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일정 때문에 어제 오후 홍대앞 PC방에서 쓴 글이다. 아침에는 주진우의 <주기자>(푸른숲, 2012)를 읽다가 가방엔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해나무, 2011)를 넣어 갔었는데, 칼럼은 '책 읽는 뇌' 이야기에서 멈췄다. '중년의 뇌'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기회를 마련해볼 참이다.

 

 

 

경향신문(12. 04. 06) [문화와 세상]독서력을 갖춘 사회

 

책을 몇권 내면서 가끔 강연회에서 독자들을 만난다. ‘책에 대한 책’으로 분류되는 책들이다 보니 화제는 주로 독서다.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가 청중의 주된 관심사다. 그런 물음에 답하다 보니 애용하게 된 레퍼토리 중 하나는 ‘책 읽는 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서목록을 만드는 것보다 먼저 할 일이 독서력을 갖추는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무엇이 책 읽는 뇌인가. 기본전제는 인간은 책을 읽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자의 발명이 불과 5000년 전의 일이고 책이란 물건이 등장한 건 그보다 나중이니 독서능력이란 게 우리 뇌에 특별한 능력으로 자리 잡을 순 없었다. 그럼에도 문자를 해독하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건 우리 뇌의 다른 기능들이 부수적인 역량을 발휘한 결과다. 그런 기능 간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난독증인데, 책 읽는 뇌가 우리의 본질적 능력이 아니라 ‘부업’의 결과라면 난독증이 큰 흠은 아니다. 진정 놀라운 것은 오히려 문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다. 부모라면 자녀들이 한글을 깨칠 때 느꼈던 경이감을 기억할 것이다. 물론 우리 자신도 그런 경이감을 부모에게 안겼을 것이니 알고 보면 다들 ‘천재’였다. 비록 일반화되긴 했지만 문자를 읽어낸다는 것, 소위 ‘문해력’은 자연스러운 능력이 아니라 천재적인 능력이다.

문제는 문해력이 곧 ‘독서력’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책을 읽는 능력은 글자를 읽거나 글을 읽는 능력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능력이다. 그리고 이 독서력은 자연스레 체득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다. 대단한 노력은 아니다. 일주일에 한두 권씩 2년 정도의 단기간에 꾸준히 읽으면 된다. 그렇게 ‘10000페이지 독서’나 ‘150권 독서’를 통해서 독서력이 길러진다. 어지간한 책을 읽고 소화할 수 있는 힘이 독서력이다. 만약 어지간한 책을 읽어내는 게 힘겹다면 독서력이 아직 부족한 단계라고 말할 수 있다. 책 읽는 ‘근육’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글을 읽는 단계에서 책을 읽는 단계로 넘어가려면 좀 더 단련된 뇌 근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게 단련된 뇌 근육은 독서의 지평뿐 아니라 세계의 질감 또한 변화시킨다. 이 변화는 개인적 차원에 한정되지 않는다. 문맹을 벗어난 사회가 문해력을 갖춘 사회라면 진정한 문명사회는 독서력을 갖춘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일제시기 한국인의 70%가 문맹이었다고 한다. 오늘날 문맹률에 있어서만큼 세계 최저 수준이니 우리의 초급 문해력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시 강조하자면 문해력과 독서력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문해력은 초등교육의 과제일 수는 있을지언정 고등교육의 목표일 수는 없다. 독서력은 초등학교 교과서가 아니라 대학교재를 읽을 수 있는 진전된 문해력이다. 세계 최저수준의 문맹률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학생들의 문해력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문제는 독서량이고 독서력이다. 한 달에 한권 정도를 읽는 평균 독서량을 갖고서 우리 사회가 ‘독서력을 갖춘 사회’라고 말할 수는 없다.

흔히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한다. 그 수준을 말해주는 척도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독서력이다. 민간인 불법사찰이나 일삼는, 그러면서도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 모르는 수준 낮은 정부를 우리가 갖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미흡한 독서력과 무관하지 않다면 독서는 정치적 차원에서도 진지한 숙고의 대상이 될 만하다. 국민 다수가 정치와 역사와 철학에 대한 기본교양을 갖추고 말들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거짓말이고 꼼수인지 판별해낼 수 있다면 그런 국민을 상대해야 하는 정부의 수준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아무리 거짓말이라 해도 최소한 좀 더 성의 있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까.

 

12. 04.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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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읽기 리스트는 작년에도 만들어놓은 적이 있는데, 아렌트 선집의 하나로 <이해의 에세이 1930-1954>(텍스트, 2012)가 출간됐기에 한번 더 만들어놓는다(오늘의 발견이어서 바로 주문했다). 정치철학에 대한 강의 때문에 안그래도 아렌트의 <정치의 약속>(푸른숲, 2007)을 다시 펴보려던 참이었다. 이 역시 아렌트 사후에 나온 선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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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의 에세이 1930~1954- 한나 아렌트 텍스트 선집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외 옮김 / 텍스트 / 2012년 2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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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의 위기- 정치에서의 거짓말.시민불복종.폭력론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1년 10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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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약속
한나 아렌트 지음, 제롬 콘 편집, 김선욱 옮김 / 푸른숲 / 2007년 10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2년 04월 03일에 저장
품절
과거와 미래 사이-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연습
한나 아렌트 지음, 서유경 옮김 / 푸른숲 / 2005년 11월
24,000원 → 21,6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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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970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홍기빈의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지식의날개, 2012)가 서평거리다. '위하여'른 뗀 본격적인 <살림/살이 경제학>을 고대해 본다.

 

 

 

주간경향(12. 04. 10) 돈벌이 아닌 삶을 위한 경제학

 

“이 책은 지금까지 약 300년간 존재해 온 경제학을 근본적으로 대체할 새로운 경제학을 찾고자 하는, 나의 보잘 것 없지만 오래된 고민의 한 결과물이다.”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의 서두이면서 저자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의 문제의식을 집약하고 있는 문장이다. 그렇다고 책이 ‘오래된 고민’의 첫 보고서는 아니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책세상, 2001)을 통해서 그는 ‘경제학의 근본적 재구성’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하고 기존의 경제학이 ‘가지 않은 길’의 그림을 제시했었다.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는 저자의 고민이 그간에 얼마나 더 깊어졌는가를 보여주는 중간 보고서라고 할 수 있을까.


소위 주류경제학이라고 불리면서 ‘약 300년간 존재해온 경제학’을 저자는 ‘돈벌이 경제학’이라고 부른다. ‘경제학’이란 말을 독점하고는 있지만 결코 유일무이한 경제학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갖고 있을 따름이다. 돈벌이 경제학에서 보는 경제란 무엇인가. “인간이 살아가면서 부닥치게 되는 여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알뜰하게 선택하는 행위”를 뜻한다. 너무도 친숙한 정의인가. 반면에 저자가 정의하는' 살림/살이 경제'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정신적·물질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유형·무형의 수단을 조달하는 행위”를 말한다. 어떤 차이인가. 어쩌면 별로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에게 돈벌이와 살림/살이가 서로 중첩돼 있어서다. 그것이 바로 저자가 문제적이라고 보는 대목이다. 이러한 중첩은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화’가 전면화되면서 빚어진 특수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리스어 어원을 따지자면 영어 단어 ‘이코노미(economy)’는 가정을 뜻하는 ‘오이코스’와 질서나 법률을 뜻하는 ‘노모스’가 합쳐진 말이다. 말하자면 ‘집안 살림’이 경제인 것이니 오늘날의 학문분류에 따르면 ‘가정관리학’이 바로 경제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정의 살림/살이를 위한 경제행위로서 ‘오이코노미아’와 재물을 획득하기 위한 기술인 ‘크레마티스티케’를 명확하게 구별했다. 이 둘은 목적과 수단의 관계다. 곧 재물 획득 기술은 살림/살이라는 목적의 수단일 뿐이며 그것이 역전돼서는 안 된다. 이것이 유럽은 물론 이슬람에서 16세기까지 지배했던 관점이다


살림/살이라는 목적과 재물 획득이라는 수단의 관계가 역전되는 것은 대략 16세기부터이다. ‘좋은 삶’ 대신에 화폐와 연관된 ‘돈벌이’가 부의 표준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서양 문명 및 인류의 경제 사상사에서 진정으로 중대한 단절이 벌어졌다고 한다면 이는 고대 및 중세 경제 사상의 살림/살이 경제학 패러다임과 고전파 경제학 이후에 생겨난 돈벌이 경제학 패러다임 사이에서의 단절”이라고 주장한다. 애덤 스미스 이래의 현대 경제학은 돈벌이 경제학의 체제를 무한히 확장하여 오직 돈벌이와 관련된 현상만을 ‘경제적인 것’으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돈벌이 경제학이 가져온 폐색(閉塞)이자 맹목이다.

 

 


하지만 돈벌이 경제학이 살림/살이 경제학을 완전히 제거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돈벌이 경제학의 지배를 거스르는 살림/살이 경제학의 면면한 흐름 또한 짚어낸다. 초기 사회주의자들에서 베블런, 폴라니 등으로 이어지는 계보다. 저자는 베블런의 <자본의 본성에 관하여>나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같은 저작을 직접 번역·소개함으로써 이러한 흐름을 가시화한 바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살림/살이 경제학을 위하여>는 우리가 또 한 번의 ‘거대한 전환’, 이번에는 돈벌이 경제학에서 살림/살이 경제학으로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무엇이 살림/살이 경제학인가? 핵심은 ‘인간 존재의 전면적 발전’이다. 잠재적 능력을 개발하지 못한다면 부란 고작 좀 비싸게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뜻할 따름이다. 인생의 목적은 돈벌이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이웃의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란 주장에 반대할 수 있을까. 우리는 돈벌이에만 내몰리기엔 좀 ‘비싼’ 존재다.


12.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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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마침 일요일이라 달력도 빈틈이 없이 꽉 채워서 시작하는데, 이달의 독서 또한 그랬으면 싶다. 공휴일도 총선이 치러지는 11일 하루밖에 없다. 다질 건 다지고 응징할 건 응징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면서 (그들에게) '잔인한 달'의 포문을 연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문태준 시인의 <먼 곳>(창비, 2012)이다. '서정의 귀환'을 대표하는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라고. <가재미>(문학과지성사, 2006)과 <그늘의 발달>(문학과지성사, 2008)에 이어지는 시집이다. 같은 서정시 계열로 분류되는 장석남 시인의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문학동네, 2012), 그리고 김선우 시인의 신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창비, 2012) 등이 같이 읽어볼 만한 시집이다.  

 

 

영문학계의 화제작들도 4월의 독서목록에 올려놓음직하다. 영국작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산책방, 2012)와 작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제니퍼 이건의 <킵>(문학동네, 2011), <깡패단의 방문>(문학동네, 2012) 등이 그 목록에 들어가는 책들이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마하엘라 비저의 <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지식채널, 2012)이다. "이동변소꾼, 개미번데기수집상, 고래수염처리공, 소변세탁부, 커피냄새탐지원, 촛불관리인…. 알쏭달쏭 낯선 이 이름들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과거 인류가 생계를 이어나가는 수단이었다.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역사 속 뜻밖의 직업들을 통해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추적한다." 말 그대로 '사리진 직업들'을 통해서 읽는 유럽 문화사이다. 같은 컨셉의 책으로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건 이승원의 <사라진 직업의 역사>(자음과모음, 2011). 이 둘을 비교해 읽는 것도 흥미롭겠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책은 조지프 핼리넌의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문학동네, 2012)다. '실수'를 키워드로 한 책을 더 찾아보니 윌리엄 헬름라이히의 <내가 왜 그랬을까>(말글빛냄, 2011), 아서 프리먼 등의 <그동안 당신만 몰랐던 스마트한 실수들>(애플북스, 2011) 등이 같이 읽어볼 만한 책들이다. 분류하자면 심리학 분야의 책들이다.

 

 

철학쪽 책으론 우리의 사유에서 실수(오류)를 제거하고자 했던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의 새 번역본이 나왔기에 독서목록에 올려놓는다. 분석철학 전공자인 곽광제 교수가 <논고>를 <논리철학론>(서광사, 2012)란 제목으로 다시 옮겼다. 먼저 나온 해설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론 이렇게 읽어야 한다>(서광사, 2011)와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논고'가 '론'이란 뜻이라 해도 관행적으로 굳어진 제목을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고른 책은 신용하의 <독도영유의 진실 이해>(서울대출판문화원, 2012)다. "우리나라가 독도를 영유하는 것이 지리적・역사적・국제법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모든 자료와 해설"이다. 저자는 그간에 독도 문제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출간했는데, 가장 간명하게는 <신용하의 독도 이야기>(살림, 2004)를 참고할 수 있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유진수의 <가난한 집 맏아들>(한국경제신문, 2012)이다. 경제학자가 쓴 경제정의론으로 "99%는 왜 가난한가?"를 질문한다. '왜 가난한가'란 질문에 보태서 '어떻게 가난한가'를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학생들이 만드는 단비뉴스의 '대한민국 빈곤보고서', <벼랑에 선 사람들>(오월의봄, 2012)이 그런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노동, 주거, 보육, 의료, 금융 등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도시빈민의 삶에 대한 역사적 보고서로서 최인기의 <가난의 시대>(동녘, 2012)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추천한 책은 최희규의 <가루와 함께 일주일만 놀아보자!>(이담북스, 2012)다. 분체(가루)공학 전공자가 쓴 책으로 세상의 물질에는 고체, 액체, 기체 말고 분체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가루에 관한 책은 워낙 드물기에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을 찾기는 어렵고, 개인적으론 '시간의 화살'이란 주제를 따로 읽어보고 싶다. 숀 캐럴의 <현대물리학, 시간과 우주의 비밀에 답하다>(다른세상, 2012)가 나온 게 계기다. 오래 전에 나온 피터 코브니 등의 <시간의 화살>(범양사, 1994)를 떠올리게 하는데, 주로 열역학 제2법칙을 소재로 하여 가역성과 비가역성의 문제를 다룬다. 시간의 화살이란 비가역성의 다른 이름이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아카넷, 2012)도 같이 읽어볼 만하겠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책은 플로리안 하이네의 <화가의 눈>(예경, 2012)이다. "이 책의 묘미는 두 관찰력의 만남, 즉 과거의 그림과 현재의 사진을 비교하는 일에 있다. 옛 화가가 화면 속에 의도적으로 집어넣거나 제거해버린 부속 풍경들을 찾아내서 과연 왜 그런 작업을 했는지 면밀하게 추적해내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예술 창조자의 시선뿐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는 추적자의 시선이 동시에 생생하게 느껴지는, 한마디로 ‘실감나는’ 책"이라는 평이다. 같은 저자의 책으론 <거꾸로 그린 그림>(예경, 2010)도 흥미를 끈다. '미술사 최초의 30가지 순간'을 조명한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존 판던의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웅진지식하우스, 2012)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 50의 랭킹과 해제를 담은 책이다. "<이것은 질문입니까?>를 통해서 재치를 겸비한 박학을 선보였던 존 판던은 이 책에서도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들의 안내자로 자신이 적임자임을 과시한다.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되고 더불어 즐길 수 있으니 교양서로 모자람이 없다"고 평했다. 지적인 재미와 자극을 원하는 독자라면 이 두 권의 책은 일독해볼 만하다.

 

 

 

9. 실용

 

손수호 위원이 고른 책은 피터 멘젤 등의 <우리 집을 공개합니다>(월북, 2012). 저자의 이름이 낯익은데 그럴 만하다. "원제가 'Material World(물질 세계)', 부제가 ‘지구촌 가족의 초상’이다. 물건으로 각 나라별 차이점을 보겠다는 책이다. 이 기발한 작업에 나선 이는 사진작가 피터 멘젤. 이름이 익숙하다 했더니 지구촌 식탁을 담은 <헝그리 플래닛>, 먹을거리 생태학을 다룬 <칼로리 플래닛>의 저자다." 이름하여 '플래닛 3부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1994년 '세계 가족의 해'를 맞아 만들어진 책이라지만 여전히 유익해보인다.

 

 

 

10. 팩트

 

내 맘대로 고른 주제는 '팩트'다. 주진우 기자의 <주기자>의 가제가 '이것이 팩트다'였다. 당일배송이 되기에 어제 주문해서 받았는데, '팩트'란 말은 그간에 왜곡되고 축소된 진실, 조작된 진실에 대한 저항과 분노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 대선 직전 주기자는 미국으로 날아가 에리카 김을 만나 인터뷰 특종을 따냈었는데,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에라도 BBK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직을 걸겠다고 말했다"는 질문에 에리카 김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그 사람을 잘 아는데 만약 그렇다면 내가 성을 간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밥 먹는 것보다 더 많이 하고 잇다. 또 이명박 씨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하는데 '짠돌이' 이명박 씨가 그럴 리 없다. 또 그런다고 해도 별로 상관없다. 진짜 재산을 다 빼돌려놓은 거 아니냐.(175쪽)

'이명박 씨'의 실제 재산과 관련한 내용은 안치용의 <시크릿 오브 코리아>(타커스, 2012)에 나온다. 2007년 가을 미국에서 진행되던 BBK 관련소송에서 김경준은 MB의 재산이 6억 달러(약 7000억원)라고 주장했다. 공직자재산신고에서 밝히고 청계재단을 통해 사회에 환원한다고 한 380여억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김경준은 해당 서류 2페이지에서 MB가 사기, 뇌물, 돈세탁, 착취 등을 통해 6억 달러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모았고 그의 재산은 형제와 처남 그리고 여러 법인들을 통해 은닉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김경준은 이 서류에서 MB가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현대건설에 입사해 최고경영자가 된 뒤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현대의 자산을 형과 처남 명의로 빼돌렸다고 주장했다.(28쪽) 

'정의는 죽고, 탐욕만 남은' 세상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까. '17살'을 자처하는 주진우 기자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이런다고 약자들이 이기지도 못한다. 세상이 바뀌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힘을 함부로 쓰는 자들에게 짱돌을 계속 던질 것이다. "넌 정말 나쁜 새끼야." 쫓아가서 욕이라도 할 것이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전국민이(MB주의자들를 빼고) 한번씩 합창하면 혹 사정이 나아질지 모를 일이다. "넌 정말 나쁜 새끼야!"

 

그렇게 거짓과 탐욕이 극세하는 동안 '88만원세대'는 '결혼불능세대', 행복을 저당잡힌 세대가 됐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의 인터뷰집 <결혼불능세대>(필로소픽, 2012)도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되는 현실을 진단하고 있다. 인터뷰어 윤범기 기자는 머리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결혼하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해법은 바로 정치에 있다. 그런 점에서 2012년은 중요한 해다. 총선과 대선이 있고, 이 기회를 활용하려는 청년 정치인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나와 같은 2030세대가 SNS의 등장으로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고 투표율이 높아지는 현상도 바람직한 일이다. 좋은 이룸은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결혼하기 좋은 세상도 이런 작은 노력들이 쌓여서 이루어질 것이다.(11쪽)

 

12. 04. 01.

 

 

 

P.S. 4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고른다. 번역본은 민용태 교수가 옮긴 <돈끼호떼>(창비, 2012)가 속편을 포함한 완역본이다. <돈키호테>는 1605년과 1615년에 각각 1, 2권이 출간됐는데, 시공사판 <돈키호테>는 1권만을 옮긴 것이어서 아쉽다. 김현창 교수의 <돈끼호테>(범우사, 동서문화사)도 참고할 수 있는 완역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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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이 차츰 확산되고 있다.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시도했지만 관련자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고 일부 문건도 특종으로 공개됐다. 뉴스타파(http://www.newstapa.com/)에서 '리셋 KBS뉴스'를 보고나서 '이주의 책' 타이틀을 미국의 언론인 이지 스톤의 평전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문학동네, 2012)로 정했다. 방송 3사 기자/PD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뜻도 보탠다. 두툼한 이 평전의 내용에 대해선 아래 기사를 참조. 같이 생각난 책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알리샤 셰퍼드의 <권력과 싸우는 기자들>(프레시안북, 2009)인데, 아쉽게도 현재는 품절 상태다. 우리에게도 조만간 이런 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지(Izzy)’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미국의 진보 언론인 이사도어 파인슈타인 스톤(1907∼1989) 평전. 14세에 동네신문 ‘진보’ 창간, 고등학생 때 지역신문통신원을 거쳐 펜실베이니아대학을 졸업한 그는 45세까지 ‘더 네이션’ ‘PM’ 등 미국의 주류언론에서 기자와 논설위원으로 경험을 쌓는다. 주류언론 시절, 그는 정치판에서 기자들이 취재원을 잡기 위해 공정성을 팔아먹는 일을 무수히 목격했다. 그러나 스톤은 정부 측의 감언이설과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진실 전달이라는 대의명분만을 추구하며 거침없이 써댔다. 1953년, 그는 1인 독립주간신문 ‘I. F. 스톤 위클리’를 창간해 냉전 정책에 반대했고, 대다수 언론이 침묵할 때 조지프 매카시와 싸웠으며 다른 언론인들이 정부 발표에 속아 넘어갈 때 베트남전 참전의 빌미가 된 통킹 만 사건은 날조라고 비판했다. 그의 목소리가 가장 컸던 것은 논평과 칼럼이었다. 공문서와 정부 보고서에서 수많은 특종을 건져 올린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정부가 공식문건까지 새빨간 거짓말로 도배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공식문건을 읽어라.” 기자 출신의 여성작가인 저자가 입수 공개한 연방수사국(FBI) 사찰 파일도 흥미롭다.(국민일보)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20세기 진보 언론의 영웅 이지 스톤 평전
마이라 맥피어슨 지음, 이광일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36,000원 → 34,200원(5%할인) / 마일리지 1,08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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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숨겨진 부- 국가에 내 행복의 책임을 묻다
데이비드 핼펀 지음, 제현주 옮김 / 북돋움 / 2012년 4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2년 03월 31일에 저장
절판

넥스트 데모크라시- 소셜 네트워크 세대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바꾸는가
제러드 듀발 지음, 이선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2012년 03월 31일에 저장
절판

생각에 관한 생각-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생각의 반란!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진원 옮김 / 김영사 / 2012년 3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2012년 03월 3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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