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철학자 기다 겐의 책이 나왔길래 구입했다. <반철학이 뭡니까?>(재승출판). 저자보다는 제목 때문에 구입햐 것인데 짐작에 원제는 ‘반철학 입문‘ 정도일 것 같다. 저자의 다른 책으로 <반철학사>도 있는 걸 보면 반철학이 그의 주제라고 해야겠다. 구성을 보면 하이데거를 전공한 걸로 보이는데 니체와 하이데거, 데리다가 말하자면 서양 형이상학을 해체하고자 한 반철학자들이기도 하다.

서두에 저자가 반철학의 문제의식에 대해 간명하게 정리히고 있어서 마음에 든다. ˝흔히들 일본에는 철학이 없다는 말을 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철학이 없다는 사실이 그다지 수치스럽지는 않다. 철학은 서양 문화권에서 생겨난 특유의 인위적인 사고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굳이 따지자면 내가 하는 작업은 ‘철학‘을 비퍈하고 그러한 사고법을 뛰어넘으려는 것인데, 이는 반철학(anti-phiolsophy)이라고 부른다.˝

강의에서 나도 종종 피력하는 견해다. ‘반철학‘을 타이틀에 담고 있는 책은 그간에 몇권 나왔다(번역되지 않은 책도 나는 한두 권 갖고 있다). 당장 꼽을 수 있는 건 러시아 출신의 철학자 보리스 그로이스의 <반철학 입문>이다(제목대로 기다 겐의 책과 함께 입문서 노릇을 하겠다), 알랭 바디우의 <비트겐슈타인의 반철학>도 대략 의도를 가늠햔 수 있는 책이다.

철학이 서양문화권에서 생겨난 인위적인 사고법이라면 근대문학 역시 근대 서양의 특수한 사회적 조건과 연관된 글쓰기 형식이다. 그것이 어떻게 확산되고 또 변형되는가가 나의 관심사이고 강의에서 자주 다루는 주제다. 그런 의미에서는 ‘문학과 반문학‘도 언젠가 얘기해볼 수 있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맘 2019-09-01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네요
강의때 자주 언급하셨다는데
전 기억이..... ㅋㅋ
반철학이라는 말도 처음인듯...
쌤께서 얘기 안 하신걸로~
어쨌든 읽어 보고 싶은 책입니다

로쟈 2019-09-01 08:56   좋아요 0 | URL
철학이 유럽산이고 보편적이지 않다는 얘기..^^
 

폭풍 속의 고요, 를 잠시 떠올렸다. 뒷편 베란다 창밖으론 아직 매미소리가 들리지만 더위처럼 한 풀 기세가 꺾였다. 처서도 지났고 내일이면 날짜로는 9월이다. 여름의 마지막날. 실내온도는 25도까지 떨어졌다(올여름 최고온도는 29도였다). 선선해서 책을 읽기 좋은 계절, 흔히 말하는.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먹고는 당장 읽어야 책을 펴놓고도 무릎에는 이번에 다시 나온 두 권의 <국화와 칼>(1946)을 올려 놓았다. 내가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댓종이 넘는다. 하지만 완독할 기회는 없었다(제목만으로도 읽은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탓일까?).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대표작이면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일본문화론. ‘일본문화의 패턴‘이 부제다.

일본정부의 도발로 시작된 ‘경제전쟁‘ 국면 때문에 책을 다시 펴낸 걸로 보이는데, 이 참에 완독해보는 것도 좋겠다(하지만 다음주가 가을개강이고 시작부터 강의가 10개가 넘는다). 일본 관련서로 요즘 출판계의 화제는 <일본제국쇠망사>(글항아리)인데, 갑작스런 수요 때문에 바쁘게 중쇄를 찍었다고 한다. 겸사겸사 일본을 쇠망으로까지 이끈 문화적 심성에 대해서도 식견을 가져볼 만하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고 <국화와 칼>을 손에 들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 넷우익에 관한 책들로 소개된 논픽션 작가 야스다 고이치의 신간이 나왔다. <일본 ‘우익‘의 현대사>(오월의봄). 제목대로 전후 일본 우익의 역사를 추적한 책이다. ˝일본의 우익, 그들은 누구이고, 무엇을 주장하는가?˝란 질문에 답하는 책. ‘극우의 ‘공기‘가 가득한 일본을 파헤치다‘가 부제다.

˝저자는 한국에서도 화제가 된 바 있는 <거리로 나온 넷우익>을 쓴 기자 출신 논픽션 작가 야스다 고이치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 책으로 나온 2012년만 해도 일본 사회는 재특회(재일 특권을 허락하지 않는 시민 모임)로 대표되는 넷우익의 등장에 몸살을 앓았다. 이들은 거리 곳곳에서 혐오발언을 일삼으며 수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지금 그 재특회는 거리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그 현상을 일본 사회가 이미 극우화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더 이상 재특회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일본 사회에 ‘극우 공기‘가 가득 찼기 때문이라고. 재특회가 내뱉는 혐오발언(혐한, 혐중)은 이제 일본 사회의 일상이 되었다.˝

논란이 된 재특회조차도 더이상 논란거리가 되지 않을 만큼 극우화된 일본이 현재 아베의 일본이다. 무모하도록 어리석은 퇴행을 과연 제지할 만한 힘을 일본 사회는 갖고 있는지 우려하게 된다. 바로 이웃에 위치해 있기에 우리에게는 강건너 불구경일 수도 없다. 일본 현대사 책도 손에 들어야 하는 시국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주 한겨레의 '이현우의 언어의 경계에서' 꼭지를 옮겨놓는다. 존 밴빌의 <바다>를 여름을 보내는 마지막 책으로 골랐다. 노동계급 출신의 스타일리스트이자 모더니스트라는 작가의 평판을 확인하게 해주는 소설이다. 그의 소설들이 더 번역되기를 기대한다...

















한겨레(19. 08. 30) ‘나를 버리고 그들처럼’ 되려 한 남자의 삶


여름의 끝자락에 읽어볼 만한 책으로 아일랜드 작가 존 밴빌의 <바다>를 골랐다. 작가에게는 2005년 맨부커상을 안겨준 작품이고 나로서는 이번 여름에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소설 가운데 하나다. 자동차 정비소 직원의 아들로서 ‘노동계급 출신의 모더니스트’로 분류되는 밴빌의 문학세계가 어떤 것인지 가늠하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아일랜드 최고 작가라지만 국내에는 <닥터 코페르니쿠스>와 <바다>, 단 두 작품만 번역되어 있어서 ‘밴빌의 문학세계’라는 말은 의미가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약력을 참고해서 말하자면 그는 제임스 조이스와 사뮈엘 베케트 문학의 전통을 계승한다. 열두 살 때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서 처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이력에 더하여 “실생활을 써나가는” 조이스의 방식을 계승한다는 뜻도 포함하기에 그렇다. 다만 밴빌은 조이스와 마찬가지로 실생활을 전지적 시점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인물 시점으로 그린다. 주인공 화자의 말을 다 신뢰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리얼리즘 소설에서는 손가락(스타일이라는 형식)이 가리키는 달(내용)만 보면 되지만, 모더니즘 소설에서는 손가락에도 주목해야 한다.

<바다>의 주인공이자 화자 맥스 모든은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에 대한 책을 쓰는 딜레탕트다. 그는 아내 애나가 암으로 죽자 오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바닷가를 찾는다. 그곳에는 시더스라는 여름별장이 있었고 그는 열 살, 열한 살 무렵 별장 소유주인 그레이스 가족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이 인연은 가장 밑바닥 계층의 아이가 상류층 가족과 맺은 것이어서 특별하고 예외적이다. 맥스는 그가 속했던 ‘여름 세계의 사회구조’를 이렇게 설명한다. “휴가용 별장을 소유한 소수의 가족이 맨 꼭대기였고, 그다음이 호텔에 묵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그다음이 집을 세내는 사람들이었고, 그다음이 우리였다.”


‘우리’는 맥스네 가족으로 똑같이 휴가차 바닷가를 찾지만 이들의 숙소는 샬레라는 목조주택이었다. 실생활은 분명한 위계와 경계로 구성된다. “제대로 된 집에 사는 사람들은 샬레 출신들과 섞이지 않았고, 우리도 그들과 섞이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맥스의 아버지는 노동자로 말 없는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고 어머니는 좌절과 불만을 삭였다. 부모의 불행이 어린 시절 맥스의 그늘이었다. 맥스는 부모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수치스러워했다. 그런 맥스에게 상류층 그레이스 가족은 신들로 여겨졌다. 그는 같이 놀던 친구들을 떠나 그레이스 가족과 친하게 지내면서 자신이 신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레이스 부인을 여신으로 숭배하던 맥스는 또래의 딸 클로이와 사랑에 빠지는데 클로이의 모욕까지도 황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며 그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된다.


불행한 인생을 살면서도 노동계급의 정체성을 유지한 그의 어머니가 보기에 맥스의 선택은 자신의 출생과 계급에 대한 배신이었다(맥스라는 이름도 그 자신이 새로 지은 것이다). 하지만 “늘 독특하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맥스의 소망은 “독특하지 않은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그레이스 가족과의 인연으로 새로운 열망과 정체성을 갖게 된 맥스는 성장하여 부유한 여성 애나와 결혼함으로써 신분상승의 목적을 달성한다. 그 과정에서 그가 대가로 지불한 것은 자기 존재의 상실이었다. 애나가 죽자 텅 빈 존재가 된 그는 다시 자기 존재의 기원을 찾아 시더스 별장을 찾는다. 밴빌의 매우 우아한 소설에서 맥스의 회상을 따라가다가 독자가 발견하는 것은 자기 계급을 배신하고 부유한 딜레탕트가 된 ‘늙은 사기꾼’의 초상이다.


19. 08. 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요일까지 강의 일정이 남아 있지만 사실상 여름강의가 일단락되었다.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는데, 기력과 의욕을 잃은 반면에(심신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쳬중도 좀 줄었다) 숙제였던 작품들(<율리시스>와 <창백한 불꽃> 등)의 견적을 얻을 수 있었다(이제 문학강의에서 다루지 못할 작품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등산에 비유하면 올라야 할 더 높은 봉우리는 남아있지 않다.

여름강의 마무리를 기념하는 뜻으로 어제 주문하고 오늘 받은 책이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와 염상섭의 <취우>다. 가격 때문에라도 둘다 강의에서는 다루기 힘든 소설들. 그렇지만 비중으로는 각각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다. <미들마치>는 사실 예전판을 복사본으로 갖고 있어서 구매할 생각이 없었는데, ‘소장판‘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또 다른 번역판이 나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단에서 구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염상섭의 후기작 <취우>는 전집판으로 <홍염>과 함께 나온 사실을 어제 검색해서 알았다. 전집을 모으고 있기에 자동반사적으로 구입.

이미 적은 대로 아쉬운 것은 둘다 강의용은 아니라는 점. <미들마치>는 적당한 분량으로 분권되어 나왔디면 좋았을 것이다(모범은 아니지만 동서문화사판이 이럴 때는 참고가 된다). 염상섭전집도 보급판이 나와야 강의에서 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아무튼 여름을 보내는 심사를 담아서 구입한 책들이라 몇 자 적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