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맡에 있는 책들 가운데 하나는 독일의 뇌과학자이자 과학저술가 베르너 지퍼의 <우리 그리고 우리를 인간답게 해주는 것들>(소담출판사, 2013)이다. 저자의 책은 공저를 포함해 몇권 더 번역돼 있고 <범인은 바로 뇌다>(알마, 2010)는 나도 갖고 있다. 내친 김에 <재능의 탄생>(타임북스, 2010)도 구해놓으려고 한다. 이 정도 분량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혹은 '인간의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책으로선 꽤 잘 쓰였다는 인상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생물학으로 학위를 받은 저자답게 지퍼는 이렇게 정리한다.

인류는 지성에 있어서 아이작 뉴턴이나 파블로 피카소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같은 위대한 예술가를 탄생시켰다. 인간은 인터넷으로 세상을 하나로 연결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배양액 속에서 번식하는 박테리아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존재다. 인간이나 박테리아나 모두 자신의 세포를 점점 더 빠르게 번식시키고 점점 더 많은 영양분을 소비하다가 결국 자신의 종말을 재촉하게 된다. 더 이상 먹을 게 없는 배양액 속에서 자신의 배설물로 인해 질식해 죽게 되는 것이다.(16쪽) 

인간이란 종의 특별한 능력과 그로 인한 성공이 한정된 생태계에서는 재앙이 될 수 있다(자본주의의 글로벌한 성공이 파국적 위기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개괄적인 방향과 함께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건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다. 가령 스탈린시대의 생물학자 일리야 이바노프 얘기는 이 책에서 처음 접했다.

소비에트 독재 지도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생물학자이자 말의 품종 개량에 관심을 가졌던 일리야 이바노프에게 인간과 유인원을 교배시켜 보다 힘이 센 군인, 즉 신체적으로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사람보다 식량과 잠을 덜 필요로 하는 '실패하지 않는 신(新)인간'을 만들어내라고 명령했다. 이바노프는 아프리카에서 침팬지 암컷을 인간의 정자를 이용하여 임신시키려는 시도를 했으며, 조지아에 연구소를 설립해 인간 여성을 침팬지의 정자를 이용하여 임신시키는 실험 또한 진행했다. 실험이 모두 실패하자 스탈린은 이바노프를 추방시켰고, 이바노프는 망명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감했다.(37쪽)

궁금해서 검색해봤더니 지난 2005년 12월에 관련기사가 짤막하게 보도된 적이 있다. 내가 과문한 게 이상한 일은 아닌 셈.

옛 소련 독재자 스탈린이 반은 사람이면서 반은 원숭이인 ‘반인반원’의 슈퍼전사를 만들어내라고 지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영국 일간 스코츠먼이 20일 보도했다. 모스크바 문서보관소가 최근 공개한 비밀자료에 따르면 스탈린은 1926년 당시 러시아 최고의 동물육종학자였던 일리야 이바노프 박사에게 ‘살아 있는 전쟁기계’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스탈린은 20만달러를 주며 이바노프를 서아프리카로 보내 첫 실험으로 침팬지를 임신시키도록 하고, 자신의 고향인 그루지야에는 원숭이들을 키우기 위한 실험센터까지 세우는 등 고군분투했으나 ‘신인류 창조’의 야심찬 계획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이바노프 박사는 원숭이 정액을 사람에게 주입해 수정하는 실험을 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스탈린은 마지막으로 쿠바에서 원숭이를 들여와 실험을 계속하려 했으나 이 같은 사실이 미국에 알려지면서 좌절돼 ‘반인반원 개발 프로젝트’는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세계일보)

 

실험에는 실패했지만 인간과 챔팬지의 합성체를 '휴먼지'라고 부른다. 가상의 이미지가 곧바로 <혹성탈출>의 유인원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 스탈린시대의 생물학 실험으로 일리야 이바노프의 실험보다 더 유명한 사례는 트로핌 리센코의 육종 실험이다. 얼마전 존 그레이의 <불멸화위원회>(이후, 2012)에 관한 프레시안 좌담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추종했던 리센코는 "노력과 의지만 있으면 다음 세대로 계속 이어지는 생물학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결과는 재앙이었다. 지퍼는 이렇게 정리한다.

리센코는 수확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보리 품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며 기후와 전혀 맞지 않는 보리를 대량으로 심었다. 리센코는 그 보리가 낯선 환경에서 자라면서 의도한 대로 강한 면역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험은 대대적인 실패로 끝났고, 그 결과 식량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마오쩌둥이 리센코의 아이디어를 도입하는 바람에 중국도 큰 낭패를 보았다. 결국 리센코도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인간의 존엄성보다는 이데올로기가, 지식보다는 신념이 더 중요했던 사회에서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하찮은 희생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38쪽)

 

 

지난주에 나온 책으로 독일의 언론인 볼프 슈나이더의 <인간 이력서>(을유문화사, 2013)도 눈길을 끈다. "<만들어진 승리자들>, <위대한 패배자>의 저자 볼프 슈나이더가 고발하는 무책임한 인간의 역사"로 "지구에 남긴 최초의 가족사진이라 할 수 있는 세렝게티 변두리의 발자국 화석에서부터 불의 발견, 농업의 발명, 세계 최초의 도시 건설과 제국주의 시대, 산업혁명과 세계 대전을 거쳐 오늘날의 소비문화 확대에 이르기까지의 200만 년의 여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테마의 책들을 자주 손에 드는 편이다. 생각나는 대로 몇 권 떠올리자면 이런 책들이다.

 

 

보통은 인간에 대한 회의가 생길 때, 인간들이 싫어질 때 관심을 갖게 되는 책이지만 상시적으로 읽어도 좋겠다. 인간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끔 해주니까...

 

13. 0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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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시간 동안 PC가 놓인 책상의 책들과 복사물을 정리하여 겨우 공간을 좀 마련했다. 탁 트인 시야에 모니터가 바로 눈에 들어와서 오히려 생소한 느낌마저 든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들을 책상 가까이에 배치했는데 이들이 말하자면 얼마간 '측근' 노릇을 할 책들이다. 무게감을 갖는 책은 아니더라도 측근이 주는 편안함은 있다. 몇 권의 책에 대해서는 페이퍼를 써도 좋겠다 싶지만 여유가 많지 않은 까닭에 일단 한 권만 거명하면 앤 커소이스와 존 도커의 <역사, 진실에 대한 이야기의 이야기>(작가정신, 2013)가 부듯한 독서감을 느끼게 해주는 책. '역사는 픽션인가'가 원제다.

 

 

번역본 제목보다는 원제가 저자들의 문제의식을 더 잘 집약하고 있는데, '역사는 허구인가'라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지니 반응은 세 가지였다고 한다. (1)당근이지.(역사는 물어보나 마나 허구라는 반응) (2)말도 안돼.(역사는 역사이고 허구는 허구이며 둘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는 반응) (3)글쎄... 역사가 허구인가요? 이런 반문이 가장 많이 보인 반응이라는데, 한편으론 그렇고 또 한편으론 그렇지 않다는 저자들의 답변에 양다리 걸치지 말고 확실하게 답하도록 요구했다고. "역사는 허구인가, 라는 질문은 우리에게도 대단히 복잡한 답을 요구한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은 필요할 것이다."(8-9쪽) 이 책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저자들은 서두에서 E. H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1961)에서 던진 질문보다 '역사는 허구인가'란 질문이 훨씬 제한적이긴 하지만, 카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진실의 문제, 역사가와 과거의 관계, 사실과 가치, 해석의 문제에 질문을 던진다"고 말한다. 차이점은 두 가지인데, "무엇보다도 우리는 언어와 서술, 상징, 수사법, 풍자를 통해 형성되는 역사의 문학적 측면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문학적 형태와 역사적 진실을 향한 열망 사이의 관계를 카와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7쪽) '역사의 문학적 측면'을 강조하는 쪽이 흔히 일컫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경향을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로 지칭하는데, 이 두 사조는 "학문과 직업으로서의 역사의 생존을 위협했다." "과거는 결코 복원될 수 없고 역사연구라는 것은 불가능하며 역사는 그 자체의 허구에 의해, 다시 말해 역사적 진실이 존재한다는 터무니없는 믿음 아래서만 존재할 수 있다"(13쪽)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심할 경우에는 역사라는 학문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대표적인 경우가 키스 젠킨스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1991)이다.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는 번역서의 제목이고 원제는 <역사를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 history)>다.

 

하지만 저자들은 젠킨스와 같은 극단적 상대주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더불어 자신의 연구결과와 해석이 절대적 객관성을 획득했다고 주장하는 역사가들의 주장 또한 거부한다. 리처드 번스타인의 책 제목을 빌리자면, '객관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가 이들의 입장이라고 할까. "우리는 역사서술에서 허구적 요소를 의식적으로 인정할 때 진실 탐구가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더 강화된다고 생각한다"(14쪽)은 진술은 역사학의 객관주의와 상대주의의 변증법적 종합으로도 읽힌다.

 

 

 

흥미로운 것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연결시키고 현재와 과거의 연관성에 대한 자기반영적 인식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역사서술"이 현대의 '포스트모던' 문학과 철학 이론의 발명품이 아니라 서구 최초의 역사서술인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부터 이미 나타난다는 저자들의 주장이다. 헤로도토스야말로 '포스트모던 역사가'의 원조라고 할까. 바로 그런 관점에서 저자들은 '이야기꾼 헤로도토스'를 첫 장에서 다루고, 2장에서는 헤로도토스와 함께 서양 역사학의 토대를 만든 투키디데스를 다루며, 마지막 장에서는 <총, 균, 쇠>와 <문명이 붕괴>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까지 다룬다. 역사학의 역사에 대한 흥미로운 일주이자 일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은 수준의 독자라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이 일주에 동행할 수 있을 듯싶다. 마음의 준비가 됐다면,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꺼내들고 이제 1장으로 넘어가는 일이 남았다...

 

13. 01. 27.

 

 

 

P.S. <역사, 진실에 대한 이야기의 이야기>가 그래도 좀 이론서적인 성격의 책이라 부담스러운 독자라면 좀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역사 교양서를 손에 들어볼 수도 있다. 남경태의 <시사에 훤해지는 역사>(메디치미디어, 2013), 박신영의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페이퍼로드, 2013), 그리고 원종우의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역사의아침, 2012) 등이 최근에 나온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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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일본근현대사 시리즈'(어문학사, 2012)가 출간돼 반가움을 적은 바 있는데, 이번에는 '중국근현대사 시리즈'(삼천리, 2013)가 출간됐다. 모두 일본 이와나미출판사에서 펴내는 신서 시리즈를 옮긴 것이다. 전체 6권으로 완결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네 권이 나왔다. 두 권은 나중에 더 얹기로 하고 일단은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영어권 학자들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역사를 다룬 <중국 현대정치사>(푸른길, 2012)와 비교해가며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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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현대사 1- 청조와 근대 세계 19세기
요시자와 세이이치로 지음, 정지호 옮김 / 삼천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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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현대사 2- 근대국가의 모색 1894-1925
가와시마 신 지음, 천성림 옮김 / 삼천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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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현대사 3- 혁명과 내셔널리즘 1925-1945
이시카와 요시히로 지음, 손승회 옮김 / 삼천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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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현대사 4- 사회주의를 향한 도전 1945-1971
구보 도루 지음, 강진아 옮김 / 삼천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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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알라딘의 핫이슈는 도서정가제 문제인데, 책은 왜 존재할까, 를 넘어서 책값은 왜 존재할까, 란 질문을 던진다. 다행히 이번주 프레시안에 이 문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기사가 올라왔다. 많은 분들이 참고하면 좋겠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0125152618§ion=03). Q&A 기사 가운데 알라딘과 관련한 대목은 이렇다.

 

 

Q. 도서 정가제 문제는 "출판계 대 서점계"의 이익 갈등 문제인가요?

A. 알라딘이 '도서 정가제 강화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고 김영사·창비 등 유력 출판사들이 알라딘에 출고 정지 선언을 내리면서 문제가 '출판계 대 (온라인) 서점계' 찬반 논쟁으로 비화되고 있지만 다수는 이 구도에 의문을 제기한다. 서점도 회사별로 이해관계와 전망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의 유통 구조는 서점계 내부적으로도 '강자'에 유리하게 짜여 있다며 업계 4위인 알라딘이 칼을 빼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출판사 관계자들도 있었다. 홈페이지 메인에 띄웠던 도서 정가제 반대 성명에 대해서는 불쾌감을 표시하면서도, "(각종 할인 이벤트가 금지될 경우) 스스로 고사될 거라는 강한 위기감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에 유력 출판사들이 내린 출고 정지 결정은 상당 기간 지속될 강수라는 전망이 많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업계 1,2위 서점이었다면 그 출판사들도 출고 정지 조치까지는 못 내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책을 안 읽거나 구입하지 않는 현실이 실질적인 과제인데 마치 도서 정가제를 통해 출판사에 조금 더 유리하냐, 서점에 조금 더 유리하냐의 논란으로만 번져가는 게 지극히 소모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출판사로 대표되는 제작사와 서점으로 대표되는 유통업자 양쪽 모두 공동운명체적인 성격"이 있고, 함께 힘을 합쳐 위축된 독서 생태계를 발전시키는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데 현재의 논란이 마치 출판사와 유통업자들이 반목하는 갈등으로만 비치는 게 불만이라고 했다.

'출판계' 역시 한목소리로 여겨지지만 그 안에서도 누군가는 관심이 없고, 누군가는 일시적으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소 출판사 종사자들은 "그렇다고 도서 정가제를 강화해서 어떤 회사가 가시적인 '이득'을 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피곤하고 힘든 과정이 산적해 있지만 자사의 이득보다는 '대의'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출판인회의에 이름을 올린 한 중견 출판사의 편집자는 "오히려 가만히 있어도 잘 굴러갈 출판사들이 왜 굳이 총대를 메겠는가"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정리하자면, (1)중소서점과 출판계의 위기 상황이 계속되고 있고,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도서정가제의 강화가 만능의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필요한 첫 조처다. (2)도서정가제가 강화되면 할인을 통한 가격경쟁력으로 독자를 유인해오던 온라인서점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데, 그중에서도 (업계 4위로 입지가 불안정한) 알라딘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업계 5위였던 리브로가 지난해에 문을 닫았다). (3)도서정가제를 강화할 경우 출판계의 소모적 할인경쟁은 다소 완화될 수 있지만 중소서점이 되살아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도서정가제가 새로운 독자를 만들어내는 게 아닌 이상 온라인서점 이용자들이 오프라인서점으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는데, 과연 그렇게 될까).

 

독자로서 혹은 도서구매자이자 알라딘 이용자로서 개인적인 생각을 적자면, 신간의 경우 10% 할인을 인정하는 한 현재의 '도서정가제'란 말은 이름과 실제가 맞지 않는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법률적으로는 '재판매가격유지제도'이고 내용적으로는 '구간별 할인율 제한제도'다. 정말 중소서점을 살리려고 한다면 신간 할인율을 전면 철폐해야 한다. 온라인서점의 편익을 고려하면 구매자가 돈을 더 지불하고 구입하는 게 온당하다(최소한 택배비를 서점이나 출판사에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 요즘은 사실상 책값에 반영돼 있기도 하지만).

 

그리고 구간의 경우에는 중고서적과 비슷하게 서점마다 자율적인 할인율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출간 이후 18개월이 지나면 구간으로 간주하는 듯한데, 가령 3년이 지난 책은 50% 할인을 하든지 90%를 하든지 출판사나 서점에서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이다. 대신에 18개월로 하든, 2년, 혹은 3년으로 하든, 신간에 한에서는 책에 명시된 가격이 그대로 판매가가 되도록 하는 게 '도서정가제'라고 나는 생각한다(그리고 적극 지지할 용의가 있다). 알라딘도 출간되자 마자 50% 할인하는 쓰레기 같은 책들을 팔아서 살아남느니 차라리 경쟁력 있는 온라인 중고서점의 길을 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물론 모든 일에는 반전이 가능하다. 완전 도서정가제를 도입하더라도 대부분의 책을 어차피 알라딘에서 구입해야 하는 나 같은 독자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각자가 분발해서 수입을 좀 늘리는 수밖에 없겠다. 책값을 충당하려면), 알라딘도 부동의 업계 4위 정도는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욕심 부리지 말고 오래 가는 서점이 되길 바란다. 동네서점이 없어진 지 오래라(단골이라고 내게는 10%씩 할인해주던 서점이 20년전에는 있었다) 따로 마음을 줄 만한 서점도 없다...

 

13. 0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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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라기보다는 헌책방 같은 모양새가 됐지만 여전히 구입할 책은 많고 읽을 책은 차고 넘친다. 그래도 새로운 책 소식은 언제나 눈이 뜨이게 한다. 경향신문 주말판 '해외 책'란에 실린 짐 홀트의 <세계는 왜 존재할까> 같은 책이 그렇다. '실존적 탐정소설'이 부제라는데, 아직은 하드카바만 나와 있다(표지는 왜 여러 종일까?). 뉴욕타임스가 뽑은 ‘2012년의 책’ 10권에도 뽑혔다고. 어떤 책인가?

 

 

짐 홀트는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책을 읽다가 영감을 받은 데다 영국의 작가 마틴 에이미스가 어느 인터뷰에서 “세계의 존재이유에 대해 대답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아인슈타인 다섯 명은 더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한 말을 듣고 이 책을 쓰게 됐다. 그는 어쩜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이 이미 있을지도 모르는데 자신이 두세 명을 찾을 수 있어서 그들을 소위 올바른 순서로 배치할 수 있다면 그것만 해도 훌륭한 연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결국 철학자 아돌프 그루반(*아돌프 그륀바움), 소설가 존 업다이크 등 신학·철학·물리학을 망라한 여덟 명의 사상가와 학자들을 만나러 파리, 런던, 옥스퍼드, 피츠버그 등을 여행하며 세계의 존재이유를 찾는 탐정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작가는 ‘세계는 왜 존재할까’라는 질문은 매우 심오해서 형이상학자나 생각해봄 직한 것인 동시에 너무 단순해서 아이들이나 물을 법한 것이라고 전제한다. 그는 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나 데카르트 등의 고전 철학을 통해 무존재와 존재, 시간 등에 대한 연구 역사를 살펴본 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유신론, 양자 우주론을 비롯한 과학, 추상적 가치로부터 연역하는 철학, 심지어 신비주의적 접근방식을 두루 섭렵하며 해답을 찾으려 한다.(경향신문)

흥미로운 발상의 책이어서 호기심을 갖게 된다.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고 하니까 국내에도 조만간 소개되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때까진 막간에 '성찰하는 삶(examined life)'에 눈길을 주어도 좋겠다. 소크라테스 이래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가는 철학적 삶이란 곧 성찰하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같은 제목의 책이 세 권쯤 소개돼 있다.

 

 

전에 한번 언급한 적이 있는 로버트 노직의 <인생의 끈>(소학사, 1993) 현재 절판됐지만 다시 번역돼 나온다고 들었다. 아, '세계는 왜 존재할까'란 질문을 던지는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입문>(문예출판사, 1994)도 다시 나오면 좋겠다. 절판된 지 오래 됐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소식이 없다.

 

 

13. 01. 26.

 

P.S. 하이데거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존재와 시간> 해설서가 한권 더 나왔다. W. 블라트너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입문>(서광사, 2012). <존재와 시간> 번역자이기도 한 소광희, 이기상 교수의 해설서에 이어서 세번째로 나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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