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마침 일요일이라 달력도 빈틈이 없이 꽉 채워서 시작하는데, 이달의 독서 또한 그랬으면 싶다. 공휴일도 총선이 치러지는 11일 하루밖에 없다. 다질 건 다지고 응징할 건 응징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면서 (그들에게) '잔인한 달'의 포문을 연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문태준 시인의 <먼 곳>(창비, 2012)이다. '서정의 귀환'을 대표하는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라고. <가재미>(문학과지성사, 2006)과 <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 2008)에 이어지는 시집이다. 같은 서정시 계열로 분류되는 장석남 시인의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 2012), 그리고 김선우 시인의 신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창비, 2012) 등이 같이 읽어볼 만한 시집이다.
영문학계의 화제작들도 4월의 독서목록에 올려놓음직하다. 영국작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산책방, 2012)와 작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제니퍼 이건의 <킵>(문학동네, 2011), <깡패단의 방문>(문학동네, 2012) 등이 그 목록에 들어가는 책들이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마하엘라 비저의 <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지식채널, 2012)이다. "이동변소꾼, 개미번데기수집상, 고래수염처리공, 소변세탁부, 커피냄새탐지원, 촛불관리인…. 알쏭달쏭 낯선 이 이름들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 인류가 생계를 이어나가는 수단이었다.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역사 속 뜻밖의 직업들을 통해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추적한다." 말 그대로 '사리진 직업들'을 통해서 읽는 유럽 문화사이다. 같은 컨셉의 책으로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건 이승원의 <사라진 직업의 역사>(자음과모음, 2011). 이 둘을 비교해 읽는 것도 흥미롭겠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책은 조지프 핼리넌의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문학동네, 2012)다. '실수'를 키워드로 한 책을 더 찾아보니 윌리엄 헬름라이히의 <내가 왜 그랬을까>(말글빛냄, 2011), 아서 프리먼 등의 <그동안 당신만 몰랐던 스마트한 실수들>(애플북스, 2011) 등이 같이 읽어볼 만한 책들이다. 분류하자면 심리학 분야의 책들이다.
철학쪽 책으론 우리의 사유에서 실수(오류)를 제거하고자 했던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의 새 번역본이 나왔기에 독서목록에 올려놓는다. 분석철학 전공자인 곽광제 교수가 <논고>를 <논리철학론>(서광사, 2012)란 제목으로 다시 옮겼다. 먼저 나온 해설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론 이렇게 읽어야 한다>(서광사, 2011)와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논고'가 '론'이란 뜻이라 해도 관행적으로 굳어진 제목을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고른 책은 신용하의 <독도영유의 진실 이해>(서울대출판문화원, 2012)다. "우리나라가 독도를 영유하는 것이 지리적・역사적・국제법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모든 자료와 해설"이다. 저자는 그간에 독도 문제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출간했는데, 가장 간명하게는 <신용하의 독도 이야기>(살림, 2004)를 참고할 수 있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유진수의 <가난한 집 맏아들>(한국경제신문, 2012)이다. 경제학자가 쓴 경제정의론으로 "99%는 왜 가난한가?"를 질문한다. '왜 가난한가'란 질문에 보태서 '어떻게 가난한가'를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학생들이 만드는 단비뉴스의 '대한민국 빈곤보고서', <벼랑에 선 사람들>(오월의봄, 2012)이 그런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노동, 주거, 보육, 의료, 금융 등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도시빈민의 삶에 대한 역사적 보고서로서 최인기의 <가난의 시대>(동녘, 2012)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추천한 책은 최희규의 <가루와 함께 일주일만 놀아보자!>(이담북스, 2012)다. 분체(가루)공학 전공자가 쓴 책으로 세상의 물질에는 고체, 액체, 기체 말고 분체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가루에 관한 책은 워낙 드물기에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을 찾기는 어렵고, 개인적으론 '시간의 화살'이란 주제를 따로 읽어보고 싶다. 숀 캐럴의 <현대물리학, 시간과 우주의 비밀에 답하다>(다른세상, 2012)가 나온 게 계기다. 오래 전에 나온 피터 코브니 등의 <시간의 화살>(범양사, 1994)를 떠올리게 하는데, 주로 열역학 제2법칙을 소재로 하여 가역성과 비가역성의 문제를 다룬다. 시간의 화살이란 비가역성의 다른 이름이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아카넷, 2012)도 같이 읽어볼 만하겠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책은 플로리안 하이네의 <화가의 눈>(예경, 2012)이다. "이 책의 묘미는 두 관찰력의 만남, 즉 과거의 그림과 현재의 사진을 비교하는 일에 있다. 옛 화가가 화면 속에 의도적으로 집어넣거나 제거해버린 부속 풍경들을 찾아내서 과연 왜 그런 작업을 했는지 면밀하게 추적해내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예술 창조자의 시선뿐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추적자의 시선이 동시에 생생하게 느껴지는, 한마디로 ‘실감나는’ 책"이라는 평이다. 같은 저자의 책으론 <거꾸로 그린 그림>(예경, 2010)도 흥미를 끈다. '미술사 최초의 30가지 순간'을 조명한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존 판던의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웅진지식하우스, 2012)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 50의 랭킹과 해제를 담은 책이다. "<이것은 질문입니까?>를 통해서 재치를 겸비한 박학을 선보였던 존 판던은 이 책에서도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들의 안내자로 자신이 적임자임을 과시한다.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되고 더불어 즐길 수 있으니 교양서로 모자람이 없다"고 평했다. 지적인 재미와 자극을 원하는 독자라면 이 두 권의 책은 일독해볼 만하다.
9. 실용
손수호 위원이 고른 책은 피터 멘젤 등의 <우리 집을 공개합니다>(월북, 2012). 저자의 이름이 낯익은데 그럴 만하다. "원제가 'Material World(물질 세계)', 부제가 ‘지구촌 가족의 초상’이다. 물건으로 각 나라별 차이점을 보겠다는 책이다. 이 기발한 작업에 나선 이는 사진작가 피터 멘젤. 이름이 익숙하다 했더니 지구촌 식탁을 담은 <헝그리 플래닛>, 먹을거리 생태학을 다룬 <칼로리 플래닛>의 저자다." 이름하여 '플래닛 3부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1994년 '세계 가족의 해'를 맞아 만들어진 책이라지만 여전히 유익해보인다.
10. 팩트
내 맘대로 고른 주제는 '팩트'다. 주진우 기자의 <주기자>의 가제가 '이것이 팩트다'였다. 당일배송이 되기에 어제 주문해서 받았는데, '팩트'란 말은 그간에 왜곡되고 축소된 진실, 조작된 진실에 대한 저항과 분노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 대선 직전 주기자는 미국으로 날아가 에리카 김을 만나 인터뷰 특종을 따냈었는데,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에라도 BBK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직을 걸겠다고 말했다"는 질문에 에리카 김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그 사람을 잘 아는데 만약 그렇다면 내가 성을 간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밥 먹는 것보다 더 많이 하고 잇다. 또 이명박 씨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하는데 '짠돌이' 이명박 씨가 그럴 리 없다. 또 그런다고 해도 별로 상관없다. 진짜 재산을 다 빼돌려놓은 거 아니냐.(175쪽)
'이명박 씨'의 실제 재산과 관련한 내용은 안치용의 <시크릿 오브 코리아>(타커스, 2012)에 나온다. 2007년 가을 미국에서 진행되던 BBK 관련소송에서 김경준은 MB의 재산이 6억 달러(약 7000억원)라고 주장했다. 공직자재산신고에서 밝히고 청계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한다고 한 380여억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김경준은 해당 서류 2페이지에서 MB가 사기, 뇌물, 돈세탁, 착취 등을 통해 6억 달러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모았고 그의 재산은 형제와 처남 그리고 여러 법인들을 통해 은닉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김경준은 이 서류에서 MB가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현대건설에 입사해 최고경영자가 된 뒤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현대의 자산을 형과 처남 명의로 빼돌렸다고 주장했다.(28쪽)
'정의는 죽고, 탐욕만 남은' 세상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까. '17살'을 자처하는 주진우 기자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이런다고 약자들이 이기지도 못한다. 세상이 바뀌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힘을 함부로 쓰는 자들에게 짱돌을 계속 던질 것이다. "넌 정말 나쁜 새끼야." 쫓아가서 욕이라도 할 것이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전국민이(MB주의자들를 빼고) 한번씩 합창하면 혹 사정이 나아질지 모를 일이다. "넌 정말 나쁜 새끼야!"
그렇게 거짓과 탐욕이 극세하는 동안 '88만원세대'는 '결혼불능세대', 행복을 저당잡힌 세대가 됐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의 인터뷰집 <결혼불능세대>(필로소픽, 2012)도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되는 현실을 진단하고 있다. 인터뷰어 윤범기 기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결혼하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해법은 바로 정치에 있다. 그런 점에서 2012년은 중요한 해다. 총선과 대선이 있고, 이 기회를 활용하려는 청년 정치인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나와 같은 2030세대가 SNS의 등장으로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투표율이 높아지는 현상도 바람직한 일이다. 좋은 이룸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결혼하기 좋은 세상도 이런 작은 노력들이 쌓여서 이루어질 것이다.(11쪽)
12. 04. 01.
P.S. 4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고른다. 번역본은 민용태 교수가 옮긴 <돈끼호떼>(창비, 2012)가 속편을 포함한 완역본이다. <돈키호테>는 1605년과 1615년에 각각 1, 2권이 출간됐는데, 시공사판 <돈키호테>는 1권만을 옮긴 것이어서 아쉽다. 김현창 교수의 <돈끼호테>(범우사, 동서문화사)도 참고할 수 있는 완역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