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강의 일정이 빼곡해서 평일에도 따로 고를 만한 여유가 없었다. 한여름 무더위에 함께 읽을 만한 책이 어떤 게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일단은 시작해보기로 한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김숨의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현대문학, 2013)이다. 지난 봄에 나온 소설인데(나는 미처 나온 줄도 몰랐다), "이윤과 효율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서 진화에 대한 맹목과 공생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처절하게 무너질 수 있는가에 대한 리얼하고도 불편한 보고서"라고 한다. 여름에 나온 소설도 고르자면 정이현의 장편 <안녕, 내 모든 것>(창비, 2013)도 눈에 띈다. "김일성이 죽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90년대 중반 강남 반포에서 함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세 친구들의 이야기". '내 모든 것'이라는 제목이 작각의 애착과 열정을 말해주는 듯하다. 거기에 본격 여름나기 소설을 더 얹자면 정유정의 <28>(은행나무, 2013). 나는 <7년의 밤>(은행나무, 2011)을 구입하고서도 (어디에 둔지 몰라) 못 읽어봤기 때문에 <28>은 내가 만나는 작가의 첫 소설이다.

 

 

 

아마도 많은 독자가 책장을 넘기고 있을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 2013)도 이 여름의 책이다(서평을 쓰기 위해 나도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아무려나 내일까지는 완독할 참이다). 세계문학전집 쪽으로는 최근에 나온 <미친 사랑>(시공사, 2013)에 이어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열쇠>(창비, 2013)가 출간됐다. 창비식 표기로는 '타니자끼 준이찌로오'가 "70세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56세의 남편과 45세의 아내 사이의 적나라한 섹스를 그려 당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작품". 이열치열의 독서가 될 듯하다. 러시아문학 작품으로는 불가코프(불가꼬프)의 <개의 심장>(열린책들, 2013)이 재출간됐다. '개인간'을 다룬 1925년작으로 러시아에서는 영화로도 유명한 대표적 풍자문학.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윤명철의 <고구려, 역사에서 미래로>(참글세상, 2013)다. 고구려사 가이드에 해당하는 책인데, "‘현장답사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저자가 고구려의 주몽에서 광개토대왕, 장수왕, 그리고 멸망에 이르기까지 번성하고 화려했던 고구려를 재조명하고 한민족의 뿌리를 찾아보고자 했다." 찾아보니, 어린이용과 소설로는 책이 좀 나와 있지만 성인을 위한 교양서는 드문 듯싶다.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고구려왕조실록>(웅진지식하우스, 2004)이 기본서일까. 고구려 고분벽화에 관한 책으로는 전호태의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 여행>(푸른역사, 2012)를 길잡이 삼아볼 수 있다.

 

 

눈길을 밖으로 돌려보면, 굳이 여름에 읽으란 법은 없지만 프랑스혁명사를 여름에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마침 책들이 나와서 든 생각이긴 하지만. 주명철 교수의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소나무, 2013) 외에도 막스 갈로의 <프랑스 대혁명 1,2>(민음사, 2013)가 최근에 나왔다. 견물생심이라고 나오면 또 읽고 싶어지는 게 독자의 심리다. 아니, 생리?

 

 

 

3. 철학

 

박인철 교수가 추천한 책은 최진석의 <인간이 그리는 무늬>(소나무, 2013). "본래 인문학이라는 개념은 서구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저자는 서구적인 시각에서가 아니라 주로 노장사상과 같은 동양사상의 관점에서 인문학에 접근한다." 기억에 저자의 전공이 장자였다. 이와 유사한 인문적 성찰을 제시하고 있는 책으론 이번주 나온 두 미국철학 교수의 <모든 것이 빛난다>(사월의책, 2013)도 눈여겨볼 만하다. 스피노자 가이드북으로 나온 이수영의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오월의봄, 2013)도 더 얹는다.

 

 

시리즈북도 고르자면 자음과모음에서 나온 <우울할 땐 니체><무력할 땐 아리스토텔레스><비참할 땐 스피노자>도 손에 들 만하다. 세 권 다 손에 들어야 한다면 정말로 비참할 듯싶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고른 책은 크리스티앙 들라캉파뉴의 <인종차별의 역사>(예지, 2013)다. "들라캉파뉴는 인종차별은 항상 존재해왔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인종차별의 담론과 행동의 기원은 고대그리스이며, 그 이후 사이비 과학 등에 의해 정당화된 정신착란으로 진화하였고, ‘우월적 인종’을 믿는 조악한 인종 우생학의 선구자들에 의해 깊어졌다는 것이다." 한국판으로 하면 '지역차별의 역사'가 될까? 책이 나왔을 때 토머스 고셋의 <미국 인종차별사>(나남, 2010)와 장 메이메의 <흑인노예와 노예상인>(시공사, 1998)도 찾아보고 후자는 구입해두었다. 여유가 생기면 <미국 인종차별사>도 챙겨놓아야겠다.

 

 

학술서 쪽으로는 안재흥의 <복지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형성과 재편>(후마니타스, 2013), 조돈문의 <베네수엘라의 실험>(후마니타스, 2013), 그리고 신광영의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후마니타스, 2013) 등이 근간에 나온 책들이다.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해선 참고해봐도 좋겠다.

 

 

 

5. 경제/경영

 

김은섭 위원이 추천한 책은 다니엘 샤피로와 로저 피셔의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감정을 흔들어라>(한국경제신문, 2013)다. "이 책은 우리가 감정의 동물임을 주지시킨다. 그래서 현명한 협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활용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대가 나와 의견이 다르다면 ‘인정, 친밀감, 자율성, 지위, 역할’의 다섯 가지 핵심관심을 제대로 파악해서 상대방에게 어떤 감정이 생기기 전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협상을 주제로 한 책은 생소한데, 찾아보니 최철규, 김한솔의 <협상은 감정이다>(쌤앤파커스, 2013)와 게리 네스너의 <이기는 사람은 악마도 설득한다>(라이프맵, 2012) 등이 같은 분야의 책이다. 감정을 활용해야 한다는 충고가 눈길을 끈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고른 책은 우용태의 <물총새는 왜 모래밭에 그림을 그릴까>(추수밭, 2013)다. 일종의 조류도감. 하지만 "단순히 새에 대한 생물학적, 생태학적 정보만을 담은 조류도감이 아니다. 새에 관한 속담, 전설, 시조, 노래가사 등 새와 관계가 있는 많은 인문학적 자료가 녹아있는 책이다." '처음으로 읽는 우리 새 이야기'가 부제. 새 관련서는 어떤 게 더 있는지 찾아보니 <한국의 도요물떼새>(자연과생태, 2013), <멸종위기의 새>(자연과생태, 2012) 등이 눈에 띈다. 나도 책을 두어 권 갖고 있는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책은 김진희의 <결혼한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이봄, 2013)이다. "이 책은 놀랍게도 결혼한 여자들이라면, 아니 어쩔 수 없이 외부 경쟁사회의 섭리와는 다르게 삶을 꾸리고 있는 자라면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할 그림과 글로 채워져 있다"는 게 추천의 이유다. 최상운의 <인상파 그림여행>(소울메이트, 2013), 사토 고조의 <모나리자는 왜 루브르에 있는가>(미래의창, 2013) 등도 최근에 나온 그림 책이기에 모아놓는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윤태옥의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미디어윌, 2013)다. '속옷'이 아니라 '집'에 대한 책. "이 책은 ‘왕초’란 별명을 갖고 있는 다큐멘터리 제작자 윤태옥의 ‘중국 민가기행’이다. 제목은 중국 죽림칠현(竹林七賢)의 고사에서 가져왔는데, 그에 따르면 천지가 ‘옷’이고 집은 ‘속옷’이다. 주거 공간을 통칭하여 집이라고 부르지만 그 모양새는 각양각색이다. 드넓은 대륙, 중국의 집이라고 하면 더 말해 무엇하랴. 저자는 중국 전역 22,000km를 종횡하며 중국인들이 살아온 집을 훑어보았다." 중국 여행길에 나서는 독자라면 저자의 <중국 식객>(매일경제신문사, 2012), 홍은택의 <중국 만리장정>(문학동네, 2013)을 나란히 챙길 만하다.

 

 

 

9. 실용

 

이계성 위원이 고른 책은 김양중의 <하루가 건강하면 평생이 건강하다>(책읽는수요일, 2013)다. "직장인들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과 기초적인 건강지식 및 정보를 소개한다. 핵심은 일상생활 속의 건강 습관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체계적인 건강관리를 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건강습관만으로 30~40대 직장인들이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의료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건강 관련 번역들과 함께 <건강기사 제대로 읽는 법>(한겨레출판, 2009)도 펴낸 바 있다. 건강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는 나이인지라 좀 솔깃하게 들리는 책이다.

 

 

10. 아키라

 

나대로 고른 이달의 주제는 '아키라'다.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세미콜론, 2013)가 통째로 나왔다. '전설적인 만화'라는 얘기는 만화를 즐겨보지 않는 나도 심심찮게 전해들었는데, 번듯하게 출간되니 읽어볼 욕심이 난다. 하물며 열혈 독자들의 소감은 오죽하랴. "스무 살 때 받은 충격의 여진이 아직 고스란히 살아 있는 만화."(윤태호) "페이지마다 칸마다 투여된 작가의 엄청난 노동량이 보는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박찬욱) "AKIRA는 최고의 교과서이면서도 절대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산같은 만화다."(최규석)

 

 

미야자키 하야오나 데즈카 오사무만큼 입에 익지는 않지만 오토모 가츠히로와 함께 일본 만화의 높이가 어떤 것인지 경험해봐도 좋겠다...

 

13. 07. 06.

 

 

P.S. 7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나남, 2003)로 골랐다. 푸코의 책 가운데서는 가장 평이하다고 알려져 입문서로 많이 추천되는 책이다. 최근에 나온 오생근 교수의 <미셸 푸코와 현대성>(나남, 2013)을 손에 들다 보니 저자가 옮긴 <감시와 처벌>이 떠올랐고, 얼마전 영미 정보기관(국가안보국)의 전방위 도감청과 불법 정보수집이 폭로된 일도 '감시'란 키워드가 여전히 현재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감시와 처벌>은 물론 철학적, 역사적 성찰을 담은 책이고, 감시사회란 주제와 관련해서는 좀더 현실에 밀착된 책들까지 참고해볼 수 있겠다. 로빈 터지의 <감시사회, 안전장치인가, 통제도구인가?>(이후, 2013), 한홍구 등의 <감시사회>(철수와영희, 2012), 아르망 마들라르의 <감시의 시대>(알마, 2012) 등이 같이 읽어볼 만한 관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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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은 원고를 쓰느라 보내고, 점심을 먹고 와서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북은 푸른역사 아카데미의 강좌를 묶은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푸른역사, 2013).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여기서 '문학'이라는 것은 한국 현대문학이며, '문학사 이후'는 이른바 '근대문학의 종언'이 선언되고 운위되고 또 더 이상 한국 현대문학 통사가 써지지 않는 시대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는 어떤 모습일까? 구체적으로는, 초국가적 근대문학의 유통 체계와 현대적 대중 예술, 그리고 그보다 더 거대한 문화사의 흐름 속에서 생장해온 '네트워크로서의 한국문학사'를 생각해보고자 했다."

 

 

젊은 세대 연구자들의 새로운 시각과 의욕을 담은 책. 개인적으로는 강의에 참여하긴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단행본 글로 다듬지는 못했다. 저자의 권리를 포기한 대신에 독자의 권리를 더 충실히 누려보고 싶다. 두번째 책은 한겨레 최재봉 기자의 <그 작가, 그 공간>(한겨레출판, 2013). "시인, 소설가, 번역가, PD 등 자신의 글을 쓰는 작가들의 은밀한 공간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공간들과 작가들의 관계, 어떤 공간 속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 등등을 속속들이 그려내는 책"이다. 작가와 저자를 더 가까운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세번째 책은 휴버트(허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도런스 켈리의 <모든 것은 빛난다>(사월의책, 2013). 드레이퍼스는 하이데거 연구로 유명한 철학 교수로 국내엔 폴 라비노우와의 공저인 <미셸 푸코: 구조주의와 해석학을 넘어서>(나남출판, 1989)로 처음 소개됐었다. 이후엔 <인터넷상에서>(동문선, 2003) 하나만 더 소개된 듯한데,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인터넷에 대하여>라고 번역됐어야 하는 책이다. 이번에 나온 건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가 부제다. 뭔가 기대감을 갖게 하는 책이어서 오전엔 원서도 바로 주문했다.

 

 

네번째 책은 샘 피지개티의 <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알키, 2013). '슈퍼 리치의 종말과 중산층 부활을 위한 역사의 제언'이 부제다. 유사한 책들이 없진 않기에 제목에 마음이 움직인 건 아니지만, 하워듸 진의 <미국민중사>와 나란히 꽂아두어야 할 책이라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추천사에 끌렸다. 그 정도라면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김용규의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휴머니스트, 2013). 제목의 '백만장자'는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하기 직전 24가지 질문을 남겼다.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에서 시작하여 ‘종말은 언제 오나’에 이르는 이 질문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 누구나 품을 수밖에 없는 신과 인간에 관한 절박한 물음이다. 고(故) 이병철 회장의 질문인 동시에 우리 모두의 질문이기도 한 이 숙명적인 문제들을 철학자 김용규가 진지하게 성찰한다." 질문에 얽힌 사연은 재작년 말에 차동엽 신부의 <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명진출판, 2011)을 통해 알게 됐는데, 이번에 '철학자 김용규'가 내놓은 답이 궁금해서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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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한국 현대문학사의 해체와 재구성
천정환.소영현.임태훈 외 엮음 / 푸른역사 / 2013년 7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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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가, 그 공간- 창작의 비밀을 간직한 장소 28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6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6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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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빛난다-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지음, 김동규 옮김 / 사월의책 / 2013년 6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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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독점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슈퍼 리치의 종말과 중산층 부활을 위한 역사의 제언
샘 피지개티 지음, 이경남 옮김 / 알키 / 2013년 7월
24,000원 → 21,6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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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프레시안 books'에서 '3인 1책 수다'를 옮겨놓는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0705133336&section=01). 이달의 커리로 다룬 건 김욱의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개마고원, 2012)다. 기대했던 것보다 흥미롭게 읽어서 저자의 <영남민국 잔혹사>(개마고원, 2007)도 주문해놓은 상태다. <법은 보는 법>(개마고원, 2009)는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야 한다...

 

 

 

프레시안(13. 07. 05) 전두환은 못 했지만, 박근혜는 할 수 있다!

 

이권우 :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의 부제는 '박근혜·문재인의 사과가 말해주는 것들'입니다. 정치가들이 역사적 과오에 대해 사과하는 문제, 그리고 그 과오를 용서하는 문제를 다룬 책이지요.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이지만 사실 대중적으로 깊이 있게 논의되지 않은 주제를 저자 김욱 교수가 한 번에 써내려갔습니다.

저널리즘과 단행본의 차이가 여기 있습니다. 시사적인 주제를 단기간에 보도하는 저널리즘과 달리, 단행본은 그 주제를 보다 깊이 있게 파고들지요. 일본에서는 이렇게 능동적이고 빠르게 단행본을 펴내는 게 일반적인데, 우리에겐 아직 좀 덜 익숙한 경향입니다.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는 그런 의미에서 반가운 책이었습니다. 두 분은 어떻게 보셨는지요.

이현우 : 제목에서 받은 인상보단 책이 훨씬 재밌었고요. 정치적 사과라는 단일한 주제로 한 권 분량을 죽 밀고 가는 힘이 느껴져서 개인적으로 좋았는데, 생각만큼 책이 주목받진 못했다고 하니 아쉽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작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각각 사과했던 내용에서 촉발되어 책을 기획했다고 밝힙니다. 대선 전에 집필을 시작하여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쓴 책이고요. 한때 대선 이후 영화 <레 미제라블>이 '멘붕(멘탈 붕괴) 치유'라는 명목으로 흥행했었는데, 이 책 역시 결코 비관적이지 않은 결론으로 마무리하고 있어서 그런 치유 성격에 좀 부합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김용언 : 저도 2012년 대선에 대한 다른 각도의 결산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당시 5.16쿠데타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사과는 크게 보도가 되었는데, 민주당 분당에 관한 문재인 후보의 사과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것 같아요. 저 역시 문재인 후보의 사과가 어떤 면에서 의미 있는지 잘 이해 못한 상황에서 이 책을 읽었고, 민주당 분당이 영호남 갈등의 중요한 열쇳말이었음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적 사과의 시작을 일제 강점기 청산, 즉 이광수와 최남선 등의 친일 작가로부터 시작하며 방점을 찍었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책 자체가 한국사회가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박하게 한국전쟁을 겪었고 그 이후 이데올로기 대립의 장으로 존속되어왔음을 일별할 수 있는 좋은 자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근혜가 사과했다

이권우 :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사과부터 먼저 얘기해볼까요.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한 사과를 지속적으로 요구받았는데요. 연좌제로 옭아매는 시대도 아닌데 딸이 아버지를 대신해 사과해야 하냐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죠. 어쨌든 박근혜 후보는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 과거사에 대해 공식 사과했는데요.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이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본 분들과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그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 94쪽)

여기 대해 저자는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일단 '5.16은 정통성이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사실에 대해 놀랐다며 그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요. 저자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현우 : 2012년 9월 24일이었죠. 박근혜 후보의 사과가 대대적으로 보도됐을 때 분통을 터뜨린 극우주의자 조갑제의 반응도 인용됐는데요.

"박정희가 만든 역사는 박정희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함께 만든 역사인데, 총체적으로 5.16과 10월 유신을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박근혜 씨가 중대한 위기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의 위기다."(168쪽)

조갑제조차 "박근혜 씨의 사과에는 진정성이 없다. 표를 얻기 위한 정치쇼이다"(169쪽)라고 폄훼할 만큼, 상당히 파괴력이 컸던 정치적 사과였다는 거죠. 아무리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린 정략적인 사과라 하더라도 모든 정치적 사과는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속내와 무관하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정치적 전리품이다, 그 의미를 계속 지켜가는 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저는 이런 정치적 사과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더 잘 기억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빚을 받으려면 빚을 줬다는 걸 기억해야 하잖아요? 저자의 결론처럼 궁극적으로 정치가 역사를 이길 수 없다고 할 때 그 역사의 승리를 보존하기 위한 중요한 방책이 기억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용언 : 저자의 실리적인 현실 분석과 평가 자체에 대해서는 매우 흥미롭게, 배우는 심정으로 동감하며 읽었습니다. 하지만 역사가 정치를 이기고야 말 것이라는, 지치지 않는 민중에 대한 낙관적인 결론은 아직까지 확신이 가질 않습니다. 결코 아무런 반성을 하지 않았던, 정치적 변화가 아무런 현실적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현재까지도 '살아있는 자'로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전두환 같은 사람이 있잖아요.

이현우 :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심신장애적 사과를 한 적은 있지요.(웃음)

김용언 : 네. 30년이 넘도록 그렇게 어떤 반성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누릴 바만 즐기며 살고 있지요. 과연 역사가 정치를 이기는 것일까, 이 좁은 나라에서 지금껏 정치적·경제적 인맥이 촘촘하게 얽힌 채 서로의 이익 때문에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끈질긴 '노력'이 지속 중인데, 정말 거시적인 관점으로 조금씩 진보가 이뤄지고 있다며 확신할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이현우 : 2007년 당시 박근혜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검증청문회에서 "5.16은 구국의 혁명이고, 유신은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완강한 태도가 2012년 바뀌었다는 거죠. 그게 저자 보기에는 나름대로 역사의 진보이자 역사의 힘을 보여준 계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역사가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 있지요. 역사가 지그재그로 좌충우돌할 순 있지만 궁극적으로 진보할 거라는 신뢰, 저자인 김욱 교수 역시 그 같은 신뢰를 이야기합니다. 제 의견으로는, 100퍼센트 객관적인 신뢰라기보다는 주관적인 결단도 포함되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즉 역사가 승리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적 의미 역시 포함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권우 : 박근혜가 박정희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거라고 다수가 생각했었고, 설령 사과한다 하더라도 진정성이 있겠냐 하는 반응이 많았는데 그런 예상이 틀렸던 겁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사과입니다. 102쪽에 보면 "민주주의 제도는 '모든' 정치인에게 진정성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그런 마음이 없더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제도로 강제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정치인의 사과도 "'진성성 있는 마음과 말'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마음이 없더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말과 행동'"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거죠.

당시 박근혜 후보가 사과 발언을 한 직후 부산시당에서 열린 대통령선거대책위 출범식에 참석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춤으로써 진정성에 대한 공격을 받았지요. 하지만 저자는 그에 대해 "그녀의 진정성이 아니라 그녀의 사과 언설이 그 자체로 역사의 전리품"이라고 못 박습니다. 일반적 관점과는 다르죠.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 같은 예도 있습니다. 2008년 쇠고기 협상에 반발하여 대대적인 촛불시위가 일어났을 때 "아무리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현안이라 하더라도, 국민들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또 국민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챙겨봤어야 했습니다. 저와 정부는 이 점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21쪽)라고 사과했지만, 2010년 5월에 이르면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30쪽)면서 적반하장의 무책임한 발언을 했죠. 이런 예들 때문에 정치적 사과에 대한 진정성이 늘 의심받으며 평가절하되긴 했습니다만.

이현우 : 보통 냉소적인 지식인이나 대중들은 정략적인 사과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다면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받아들였죠. 하지만 저자는 그런 정치적 사과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걸로 우리가 계속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말대로, 정치인들이 자신의 사과를 번복하려 할 때 우리가 계속 상기시켜야 합니다. 정치적 사과를 둘러싼 정치적 투쟁이 필요한 거지요.

식민 통치에 대한 일본의 사과에 관련하여, 지금 자민당 정권에서는 과거의 공식적 사과 발언을 부정하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사과의 의미를 다시 상기시키고 그 무게를 느끼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적 사과는 역사적 기억 투쟁의 대상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5.16쿠데타가 명백히 불법적이었으며 정통성이 없다'고 인정한 사과의 내용을, 그 사과 발언을 한 당사자의 진위와 무관하게 우리가 끝까지 충실하게 기억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권우 : 45쪽 마지막 단락을 함께 볼까요.

"정치적 사과는 결코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언제라도 철회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역류할 수도 있다. 양심의 후퇴가 아니라 정치적 힘 관계와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과를 받는 것보다 사과를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집단이 정치적으로 압박을 가해서, 정치적 사과를 유효하게 하는 정치적 힘을 발휘해야 하는 거죠. 박근혜가 아버지의 정치적 업적이나 과오에 대해 노코멘트로 일관했다면 정치적 힘겨루기에서 사과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아버지 세대에 이뤄진 결과를 업적으로 칭송했고, 역사적 판단이나 사법적 판단에 대해서도 일반적 상식과 어긋나는 발언을 계속 해왔지 않습니까. 결국 정치적 힘의 균형 관계 속에서, 또 대통령이 되기 위한 지지율 상승을 위해서 진정성과 관계없이 아버지에 대한 정치적 사과를 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현우 :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던 48.4퍼센트의 사람들에게 그나마 전리품이라고 할 만한 게 박근혜의 사과라는 겁니다.

이권우 : 만일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이 40퍼센트 이하였다면 사과를 안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력균형이 상당히 팽팽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그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정치적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던 듯합니다.

 



문재인도 사과했다

이권우 : 저자는 박근혜 후보의 사과를 두고 '뜻밖의 사과'라 불렀고, 문재인 후보의 경우엔 '은밀한 사과'라고 칭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사과가 그리 널리 알려지진 않았던 모양이지요?

이현우 : 2012년 9월 27일 일이었는데, 크게 보도되진 않았어요. 당시 문재인 후보가 광주에 내려가 노무현정부 시절의 분당사태에 대해 사과한 부분을 책에서 잠깐 인용하겠습니다.

"제가 관여한 일은 아니지만 그 일(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이 참여정부의 큰 과오였다고 생각합니다. 호남에 상처를 안겨주고 참여정부의 개혁역량을 크게 떨어뜨렸습니다. 지금도 그 상처가 우리 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113~114쪽)

이 사과를 보도한 <한겨레> 신문 기사를 보더라도 "문재인, 호남 찾아 '힐링 행보'"라고 제목을 붙인 걸 보니, 사과의 정치적 의미가 당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치는 역사를 이길 수 없다>에선 박근혜의 사과와 문재인의 사과를 거의 대등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어요.

이권우 : 김욱 교수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은 "반(反) 민주당(분당)사태"라고 설명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문제 해결"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호남과 영남을 각각 지배하고 있는 상태"로서는 지역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새 출발한 당에 영남인들이 표를 찍어줘야" 했기 때문에 민주당의 "법통"을 끊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민주당을 부정했다고 정리하지요. 동시에 대북송금특검을 수용함으로써 김대중 정권을 청산하는 듯한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호남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점도 있었고요.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통해 탄생한 참여정부가 호남의 민심을 배반했던 과거에 대해 문재인 후보가 뒤늦게 사과한 것입니다.

이현우 : 대통령이 자신이 대선 후보로 나섰던, 자신을 당선시켜준 정당과 과격하게 단절하고자 했던 시도는 굉장히 이례적이지요. 세계정치사에서도 유례가 드물법한 사건이었는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 문재인 후보였습니다. 분명 그 분당사태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을 텐데, 바로 그 사람이 광주에 와서 그 사건에 대해 사과를 한 겁니다. 지금 민주당 쪽에선 친노 세력과의 갈등 관계가 계속 제기되고 있는데요. 박근혜의 사과에 대한 조갑제의 반응과 달리, 문재인의 사과에 대해 친노 세력이 발끈하거나 흥분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특이합니다.

실제로 친노들은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들은 문재인의 사과를 수없이 호남에 써오던 선거전략 정도로 생각했던 듯하다. 그래서 그 사과는 마치 호남인들 귀에만 대고 속삭인 은밀한 귓속말처럼 들렸을 것이다.(200쪽)

 

이권우 : 친노 세력도 호남의 몰표 없이는 정권을 차지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했기 때문에, 노무현의 호남 홀대에 대한 문재인 후보의 사과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저자는 전반적으로 참여정부 친노 세력들에 상당히 비판적인 날을 세웠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용언 : 아마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범위 바깥이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합니다만, 그래도 지역감정을 다루는 이 부분이 다소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노무현의 지역감정 타파 노력이 "아마추어 정치"로 비춰질 수밖에 없던 거친 방식을 비판하고, 이런 식으로 호남으로부터 당연히 민주당지지 몰표가 나올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호남은 스스로를 지켜나가야 한다"(126쪽)고 주장하지요.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영남패권주의처럼, 한국에서 몇 십 년 동안 상처를 덧내왔던 호남 쪽 지역감정을 아예 인정하고 정치세력화하자는 주장일 텐데요. 박정희 정권 이후 차별을 수 십 년 동안 감내했던 호남 입장에선 당연한 주장일 수 있겠으나, 그 반대편인 영남의 기득권 제패에 대한 정밀한 분석 없이 호남의 정치세력화 얘기를 하는 건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현우 : 음, 저는 저자의 결론을 그렇게 보진 않았습니다만. 애초의 문제의식은 공감할 수 있었어요. 지역패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말입니다. 참여정부 당시의 해법이라는 게, 민주당을 지역정당으로 규정하고 소위 발전적으로 해체하려는 노력이었죠. 열린우리당이 민주당으로부터 빠져나오면 민주당이 군소정당으로 전락하고 정치적 힘을 잃을 거라는 계산이었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했을 때 성공하기 힘든 시도였습니다. 그 패착이 참여정부 내내 정치적 행보의 발목을 잡게 됐죠. 마지막으로 한나라당에 연정 제안까지 하게 되는데….

모르겠어요. 그게 노무현식 정치의 특징이었을 수 있겠지요. 진정성은 갖고 있지만, 현실성은 없었습니다. 어떤 정치학자가 노무현을 마키아벨리스트라고 불렀는데, 실상 마키아벨리스트와는 거리가 멀었지요. 마키아벨리스트의 전형이라면 올 초 개봉했던 영화 <링컨>에서 묘사되는 링컨 대통령 같은 사람이겠죠. 비록 링컨을 롤 모델로 삼기도 했지만 노무현의 리더십은 서툴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과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공식적으로 사과했다는 걸 저자는 높이 평가하지요. 거기 대해 제대로 음미해야만 현재의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의 정치가 좀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갖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13. 07.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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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347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신숙옥의 <남편의 서가>(북바이북, 2013)에 대한 서평을 제안받고 쓴 것이다. 며칠 전이 저자의 '남편'이었던 출판평론가 고(故) 최성일의 2주기였다. 남편과 아내의 책에 대해 차례로 서평을 쓴 건 나로선 처음 있는 일인데, 앞으로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기획회의(13. 07. 05) 독서일기를 가장한 곡진한 사부곡

 

‘출판평론가의 아내’ 신순옥이 쓴 『남편의 서가』에 관한 서평을 제안받고 놀라진 않았다. 일종의 서평집이라고 여겨서이고(저자는 ‘가족의 생활기이자 가벼운 독서에세이’로 분류한다), 또 나름대로 최성일과 인연이 없진 않다고 생각해서다. 특별할 건 없지만 최성일의 유고집 『한 권의 책』에 대한 서평을 작년 여름에 쓴 게 그 인연의 정체다. 남편과 아내의 책에 나란히 서평을 쓰는 모양새가 나름 공정하겠다는 판단을 앞질러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책을 읽으면서 놀랐다. 이미 『한 권의 책』에 남편 대신 쓴 저자의 서문을 읽고 감동한 기억이 있지만, 글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게 그 첫 번째 이유이고(저자가 흉내 낸 남편의 육성, “옥아, 너 드디어 해냈구나! 봐라, 너도 되지 않느냐.”가 자화자찬이 아니다), 내가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어린이책에 관한 서평이 대다수라는 게 두 번째 이유다.

 

이 두 가지 이유는 상충한다. 그래도 당혹스러움을 지우고 이렇게 쓸 수 있게 된 것은 후반부에 실린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다.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은 최성일의 대표작이라고 할 책이다. 남편을 보내고 ‘애도하는 여인’의 시점에서 써나간 글이 궁극에 도달해야 할 지점이자 넘어가야 할 지점이라고나 할까. 서평집에도 클라이맥스가 있다면 『남편의 서가』에서는 바로 이 대목일 것이다. 두 사람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넘어서 저자와 독자의 관계로 만나는 장면이다.

 

이 주목할만한 장면을 아내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오래 망설이다가 드디어 남편의 묵직한 책을 손에 들었다’는 식으로 쓰지 않고 “살다 보니 별일이다. 신문기자로부터 인터뷰 요청 전화를 다 받았다”라며 적당히 눙치면서 시작하는 게 ‘신순옥 스타일’이다. 자신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지라 인터뷰를 완곡하게 거절하려고 했지만, 그런 평범한 사람을 인터뷰하려고 한다는 기자의 말에 결국 두 손 들고 “졸지에 면접시험을 앞둔 수험생 신세”가 돼 옆구리에 낀 책이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이었다. 무지를 좀 덜어보려는 심사였다나.

 

처음에 다섯 권으로 나왔다가 저자가 병석에 있을 때 합본돼 나온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은 주간으로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이다. 처음 52회분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주 한 명의 사상가를 다룬다는 게 얼마나 힘든 작업이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내도 그런 의문을 품는다. “1주일 단위로 원고 쓸 대상을 정하고 그 사상가 관련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게 가능은 한 일일까.” 물론 각 사상가의 책을 짧은 시간에 다 읽고 쓰는 건 불가능하다. 자신의 역할을 도서관 사서에 빗댄 최성일은 “사서가 작성된 목록의 책을 읽거나 완벽하게 소화할 의무는 없다는 점에서 자신 역시 그렇다”고 했다. 출판평론가에겐 개별 저작의 세부보다는 전체의 윤곽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쩜 읽지도 않고 다 읽은 것처럼 이렇게 글을 잘 쓸 수가 있어요!”라고 경탄했던 기억으로 남편의 글재주를 칭송한 후에 저자는 본격적으로 남편의 작업을 재평가한다. 그것은 ‘사상가=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이란 남편의 정의에서 출발해 아내가 보기에 남편은 남이 뭐라 하든 제 갈 길을 간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 곧 사상가이기도 했다는 결론에 이르는 여정이다.

 

남편의 모든 원고의 첫 독자였을 테지만 “책에 등장하는 사상가의 이름들이 참으로 생소하다”는 게 아내의 소감이다. 남편에게는 친숙했을 이름들인 걸 고려하면 부부 사이란 가깝고도 멀다. 하지만 그 거리는 공감과 비판을 위한 거리이기도 하다. 아내는 제임스 러브록, 팀 플래너리 등 남편이 부정적으로 평가한 인물들을 책에 포함시킨 것은 ‘사상가 등용’에 실패한 게 아닌가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사상가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인물이라는 것에 암묵적인 동의가 있는 법”이라는 생각에서다. 게다가 연재 초기에는 정통 사상가를 우대하다가 뒤로 갈수록 그는 사상가의 범주를 널리 확장했다. 사실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사상가’ 목록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나로선 즐거운 일이지만, 분명 통상적인 건 아니다(러시아에서는 철학사 책에도 들어가 있지만). 그런 덕분에 『책으로 읽는 사상가들』은 저자 고유한 안목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책이 됐다.

 

남편에게 책은 어떤 존재였을까. 『한 권의 책』에서 최성일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닉 혼비처럼 책이 재미있어서 읽는다. 그러나 책이 야구보다 재미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책은 고작해야 야구만큼 재미있다.” 『책으로 읽는 사상가들』에서도 비슷한 고백을 한다. 아내의 인용을 옮기자면 “내게 책은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또 책은 아주 귀중하지도 매우 하찮지도 않다. 책을 향한 애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책이 정말 좋다고 드러내놓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게 남편의 생각이었다. 열렬한 독서가였지만 책에 대한 그의 애정은 뜨뜻미지근하다. 그런 태도는 독서운동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도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꼭 그렇게 해서까지 책을 읽힐 필요가 있겠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보다는 사회 전반적인 인식과 분위기가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쪽으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책에 대한 뜨뜻미지근한 태도와 다르게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그의 평가는 호오가 분명했다. 그는 직구형 스타일이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강연을 두고 “이 정도의 내용을 꼭 외국인 연사를 초청해 들어야 하는가”라고 비판하고, 거꾸로 눈물샘을 자극한 책의 한 장면을 들이대면서 “콧등이 시큰해지지 않은 자와 상종하지 않기로 다짐”하기도 한다. 아내는 그것을 남편의 ‘순진성’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덧붙이길 자신은 ‘눈시울이 차가운 자’ 여서 남편이 언급한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런 무감동을 차마 발설하지는 못했다는 게 아내의 뒤늦은 고백이다. 차분하고 담담한 애도의 정서가 지배적인 책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한 대목이다.

 

남편에게는 출판사에서 보낸 책들이 주기적으로 배달됐는데 그 책들을 정리하면서 저자의 입에서는 울먹임이 새어나왔다고 한다. “이 책을 다 어쩌라고, 나에게 어쩌라고…” 『남편의 서가』가 그런 울먹임을 진정하는 모양새로 마무리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결국 남편이 남긴 장서는 나의 밥벌이가 돼주고, 아빠를 잃은 아이들의 상실감을 덜어주고 있다. 가족들에게 살 길을 책에서 찾으란 의미로, 그는 이 많은 장서를 남기고 갔는지도 모르겠다.” 독서일기를 가장한 아내의 곡진한 사부곡이 주인이 없는 ‘남편의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다.

 

13.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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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연극인(27호)의 '色다른시선' 코너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http://webzine.e-stc.or.kr/03_story/plan_view.asp?Idx=294&CurPage=1&KeyWord=&SearchName=).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연극 <더 게임 - 죄와 벌>의 비교를 청탁받고 쓴 것이다. 몇군데 오탈자는 수정해놓는다...

 

 

 

연극인(13. 07. 04) 원작과 각색 사이의 게임

 

명품극단의 <더 게임 – 죄와 벌>은 <죄와 벌>, <푸르가토리움>과 함께 ‘<죄와 벌> 3부작’을 구성한다. 연출자 김원석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친숙한 걸작을 통째로 다루기보다는 한 국면씩에 집중한다. 그러한 분할은 물론 원작의 무게감을 덜어주고 상대적으로 열린 연극공간을 창출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원작에서 배역과 모티브를 따오긴 하지만 자유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번역극’이라기보다는 ‘번안극’에 가깝다고 할까.

 

일종의 모티브 연극으로 소냐와 라스콜리니코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던 <죄와 벌>과 달리 <더 게임>의 초점은 라스콜리니코프(‘라스꼴리니꼬프’)와 예심판사 포르피리(‘뽀르피리’)의 관계다. 원작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와 포르피리의 관계는 라스콜리니코프와 소냐, 라스콜리니코프와 스비드리가일로프의 관계와 함께 세 가지 핵심적인 관계적 국면이다.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라스콜리니코프의 자백을 유도하려는 포르피리와 그게 맞서는 라스콜리니코프의 신경전은 이 작품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한다. <더 게임>은 그 긴장감을 극적 긴장감으로 탈바꿈시킨다. 이 둘의 대립을 극의 핵심 모티브로 삼으면서 연출자는 인물의 대비 관계를 더 강화시켰다. 원작에서 포르피리는 30대 중반으로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보다는 열 살 가량 나이가 많고, 아버지가 없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겐 유사 아버지와 같은 기능도 갖는 인물이지만 <더 게임>의 뽀르피리는 철저하게 라스콜리니코프와는 적대적인 인물로 설정됐다. 각본에 따르면 그는 ‘종잡을 수 없는 냉혈한으로 냉소적인 뽀르피리’라고 소개된다. 반면에 라스콜리니코프는 ‘병든 청춘의 치기어린 열정이 내비치는’ 인물이다.

 

원작 <죄와 벌>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처지에 놓인 가난한 법대 휴학생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할 궁리를 하고 범행 리허설까지 하지만 막상 자신의 저지를 행위에 혐오감을 느끼며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으로 시작한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고 믿었던 범행을 결국 포기하고 하숙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전당포 노파와 같이 지내는 이복동생 리자베타가 이튿날 저녁 전당포에 없다는 사실을 우연히 엿듣고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 하지만 정작 전당포 노파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도끼로 살해한 상황에서 예기치 않게 리자베타가 나타나고 라스콜리니코프는 예정에 없는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이바노브나 자매 살해사건’의 전말이다. 살인 사건 이후에 라스콜리니코프의 신경쇠약에 빠지며 자신의 범행에 대한 자책감과 혐오감에 시달리면서 포르피리와 대결한다. 적어도 논리적인 추궁(심문)에는 밀리지 않겠다는 게 그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다.

 

 

라스꼴리니꼬프와 뽀르피리의 대결에 초점을 맞춘 <더 게임>은 이 대결의 구도를 좀더 일방적인 것으로 설정했다. 뽀르피리는 거미줄을 쳐놓고 먹잇감을 기다리는 포식자이고 ‘병든 청춘’ 라스꼴리니꼬프는 그 피식자처럼 등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형을 위해서 뽀르피리의 성격화도 달라졌다. <더 게임>의 기본적인 상황은 뽀르피리의 첫 자기소개에서 이미 예고된다.

더 게임_텍스트1

하지만 가끔은 ‘소화하기 힘들 놈들’도 등장한다. 팽팽한 신경을 벌이게 되는 라스꼴리니꼬프 같은 경우다. 자수를 권고하는 정도의 역할에 머무는 <죄와 벌>의 포르피리와는 달리 <더 게임>의 뽀르피리는 라스꼴리니꼬프의 완벽한 자백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자책감과 죄의식에까지 시달리는 라스꼴리니꼬프는 피의자를 궁지에 몰아놓고 노련하게 압박해 들어가는 검사 뽀르피리의 상대가 될 수 없다. 뽀르피리는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라스꼴리니꼬프의 논문 ‘범죄에 관하여’란 논문에서 범행의 동기를 읽어낸다.“이 사건은 금전만이 사건의 전부가 아냐.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라고 판단하는 뽀르피리는 인간을 평범한 인간과 비범한 인간으로 구분하는 라스꼴리니꼬프의 범죄이론을 범행의 ‘예고장’으로 간주한다.

<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의 범죄이론, 혹은 초인사상은 인간이 범인(凡人)과 비범인(非凡人)으로 나뉠 수 있고, 비범인은 범인의 한계를 넘어 초법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역사상의 비범인들, 곧 모든 입법자나 건설자들이 바로 그런 권리를 행사해왔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 자신은 어디에 속하느냐는 것이다. 가난 때문에 휴학중인데다가 하숙집 여주인에게 빚까지 진 처지에서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주요한 관심사는 그 자신이 과연 비범인지 아닌지를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그는 나폴레옹 같은 역사상의 비범인처럼 자기에게도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한 발작 넘어설 수 있는가를 시험해보고자 한다. 전당포 노파에 대한 살인은 그런 시험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 범죄이론의 가공할 만한 결과를 라스콜리니코프의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주인공의 정신적 부활 과정을 보여주는 게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의도였다.

 

하지만 <더 게임>은 제목대로 ‘게임’에 더 치중한다. 그것은 원작에서 명백히 ‘조연’의 자리에 있던 뽀르피리를 라스꼴리니꼬프와 대등한 인물, 아니 더 나아가 주인공으로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원작에는 없는 뽀르피리와 소냐와의 관계를 새로 고안해 넣은 데서도 알 수 있다. 라스꼴리니꼬프가 소냐를 찾아가 복음서에 나오는 라자로의 부활을 읽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원작 대로이다. 범행 이후, 아니 범행을 계획할 때부터 사람들로부터 분리돼 있던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와 함께한 장면에서 그러한 고립을 비로소 벗어나게 된다. 갱생의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소냐에게 리자베따를 죽인 범인을 알려주겠다고 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파격적인 것은 여기에 이어지는 뽀르피리와 소냐의 가학적 성애 장면이다. 거미줄이 쳐진 무대 디자인과 함께 <더 게임>을 특징지어주는 장면이다. 어떤 장면인가.

소냐의 목을 맨 밧줄을 든 뽀르피리가 등장해 소냐를 끌고 무대를 누빈다. 그는 돈을 주고 소냐의 몸을 사서 학대한다. 그러면서 소냐에게 이렇게 말한다.

더 게임_텍스트2

실상 <더 게임>에서 뽀르피리는 정의를 구현하는 검사라기보다는 악마의 형상이다.“죄인들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당신이야말로 아무 거리낌 없이 살인을 선택하는 사람 아닙니까?”라는 라스꼴리니꼬프의 반문은 <더 게임>의 문제의식을 압축한다.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정작 아무렇지도 않게 사형선고를 내림으로써 뽀르피리는 법의 이름으로 합법적인 살인을 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원작에서와 달리 <더 게임>에서는 뽀르피리 역시 ‘비범인’이다. 하지만 그의 죄는 누가 물을 수 있는가? 관객인가?

고전은 언제나 다시 읽히며 재해석되는 가운데 생명을 유지한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지식인 청년의 고뇌를 담은 <죄와 벌>이 <더 게임>을 통해서 한 번 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사유를 자극한다. 우리 안의 라스꼴리니꼬프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원작 <죄와 벌>이었다면 <더 게임>은 우리 안의 뽀르피리를 만나보라고 제안하는 듯도 싶다. 원작과 각색 사이의 게임이라고 할까. 원작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게임이다.

 

13.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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