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 고전 가운데 하나가 번역돼 나왔다. 피터 버거와 토마스 루크만의 <실재의 사회적 구성>(문학과지성사, 2014). 26년 전에 들은 사회학 개론 시간에 책 이름을 처음 접한 듯싶으니까(피터 버거란 이름도 그때 알았지만) 정말 오래 되긴 했다. 원서는 1966년에 나왔다('실재' reality'의 번역이다). 부제는 '지식사회학 논고'.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회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피터 버거와 현상학을 통해 사회학을 재정립하고자 했던 토마스 루크만이 지식사회학을 재정립하고 나아가 사회학을 보는 시각을 뒤바꿀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상학적 접근법을 기반으로 기존의 사상, 이데올로기, 세계관을 대상으로 삼던 지식사회학을 혁신하고, 일상생활의 지식에 기대어 사회와 인간 정체성의 구성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1966년 그 결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20세기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사회학 고전이자, 18개국에 번역되어 가장 많이 읽힌 사회학 서적 중 하나로 꼽힌다.

 

피터 버거의 책으론 <사회학에의 초대>(문예출판사, 1995)와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책세상, 2012)와 함께 사회학 입문 3종 세트로 묶음직하다. 예비사회과학도들이 입학을 앞두고 읽어볼 만하겠다(좀 어려우려나?) 원서는 펭귄판으로도 나와 있다.

 

 

한편 토마스 루크만의 또다른 주저는 알프레드 슈츠와 공저한 <생활세계의 구조>다. 제목에서부터 후설 현상학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내주는데, 슈츠는 현상학적 사회학 연구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다. <사회세계의 현상학> 같은 주자가 아직 소개되지 않았지만, 사회학이론서에서 자주 접하던 이름이다.

 

이번주 신간 중에는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국가 간의 정치>)나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저자로서의 인류학자>) 등의 책도 보인다. 내주에 다룰 '이주의 고전' 후보들이다...

 

14.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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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그의 시대 이덕일의 역사특강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1월
절판


정도전이 살았던 쉰여섯 해는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역사는 항상 내적 문제와 외적 문제를 복합적으로 봐야 하는데, 내적으로는 극심한 빈부격차, 즉 사회양극화가 심각했습니다. 소수의 구가세족(舊家勢族)이 나라의 모든 재화를 독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조준이 토지개혁 상소문에서 "불쌍한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개천과 구덩이에 빠져 죽는다"라고 말한 것처럼 농민 대부분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들판에 달라붙어 개미처럼 일해도 제 식구는커녕 제 한 입 건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고려 지배층이 이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왕조가 망하고 다른 왕조가 들어선 것입니다.-8-9쪽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신문보도를 보니 '재활용폐자원 매입세율 공제율'을 약 50퍼센트로 낮춘다는 세법 개정안이 발표되었더군요. 약 200만명으로 추정되는, 폐지나 고물을 주워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겠다는 뜻입니다. <고려사>'식화지(食貨志)'에는 "한 땅의 주인이 대여섯 명이 넘기도 하여 전호(소작인)들은 세금으로 소출의 8-9할을 내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작인들에게 소출의 8-9할을 뜯어가던 고려 사회와 한달에 20-30만원 버는 폐지 줍는 빈민층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한국사회는 과연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요? 고려는 이런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했고, 그 결과 정도전 같은 인물이 나와서 판을 엎었던 것입니다. -9-10쪽

'By the people', 즉 의민(依民)정치가 제도적으로 불가능했던 왕조시대에는 'For the people', 즉 위민(爲民)의 관점에서 인물을 바라보고 평가해야 합니다. 누가 더 백성을 위하는 사상을 가졌고, 실천에 옮겼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정도전은 토지 문제, 즉 당시의 경제체제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위민의 정치가였습니다. 그의 위민의 시선이 왜 노비제도의 모순에는 가 닿지 못했는지 아쉽습니다만, 혁명적인 토지제도 개혁만으로도 그는 한국사에서 위민정치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단순히 정도전의 일생만 바라보지 않고 성리학과 토지 문제까지 천착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조선이 위화도 회군 세력의 무력에만 의지해서 개창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념, 새로운 경제체제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개국했다는점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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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어젯밤부터 낌새가 있었지만 며칠 한파가 지속된다니 건강에 유의들 하셔야겠다. 사실 북미 지역을 강타하고 있다는 '살인 한파'에  비하면 애교스런 수준이지만. 영하 20도 이하가 계속되고 있고, 체감온도는 심지어 영하 70도까지도 떨어진 곳도 있다고 한다. 기록적인 한파로 2억명이 추위에 시달린다고 하니 얼핏 <설국열차>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기상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를 한파의 원인으로 지목한다는데, 지구 온난화로 편서풍 제트기류가 약해져 극지의 회오리바람(폴라 보텍스)이 북미까지 내려와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방패막이 약해지면서 시베리아성 추위가 남하한 거라는 얘기다.

 

 

 

기후를 키워드로로 삼자니 최근에 나온 <기후문화>(성균관대출판부, 2013)가 떠오른다. <기후전쟁>(영림카디널, 2010)으로 처음 소개됐던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벨처가 공저한 책이다. 부제는 '기후 변화와 사회적 현실'.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기후 변화에 대한 연구는 아주 오랫동안 기상학자· 해양학자· 빙하학자들만의 전담 영역이라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아주 ‘인간적인 맥락’에서 초래되었던 기후온난화의 여파 속에서, 기후 변화가 몰고 오는 영향력은 그저 자연과학적이거나 기상학적인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금도 전 지구적으로 관측되는 어마어마한 기후(또는 자연) 변화 앞에서 인간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새로운 도전들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이젠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문화학· 사회학· 철학· 역사학· 법학· 경제학· 문학· 고전 문헌학· 정치학· 저널리즘 등 일반적이고 관습적인 기후 연구의 맥락 외부에 있던 다양한 분야의 필진들이 기후 변화를 둘러싼 다양한 평가들을 분석하면서, 기후 변화의 문제가 어떤 사회적 차원을 획득하는지 그리고 기후 변화가 어떤 이유에서 문화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 문화적 담론 차원에서 기후 변화를 입체적으로 관찰해 낸 결과다.

<기후전쟁>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다룬다. '기후변화가 불러온 사회문화적 결과들'이 부제. 우리의 경우도 한파로 노숙자들이 동사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데, 기후전쟁이 갖는 계급전쟁적 의미다.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인해 개별 국가와 사회는 물론 전 지구적으로 심각한 갈등이 야기되고,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은 폭력을 통해 표출되고 있으며, 인간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에는 무기력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식수와 토지를 둘러싼 분쟁, 인종청소, 빈곤국에서 계속되는 내전 및 끝없는 난민들의 행렬 등 이미 현실이 되어 버린 상황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상기후는 더 이상 자연과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ㆍ사회ㆍ문화적 문제이기 때문에 기후변화가 계급, 종교적 신념, 그리고 자원에 대한 문제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인간의 공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기후가 '문화'이고 '전쟁'이라는 것. <기후전쟁>에 대해 이진우 에너지기후 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이렇게 평했다.

저자는 기후 변화에 사람들이 둔감해지고, 이를 단지 자연현상으로만 인식하게 되는 순간 기후 변화가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간파한다. 기후 변화를 야기한 것은 우리 삶의 방식과 현재 사회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화에 대한 반성’이라는 시각에서 에너지 집약 방식의 서구형 발전 모델이 아니라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추위에 떠는 와중에도 그런 시각의 전환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는 하루가 됐으면 좋겠다...

 

14.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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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귀가길에 보니 경비실에 택배가 잔뜩 쌓여 있어서 카트를 들고 다시 내려갔다 올라왔다. 주된 짐은 출판사에서 보내온 저자용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현암사, 2014)다. 그러고 검색해보니 알라딘에도 입고가 된 모양이다. 이 책은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를 포함해서 단독 저작으론 여덟 번째 책이다. 표나게 많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다고 할 수만도 없게 됐다. 그간 펴낸 책들로만 리스트를 만들어놓은 적이 없기도 해서, 겸사겸사 한데 묶어놓는다. 봄에는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20세기>도 나올 예정이어서 올해 최소한 열 권을 넘길 듯싶다. 주마가편이라고, 한번 더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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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
이현우 지음, 조성민 그림 / 현암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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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독서-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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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 로쟈의 책읽기 2010-2012
이현우 지음 / 현암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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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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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세계명작을 고쳐 읽고 다시 쓰는 즐거움
이현우 지음 / 오월의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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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고전 가운데 하나인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의 <음운론의 원리>(서울대출판문화원, 2014)가 다시 나왔다. 오래 전에 <음운학 원론>(민음사, 1991)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던 책이다. 역자가 동일한 걸로 보아 개정판이라기보다는 재간본인 듯싶다. 중간에 발췌본으로 나온 적이 있지만 완역본이 다시 나온 건 23년만이다.

 

 

학부시절에 언어학 개론 강의를 들으며 트루베츠코이 음운론의 기본 발상과 개념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있지만 당시 <음운학 원론>을 직접 구해서 읽지는 않았다. 문학 전공자로서 내가 한도를 넘어선다고 생각해서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최대치는 야콥슨의 <문학 속의 언어학>(문학과지성사, 1989)까지였다(이 책의 완역본이 아직 나오지 않는 건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랜만에 원제에 더 부합하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 소식을 접하니 욕심이 난다(나이를 먹을 수록 관심분야가 넓어지는 건 병일까?). 트루베츠코이는 어떤 인물이었나.

보통 언어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는 또한 걸출한 사상가였고, 민족지학자였으며, 역사가였고, 철학자였다. 그는 1890년에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모스크바 대학 총장을 지낸 철학자 세르게이 트루베츠코이였다. 이러한 가족환경은 트루베츠코이의 지적 성장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민족지학, 언어학, 역사학, 철학 등을 심도 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트루베츠코이는 1908년에 모스크바 대학의 역사.언어학과에 입학하였고, 1912년에 비교언어학 분과를 졸업하고, 라이프치히로 가서 청년문법학파의 이론을 공부하는 등 언어학자로서 탄탄한 기반을 닦았다.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는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언어학에 관한 여러 논문들을 발표하였고, 또한 모스크바 언어학 서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신화학, 민족지학, 문화사 등을 연구함으로써 유라시아라는 주제에 접근하게 되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대귀족 가문이었던 트루베츠코이는 카프카즈 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1920년에 마침내 러시아를 떠나 불가리아에 정착하게 되었고, 소피아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구와 강의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바로 1920년에 그의 유명한 저서 <유럽과 인류>가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트루베츠코이의 연구는 크게 언어학과 문화 사상사라는 두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언어학 연구에서 그는 1939년에 언어학 분야에서 3대 고전의 하나로 꼽히는 <음운론의 원리>를 출간하였다. 문화 사상사의 영역에서 트루베츠코이는 민족문제와 민족문화에 대해 연구하면서 점점 유라시아 연구로 경사되었으나, 정치적 성향이 짙은 극단적인 유라시아주의를 배격하고 학문적 연구에 몰두하였다. 

 

'언어학의 3대 고전'은 <음운론의 원리>와 함께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와 블룸필드의 <언어>가 꼽힌다고 한다. 블룸필드의 책은 번역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학문의 기본 저작 가운데 얼마나 많은 책들이 아직 우리말로는 번역되지 않은 것인지 탄식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음운론의 원리> 재간은 반갑고 다행스럽다. 조만간 구해보도록 해야겠다...

 

14. 01. 08.

 

 

P.S. 러시아어본의 표지다. 번역본 <음운론의 원리>는 불어본을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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