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프레시안 books'의 특집이 '번역'이다. '번역가 3인 대담' 코너에서는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세욱, 박현주, 김명남 번역가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읽을 거리여서 옮겨놓는다(전문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0726211918&section=04 참조).

움베르토 에코, 베르나르 베르베르, 미셸 우엘벡 등의 작품을 옮기며 지극한 단정함과 아름다운 문장을 결코 놓치지 않는 이세욱, 레이먼드 챈들러와 존 르 카레, 트루먼 카포티 등의 작품을 통해 현대 장르소설에 뛰어난 감각을 발휘하는 박현주, 리처드 도킨스와 스티븐 제이 굴드 등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의 화제작을 유려하고 편안하게 옮기는 김명남. 세 사람의 번역가는 모두 번역계에서 뚜렷한 자기 세계를 유지하며 편집자와 독자 양쪽 모두에게 큰 신뢰를 받고 있다. '프레시안 books'는 창간 3주년 특집을 맞아, 이 세 명의 번역가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위의 질문들과 더불어, 번역 작업의 행복과 고통, 자의식과 선입견 등을 꼬치꼬치 캐물어보았다. <편집자>

 

프레시안 : 먼저 어떤 계기로 번역을 업으로 삼게 되었는지 듣고 싶다.

이세욱 :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열린책들 펴냄)로 번역을 시작한 게 1992년이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부터 번역자가 되려고 대학에 간 건 아니지만, 아르바이트로 몇 번 하면서부터 번역과 어느 정도 친해지게 됐다. 그러다 삶의 어떤 시기에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가'를 묻게 되었고, 리스트를 쭉 만들어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겹치는 분야가 번역이었다. 그길로 이론을 공부하고 자기소개서를 돌리고, 몇 번 고배를 들이켰다가 어느 너그러운 출판사 사장을 만나서 이 일을 시작했다. 그동안 그만둘 기회는 숱하게 많았다. 다른 분야에서 유혹도 있었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 일을 놓지 않았던 건 번역이 준 행복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하고 나니 별 게 없다. 그저 번역을 하다 보니 번역가가 되어 있었다고 할까.

김명남 : 내 경우 중학교 때부터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책을 좋아했지만 작가가 될 능력은 없는 것 같다는 정도의 자의식이었다. 그런데 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점점 이 분야와 멀어지게 됐다. 마흔 살쯤 되면 번역을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인터넷서점 MD 시절 기회가 생겨 첫 작업을 하게 됐다. 전업 번역가의 길로 접어든지 이제 8년차다.

박현주 : 글 쓰는 직업을 갖는 여러 가지 길이 있는데, 나는 마니아가 번역자가 된 경우에 해당한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늘 문학과 텍스트 분석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소설을 좋아했는데, 가령 도서관에 가면 거의 모든 소설의 대출 카드에 내 이름이 적혀 있을 정도였다. V. C. 앤드류스의 <다락방의 꽃들>(이미영 옮김, 한마음사 펴냄) 같은 소설도 열심히 찾아 읽었다.(웃음) 자연스레 잡지나 학술문서 번역을 할 기회가 생겼고, 비슷한 취향을 나누는 PC통신 동호회 활동을 하다가 출판사 직원이 된 지인의 의뢰로 단행본 번역 일을 시작하게 됐다. 2001년경 당시 퍼블릭도메인으로 나와 여러 출판사에서 펴내게 된 셜록 홈즈 시리즈의 북하우스판을 맡게 되었다. 그러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빅 슬립><안녕 내 사랑>(북하우스 펴냄) 등의 번역이 인생의 기점이 됐고, 거기서부터 하나씩 연결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프레시안 : 직접 번역할 일이 있을 때마다 이른바 '구글링'의 힘을 실감한다. 인터넷 없던 시기에는 대체 어떻게 번역을 했나 싶을 정도다.(웃음) 이세욱 선생님은 그 시절을 경험하셨을 테고, 다른 두 분은 인터넷이 있어도 자료가 많지 않았던 시절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의 경험은 지금과는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

이세욱 : 그렇게 따지면 1950년대 말에 <돈 키호테>나 <신곡>을 번역한 최민순 신부님은 기적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지금은 그 번역이 도서관에서 잠자고 있지만, 작품에 대한 애정이나 독자와 작품을 나누려는 순수한 마음이란 측면에서는 지금도 그 작품을 따라올 게 없을 정도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면 불완전한 부분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스페인어 사전도 없는 상황에서, 일본어 중역도 아니라 원어를 가지고 우리말에서 가장 적합한 표현을 찾아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지금 기준으로는 과도한 순우리말 사용을 문제 삼을 수 있지만, 우리말이 서양언어를 얼마만큼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무거운 문제의식을 가지고 접근한 결과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20년 전에도 인터넷은 없었지만, 말의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자료나 적합한 번역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때는 일차문헌 위주로 자료를 찾았다. 지금 곤충에 관한 책을 번역한다면 일단 위키피디아에서 여러 언어의 버전으로 비교를 해보겠지만, 그때는 <곤충학개론>부터 시작해야 했다. 해외여행도 상당히 원시적이었던 시절이라 번역한 책에 나온 장소를 여행할 때도 모든 자료를 가방에 짊어지고 고단한 코스를 밟아야 했다. 요컨대 탐구 과정이 훨씬 길고 고단했다. 심지어 여행에 들어가는 돈도 사비를 턴 것이었으니까. 그때는 오로지 책과 번역 자체가 좋아서, 내가 좋아하는 작품과 함께 지내는 일이 좋아서 기꺼이 그렇게 했다. 지금에 비하면 많이 불편했지만 애정이나 순수성이 보장되는 측면도 있었다.

예전에는 과정 자체가 고단하므로 오류를 더 많이 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훨씬 더 치열했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정보 검색이 편해졌으니까 어떤 정보를 부정확하게 다뤘다면 바로 불성실의 징표가 된다. 그래서 무서운 시대이기도 하다. 작가가 대부분 살아있기도 하고 검증하는 눈도 많으니까 새로운 고단함이 생겨났다고도 할 수 있겠다.

박현주 : 10년 전만 해도 인터넷이 있긴 했지만 거기서 찾을 수 있는 유용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주로 도서관에 의존했다. 웹상의 자료가 많아지면서 인터넷을 많이 이용하게 됐는데, 여전히 직접 도서관을 뒤지고 공부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찰스 부코스키 책을 번역할 때 경마 장면이 있었는데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초보자들을 위한 '더미스' 시리즈 중 경마에 관한 책을 사서 읽고 마사회 사이트를 들락거리면서 미국 경마와 한국 경마의 시스템을 조금씩 매치시켜야 했다.

김명남 : 인터넷이 우리 일상에 들어온 게 불과 10년 전이다. 2003년 처음으로 단행본을 번역했을 때 이미 인터넷이 일상화되어 있었지만 집에는 깔려 있지 않았다. 책과 사전을 들고 집에서 번역하다가 PC방에 가서 몰아서 검증했던 기억이 난다.

이세욱 : 최근 에코가 그런 얘길 한 적이 있다. <프라하의 묘지>(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펴냄)의 영어 번역자가 책 속 에코의 정보 중 틀린 부분이 있다고 했다더라. 뭔가 하고 찾아봤더니 그 영어번역자가 인터넷에서 본 정보라고…(웃음) 에코는 언제나 일차문헌에 기반하여 글을 쓰는 작가다. 인터넷 문서는 대부분 면밀한 검증을 거친 뒤에야 확신할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에 그에 의존하는 건 항상 경계해야 한다.

 

(...)

 

13. 07. 2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한국전쟁 관련서들이 몇권 나와서 어쩐 일인가 했더니 오늘이 정전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종전'이 아닌 '정전' 상황의 의미를 반추하게 하는 책들을 이번주에는 골랐다. 타이틀북은 김태우의 <폭격>(창비, 2013).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이다.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은데, 뭔가 돌파해나간 듯한 인상을 준다(시야를 '공중'으로 확장한 듯한 느낌이랄까). 한국전쟁 연구에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국내 최초로 미공군 최하급단위 임무보고서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한국전쟁기 미공군의 공중폭격에 대한 기존 연구들의 주장을 전복해낸 문제적 저작으로, “전쟁 전시기에 걸쳐 미공군은 군사목표 공격에만 역량을 집중했고 민간지역을 폭격하는 따위는 결코 행하지 않았다”는 미국 측 연구자들의 주장을 강력하게 반박한다. 한국전쟁기 미공군 문서 10만여장을 수집·분석하고 당시의 러시아, 중국, 남북한 문서로 교차분석을 진행한 치밀한 연구의 결과인 이 책은 “한 연구자의 자료수집 능력과 문제의식이 도달한 진실탐구의 깊이와 수준을 동시에 보여준다”(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점에서 한국전쟁 연구의 획기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두번째 책은 한국전쟁의 의미를 물은 <전쟁과 사회>(돌베개, 2006)의 저자 김동춘 교수의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사계절, 2013).'한국전쟁과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가 부제다. "한국전쟁기 학살 사건 진상규명에 참여했던 저자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를 결성하고, 정부 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진행했던 과거청산의 경과와 쟁점, 성과와 한계를 정리하고 있다."

 

 

세번째 책은 남도현의 <잊혀진 전쟁>(플래닛미디어, 2013). 저자는 <끝나지 않은 전쟁 6.25>(플래닛미디어, 2010) 등 다수의 전쟁 관련서를 펴낸 밀리터리 마니아. "최근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6.25전쟁을 시작부터 끝까지 제대로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인 책"으로 소개된다. 

 

 

네번째 책은 미국 국내외를 변화시킨 총 10번의 전쟁을 해부한 케네스 헤이건과 이언 비커튼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삼화, 2013). 우리로서는 당연히 한국전쟁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다섯번째 책은 평화네트워크에서 진행한 <동아시아와의 인터뷰>(서해문집, 2013)다. "정전(휴전)협정 60주년을 맞아 한국, 미국, 일본, 중국의 동아시아 전문 관료 및 학자, 시민단체 인사 등 최고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격동의 시대에 접어든 동아시아의 과거-현재-미래를 진단하고 평화와 공동번영의 아시아 시대를 열 수 있는 정책과 비전, 지혜를 모아보고자 한다." 부제대로 정전 60주년은 '공존의 길'을 물어야 할 시점이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폭격- 미공군의 공중폭격 기록으로 읽는 한국전쟁
김태우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250원(1%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3년 07월 27일에 저장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한국전쟁과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
김동춘 지음 / 사계절 / 2013년 7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3년 07월 27일에 저장

잊혀진 전쟁-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6ㆍ25전쟁사
남도현 지음 / 플래닛미디어 / 2013년 7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3년 07월 27일에 저장
품절

의도하지 않은 결과- 미국과 전쟁 1775~2000
케네스 헤이건 & 이안 비커튼 지음, 김성칠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13년 7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2013년 07월 27일에 저장
절판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주의 발견'을 미리 적는다. 요즘은 자연스레 새로 나온 책들을 '이주의 책' '이주의 저자' '이주의 발견' 거리로 자동분류하는데, 소어 핸슨의 <깃털>(에이도스, 2013)은 눈에 띌 때부터 '이주의 발견'으로 분류해놓은 책이다. '가장 경이로운 자연의 걸작'이 부제. 말 그대로 '깃털'을 다룬 책이다. 소개는 이렇다.

 

2013년 존 버로스 메달 수상작. 생물 진화상 가장 경이로운 걸작으로 꼽히는 깃털의 자연사와 문화사를 흥미롭게 녹여냈다. 깃털은 인간의 첨단 테크놀로지로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공기 역학, 보온과 보호 등의 측면에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체의 외피 중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경이로운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깃털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생물 진화라는 과학적 내용은 물론 역사, 패션, 신화, 산업, 예술, 낚시, 문학 등 깃털과 관련된 문화와 역사를 광범위하게 풀어냈다.

저자 소개에는 그가 보존생물학자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구와 생물보존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중앙아메리카의 나무와 명금류, 탄자니아의 둥지 약탈, 아프리카대머리수리의 먹이섭취 습성 등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깃털에 대한 관심은 바로 대머리수리 때문에 갖게 됐다고. 그가 대머리수리와 대머리수리 깃털에 대해 내내 생각하다가 조깅에 나선 길에 한 무리의 대머리수리와 마주치고 그 중 한 마리가 머리 위로 깃털 하나를 떨어뜨리고 가자 이 책의 운명이 결정됐다고 고백한다.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다. 글이 당신을 선택하는 것이다"라는 대학 학부시절 글쓰기 세미나에서의 격언을 의미심장하게 상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이면서. 아마도 영어판 표지의 깃털이 그 깃털인가 보다.  

 

 

아무튼 '깃털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한 흥미로운 책이 출간돼 반갑다. 지난주보다 이번주가 조금 더 나은 인상을 갖게 된다면 그건 순전히 이런 책들의 '발견' 덕분이다. 게다가 표지도 아주 깔금하다(원서 표지보다도 더 맘에 든다)...

 

13. 07. 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처럼 오전에 일정이 없어서(원고를 제외하면) 잠시 쉬는 김에 어제 배송받은 바디우의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논밭출판사, 2013)를 들춰본다. 소련을 비롯한 국가공산주의의 붕괴에 대한 평가를 담고 있는 책으로 지젝이 몇 차례 언급하고 있어서 궁금하던 차였다.

 

 

책을 낸 출판사가 생소한데, 주소지가 충남 천안으로 돼 있는 곳이다. 2010년에 첫 책을 내고 바디우의 책이 세번째 책이다. 나는 네그리의 <욥의 노동>(논밭출판사, 2011)도 구입했었다(당연한 일이지만 막상 읽어보려고 하면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 없다). 표지만 봐도 알 수 있지만 '통상적인' 출판사는 아니다. 펴낸이와 옮긴이가 같은 걸로 보아 대표가 번역한 책을 펴내는 1인 출판사다. 주로 이론/철학서를 펴내는 것으로 보아 역자의 전공이 이 분야이거나 이쪽에 매니아적 관심을 갖고 있는 듯싶다(역자 소개에는 '젖소와 한우를 키우며 농사를 짓고 있다'고 돼 있다. 곧 출판사 대표이자 목장 경영주다. 그밖에 다른 경력은 나와 있지 않다).

 

 

흠,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바디우의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는 1998년에 나온 에세이로 분량상 팸플릿에 해당하는 책이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보다는 '두꺼운' 책이지만 프랑스어본도 100쪽은 넘기지 않을 걸로 짐작된다. 한국어판에서의 분량이 정확히 60쪽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140쪽 분량이 '역자의 공부노트'다. '역자 해제'가 길게 붙어 있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데리다가 후설의 <기하학의 기원>을 번역하고 장문의 해제를 붙인 경우가 내가 아는 사례다. '후설'보다 '데리다'에 관심이 있어서 읽기도 하는 텍스트다. 하지만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는 사정이 다르다. 굳이 '역자의 공부노트'에까지 관심을 갖고 이 책을 구입한 독자가 얼마나 될까.

 

알라딘에 뜬 목차에는 'Ⅱ-Translator’s Note : 당-없는-정치 69'이라고 돼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통상적인 '역자 노트'라고 생각해서 무심코 지나쳤다. 69쪽 이하 전체가 '역자 노트'인 줄은 생각지 못한 것이다. 이런 걸 일종의 '끼워넣기'라고 해야 할까(구매자 입장에서 보면 '끼워팔기'다). 사정이 그렇다면 책 표지에 바디우의 이름과 함께 역자이자 노트의 저자 이름이 들어갔어야 한다고 본다. 전체의 1/3만 수록하고 있는 글의 저자만 표지에 박아두는 것은 뭔가 공정하지 못하다. 그리고 독자를 오도할 소지가 있다. 아직 번역과 역자의 노트를 읽어보지 않아서 더이상의 판단은 유보하지만, 제목대로 '모호한 재앙'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든다.

 

 

조만간 방한할지도 모른다는 바디우의 책은 최근에 몇 권 더 나왔다. 공저 형태지만 <라캉, 끝나지 않은 혁명>(문학동네, 2013)과 <아듀 데리다>(인간사랑, 2013) 같은 책들이다. 바디우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는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출학>(동녘, 2013)에 수록된 서용순 교수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알라딘에서 제공한 '미리보는 2013 인문교양 하반기' 목록을 보니 단독저작도 하반기에는 두어 권 예정돼 있다. 베케트에 대한 책,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책 등이다.

 

 

최근에는 <시네마>와 <철학과 사건> 등의 책도 영어본이 나와서 바로 주문해놓은 상태다. 그런 독서의 워밍업으로 <모호한 재앙에 대하여>를 집어들었는데, 흠, 독후감은 나중에 다시 적도록 하겠다...

 

13. 07. 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격월간 '인문주의 정치비평지' <말과 활> 창간호가 나왔다. ‘자본에 맞서는 정치, 자본 너머의 정치’가 창간호의 키워드다. 슬라보예 지젝의 기고문 '오늘 왜 공산주의인가' 번역을 청탁받고 참여했는데, 그 일부를 옮겨놓는다. 지젝의 기고문 외에도 읽을 거리가 풍성하다. 격월간이란 포맷도 새로운 시도로 여겨진다. 아직 받아보지 못했지만 책도 궁금하다 반응도 궁금하다...

 

 

말과 활(13년 7-8월호) 오늘 왜 공산주의인가 

 

만약 역사적 경험에 의해 완벽하게 기각돼야 할 이념이 있다면 바로 공산주의일 것이다. 확실히 공산주의는 20세기 전체를 특징짓는다. 하지만 1990년의 완벽한 패배 속에서 공산주의는 불명예스럽게 종언을 고했다. 그 이후에 공산주의는 단지 두 가지 형태로만 살아남았다. 북한처럼 끔찍할 만큼 기이한 체제와 중국처럼 공산당원들이 여전히 권력을 쥔 채로 가차 없는 자본주의 관리자로 변신한 나라들이다.

 


하지만 역사의 교훈이 그렇게 단순할까? 공산주의 국가들의 해체에 대해선 좀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금부터 사반세기 전에(1990년) 일어난 사건들이 얼마나 기적과도 같은지 강조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꿈이 현실이 됐고 그보다 수개월 전에는 가능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났다. 자유선거가 치러졌고 공산당 정권은 마치 카드로 만든 집처럼 무너졌다. 폴란드에서 어느 누가 레흐 바웬사가 자유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될 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훨씬 더 기적 같은 일이 불과 수년 뒤에 일어났다. 전직 공산주의자들이 민주선거를 통해서 권력으로 복귀하고 바웬사는 완전히 주변적인 인물이 됐다. 심지어는 그 15년 전에(1981년) 군사 쿠데타를 통해서 자유노조(솔리다르노시치)를 파괴한 장본인 야루젤스키보다도 인기가 없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진보는 파국을 낳는다
‘벨벳 혁명’(1989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정권 붕괴를 가져온 시민혁명)의 다음날, 혁명의 숭고한 안개가 걷히고 새로운 민주주의-자본주의 세상이 되자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실망감을 느끼며 대략 세 가지 태도로 반응했다. (1)“좋았던 옛날” 공산주의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 (2)우파 민족주의 포퓰리즘, (3)뒤늦은 반공산주의 편집증. 처음 두 반응은 이해하기 쉽다. 그 두 가지는 오늘의 러시아에서처럼 종종 중첩된다. 수십 년 전에 “공산주의보다 죽음이 더 낫다!”(Better dead than red!)고 외쳤던 우파가 이번엔 또 “햄버거를 먹는 것보다는 공산주의가 더 낫다”(Better red than eating hamburgers)고 중얼거린다.

 

 

공산주의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우중충한 사회주의 현실로 정말로 되돌아가길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과거에 대한 애도, 과거와 곱게 작별하기 위한 방식이라고 할 것이다. 우파 포퓰리즘의 발흥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동유럽만의 특징이 아니라 글로벌화의 소용돌이에 빠진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보다 훨씬 흥미로운 것은 최근에 헝가리에서 슬로베니아까지 구 사회주의 국가에서 나타난 반공주의(anti-communism)의 부활이다. 그 질식할 것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문제와 도전을 낡은 투쟁의 반복으로 몰아넣는다. 동성애와 낙태권에 대한 옹호가 국가를 부도덕하게 만들려는 지하 공산주의 세력의 음모라는 허황한 주장까지 나올 정도다(간혹 폴란드와 슬로베니아에서 그렇다).


이러한 부활은 어디에서 그 힘을 끌어내는 것인가? 어째서 많은 젊은이들이 공산주의 시절을 기억조차 못하는 국가들에서 그런 낡은 유령들이 다시 소생하는 것인가? 새로운 반공주의는 “만약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그렇게 더 낫다면, 우리의 삶은 왜 아직도 비참한가?”라는 질문에 간명한 답을 제공한다. 그것은 우리가 진짜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 진짜 민주주의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그 현혹적인 가면뿐이다. 소수의 구-공산주의 세력이 새 소유주와 관리자로 변장해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또 한 번의 숙청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혁명이 반복되어야 한다... 우리가 놓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책임 추궁이 구 공산주의 체제가 자신들의 실패를 “과거 세력”의 지속적인 영향 때문이라고 둘러대던 것과 갖는 유사성이다.


이 뒤늦은 반공주의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제시하는 사회의 이미지가 가장 욕을 먹는 전통 좌파가 자본주의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와 섬뜩할 만큼 유사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형식적 민주주의는 부유한 소수의 지배를 감추는 가면에 불과하다는 이미지 말이다. 다시 말해, 신생 반공주의는 자신들이 비정상적인 유사-자본주의라고 기각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 자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졌을 때, 환멸을 느낀 구 공산주의자들이 포퓰리즘적인 반체제 인사들보다는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 운영에 더 적합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반공 시위의 영웅들이 정의와 정직, 연대의 새로운 사회에 대한 꿈을 계속 꾸는 동안, 구 공산주의자들은 새로운 자본주의 규칙에 자신을 가차 없이 적응시킬 수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포스트 공산주의 상황에서 반공주의 영웅들은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유토피아적 꿈을 대표한 반면에 구 공산주의자들은 온갖 속임수와 부패를 포함한 시장적 효율성이라는 잔혹한 신세계를 대표했다.  


그보다 더한 아이러니는 공산주의자들이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면서도 자본주의 폭발을 가능하게 한 중국 같은 나라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서구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자들보다도 더 자본주의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 말도 안 되는 이중의 역전 속에서,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에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 승리의 대가는 공산주의자들이 자기 지역에서 자본주의를 이기고 있다는 현실이다.

 

(...)

 

13. 07. 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