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347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신숙옥의 <남편의 서가>(북바이북, 2013)에 대한 서평을 제안받고 쓴 것이다. 며칠 전이 저자의 '남편'이었던 출판평론가 고(故) 최성일의 2주기였다. 남편과 아내의 책에 대해 차례로 서평을 쓴 건 나로선 처음 있는 일인데, 앞으로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기획회의(13. 07. 05) 독서일기를 가장한 곡진한 사부곡

 

‘출판평론가의 아내’ 신순옥이 쓴 『남편의 서가』에 관한 서평을 제안받고 놀라진 않았다. 일종의 서평집이라고 여겨서이고(저자는 ‘가족의 생활기이자 가벼운 독서에세이’로 분류한다), 또 나름대로 최성일과 인연이 없진 않다고 생각해서다. 특별할 건 없지만 최성일의 유고집 『한 권의 책』에 대한 서평을 작년 여름에 쓴 게 그 인연의 정체다. 남편과 아내의 책에 나란히 서평을 쓰는 모양새가 나름 공정하겠다는 판단을 앞질러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책을 읽으면서 놀랐다. 이미 『한 권의 책』에 남편 대신 쓴 저자의 서문을 읽고 감동한 기억이 있지만, 글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게 그 첫 번째 이유이고(저자가 흉내 낸 남편의 육성, “옥아, 너 드디어 해냈구나! 봐라, 너도 되지 않느냐.”가 자화자찬이 아니다), 내가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어린이책에 관한 서평이 대다수라는 게 두 번째 이유다.

 

이 두 가지 이유는 상충한다. 그래도 당혹스러움을 지우고 이렇게 쓸 수 있게 된 것은 후반부에 실린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에 관한 글을 읽고 나서다.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은 최성일의 대표작이라고 할 책이다. 남편을 보내고 ‘애도하는 여인’의 시점에서 써나간 글이 궁극에 도달해야 할 지점이자 넘어가야 할 지점이라고나 할까. 서평집에도 클라이맥스가 있다면 『남편의 서가』에서는 바로 이 대목일 것이다. 두 사람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넘어서 저자와 독자의 관계로 만나는 장면이다.

 

이 주목할만한 장면을 아내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오래 망설이다가 드디어 남편의 묵직한 책을 손에 들었다’는 식으로 쓰지 않고 “살다 보니 별일이다. 신문기자로부터 인터뷰 요청 전화를 다 받았다”라며 적당히 눙치면서 시작하는 게 ‘신순옥 스타일’이다. 자신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지라 인터뷰를 완곡하게 거절하려고 했지만, 그런 평범한 사람을 인터뷰하려고 한다는 기자의 말에 결국 두 손 들고 “졸지에 면접시험을 앞둔 수험생 신세”가 돼 옆구리에 낀 책이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이었다. 무지를 좀 덜어보려는 심사였다나.

 

처음에 다섯 권으로 나왔다가 저자가 병석에 있을 때 합본돼 나온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은 주간으로 연재한 글을 모은 것이다. 처음 52회분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주 한 명의 사상가를 다룬다는 게 얼마나 힘든 작업이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내도 그런 의문을 품는다. “1주일 단위로 원고 쓸 대상을 정하고 그 사상가 관련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게 가능은 한 일일까.” 물론 각 사상가의 책을 짧은 시간에 다 읽고 쓰는 건 불가능하다. 자신의 역할을 도서관 사서에 빗댄 최성일은 “사서가 작성된 목록의 책을 읽거나 완벽하게 소화할 의무는 없다는 점에서 자신 역시 그렇다”고 했다. 출판평론가에겐 개별 저작의 세부보다는 전체의 윤곽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쩜 읽지도 않고 다 읽은 것처럼 이렇게 글을 잘 쓸 수가 있어요!”라고 경탄했던 기억으로 남편의 글재주를 칭송한 후에 저자는 본격적으로 남편의 작업을 재평가한다. 그것은 ‘사상가=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이란 남편의 정의에서 출발해 아내가 보기에 남편은 남이 뭐라 하든 제 갈 길을 간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 곧 사상가이기도 했다는 결론에 이르는 여정이다.

 

남편의 모든 원고의 첫 독자였을 테지만 “책에 등장하는 사상가의 이름들이 참으로 생소하다”는 게 아내의 소감이다. 남편에게는 친숙했을 이름들인 걸 고려하면 부부 사이란 가깝고도 멀다. 하지만 그 거리는 공감과 비판을 위한 거리이기도 하다. 아내는 제임스 러브록, 팀 플래너리 등 남편이 부정적으로 평가한 인물들을 책에 포함시킨 것은 ‘사상가 등용’에 실패한 게 아닌가 싶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사상가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인물이라는 것에 암묵적인 동의가 있는 법”이라는 생각에서다. 게다가 연재 초기에는 정통 사상가를 우대하다가 뒤로 갈수록 그는 사상가의 범주를 널리 확장했다. 사실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를 ‘사상가’ 목록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나로선 즐거운 일이지만, 분명 통상적인 건 아니다(러시아에서는 철학사 책에도 들어가 있지만). 그런 덕분에 『책으로 읽는 사상가들』은 저자 고유한 안목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책이 됐다.

 

남편에게 책은 어떤 존재였을까. 『한 권의 책』에서 최성일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닉 혼비처럼 책이 재미있어서 읽는다. 그러나 책이 야구보다 재미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책은 고작해야 야구만큼 재미있다.” 『책으로 읽는 사상가들』에서도 비슷한 고백을 한다. 아내의 인용을 옮기자면 “내게 책은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또 책은 아주 귀중하지도 매우 하찮지도 않다. 책을 향한 애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책이 정말 좋다고 드러내놓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게 남편의 생각이었다. 열렬한 독서가였지만 책에 대한 그의 애정은 뜨뜻미지근하다. 그런 태도는 독서운동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도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꼭 그렇게 해서까지 책을 읽힐 필요가 있겠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보다는 사회 전반적인 인식과 분위기가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쪽으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책에 대한 뜨뜻미지근한 태도와 다르게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그의 평가는 호오가 분명했다. 그는 직구형 스타일이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강연을 두고 “이 정도의 내용을 꼭 외국인 연사를 초청해 들어야 하는가”라고 비판하고, 거꾸로 눈물샘을 자극한 책의 한 장면을 들이대면서 “콧등이 시큰해지지 않은 자와 상종하지 않기로 다짐”하기도 한다. 아내는 그것을 남편의 ‘순진성’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덧붙이길 자신은 ‘눈시울이 차가운 자’ 여서 남편이 언급한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런 무감동을 차마 발설하지는 못했다는 게 아내의 뒤늦은 고백이다. 차분하고 담담한 애도의 정서가 지배적인 책에서 웃음을 터뜨리게 한 대목이다.

 

남편에게는 출판사에서 보낸 책들이 주기적으로 배달됐는데 그 책들을 정리하면서 저자의 입에서는 울먹임이 새어나왔다고 한다. “이 책을 다 어쩌라고, 나에게 어쩌라고…” 『남편의 서가』가 그런 울먹임을 진정하는 모양새로 마무리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결국 남편이 남긴 장서는 나의 밥벌이가 돼주고, 아빠를 잃은 아이들의 상실감을 덜어주고 있다. 가족들에게 살 길을 책에서 찾으란 의미로, 그는 이 많은 장서를 남기고 갔는지도 모르겠다.” 독서일기를 가장한 아내의 곡진한 사부곡이 주인이 없는 ‘남편의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다.

 

13.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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