇 년 뒤에나 다시 만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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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박물관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9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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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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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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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 / 창비 / 2007년 1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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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걸어간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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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 2013)에 대해 쓴 리뷰를 옮겨놓는다. 원래 쓰려고 했던 내용의 절반 정도인데, 사실 '스포일러'의 우려도 있고 해서 나머지는 독자의 몫으로 돌렸다. 리뷰는 '무라키미 하루키 아카이브'에도 올려져 있다(http://haruki.minumsa.com/reviews/review011/).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는 어떻게 색채를 갖게 되었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3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인가.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전작 『1Q84』와 비교해서 특히 도드라진 긴 제목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 소설이다. 전체 19장 가운데 다자키 쓰쿠루가 고등학교 때의 네 친구를 찾아가는(한 명이 죽었으므로 정확하게는 세 친구를 만나러 가는) 순례가 시작되는 건 10장부터다. 핀란드에까지 이른 순례가 마무리되는 건 18장이므로 마지막 19장은 ‘순례 이후’다. 그렇다면, 정확한 구성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1-9장)+‘그의 순례’(10-18장)+‘색채를 찾은 다자키 쓰쿠루’(19장)가 되겠다. 색채를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면 순례는 순례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에서 ‘색채가 있는 다자키 쓰쿠루’로의 변화는 따라서 필연적이다.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

 

19장에서 신주쿠 역 벤치에 앉아 명상에 잠긴 쓰쿠루는 자신의 인생이 스무 살 시점부터 실질적으로 멈춰 버린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찾아온 나날들은 거의 무게가 없었다.”(421쪽) 그로부터 16년이 지났고 이제 중년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 문턱에서 만난 여성이 그에게 순례를 권유한 기모토 사라다. 그 순례 이후에 쓰쿠루는 비로소 욕망의 주체, 혹은 갈구의 주체가 된다. “그의 마음은 사라를 갈구했다. 그렇게 마음으로 누군가를 원한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쓰쿠루는 그것을 강하게 실감했다. 아주 오랜만에. 어쩌면 이것이 처음인지도 모른다.”(435쪽)라는 고백이 말해 주듯이. 그리고 물론 이런 변화야말로 사라가 그의 순례에서 기대했던 바일 것이다.

 

시계를 앞으로 돌려 보자. 서른여섯 살의 쓰쿠루가 서른여덟 살의 사라를 한산한 골목의 조그만 바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의 네 번째 데이트이고, 세 번째 만났을 때 둘을 쓰쿠루의 방에서 첫 섹스를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오늘’이 두 사람 관계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 날이란 건 둘 다 직감으로 안다. 앞으로 계속 만나느냐 마느냐, 하는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고등학생의 연애’와는 다르다. 남자는 철도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여자는 여행사에서 기획 담당자로 근무한다. 외관상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하지만 장애물이 있다.

 

아직 확실한 관계로 나아가기 전단계이지만, 사라에게 쓰쿠루는 자신의 과거 ‘상처’에 대해 털어놓는다. 속 깊은 얘기를 꺼낸 건 그녀에게서 특별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한번밖에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녀와의 섹스는 기분 좋고 충만한 느낌을 주었다.”(27쪽) 하지만 사라가 받은 느낌은 좀 달랐다. “같이 보낸 밤에, 당신이 어딘가 다른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128쪽)라는 게 그녀의 느낌이다. 여자만이 알 수 있는 걸지도 모르는 거리감을 느꼈고, 그런 장애물을 갖고서는 진지하게 만날 수 없다는 게 사라의 입장이다. 쓰쿠루는 사라 앞에서 자신이 ‘건강한 성인 남자’라고 느끼지만 자기 욕구의 근간에 ‘뭔가 자연스럽지 못한 뒤틀림’이 깃들어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가 잘 판단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 대해 생각할수록 자기 자신에 대해 알 수 없었다.”(131쪽) 이건 전형적인 정신분석 클리닉의 상황이다. 정신분석은 무의식은 알고 있지만 의식은 알지 못하는 앎을 다룬다. 그것이 우리가 ‘알지만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앎과 대면하는 것이 정신 분석의 과정이다.

 

사라가 보기에 쓰쿠루는 어떤 뿌리 깊은 문제를 마음에 끌어안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이제 상처 입기 쉬운 순진한 소년으로서가 아니라 자립한 한 사람의 전문가로서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봐야만 하는 걸 보는 거야.”(129~130쪽)라는 게 그녀가 건네는 충고다. 이것은 정신 분석가의 진단과 처방에 상응한다. 몇몇 여자를 사귀긴 했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사랑한 적은 없었던 쓰꾸루이지만 사라에게만은 마음을 열고 싶어 하며 그녀의 충고를 따른다. 쓰쿠루가 순례의 길에 나서게 된 과정이다. 이 순례는 물론 자기 발견과 치유의 여정이 될 것이다.


쓰쿠루의 상처란 무엇이었던가. 쓰쿠루를 포함해 다섯 명의 친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원봉사 활동을 하다가 서로 절친한 사이가 된다. 이름에 색깔이 들어가 있는 네 친구는 각각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라고 불리고(영어식으론 각각 미스터 레드, 미스터 블루, 미스 화이트, 미스 블랙이 된다), 쓰쿠루는 그냥 쓰쿠루였다. 그렇게 “색채 가득한 네 명과 색차가 없는 다자키 쓰꾸루”가 ‘흐트러짐 없이 친밀하고 완벽한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대학 진학을 위해 쓰쿠루만이 도쿄로 올라오고, 나머지 네 명은 고향 나고야에 남는다. 그러나 2학년 여름, 그는 네 명의 친구로부터 “우리는 앞으로 널 만나고 싶지 않아, 말도 하기 싫어.”라는 충격적인 절교 선언을 듣는다. 이 갑작스럽고도 가차 없는 통고에 대해서 특이하게도 쓰쿠루는 이유를 끝까지 캐묻지 않는다.(자신만이 색채가 없다는 자격지심이 한몫했을 것이다) 결국 진상을 알지 못한 채 그는 죽음만을 생각하며 반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는 그 시기를 몽유병자로서, 또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자(死者)로서 살았다.”(8~9쪽) 그런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은 쓰쿠루는 더 이상 예전의 쓰쿠루가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다. 다자키 쓰쿠루란 이름을 가진 예전의 소년은 죽고 “지금 여기 서서 숨 쉬는 인간은 내용물이 크게 바뀌어 버린 새로운 ‘다자키 쓰쿠루’였다.”(64~65쪽) 이 새로운 쓰쿠루야말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라 할 만하다. 하루키가 자주 쓰는 표현으론 ‘텅 빈 존재’다.

 

쓰쿠루가 겪은 외상적 경험이 결코 흔한 종류의 일은 아니지만 ‘상처와 치유의 서사’는 순례의 서사가 그렇듯이 드물지 않다.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의 단짝들로부터 절교 선언을 당한 이후 16년을 ‘색채가 없는’ 상태로 살아왔다는 것도 가능한 일이긴 하나 현실성은 떨어진다. 하루키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다. 그는 유사 죽음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외상을 겨우 추스른 쓰쿠루에게 하이다 후미아키라는 새로운 친구를 붙여 준다. 대학 수영장에서 만난 두 살 아래의 하이다 또한 이름에 회색이 들어가 있어서 ‘미스터 그레이’가 된다. 개인적으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사라의 역할과 하이다의 기능인데, 사라의 역할이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면 하이다의 기능은 모호하다. 아니, 다중적이다. 최소한 네 가지 기능을 열거해 볼 수 있다.

 

(1) 서로 이야기가 통하면서 쓰쿠루와 하이다는 친구가 되는데, 일단 하이다는 쓰쿠루에게 과거의 상처를 묻어 두도록 한다. “나고야의 나날들은 점차 과거의 것으로, 얼마쯤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으로 변해 갔다. 그것은 분명 하이다라는 새로운 친구가 가져다준 진보였다.”(87쪽)

(2) 쓰쿠루의 현실 아닌 현실(현실의 무게감을 갖지 않기에 환영 같은 현실)에서 하이다는 그의 유사 동성애 상대로 등장한다. 그의 성적인 꿈에서 시로(화이트)와 구로(블랙), 두 여자 친구에 대한 동시적 욕망은 하이다(그레이)로 응축된다. 그런 꿈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서 쓰쿠루는 혼란스러워한다.

(3) 라자르 베르만이 연주하는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곡 「순례의 해」를 소개함으로써 쓰쿠루로 하여금 시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이 소설의 배경 음악을 제시한다. 쓰쿠루는 시로가 「순례의 해」라는 소곡집에서 「르 말 뒤 페이」를 곧잘 연주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르 말 뒤 페이’는 대략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정도의 뜻이다. 시로에 대한 기억은 리스트의 피아노곡으로 말미암아 향수 또는 멜랑콜리를 불러일으키는 풍경 정도로 고정된다. 즉 그 이상의 정념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방비해 준다.

(4) 아무런 예고도 없이 쓰쿠루를 떠남으로써 하이다는 쓰쿠루의 ‘혼자 남겨질 운명’을 확정한다. “분명 자기에게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낙담케 하는 뭔가가 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 그는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150쪽) 하루키는 특별히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를 강조해놓았다. 네 친구에게서 버림받은 데다가 하이다마저 곁을 떠남으로써 쓰쿠루는 ‘색채가 없는’ 존재로 고착된다. 이후에 그를 지배하는 정조는 멜랑콜리다. 그는 누구도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라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간추려 보자. 주인공 쓰쿠루는 고등학교 만난 네 명의 친구와 함께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지만 대학 2학년 때 그들로부터 결별을 통고받고 추방당한다. 그는 이 커다란 충격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남는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금 친구 하이다로부터도 버림받고 그는 텅 빈 존재,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된다. 그는 엷게, 희미하게 존재한다. 무성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이 소설의 기본 설정이다. 하루키도 여기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물론 이야기의 방향은 정해졌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는 어떻게 색채를 갖게 되었나.”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는 하루키의 만드는(作. ‘쓰쿠루’의 한자) 솜씨를 음미하면서 당신이 읽어야 할 몫으로 남겨 놓는다.

 

13. 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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