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이주의 저자'를 고르고 있는데, 이번 주에도 눈에 띄는 저자는 모자라지 않다. 불황으로 출판 종수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매주 언급할 만한 저자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는 되기에. 분량상 그중에서 세 명을 골랐다. 모두 학술서(내지는 학술교양서) 범주에 속하는 책들의 저자다.

 

 

 

 

먼저, <국가에 관한 6권의 책>(아카넷, 2013)이 말 그대로 '6권' 통째로 나온 장 보댕. 보댕이 16세기 사람인 줄은 이번에 알았는데(막연하게 근대 사상가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지 그렇게 올라가는 줄은 몰랐다) 책세상 문고로 나왔던 <국가론>(책세상, 2005)을 오래 전에 구입하고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탓이다. 이 <국가론>의 원제가 바로 <국가에 관한 6권의 책>이고 무려 1576년에 나왔다. 책세상판은 그중 주권에 관한 장을 발췌한 것인데, 책의 의의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한다.

 

 

국가 이론에 있어 서구 정치 사상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법철학자 장 보댕은 이 책을 통해 국가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는 것은 물론 국가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있다. 정치의 목적인 공공선과 정의의 구현 그리고 국가가 존재하기 위한 본질적 조건인 주권에 대해 순차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국가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립하고 국가의 본질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있다"는데, 좀더 명확하게 말하면 그는 "국가란 최고의 권력에 의한 정당한 통치"로 정의한다. 이번에 나온 아카넷판 1권이 '국가, 권력, 주권론'을 다루는데, 내용 요약은 이렇다.

"국가는 가족과 가족들에게 공통된 것들에 관한, 최고의 권력에 의한 정당한 통치라고 말한 바 있는데, 최고의 권력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최고의 권력은 영원하다고 말했다.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에게 일정한 시간 동안 절대적인 권력을 줄 수 있지만, 시간이 끝나면 권력을 받은 사람들도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고 백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얼핏 절대주의 국가론이란 게 이런 것인가 싶은데, 정치사상사적으로는 '중세와 근대의 과도기에 정립한 근대 국가와 주권론의 이론적 기초'라고 평가된다. 소개를 보니 "정치사상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퀜틴 스키너는 보댕의 ‘국가론’에 대해서 “16세기에 저술된 가장 독창적이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정치철학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막간에 한마디 보태자면 마키아벨리 연구로도 유명한 퀜틴 스키너의 주요 저작인 <근대 정치사상의 토대>(1권, 한길사, 2004; 2권, 한국문화사, 2012)로 나와 있다. 그의 정치사상사 연구에 대한 논쟁을 다룬 <의미와 콘텍스트>(아르케, 1999)까지도 나왔었지만 지금은 절판됐다.

 

여하튼 그런 의의가 있는, 정치사상사의 고전 하나가 번역돼 나온 것인데, 놀라운 것은 이 완역본이 동양에서는 처음이라는 점이다. 곧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완역되지 않은 책이라는 것(그런 점에서 보자면 역자인 나정원 교수는 '이주의 역자'이기도 하다). 옮긴이 서문에 따르면 영어 완역판도 1606년에 나오고, 20세기에 나온 건 발췌본 2종이다(독어판은 1986년에 나왔다고). 개인 소장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적어도 도서관에서는 한 질씩 비치해놓으면 좋겠다.  

 

 

 

두번째 저자는 중국의 사상사가 거자오광이다. <중국사상사>(일빛, 2013)란 대작이 번역됐는데, 그의 책은 원래 1권 '7세기 이전 중국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세계'와 2권 '7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중국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번에 나온 건 각권의 서론과 1권을 묶은 것이다. 1권만 1000쪽이니 조만간 출간된다는 2권까지 합하면 2000쪽에 육박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한국어 독자들에게 부친 서문을 보니 "이 책은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네 번째 저서다. 이 책 <중국사상사>는 앞서 출간된 <선종과 중국문화>, <도교와 중국문화>, <중국경전십종>에 비해 분량이 상당히 많다."라고 돼 있는데, 짐작엔 이 서문이 수년 전에 쓰인 듯하다. <사상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영남대출판부, 2008)과 <이 중국에 거하라>(글항아리, 2012)가 언급되지 않은 걸로 보아 2008년 이전에 쓰인 것으로 아마도 서론만 따로 나왔던 <중국사상사>(일빛, 2007) 때 미리 받아둔 게 아닌가 싶다. 이때는 저자명이 '갈조광'이었다.

 

먼저 나왔다는 책들은 <선종과 중국문화>(동문선, 1991), <도교와 중국문화>(동문선, 1993), <중국경전의 이해>(중문출판사, 1996) 등이다(모두 절판됐다). <중국경전의 이해>가 <중국경전십종>의 번역본일 것이다('십종'은 '10종'을 말한다). <중국사상사>의 부제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신앙'과 '신앙세계'를 사상사의 중요한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거자오광 사상사의 특징으로 보인다. 물론 좀더 구체적인 건 '도론: 사상사의 서술방법'을 읽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한편 거자오광의 최신 관점은 <이 중국에 거하라>(2010)에서 읽을 수 있다. <중국사상사>의 2권을 완성한 후 그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이라는 학술대회(2002)에 참석하면서 20세기 중국사상사가 그 이전 시대와 갖는 차이점을 의식하게 된다. 그는 <중국사상사>의 제3권으로 <1895-1989년 중국의 지식, 사상, 그리고 신앙의 변천>을 쓰려고 했지만, 첫째는 자료가 너무 방대하고 새롭게 검토해야 할 문제가 많았기에, 그리고 둘째는 '중국'과 '아시아'에 대한 일본, 한국 및 대만 학계의 논의에 대한 고려 필요성 때문에 보류한다. 그의 <중국사상사> 완결판이 과연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끝으로 프랑스의 언어학자 에밀 벵베니스트. 그의 대표작 <일반언어학의 여러 문제1,2>(지만지, 2012/2013)이 출간돼서다.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지만지, 2012)를 옮긴 김현권 교수의 완역본이다. 저자명이 '벵베니스트'로 표기됐는데, 예전 번역본에서는 '벤베니스트'였다. 그리고 이런저런 책들에서는 '방브니스트'로 표기되기도 했다. 아, 예전 번역본은 제목도 <일반언어학의 제문제>였고, 그게 익숙한데 이젠 '여러 문제'로 불러주게 생겼다.

 

예전 번역본이란 건 김현권 교수의 편역본 <일반언어학의 제문제>(한불문화출판, 1989)가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1991년 복학생 시절에 읽을 듯하다. 몇 개 논문이 '러시아어학 개론'의 참고문헌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언어학 개론 강의도 들었던 때라 아마도 언어학 책은 그때 가장 많이 읽었을 성싶다. 이후에 이 책은 황경자 교수의 완역본 <일반언어학의 제문제 1,2>(민음사, 1993)로 출간됐었다. 모두 현재는 절판. 벵베니스트에 관해서라면 이제 겨우 20년 전 상태를 회복한 셈이라고 할까(영어판은 사정이 더 나쁘다. 70년대에 나온 번역본이 절판된 지 오래다).

 

 

벵베니스트의 또 다른 주저로는 <인도유럽사회의 제도문화 어휘연구1,2>(아르케, 1999)가 있는데, 이미 절판된 지 오래다. 다행히 언젠가 구입해놓은 책이긴 하지만. 이 또한 도서관에서라도 읽을 수 있는 정도는 됐으면 좋겠다. <국가에 관한 6권의 책>, <중국사상사>, <일반언어학의 여러 문제>, 모두 많이 팔릴 책들은 아니지만 소수의 독자를 위해서라도 책이 나오고 오래 유통되는 것이 '출판문화'다. 소수의 관객만 찾는 영화라 하더라도 좋은 영화들이 상영관에서 오랫동안 관객과 만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영화문화인 것처럼...

 

13. 03. 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