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독서>(웅진지식하우스, 2013)가 나온 지 한달 보름이 돼 간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책 소개도 하고 강의도 진행중인데, 가끔씩 긍정적인 독서 경험을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반갑다. 한 기업 사보에서는 이 책을 서평도서로 다뤄주기도 했는데, 직장인 서평단에서 이 책을 읽고 질문한 내용에 붙인 대답을 여기에 옮겨놓는다(지면에는 아마 조금 축약돼 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주로 고전과 독서에 관한 질문들이다.

 

 

 

1. 살면서 돌아보니 어느 순간 회사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만 읽게 됩니다. 회사의 허리를 책임지는 40대 직장인에게 좋은 책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세요.


-> ‘40대’ 인구가 많아지고 유력한 독자층으로 부상하면서 출판계에서는 아예 40대를 겨냥한 책들도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제목에 ‘마흔’을 달고 있는 책들이 부쩍 늘어났지요. 40대의 관심사와 고민을 염두에 둔 책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책만 읽을 필요는 없겠죠. 40대는 ‘회사의 허리를 책임지는’ 나이이지만 동시에 각자의 인생을 중간결산해보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뭔가 새로운 인생을 살기에 아주 뒤늦은 나이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그러기도 쉽지 않은 나이. 좋은 책을 많이 찾아서 읽는 것도 좋겠지만 어떤 책을 깊이 읽는 게 필요한 때 같습니다. 저의 지론이지만 우리가 인생을 두 번 살 수는 없어도 책은 두 번 읽을 수 있습니다. 좋은 책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읽은 책을 나에게 좋은 책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지만 내가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다면 무의미하지요. 좋은 책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만들어나가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2. 아이들과 함께 고전을 읽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합니다. 즐겁게 고전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어떤 고전을 추천해주는 게 좋을까요?

-> 고전을 억지로 읽는 일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입니다. 물론 높은 산을 오를 때 분명 힘이 들지만 정상을 오르고 나면 그만한 기쁨을 보상으로 받을 수는 있지요. 하지만 독서는 결과보다 과정 자체가 중요하기에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는 것에서만 독서의 의미를 찾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어떤 책이건 간에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책은 우리가 뭔가 발견하거나 깨닫게 하는 책입니다. 우리를 똑똑하게 만들고 뭔가 성장했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책들이지요.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범위를 고전으로 확장해나가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아이가 고전을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고, 그런 즐거움을 아는 아이라면 자연스레 고전으로도 손길이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3. 작가님은 이미 많은 지식을 바탕으로 독서를 하시기에 작가의 창작의도까지 꿰뚫어보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독자들은 지식을 많이 갖추지 못할 수도 있는데요. 이런 대중이라면 어떤 기준으로 독서의 방향을 잡아야 할까요?

-> 독서는 매우 정직한 노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만큼 많이 읽고, 얼마만큼 즐겁게 읽었느냐가 그대로 ‘독서력’이 되니까요. 일차적으로는 기본 독서력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략 150권 안팎의 책을 읽는 게 필요하다고 하네요. 그런 독서량은 우리의 뇌에 독서근육을 만들어줍니다. 어지간한 책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심어주는 것이죠. 그 이후엔 다시 읽기나 깊이 읽기가 독서력을 크게 향상시켜줍니다. 또 같은 책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읽는지 비교해보고 내가 놓친 것,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확인해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다시 읽으면 그만큼 자세히 읽게 되고 더 많은 걸 소화할 수 있습니다. 꾸준히 읽어나가면 독서력은 성장하게 되고, 우리에겐 독서를 즐길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4. 해외 고전의 경우, 번역본이기 때문에 이해도가 떨어져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서의 차이도 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고전을 읽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을까요?

-> 같은 이유에서 한국영화만 보는 분도 있고, 한국 가요만 듣는 분도 있지요. 혹 해외관광도 그런 이유에서 피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한 가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해외관광도 좋아하고 다른 나라 음식도 마다하지 않는다면, 해외 고전을 읽는 게 힘들기만 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와 다른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나라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왔을까 궁금하다면요. 번역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지만, 사실 우리 고전 역시 절대 다수가 번역본입니다. 한문 고전을 한글로 옮긴 것이니까요. 정서의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그 차이 못지않게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떤 보편성입니다. 차이 속에서도 동질성을 발견하게 된다고 할까요. 게다가 실제적인 필요성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세계는 평평하고 ‘우리는 하나’이며 지구촌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면 우리 것에만 관심을 한정하는 것은 한 가지 선택이더라도 어려운 선택입니다.   

 

5. <아주 사적인 독서>에 소개된 고전문학 중 원본으로 읽어볼만 한 책을 하나 골라주신다면 어떤 것이며 이유는 무엇인가요?

-> <마담 보바리>는 불어, <파우스트>는 독어, <돈키호테>는 스페인어, <석상손님>은 러시아어로 쓰인 작품이기에 원본으로 읽기에 좀 만만한(?) 작품은 영어로 쓰인 <햄릿>이나 <주홍글자>, <채털리부인의 연인> 등입니다. 분량을 고려하면 가장 얇은 <햄릿>을 권해드려야겠습니다. 다만 두어 종 이상의 번역본과 원문을 대조해가며 읽으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한 대목씩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는다면 고전의 맛과 힘을 경험할 수 있고, 어디 가서 자랑하기에도 좋습니다. “<햄릿>을 읽어보니까 말이야-”

 

6. <아주 사적인 독서>에 소개된 고전 문학 외에 추천해 주실만한 고전 문학을 꼽으신다면? 그리고 이유는 무엇인가요?

-> 책에서 다룬 고전은 극히 일부이고 사실 읽을 만한 고전은 차고 넘칩니다. 따라서 마음에 드는 작가나 작품에서 관심을 확장해나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가령 <햄릿>이 흥미롭다면 셰익스피어의 비극 가운데 나머지 작품들을 마저 읽어볼 수 있고, 괴테의 <파우스트>를 독파했다면 같은 독일 작가인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에도 도전해볼 수 있습니다. 푸슈킨의 <석상손님>이 인상적이었다면 대표작 <예브게니 오네긴>에도 손길이 갈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강의차 카프카의 작품을 읽고 있습니다. <변신> 같은 카프카의 단편들과 <소송> 같은 소설도 필독 고전에 속하는데, 직장생활과 창작을 병행했던 작가의 고뇌가 직장인들에게는 남의 일 같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고전과 나 사이의 사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7. 책을 읽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의 책만 읽어도 될까요? 기본 소양을 키울 수 있는 필독서는 반드시 읽고 난 후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요?

-> 각자가 좋아하는 책과 각자에게 좋은 책이 일치하다면 100%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게 일치하지 않는다면, 조정할 필요는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만 먹으면 대개 편식하게 되고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거꾸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어느 정도 읽어나가되 여러 분야의 책들로 관심과 독서 범위를 확장해나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세계는 넓고 읽을 책은 많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읽다 보면 취향도 변화하게 됩니다. 그런 것이 독서를 통한 자기발견이 아닐까요.   

 

13. 0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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