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422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애초에는 감정이란 주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려고 했지만, 분량상 경제와 협상에서 감정의 문제를 다룬 몇 권의 책을 살펴보는 데 그쳤다. 더 넓게 다루자면, <감정의 인문학>(봄아필, 2013) 같은 책이 더 보태질 수 있다...
책&(13년 9월호) 감정과 행동
무엇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가?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개인적 차원은 물론 사회적 차원에서도 우리가 더 나은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흔히 어떤 상황에서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경제적 인간(호모 이코노미쿠스)’에 대한 가정이다. 하지만 우리의 상식과 일상 경험은 많은 경우 우리를 지배하는 건 이성이 아닌 비이성, 혹은 감정이라는 걸 알려준다. 이 감정은 합리적 사고와 객관적 인식을 왜곡시키는 장애물일까? 감정을 배제하고 판단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9월에는 행동의 동인으로서 감정(비이성)이 어떤 역할을 하며, 이에 대한 대처법은 무엇인지 경제와 협상 관련서 몇 권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행동경제학은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시킨 새로운 연구영역으로 주류 경제학과는 달리 인간이 비이성적인 존재라는 걸 전제한다. 행동경제학의 대략적인 윤곽을 소개해주는 책이 댄 애리얼리의 <경제심리학>(청림출판, 2011)이다. 우리가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장기적인 목표보다는 단기적인 즐거움에 빠지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가령 어떤 병에 걸렸을 때 의사의 처방이 채소를 많이 먹고, 물을 많이 마시고, 하루에 몇 킬로미터씩 걸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하자. 그렇게 행동하면 분명 건강이 나아질 거라는 건 모두가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은 안락과 편의를 선택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만약 우리가 그만큼 이성적인 존재라면 수백만 장의 헬스클럽 회원권이 사용되지 않은 채 만기를 맞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습관이나 데이트 상대의 선택, 동기의식, 기부 행위, 애착행동과 복수욕 등 다양한 비이성적 행동을 검토한 뒤에 저자가 얻어내는 교훈은 두 가지다. 우리는 비이성적인 성향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과 이러한 비이성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 그에 따라 저자는 직관을 맹신하지 말고 우리의 사고와 논리의 한계를 인식하고서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이성적인 특성이 보통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기에 예측가능하다는 점이다.
댄 애리얼리의 베스트셀러 <상식 밖의 경제학>(청림출판, 2008)은 바로 그러한 비이성적 행동의 패턴과 함정을 다룬다. 한 대학에서 이루어진 실험을 보자. 컴퓨터 화면 왼쪽에 있는 원을 마우스를 이용해서 오른쪽의 네모상자에 포개놓는 일을 참가자들에게 주문하면서 각기 다른 시장규칙을 적용했다. 5분 동안 이 따분한 일을 하는 대가로 첫 번째 그룹에는 5달러를, 두 번째 그룹에는 50센트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세 번째 그룹에는 물질적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저 시간을 좀 내달라고만 부탁했다. 결과는? 5달러를 받은 참가자들은 평균 159개의 원을 끌어다놓았고, 50센트를 받은 참가자들은 평균 101개의 원을 끌어다놓았다. 반면,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은 참가자들은 가장 열심히 작업을 해서 평균 168개의 원을 끌어다놓았다. 돈이 아니라 명분이 오히려 더 효과적인 행동의 원인으로 작용한 사례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이 인센티브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계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희망적인 부분이다.
월스트리트의 ‘멘탈 트레이너’ 로버트 코펠의 <투자와 비이성적 마인드>(비즈니스북스, 2013)은 금융 거래에서 우리의 비이성성을 어떻게 극복한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익은 내고 손실은 줄이고 자본을 늘려라’라는 게 투자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 투자에서도 비이성적 행동과 그러한 행동을 유발하는 뇌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한 대학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돈을 벌 때 두뇌가 경험하는 감정은 사랑에 빠졌을 때 갖는 감정과 똑같다고 한다. 참가자들에게 종이 지폐를 세게 하고 두뇌를 촬영한 결과 사랑에 빠졌을 때 반응이 오는 부분과 똑같은 곳이 활성화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돈이 사랑이라는 또 다른 고통 완화제의 대체재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실험 결론 이상의 암시를 던져준다고 할까.
하버드대학교 협상연구소의 저자들이 펴낸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한국경제신문, 2013)도 어떤 종류에서의 협상에서건 감정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따라서 유용한 감정을 자극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감정은 관심사를 돌려놓거나 관계를 악화시키는 등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협상에서 위대한 자산이 될 수도 있다. 협상에 대한 실질적인 관심을 높여주고 상호관계를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인정, 친밀감, 자율성, 지위, 역할 등 5가지 핵심관심에 집중함으로써 긍정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최철규, 김한솔의 <협상은 감정이다>(쌤앤파커스, 2013)는 내 것을 많이 챙기는 것을 목표로 한 분배적 협상(협상1.0)과 공정하게 나누는 것을 지향하는 통합적 협상(협상2.0)을 넘어서 상대의 감정과 심리적 만족감을 극대화하는 가치 중심의 협상을 ‘협상3.0’이라고 명명한다. 요컨대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감정도 만족도도 만족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13. 0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