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과 그의 시대 이덕일의 역사특강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1월
절판


정도전이 살았던 쉰여섯 해는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역사는 항상 내적 문제와 외적 문제를 복합적으로 봐야 하는데, 내적으로는 극심한 빈부격차, 즉 사회양극화가 심각했습니다. 소수의 구가세족(舊家勢族)이 나라의 모든 재화를 독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조준이 토지개혁 상소문에서 "불쌍한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개천과 구덩이에 빠져 죽는다"라고 말한 것처럼 농민 대부분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들판에 달라붙어 개미처럼 일해도 제 식구는커녕 제 한 입 건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고려 지배층이 이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왕조가 망하고 다른 왕조가 들어선 것입니다.-8-9쪽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신문보도를 보니 '재활용폐자원 매입세율 공제율'을 약 50퍼센트로 낮춘다는 세법 개정안이 발표되었더군요. 약 200만명으로 추정되는, 폐지나 고물을 주워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겠다는 뜻입니다. <고려사>'식화지(食貨志)'에는 "한 땅의 주인이 대여섯 명이 넘기도 하여 전호(소작인)들은 세금으로 소출의 8-9할을 내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작인들에게 소출의 8-9할을 뜯어가던 고려 사회와 한달에 20-30만원 버는 폐지 줍는 빈민층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한국사회는 과연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요? 고려는 이런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했고, 그 결과 정도전 같은 인물이 나와서 판을 엎었던 것입니다. -9-10쪽

'By the people', 즉 의민(依民)정치가 제도적으로 불가능했던 왕조시대에는 'For the people', 즉 위민(爲民)의 관점에서 인물을 바라보고 평가해야 합니다. 누가 더 백성을 위하는 사상을 가졌고, 실천에 옮겼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정도전은 토지 문제, 즉 당시의 경제체제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위민의 정치가였습니다. 그의 위민의 시선이 왜 노비제도의 모순에는 가 닿지 못했는지 아쉽습니다만, 혁명적인 토지제도 개혁만으로도 그는 한국사에서 위민정치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단순히 정도전의 일생만 바라보지 않고 성리학과 토지 문제까지 천착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조선이 위화도 회군 세력의 무력에만 의지해서 개창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념, 새로운 경제체제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개국했다는점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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