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부터 틈틈이 공을 들이고 있는 독서분야는 인류학과 지구사 쪽이다(덧붙여 조선시대 선비와 당쟁에 관한 책들을 몰래 읽고 있다). 탈식민주의와 탈서구주의란 지향점에서 서로 만나는 분야인데, 그런 관심에서 가장 반가운 책이 이번에 나온 수전 벅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문학동네, 2012)이다.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론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창비, 2010)을 통해서 처음 존재를 알게 된 책이다. 출판사쪽도 비슷한 듯해서, <헤겔, 아이티, 보편사>의 역자도 지젝의 책을 옮긴 김성호 교수다. 아무튼 반가운 마음에 그제밤에 바로 주문을 넣었지만 당일배송이라던 책은 끝내 소식이 없다. '온다던 책 오지 않고'가 이런 경우다. 휴일에 손가락만 빨고 있자니 기분도 언짢아서 기사를 검색하다가 <지구사의 도전>(서해문집, 2010)의 서평에서 벅모스의 책이 언급된 걸 찾았다. 사실 <지구사의 도전>도 최근에 구입한 터라 내겐 '새책'이다. 재작년 가을의 기사를 '프레시하게' 읽으며 옮겨놓는다.   

 

 

 

한겨레21(10. 10. 08) 세계를 보는 창틀, 지구의 역사로 확대해보자

 

<지구사의 도전: 어떻게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것인가>(서해문집 펴냄)라는 책 제목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거대한 지구가 하나의 대륙에 불과한 유럽에 도전하겠다니 아이러니할 수밖에. 그러나 그 아이러니는 현실이다.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그리스·로마 시대와 프랑스혁명, 영국 산업혁명 아래 수없이 쳐놓은 ‘밑줄 쫙 별표 하나’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인식하는 역사의 시공간 한가운데에는 유럽이 자리하고 있다.

 

유럽중심주의는 단순히 유럽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기록한 역사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유럽중심주의를 “근대 세계를 구축한 시각인 동시에 담론이며 자본주의 체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식민지와 전세계에 구도적으로 강요된 출세와 부국강병의 담론이자 지식 체계”이며 “유럽의 역사가 세계 역사 발전의 보편적 방향을 표현한다는 사고”라고 설명한다. 유럽중심주의는 한국을 포함해 지금 지구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의 창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지역·인종을 넘어선 세계관

 

이 창틀은 여전히 단단하고 건재하지만, 탈유럽중심주의는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근대화 이론이 신뢰를 잃고 탈식민지에 관한 논쟁이 빠르게 퍼져나간 20세기 후반부터 있어왔고, 유럽중심주의에 관한 비판과 회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역사학자와 사회과학자 사이에서 ‘지루하다’는 평을 들을 만큼 반복돼왔다. 이 책의 큰 제목이 ‘어떻게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것인가’였다면 이 책 역시 ‘지루한’ 책으로 분류됐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유럽중심주의의 폐기와 극복에 관한 해답이 나온 것은 아니다. 학자들은 유럽중심주의가 없는 그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이렇다 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나온 대안이 바로 이 책의 큰 제목인 ‘지구사’다.

 

 

책은 유럽중심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언어와 논리구조, 역사관으로서의 지구사에 대해 얘기한다.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 조지형 교수와 김용우 연구교수가 엮은 이 책은 지난 4월 이화여대 지구사연구소가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서 지구사로’라는 주제로 개최한 국제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글과 논의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세계사의 새로운 대안, 거대사>(데이비드 크리스천 지음)와 <인류 최대의 재앙, 1918년 인플루엔자>(앨프리드 W. 크로스비 지음)에 이은 지구사연구소 총서의 세 번째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학술회의에 참가한 전세계 연구자 11명의 글이 차례로 실렸다. 책은 사학적 관점에서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지구사에 관한 쟁점으로 시작해 지구사를 통한 새로운 역사 서술의 가능성을 엿보고, 지구사의 관점과 시선에 관한 설명으로 끝을 맺는다.

 

‘지구사’(Global History)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의 창틀을 지구 전체로 확장한 개념이다. 유럽중심주의뿐 아니라 중국중심주의, 문명의 세계사, 애국적 세계사, 근대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등 모든 ‘중심주의’가 가진 편향된 눈 대신 지구 전체를 고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눈이 지구사다. 조지형 교수는 지구사를 이렇게 정리한다. “지구사는 인류의 존재 조건으로의 지구성(Globality), 하나의 역사 단위로서의 지구, 지구적·지역적 상호연관성과 상호의존성, 역사 행위자의 지구적·지역적 층위 혹은 의미를 연구하는 것이며, 서유럽중심주의와 모더니티를 뛰어넘기 위한 방법론을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아이티 혁명을 통해 지구사와 지구사적인 관점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고 2년이 지난 1791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생도밍고에서 혁명이 일어난다. 흑인 노예들이 일으킨 이 혁명으로 아이티라는 공화국을 세우고 정치적 독립을 이뤄낸다. 오랜 시간 동안 주류 역사에 가려져 있던 아이티 혁명은 최근 그 역사를 복원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연구가 활발하다. 아이티 혁명을 프랑스 혁명의 영향 아래 일어났다고 바라보는 시각은 대표적인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이다. 지구사적인 관점으로 이 혁명을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가려진 역사의 복원뿐 아니라 그 혁명이 위치했던 담론과 네트워크를 찾아내는 일이다.

 

 

 

아이티의 노예들은 가혹했던 학대에도 당시 국가와 지역의 경계를 넘나들던 자유와 평등 등 인간 보편권에 관한 실천 네트워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미국 코넬대학 수잔 벅-모스 교수는 아이티 혁명에 관한 연구에서 헤겔 역시 그 네트워크에 개입했으며, 그가 아이티 혁명에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그의 철학적 논의에도 아이티 혁명이 영감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자유와 평등 같은 이념이 ‘문명의 땅’ 유럽에서 ‘역사 없는 땅’으로의 일방통행이었던 것이 아니라 서로 교류하며 상호작용했던, 그러나 유럽중심주의에 의해 잊혀지고 지워졌던 과정을 찾아내는 역사가 지구사다.

 

유력한 대안인 만큼 의문과 한계 또한 많아

 

지구사에 대한 밝은 기대와 전망에도 이 책에 ‘도전’이라는 단어가 붙은 데에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다. 지구사에 대한 논의가 출발 단계인 만큼 아직까지 지구사에 대해서는 확신보다 의문이 더 많다. 과연 역사가 개인이 지구사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가, 지구사가 국가사나 지역사와 충돌하거나 갈등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럽중심주의를 피하려다 다른 중심주의에 편입되지 않을까 등 수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의문에도 여전히 지구사는 유럽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손꼽힌다.

 

그 가능성을 얘기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역사가들의 소통 네트워크다. 지구사적 관점에서의 역사 재구성은 지구 곳곳의 여러 역사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역사가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유럽중심주의적 관점으로 사용되는 용어 대신 지구사적 관점의 용어를 만들고 공유하는 것 역시 중요한 전제다. 이러한 전제만 충족된다면 지구사는 충분히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안인용 기자)

 

12.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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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의 주말 북리뷰 코너에서 '깊이 읽기' 꼭지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깊이 읽기'는 올해 새로 만들어진 꼭지인 듯하다). '로쟈의 지젝 읽기 가이드'가 컨셉인데, 비슷한 취지의 글을 여러 차례 쓴 터라, 편집만 급하게 다시 했다. 올해 안으로 업그레드판 가이드를 다시 써볼 계획이다.

 

 

프레시안(12. 01. 13) 종말의 시대, 우리가 진짜 공격해야 할 것은…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라캉주의 분석가이자 포스트모던 철학자이고 문화비평가다. 혹은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정통 라캉주의적 스탈린주의자'다. 그는 히치콕, 레닌, 오페라, 9·11 테러, 인권, 근본주의, 사이버 공간, 포스트모더니즘, 다문화주의, 전체주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등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많은 책들을 썼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많은 책들이 번역·소개됐다.

 

 

 

'대중문화를 통한 라캉의 이해'란 부제를 단 <삐딱하게 보기>(김소연 옮김, 시각과언어 펴냄, 1995)가 필두였고,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이수련 옮김, 인간사랑 펴냄, 2002)이 전환점이었으며, <지젝이 만난 레닌>(정영목 옮김, 교양인 펴냄, 2008)이 새로운 영감이었다. 우리에게 소개된 순서를 따르자면 그렇다.

 

사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이 '괴물' 철학자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1989)을 통해서 영어권 지식 사회에 등장했을 때, 그가 우리 시대의 가장 문제적인 철학자이자 '가장 위험한 철학자'가 되리라고 점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슬로베니아 라캉 학파의 일원으로 지젝을 처음 소개하면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조차도 "포스트 마르크시즘적 시대에 사회 민주주의적 정치 프로젝트를 구축하는 문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필독서가 되리라고 데뷔작의 의의를 한정했었다.

 
하지만 지젝은 이듬해 슬로베니아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후에 더 본격적으로, 그리고 전방위적으로 열정적인 '이론 투쟁'을 개시한다. 그 결과 영어로는 이미 60권에 육박하는 단행본을 출간했고, 국내에 번역·소개된 것만 해도 30종이 넘는다. 가히 '지젝 현상'이라고도 할 만한 이러한 현황의 이면에는 그의 부지런한 다산성 못지않게 그의 이론적 사유에 대한 지식 사회의 수요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에 대한 이러한 열광을 낳는 것일까? 개인적으론 그를 통해서 비로소 헤겔의 철학과 라캉의 정신분석에 대해 진지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걸로 이유를 대신할 수 있지만, 애초에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부터 지젝이 목표로 한 바이기도 하다. 그는 이데올로기 이론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 외에 라캉 정신분석의 기본 개념에 대한 개설을 제공하는 것과 '헤겔로의 회귀'를 목표로 내세웠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가 서로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그는 '헤겔을 구출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 라캉을 경유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이러한 라캉적 독법과 헤겔의 유산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판단한다. 비록 "민주주의는 모든 가능한 체제들 중에서 최악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것도 그보다 낫진 않다는 것이다"라는 처칠의 주장을 반복하던 초기의 입장은 곧 철회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종언 이후, 탈(脫)이데올로기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그의 집요한 탐색은 그가 줄곧 견지하고 있는 과제다.

 
'슬로베니아 라캉주의 헤겔주의자'라고 불리지만 지젝의 사유에는 마르크스와 대중문화가 이론적 틀로 더해진다. 그는 가장 난해한 두 사상가, 헤겔과 라캉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헤겔을 어떻게 라캉으로 읽을 수 있으며, 반대로 라캉은 어떻게 헤겔로 읽을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독해가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지형과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돌파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작업에 대해서 그의 담론이 세련된 라캉적 분석과 덜 해체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사이에서 분열돼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그의 철학 '퍼포먼스'가 고상한 철학을 대중문화로 더럽힌다는 비난도 가해진다.

 

하지만 라캉을 따라서 '메타 언어'는 없다고 주장하며 고상한 담론과 범속한 담론의 이분법을 의도적으로 해체하는 지젝은 그러한 비판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의 헤겔 독법에 유보할 지점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헤겔의 대한 새로운 독해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여라고 응수한다.

굳이 그러한 철학적 기여가 아니더라도 지난 20년간 현 세계의 다양한 정치경제적 이슈에 대해 지속적인 철학적 성찰과 정신분석학적 분석을 제시하고 있는 철학자가 지젝 말고 더 있는지 궁금하다. 분명 손에 꼽을 정도이지 않을까. 게다가 그는 가장 '대중적인' 철학자가 아닌가! 지젝은 어떤 사유와 이론을 우리에게 제시하는가?

 

 

 
철학적 이슈와 정치적 쟁점을 종횡무진하는 지젝의 행보와 재담을 모두 따라가는 건 지젝의 애독자라도 어려운 일이지만 다행히도 그는 자신의 주저를 몇 권 꼽아놓은 적이 있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외에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이성민 옮김, 도서출판b 펴냄), <까다로운 주체>(이성민 옮김, 도서출판b 펴냄), 그리고 <시차적 관점>(김서영 옮김, 마티 펴냄)까지 네 권의 책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시차적 관점>은 "철학이란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란 그의 주장에 충실한 책으로 지젝의 이론적 사유를 따라가거나 그와 대결하기 위해서라면 필독해야 할 책이다.

편저 <지젝이 만난 레닌>과 공저 <레닌 재장전>(이현우 외 옮김, 마티 펴냄, 2010)을 통해서 지젝은 레닌주의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제안하고 촉발하고자 한다. 이 경우 레닌은 "마르크스는 괜찮아, 하지만 레닌은 뭐야?"라고 할 때의 레닌이다. 지젝은 한마디로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고 다시 따져 묻는다. 그의 기본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나?

 

"우리가 양보할 수도 없고 양보해서도 안 되는 '레닌주의적'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실질적인 사상의 자유는 현재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자유민주주의적이고 '탈 이데올로기적인' 합의에 의문을 제기할 자유를 의미하며, 그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지젝이 보기에 오늘날 전 지구적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러한 '합의'만 유지된다면 아무리 과격하고 급진적인 주장이라 할지라도 용인된다. "네 마음대로 말하고 써라. 단 지배적인 정치적 합의에 실제로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것을 방해하지만 마라. 비판적 논제로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 아니, 제발 그렇게 해 달라. 지구 생태계의 파국에 대한 예상. 인권 침해. 성 차별, 동성애 혐오, 반 페미니즘. 멀리 떨어진 나라들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 도시에서 점점 늘어나는 폭력. 제1세계와 제3세계, 부유한 사람들과 빈곤한 사람들 사이의 간극. 디지털화가 우리 일상생활에 가하는 강력한 충격"… 등등.

 

물론 '자유민주주의'조차도 제한받고 있는 우리의 경우엔 사정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지젝이 나열한 여러 주제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가 국가나 기업의 지원 하에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또한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관용의 사례로 지젝이 들고 있는 것 한 가지는 인도에서의 맥도널드 해프닝이다. 맥도널드가 감자 칩을 동물성(소의 지방에서 나온) 기름에 튀긴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인도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는데, 이에 대응하며 맥도널드는 바로 사실을 시인하고 인도에서 파는 모든 감자 칩은 식물성 기름으로만 튀긴다고 약속한다. 신속한 조치에 만족한 힌두교도들은 다시금 '안심하고' 감자 칩을 먹게 되었다는 얘기다.

 

지젝이 보기에 맥도널드의 힌두교도 '존중'은 어린아이들을 대할 때의 태도와 다를 바 없는 '생색내기'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을 진지하게 대하진 않더라도 그들의 환상을 굳이 깨뜨리지 않으려고 무해한 습관들을 '존중'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외부인이 어떤 마을에 가서 그곳 관습들을 '이해'하고 따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서투르게 시도하는 것만큼이나 (인종)차별적인 태도이다.

 

하지만 그런 관용적 태도는 남편이 죽으면 부인도 불에 태워 죽이는 힌두교의 전통에 이르면 손쉽게 '불관용'으로 바뀐다. 즉 자유주의적 관용은 '타자'가 '진짜 타자'가 아닌 경우에만 유지되며, 이것이 언제나 타자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의 함정이다. 가령, 한국사회에서도 성문법적으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합의만 유지될 수 있다면 무얼 해도 괜찮다(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원칙상으론 그렇다).

 
하지만 그러한 '자유'에 실상은 어떤 '금지'가 기입돼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젝의 자주 드는 구동독의 농담을 한 번 더 상기해보자. 한 노동자가 시베리아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그는 친구한테 이렇게 미리 일러둔다. "모든 우편물이 검열될 테니까 암호를 정하자. 나한테 받은 편지가 파란 잉크로 쓰여 있으면 진실이고, 빨간 잉크로 쓰여 있으면 거짓이야." 친구는 한 달 후에 파란 잉크로 쓰인 편지를 받게 된다. 시베리아의 친구는 모든 것이 풍부하고 쾌적하며 만족스럽다고 적은 이후에 끝으로 한 가지를 덧붙인다. "단 하나, 빨간 잉크만 없어."

 

이 노동자는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실제로는 빨간 잉크를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었더라도 그의 거짓말은 '진실'을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이 된다. 그리고 이런 방법이야말로 이데올로기 비판의 핵심이기도 하다. '테러와의 전쟁'이나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 등등의 용어들 대신에 우리를 진정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를 과연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다원적 경합을 허용하며 그것에 의해서 유지되는 체제이지만, 지젝이 말하는 레닌주의적 제스처는 어떤 근본주의적 태도를 가리킨다. 오늘날 재발명되어야 할 레닌의 유산은 '진리의 정치'라고 그는 주장하며, 근본적 좌파의 목표는 '원칙 없는 관용적 다원주의'와는 정반대라고 선을 긋는다. 이러한 입장은 '좌익 소아병'에 대한 레닌의 비판을 상기시키는데, 그가 보기에 정치적 극단주의 혹은 과잉 근본주의는 항상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전치 현상이다. 즉 그것은 오히려 정반대이자 제한으로, "끝까지 가는 것"에 대한 거부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수 정치'에 대한 지젝의 비판은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다. 그것이 정치 투쟁이 경제 영역을 참조해야만 제대로 독해될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핵심적 통찰, 즉 '정치경제학'에 대한 통찰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지젝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경제와 정치 사이의 시차(視差)에 대한 고려라고 본다. 예컨대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궁극적으로 '두 옆얼굴이냐 꽃병이냐'라는 시각적 패러독스와 유사하다. 즉, 정치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면 경제는 고작 '재화의 공급'으로 격하되고, 경제에 초점을 맞추면 정치는 한갓 기술 관료주의의 영역으로 축소된다. 레닌의 위대한 점은 이 두 수준을 함께 사고할 수 있는 개념적 장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했다는 데 있으며 '레닌을 반복하라!'는 지젝의 요구는 거기서 비롯된다. 경제가 핵심이지만 그 개입은 경제적이 아니라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거나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는 일면적 슬로건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즉 반세계화(반지구화) 운동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태도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가 실상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할 때에만 진정으로 반자본주의적이 될 수 있다.

 

때문에 지젝은 이렇게 주장한다. "따라서 두 겹의 싸움을 해야 한다. 첫째는, 그래, 반자본주의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정치적 형식(자유주의적 의회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반자본주의는 아무리 '급진적'이라 해도 충분하지 않다. 자유민주주의 유산을 실제로 문제로 삼지 않고도 자본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오늘날의 핵심적인 유혹이다." 예컨대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나 <인사이더>처럼 무자비한 이윤추구에 몰두하는 대기업에 대한 비판을 다룬 영화들이 '반자본주의'를 표면상 내세우더라도 "대기업의 음모를 무너뜨리는 정직한 미국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는 한, 전 지구적 자본주의 세계의 견고한 중핵(민주주의) 자체는 제거할 수 없다.

지젝이 '진정한 마오주의자'라고 칭하는 알랭 바디우는 아예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적은 제국이나 자본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라고 불린다." 이렇듯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자본주의와 함께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음으로써 지젝은 급진민주주의라는 입장에서 조금 더 왼쪽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의 전환을 혁명적 테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더욱 강화한다.

 

지젝은 자코뱅의 혁명적 폭력에 대해서도 부르주아적 법과 질서의 '초석적 범죄'라고 절반쯤 정당화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그것을 벤야민이 말하는 '신적 폭력'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참고한 건 엥겔스의 말이다. "최근 들어 사회민주주의적 속물들이 다시 한 번 이 말을 듣고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좋습니다, 여러분. 이 독재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까? 그럼 파리코뮌을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였습니다."

 

즉, 파리코뮌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는 것이 엥겔스의 주장인데, 지젝은 엥겔스의 말을 받아서 1892~1894년의 혁명적 폭력 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함께 '신적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즉 여기서 '신적 폭력=비인간적 폭력=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등가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때 '신적 폭력'이란 말의 해석은 정확히 '백성의 소리는 신의 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고대 로마의 격언을 따른 것이다.

 

자코뱅의 역사적 유산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지젝은 이렇게 바꿔서 질문한다. "혁명적 폭력의 자주 탄식할 만한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폭력의 이상 자체를 거부하도록 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오늘날의 전혀 다른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반복하여 그 현실화로부터 그것의 잠재적 내용을 부활시킬 방법이 있는가?" 그의 대답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미 지적한 대로 자코뱅의 급진적 테러는 경제 질서의 근본적 기초를 흔들어놓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거꾸로 보여주는 히스테리적인 행동화일 뿐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지젝이 보는 자코뱅의 위대함은 테러의 연출이 아니라 일상의 재조직에 관한 정치적 상상력에 두어진다.

 

진정한 혁명적 과정은 두 가지 계기를 구성소로 갖는다. 프레드릭 제임슨을 따라서 그것을 지젝은 첫째, '극단적인 부정의 제스처', 그리고 둘째 '새로운 삶의 창안'이라고 말한다. "근본적인 혁명 속에서 사람들은 단지 '그들의 오래된 꿈을 실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꿈꾸는 방식 자체를 다시 창안해야 한다. 요컨대 우리의 꿈을 위해 현실을 변화시키기만 하고 이런 꿈들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조만간 우리는 과거의 현실로 다시 돌아가고 만다"는 것이 요점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의 실패는 바로 이런 점에 기인한다는 것이 지젝의 판단이다. 물론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은 새로운 경제적 조직과 일상생활의 재조직을 겨냥했지만, 그리고 그런 점에서 유토피아 실행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만 새로운 일상의 형식을 창조하는 데는 실패한다.

 

사실 문화대혁명의 마지막 시기에, 마오쩌둥 자신에 의해서 소요 사태가 봉쇄되기 전에 '상하이 코뮌'이 있었다. 당의 공식 슬로건에 따라 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국가의 소멸과 심지어는 당 자체의 소멸을 요구했고, 직접 코뮌적 사회를 조직하고자 시도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마오는 군대를 동원하여 질서를 회복한다. 인민에게 '반란의 권리'를 갖고 있다고 스스로 독려하고 부추긴 문화혁명의 온전한 결론 앞에서 그 자신이 후퇴한 것이다. 이렇듯 마오가 충분히,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역설적으로 오늘날 중국에서 자본주의적 폭발을 위한 공간을 연 것이라는 게 지젝의 시각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들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투쟁하거나 국가로부터 거리를 두는 저항을 위해 후퇴한다"라는 식의 양자택일은 거짓된 것이라는 인식이다. 지젝이 보기에 양자는 동일한 가정을 공유한다. 즉 국가 형태는 거기에 그대로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장악하거나 그로부터 거리를 취하는 것뿐이라는 가정이다. 하지만 지젝은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이 주장한 교훈을 상기시켜준다. 혁명적 폭력의 목표는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을 변형시키고 그 기능 방식과 토대와의 관계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있다는 교훈이다. 그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이 거기에 있다.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이현우·김희진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와 <이라크 : 빌려온 항아리>(이성민·박제철·박대진 옮김, 도서출판b 펴냄)에 이어지는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김성호 옮김, 창비 펴냄)는 그의 이러한 이론적 관점과 정세적 개입의 결합물로 읽을 수 있다. 물론 그가 제시하는 건 중립적인 분석이 아닌 대단히 '편파적인' 분석이다. 진리란 편파적이며, 진정한 보편성은 오직 편파성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 지젝의 오랜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을 확인해둠과 동시에 지젝이 자신의 핵심적인 테제를 끌어내고 있는 농담 한 가지를 음미해보는 것도 좋겠다. 몽골 지배하에 있던 15세기 러시아가 농담의 배경이다. 한 농군이 아내와 함께 시골길을 걸어가다 말을 타고 오던 몽골의 전사를 만나게 됐다. 이 전사는 농군의 아내를 강간하겠다고 이르고는 "땅에 흙먼지가 많으니 내가 네 아내를 강간할 동안 네놈이 내 고환을 받치고 있어야겠다. 거기가 더러워지면 안되니까!"라고 덧붙였다. 몽골군이 일을 마치고 떠나자 농군은 웃음을 터뜨리며 기뻐했다. 아내가 어이없어 하며 뭐가 기뻐서 난리냐고 묻자 농군은 이렇게 답했다. "그놈한테 한방 먹였다고! 그놈 불알이 먼지로 뒤덮였단 말이야!"

 

현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반체제인사들이 놓인 곤경을 잘 보여주는 이 농담이 지젝은 오늘날의 비판적 좌파에게도 잘 맞아떨어지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래서 포이어바흐에 관한 제11테제를 그는 이렇게 비튼다. "우리의 사회들에서 비판적 좌파는 지금까지 권력자들에게 때를 묻히는 데에 성공했을 뿐이나, 진정 중요한 것은 그들을 거세하는 것이다." 그 '거세'는 어떻게 가능한가? 일단 '20세기 좌파정치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지젝이 베케트의 말을 인용하며 다시 강조하는 그 교훈이란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이다. 혁명의 과정이란 점진적 진보가 아니라 몇 번이고 시작을 반복하는 운동이다. 그리하여 다시 소환되는 것이 '공산주의적 가설'이다. 지젝의 절친한 동료이기도 한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아주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공산주의적 가설은 여전히 올바른 가설이며 나로서는 그 외의 어떤 올바른 가설도 발견할 수 없다. 만일 이 가설이 포기되어야 한다면 집단행동 차원의 어떤 일도 행할 가치가 없다. 공산주의의 관점 없이는, 이 이념 없이는 역사적, 정치적 미래의 어떤 것도 철학자의 흥미를 끌 만한 종류가 되지 못한다."

 

물론 공산주의 이념에 계속 충실하기만 한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이념에 실천적 긴박함을 부여하는 적대를 역사적 현실 안에서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는 어떤 적대가 내재해 있는가. 지젝은 네 가지를 꼽는다. 다가오는 생태적 파국의 위협, 소위 '지적 재산권'과 관련한 사유재산 개념의 부적절함, 새로운 과학기술 발전의 사회·윤리적 함의, 새로운 장벽(Walls)과 빈민가라는 새로운 형태의 아파르트헤이트 생성. 이러한 파국적 위협과 불평등, 그리고 분리에 맞선 투쟁이 공유하는 것은 '공통적인 것'(the commons)을 둘러막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인류가 파멸해 봉착할 수 있다는 자각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커다란 시장의 실패"로도 불리는 기후 위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때문에 '세계 시민성'과 '공통 관심'을 바탕으로 "시장 메커니즘을 조절하고 제압하면서 엄밀하게 공산주의적인 관점을 표현하는 세계적 정치 조직을 창설할 필요"가 제기된다. 그것이 '세계의 종말'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에 이어서 그가 펴낸 두툼한 책 제목은 <종말의 시대에 살아가기(Living in the End Times)>이다.)

 

12. 01. 14.

 

 

 

P.S. 참고로 덧붙이자면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는 1월 31일부터 2월 28일까지 5주간 화요일 저녁에 로쟈와 함께 읽는 슬라보예 지젝 : 99%의 행복찾기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한다(http://www.hanter21.co.kr/jsp/huser2/educulture/educulture_view.jsp?category=academyGate7&tolclass=&searchword=&subj=F91126&gryear=2012&subjseq=0001&p_selmenu=01). 교재는 <실재의 사막으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와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자음과모음, 201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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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만의 허기>란 소설이 있다. 작가의 이름은 입에 익지 않은데 다시 확인하니 레온 드 빈터다. <호프만의 허기>(디자인하우스, 1996)이라고 오래전에 출간됐던 책이 이번에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나왔다. <호프만의 허기>(문학동네, 2012). 예전판으로 흥미롭게 읽었지만 기억에 완독은 하지 않았다. 다시 손에 들고픈 소설이라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영어본의 표지가 맘에 든다.

 

 

 

한국일보(12. 01. 14) 불면과 폭식… 영혼이 고독한 인간의 공허한 일상

 

네덜란드 작가 레온 드 빈터의 대표작 <호프만의 허기>는 한 중년 남자의 허기를 통해 세상에는 육하원칙의 명료한 서술로 설명되지 않는 빈 공간이 존재함을 말하고 있다. 영화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프로듀서 등으로 활동한 작가의 이력이 십분 발휘된 작품은 스릴러물의 형식을 빌려오면서, 스피노자의 철학을 틈틈이 배치해 독자의 지성을 자극한다.

펠릭스 호프만은 59세에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네덜란드 대사로 임명된다. 외교관이라는, 겉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는 20년 넘게 불면증과 폭식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 그의 불면과 폭식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징후다. 유대인인 그는 어린 시절 홀로코스트로 부모를 잃고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대학 때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쌍둥이 딸을 얻었다. 하지만 한 아이는 어려서 백혈병으로, 다른 아이는 헤로인 과다 복용에 따른 자살로 잃고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해진 상태다. 그는 밤마다 구역질이 날 때까지 음식을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 음식을 먹고 게워내기를 반복하며 불면증에도 시달린다.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프라하 관저에서 우연히 발견한 스피노자의 철학 책 <지성의 개선 및 지성을 사물의 참된 인식으로 인도하는 방법에 관한 논고>다. 마음의 허기를 스피노자의 철학으로 채우려는 듯, 그는 스피노자를 이해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며 가까스로 자신을 지탱한다. '오직 영원하고 무한한 것을 향한 사랑만이 영혼을 기쁨으로 살찌운다. 그리고 그런 사랑만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기에 가장 바람직할뿐더러 전력을 다해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영혼을 채우고 싶은 호프만이지만, 또한 욕망을 가진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그는 치명적 실수를 한다. 적국의 스파이인 카를라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그녀에게 비밀정보를 넘겨주게 된 것. 물론 뚱뚱한 중년 남자의 사랑은 배신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소설의 또 다른 축은 호프만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면이다. 카를라 사건을 조사하러 온 미국 정보기관원 존 마크스는 호프만의 아내 마리안과 연락을 취하게 되고, 그녀가 과거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라는 걸 알게 된다. 마리안과 마크스 역시 삶의 허기에 시달리던 사람들이다. 얼핏 줄거리만 들으면 신파처럼 느껴지는 소설이지만, 스피노자의 <…논고>의 일부분과 호프만의 일상, 호프만 주변인들의 이력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이며 독특한 감응을 준다. 밀란 쿤데라가 막장 연애담과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버무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것처럼.

소설은 20세기 말 혼란의 시대, 1989년 6월 2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사람들의 공허한 일상과 그로 인해 허기를 느끼는 인물들의 면면을 서술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인간 삶을 이루는 근간은 사회질서나 도덕 같은 드러난 사실보다 역사의 순간에 마주치는 충격, 상처, 그로 인해 생긴 빈 공간이며 누구도 이 아픔을 대신 겪거나 제거해 줄 수 없음을 인물들의 '허기'는 말하고 있다.(이윤주기자)

 

12. 01. 14.

 

 

 

P.S. 레온 드 빈터의 소설로는 <바스티유 광장>(문학동네, 2010)도 소개돼 있다. 그리고 허기와 대비하여 탐식이란 주제도 떠오르는데, 플로랑 켈리에의 <제7대 죄악, 탐식>(예경, 2011)이 읽어볼 만하다. 프랜신 프로즈의 <탐식>(민음인, 2007)은 '주체할 수 없는 식욕'에 대한 소략한 안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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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윤리위원회의 소식지 책&(402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아마도 올해까지 연재하게 될 듯싶다. 이달의 주제는 '조선의 왕'이다. 보지는 못했지만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인기를 고려해서 고른 주제다.

 

 

 

책&(12년 1월호) 조선의 왕과 왕실

 

세종의 한글창제 과정을 다룬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가 안방극장에 열풍을 몰고 오면서 세종의 리더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조선왕조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평가되니 남다른 주목을 받을 만하다. 그런 관심을 아예 ‘조선의 왕’으로 확장해보면 어떨까. 물론 TV사극에서 단골로 다루는 인물이 조선의 국왕들이기에 그들의 일상사와 말투까지도 친숙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의외로 역사학자들의 관심에서는 좀 벗어나 있었다. 왜일까.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왕실문화총서’로 출간된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돌베개, 2011)를 통해서 사정을 짐작해볼 수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근대화에 실패한 왕조의 군주라는 인식이 조선의 왕과 왕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덧붙여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회에 대한 서양인들의 편견도 조선왕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해석에 장애가 되어왔다. 최근 들어 조선 왕실과 왕실문화에 대한 다각적인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그러한 부정적 인식과 해석상의 장애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는 뜻도 된다. 게다가 왕실 도서관 소장 자료의 영인과 해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됨에 따라 연구 환경이 좋아진 것도 앞으로 넓은 시야에서의 깊이 있는 연구를 가능케 할 전망이다.


조선 왕은 어떤 존재였는가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서로서 <조선 왕으로 살아가기>는 국왕의 하루일과에서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문학적 세계와 건강관리법까지 두루 다루고 있어서 길잡이로 요긴하다. 조선의 국왕,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 재위했던 국왕 27명의 평균수명은 47세였으며, 평균 재위기간은 약 19년이었다. 평균 재위기간이 고려 때보다 5년 정도 길며 이것은 그만큼 왕권이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던 이는 52년간 재위했던 영조이며, 숙종, 고종, 선조, 중종, 순조, 세종 등도 30년 이상 권좌에 있었던 왕들이다. 보통 재위기간이 길수록 왕권이 탄탄했다.

 

권력이 모두 집중된 만큼 왕의 업무는 과중했는데, 일과는 아침, 낮, 저녁, 밤의 네 단계로 구분됐다. 웃어른에 대한 문안인사와 경연, 그리고 아침식사 후의 조회가 오전의 일과라면 점심식사 후에는 다시 경연으로 시작하여 지방행정에 관한 보고를 받거나 민원을 해결하는 등의 업무를 보게 되며 대략 5시경에 종결된다. 하지만 공식 업무 후에도 다시 경연이 이어지며 저녁을 먹은 후에는 낮 시간에 미뤄둔 업무를 마저 보기도 했다. 이를테면 국왕의 야근이다. 촘촘하기로는 연간 일정도 마찬가지여서 왕은 정월 초하루부터 24절기에 맞춰 많은 일과 행사를 주관해야 했다. 물론 유교적 예치(禮治)를 표방한 국가였기에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제사였고, 왕의 1년은 제사로 시작해서 제사로 끝났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엮은 <조선 국왕의 일생>(글항아리, 2009)은 말 그대로 조선 국왕의 일생에 대한 주제별 스케치이다. 초점 가운데 하나는 절대권력자인 왕의 권한을 어떻게 통제했느냐이다. ‘종신직’으로서 국왕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존재였기에 훌륭한 왕이 되게끔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왕을 규제하는 수단으로 조선의 지식인들이 마련한 것이 ‘기록’과 ‘교육’이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국가 기록을 통해 국왕의 행적을 상세히 기록했고, 정상적인 국왕이라면 이를 의식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한 국왕은 왕세자로 책봉되고 국왕에 오르기까지 각종 교육과정을 거쳤고 왕위에 오른 뒤에는 경연에 참석해야 했다. 연산군처럼 경연을 폐지한 경우가 아니라면 경연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경연이란 왕이 유가의 경전과 중국‧우리나라의 역대 역사를 공부하는 자리로서, ‘경연에 관한 모든 것’은 김태완의 <경연, 왕의 공부>(역사비평사, 2011)를 참고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왕에게 건강은 공부만큼 중요했다. 유학에서 사후에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법치보다 사전에 다스리는 덕치를 더 우선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질병에 대한 사후 처치로서의 약치(藥治)보다 더 나은 것은 미리 예방하는 식치(食治)였다. 평소에 먹는 음식을 통해서 건강을 지키고자 한 것으로 조선의 왕실은 다양한 종류와 죽과 차를 대표적인 식치 음식으로 갖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조선의 왕들이 모두 무병장수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함규진의 <왕의 밥상>(21세기북스, 2010)은 ‘밥상으로 읽는 조선왕조사’를 가지런하게 보여주는데, 흥미롭게도 세종은 왕실의 식치가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경우였다. 운동은 게을리 하면서 밥상머리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공부벌레였던 까닭에 재위 초년의 세종은 보기 거북할 정도로 뚱뚱했으며 서른 즈음부터는 당뇨와 합병증에 시달렸다. 고기반찬만 좋아하고 절식과 폭식을 반복했던 식습관도 ‘성군’의 이미지와는 얼핏 맞지 않는다. 하지만 세종은 궁궐 법주(法酒)에 들어갈 노루 뼈를 위해 사냥에 나섰던 사람이 멧돼지에게 받혀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는 술에 노루 뼈를 넣지 말라고 지시한 성군다운 일화도 남기고 있다.

12. 01. 14.

 

 

 

P.S. 왕정국가였던 만큼 조선은 왕이 통치하는 국가였지만 선비들의 강한 견제를 받았기에 실제로는 왕권이 그다지 강력하진 않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관점에서 '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곧 선비들에도 관심을 가게 되는데, 어제부터 읽고 있는 계승범의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역사의아침, 2011)가 개관으로 유용하다. 가령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신하를 뜻하는 <직신>(리드잇, 2012)이 조선 선비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준다면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는 조선 사회의 '독점적 지배층이자 유일한 지식인 계층'으로서 선비의 전체상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목이 암시하는 바대로 저자의 결론은 사뭇 부정적이다. 김연수의 <조선 지식인의 위선>(앨피, 2011)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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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책이 출간됐다. <마오의 독서생활>(글항아리, 2012). 중국 현대사의 문제적 인물이 어떤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개인적으론 <레닌의 독서생활> 같은 책은 나온 게 없나 궁금해진다...

 

 

경향신문(12. 01. 14) 책을 통해 중국을 바라보고 혁명의 이론 찾은 ‘독서광 마오’

 

그를 만난 책들은 피곤에 절었을 게 분명하다. 밑줄은 기본이다. 동그라미, 점, 삼각형, 의문부호 등 온갖 표시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여백도 짤막한 평들로 메워 가만두지 않는다. 마오쩌둥이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해주는 책이다. 마오와 함께했던 동지와 비서, 도서실 관리자, 영어교사 등 측근 8명이 생생한 육성으로 전한다. 마오가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마오의 독서에 대한 철학부터 여백에 메모하고 평가하는 습관, 저자들과의 서신 토론 및 담화, 서재 풍경, 이동할 때의 책읽기까지 마오의 평생독서를 그렸다. 1부는 고전, 문학, 역사, 신문 및 잡지, 영어공부를 다뤘고 2부는 마르크스·레닌 저작, 철학, 자연과학 등을 담았다. 육필원고, 책에 남긴 표시, 저자와의 서신 등 수많은 도판 자료가 이해를 돕는다. 
 
책은 자신이 읽고 배운 지식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지, 어떻게 중국의 것으로 확대하려 했는지에 주목한다. 한 혁명가의 단순 독서론으로만 볼 수 없다. 역자의 말처럼 마오쩌둥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 역정에 현대 중국의 역사가 집약돼 있기 때문이다. 마오에게 책은 그림자였다. 혁명전쟁도 그를 책에서 떼어내지 못했다.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읽은 책을 측근들에게 권유했다. 독서 범위도 광대했다. 이는 배움에 대한 그의 열정에서 비롯됐다. “나이가 들어서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내가 다시 10년을 더 살고 죽는다면 9년 359일을 배울 것입니다.”

 

 

 

마오가 문학작품을 통해서도 중국을 바라봤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특히 그는 민중의 소극적이고 뒤떨어진 정신상태를 질책한 루쉰을 좋아했다. 그가 보기에 루쉰은 “암흑과 폭력의 공격에서도 독립적으로 버텨낸 한 그루의 큰 나무”이자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철저한 유물론자”이다. 마오는 연설, 담화, 저작을 통해 아Q를 자주 언급했다. 혁명을 허락하되 <아Q정전> 속의 가짜 양놈 노릇을 해서는 안되며 아Q혁명을 허락하면 안된다고 했다. 그는 또 문건을 쓸 때는 <아Q정전>처럼 통속화하고 구어화할 것을 주문했다.

 

 

 
‘수불석권’이란 마오쩌둥에게 어울리는 성어다. 그는 문학책, 역사책, 마르크스·레닌의 저서, 철학책을 읽으며 줄을 치고 메모했다. 그는 또 <홍루몽>을 ‘역사’로 읽었다. 봉건사회의 계급투쟁을 묘사한 소설로 간주하며 호평했다. 그는 홍루몽의 저자 조설근이 살던 시대는 “소설 속 가보옥처럼 봉건제도에 불만을 가진 인물들의 시대”라며 <홍루몽>에서 묘사된 4대 가족의 쇠망을 통해 봉건통치계급의 쇠망을 이해하려 했다. 마오는 <금병매>도 높이 평가했지만 “다소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홍루몽>과는 달리 “주로 암흑을 폭로하기만 했”다고 비교한다. 그는 조카손녀에게 “네가 <홍루몽>을 읽고자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봉건사회를 알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론서나 역사서 탐독은 당연했겠지만 문학작품에까지 애착을 보인 건 왜일까. <홍루몽>처럼 봉건사회의 구체적 생활상을 묘사한 문학작품을 읽어야 봉건사회에 대해 세밀하고 생동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되며, 이는 이론서 같은 것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마오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했다. 간부라면 마르크스·레닌 저작을 읽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특히 레닌의 저작을 중점적으로 읽었다. 저자에 따르면 마오는 레닌의 책으로부터 식민지, 반식민지 국가에서 민주혁명을 진행하고 또 민주혁명에서 사회주의 혁명으로 바뀌는 이론을 찾았다. 중국의 실제와 밀접하게 연계시키며 반복적으로 읽었지만 그는 훗날 마르크스·레닌 저작 속의 일부 논점을 교조화하고 심지어 오해까지 해 막중한 손실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오가 모든 방면의 책을 섭렵한 것은 아니다. 외국 문학과 경제 분야의 책, 특히 생산의 사회화에 관한 외국 서적은 읽은 것이 적다고 한다. 그는 또 자연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끝까지 이를 견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주의 개조가 기본적으로 완성된 후 그는 갈수록 “계급투쟁 중심으로” 할 것을 강조했고, 자연과학을 중시하는 사상은 희석됐다. 이런 추세는 10년간의 ‘문화대혁명’으로 변질됐고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줬으며 과학 발전도 저해했다고 저자는 평한다.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마오는 맹자의 한마디를 즐겨 인용했다. “<서경(書經)>을 그대로 다 믿는다면 <서경>이 없느니만 못하다.” 독서를 즐기되 책을 맹신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마오의 단면이 엿보인다. ‘사다(四多)’, 즉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고 많이 묻는 마오의 습관에 밑줄이 그어진다. 세계든 자신이든 혁명하려면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는 얘기다. 1986년에 같은 제목으로 출판됐고 이 책은 2009년판을 완역한 것이다.(고영득기자)

 

12. 01. 14.

 

 

P.S. 마오에 관한 책은 다수 출간돼 있다. 평전들 외에 지젝이 엮고 해제를 붙인 <마오쩌둥>(프레시안북, 2009)에 특히 눈길을 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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