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포드대 수학과 김민형 교수의 <소수 공상>(반니, 2013)이 소개된 데 이어서 이번에는 케임브리지대에서 과학철학을 강의하는 장하석 교수의 대표작 <온도계의 철학>(동아시아, 2013)이 번역돼 나왔다. 부제는 '측정 그리고 과학의 진보'.

 

 

언젠가 언론보도를 통해서 책의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번역돼 나왔다. 어떤 책인가.

책을 통해 장하석 케임브리지대학교 석좌교수는 일약 세계적 과학철학자로 명성을 알렸으며, 러커토시상은 물론 2005년 영국 과학사학회가 과학사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 에세이 저자에게 주는 ‘이반 슬레이드상(Ivan Slade Prize)’을 받았다. 같은 해에는 <타임스> 고등교육 부록(THES)이 선정하는 ‘올해의 젊은 학술 저자’ 최종 결선에도 진출했다. <온도계의 철학>은 토머스 쿤의 저작들과 비견되기도 한다. 장하석 교수는 <온도계의 철학>을 통해 일약 세계적 과학철학자로 명성을 알렸다. <온도계의 철학>이 수상한 러커토시상은 헝가리 출신의 과학철학자 임레 러커토시(Imre Lakatos)를 추모하고 그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과학철학 분야에서 최근 6년간 출판된 영문 서적 가운데 최고의 책을 골라 수여한다.

 

 

토머스 쿤, 칼 포퍼와 함께 과학철학 논쟁을 주도했던 러커토시는 국내에 '라카토스' '라카토시' '라카토슈' 등으로 표기됐고, 공저를 포함 몇 권의 책이 번역돼 있다. 과학철학 분야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이라고 하는데, 6년에 한번씩 수상하는 걸 봐서도 <온도계의 철학>이 얼마나 뛰어난 책으로 평가받는지 알 수 있다. 하버드대학의 피터 갤리슨 교수의 평이다.

학생들에게 이 책은 과학철학으로 들어가는 훌륭한 길이 된다. 전문가에게는 최첨단 과학이 물리학 기초 개념의 특별한 이야기와 함께할 수 있음을 보는 일이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온도계의 철학>은 역사, 철학, 그리고 과학이 교차하는 놀라운 책이다.

비록 번역서일지라도 한국 학생들에게 한국인이 쓴 명저를 읽힐 수 있다는 건 매우 부듯한 일이다. 과학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좋은 귀감이 될 만하다...

 

13.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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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기 전 '오래된 새책'들을 더 골라놓는다. 우연히 발견한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비채, 2013) 덕분에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비채, 2013)까지 같이 건졌다. <비행공포>가 더 궁금하지만 <미국의 송어낚시>가 먼저 나왔으니 먼저 다룬다.

 

 

<미국의 송어낚시>는 이미 여러 판본으로 출간됐었는데, 제일 처음은 공역서로 나온 중앙일보사판이었다(내가 소장하고 있는 판본이다. 어느 박스에 들어가 있는지 모르지만). 이후에 효형출판에서, 뒤이어 비채에서 다시 나온 것(비채판도 2006년에 나오고 이번에 다시 찍은 듯싶다). 소개에는 "김성곤 교수가 1991년에 번역.소개한 <미국의 송어낚시>의 재출간판이다."이라고 돼 있는데, 2006년 효형출판판의 소개 같다. "김성곤 교수의 두번째 번역을 거친 이 책은, 1960년대 목가적 꿈을 잃어버린 미국 산업사회를 담담하게 패러디하고 풍자한다." 찾아보니 첫 작품인 <빅서 출신의 남부 장군>(1964)보다 먼저 쓰였지만 그보다 늦은 1967년에 출간됐다. <워터멜론 슈가에서>(비채, 2007)가 그 이듬해에 나왔다. 어떤 의의가 있는 책인가.

 

 

미국 생태문학의 대표작이자 히피운동이 꽃피우던 1960년대 미국 청년들의 ‘성경’이었던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브라우티건의 팬임을 자처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유롭고 순수하며 엉뚱하고 즐거운 사고와 기성 소설의 틀을 낱낱이 해체한 듯 독특한 해방감’이라고 표현한 원작만의 개성과 은유를 모던&클래식 시리즈의 판형에 고스란히 담았다. 작품 세계로 독자를 인도하는 소개글을 첨가하고 번역문을 다듬고 수정해 보다 간결하고 읽기 쉽게 했다. 번역을 맡은 서울대학교 김성곤 교수의 자세한 해설과 생전의 작가와 나눈 인터뷰가 송어낚시 여행을 떠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

 

여성의 성애를 다룬 작품으로 70년대 초반 화제가 됐던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1973)도 국내에 여러 차례 출간됐다(원서는 바로 최근에 40주년 기념판이 나왔다). 검색해보니 <공중에 뜬 나의 맨발>(고려원, 1979), <날아다니는 것이 무서워>(문장, 1979), <날기가 두렵다>(민예사, 1979), <날으는 것이 두렵다>(삼문사, 1981) 등이 초기 번역본들이고, 역시나 절판됐지만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게 <날기가 두렵다>(넥서스, 1995)이다. 지금은 존재감이 없는 작가가 됐지만 한때는 아래 책들이 국내에 모두 번역됐었다.

 

 

 

제일 오른쪽 책은 1942년생인 저자가 쉰 살 때 쓴 자서전으로 <내가 두렵다>(넥서스, 1995)로 번역됐다(원저는 1994년에 나왔다). 아래가 젊은 시절의 에리카 종. 현재는 71세로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여하튼 <비행공포>는 작년인가 도서관과 헌책방을 뒤져본(검색해본) 적이 있는 책이어서 재출간이 반갑다. '걸작'은 아니더라도 '시대'의 표정을 담고 있는 책들을 요즘 구하고 있기도 하고. 작고한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같은 책 말이다.

 

 

 

그러고 보니 <별들의 고향>도 1973년에 나왔다. <비행공포>와 동갑내기인 셈. 1973년생들도 어느덧 중년을 맞았구나... 

 

13. 10. 20.

 

 

 

P.S. 아, <비행공포>를 왜 찾았는지 생각이 났다. 역시나 지젝 때문이었다. <환상의 돌림병>(인간사랑, 2002)에서 그가 인용한 대목(이 또한 절판됐군). 유명한 세 가지 변기 얘기다.

에리카 종이 거의 잊혀진 그녀의 <비행공포>의 시작부분에 나오는 서로 다른 유럽의 변기에 대한 그 유명한 논의에서 비웃는 식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독일의 화장실은 참으로 제3제국의 공포를 알게 해주는 열쇠이다. 이와 같은 화장실을 만들 수 있는 국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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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오래된 새책'으로 도이힐러의 <한국의 유교화 과정>(너머북스, 2013)을 꼽았지만, 한권을 더 얹는다면 레닌의 <국가와 혁명>(아고라, 2013)도 가능하다. 다시 나왔으면 싶었던 책 가운데 하나.

 

 

다시 나왔으면 했던 때는 물론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와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을 읽을 무렵이다. 여러 번 언급한 바 있지만, 이 두 종은 지젝의 같은 책의 독어판과 영어판을 각각 옮긴 것이다. <지젝이 만난 레닌>에는 영어판처럼 레닌의 글모음과 지젝의 해제가 같이 묶였고, <혁명이 다가온다>는 지젝의 해제만을 따로 옮긴 것이다(실제 독어판은 그렇게 나온 듯하다. 러시아어판도 그러하다). 그사이 <지젝이 만난 레닌>은 벌써 절판된 상태다. 다른 판형으로 다시 출간될지 모르겠다(개인적으론 두툼한 하드카바 대신에 소프트카바로, 레닌과 지젝이 분권돼 출간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한 적이 있다).

 

 

<국가와 혁명>의 영어본은 펭귄판으로 나와 있다. 지젝의 레닌론에 대해선 <지젝이 만난 레닌>과 함께 <레닌 재장전>(마티, 2010)을 참고할 수 있다. 지젝의 글 외에도 레닌주의에 대한 재평가를 담은 좌파 철학자들의 글이 실려 있다(현재는 이 책 또한 품절된 상태다). 혁명가 레닌의 대표적 저작으로서 <국가와 혁명>의 의의에 대해서는 이렇게 소개된다.

출간된 이래 사회주의 혁명사상의 고전 중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책으로 평가받아왔다. 그의 사상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혁명가, 정치가는 물론 지성계와 문화계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쳐왔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이상을 소개한 책이라면 <국가와 혁명>은 이를 현실로 옮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의의에 덧붙여서 개인적으론 레닌주의와 박정희주의도 비교해봄직하다는 생각을 늘 해오고 있다. <국가와 혁명과 나>란 책 때문이다. 물론 이론적인 저작은 아니지만,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제목인지는 의심스럽다. 레닌주의와 박정희주의는 혹 '국가와 혁명'과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구도로 정리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아직은 독서계획만 갖고 있는 상태이지만 그래서 몇년 전엔 박정희의 <국가와 혁명과 나>도 구했다. 절판된(그래서 희귀본이라고 고가로 올라와 있는) <국가와 혁명과 나>(지구촌, 1997) 대신에 동서문화서판으로. <하면된다! 떨쳐 일어나자>(동서문화사, 2005)는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과 <국가와 혁명과 나>가 합본된 책이다. 박정희 향수를 얘기하고, 젊은층에서도 자칭 박정희주의자가 없지 않지만 정작 이런 책을 읽는 독자는 거의 없는 듯싶다. '박정희'로 검색되는 책 가운데 현재 세일즈포인트가 가장 높은 책은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책과함께, 2012)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귀태' 발언의 출처가 된 책이다).

 

오늘 박근혜 대통령은 전남 순천에서 열린 전국새마을지도자 대회에 참석해 “새마을운동은 우리 현대사를 바꿔놓은 정신혁명이었고, 그 국민운동은 우리 국민의식을 변화시키며 나라를 새롭게 일으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평하고, “(새마을운동을) 미래지향적 시민의식 개혁운동으로 발전시키고 범국민운동으로 승화시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다('5년 임기제' 대통령의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한번 <국가와 혁명과 나>도 떠올리게 됐다. 레닌과 박정희 사이에 의외의 접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면서(혹은 스탈린과 박정희?)... 

 

13.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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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에서 빼놓긴 했지만, 알랭 드 보통과 자크 아탈리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저자다(프리모 레비와 줌파 라이히는 나중에 따로 다루려 한다). 알랭 드 보통이 존 암스트롱과 공저한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문학동네, 2013)과 23인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자크 아탈리의 전기, <자크 아탈리, 등대>(청림출판, 2013)도 최근에 나왔기 때문이다(저자의 이름이 책 제목보다 중요한 저자들이다!).

 

 

<영혼의 미술관>은 한마디로 미술책이다(알랭 드 보통의 2014년 신작은 <뉴스>로 예고돼 있다).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가 부제인데, 원제가 '치료로서의 예술'이다. 이때 예술은 물론 좁은 의미의 예술, 곧 미술을 뜻한다.

이 책은 예술작품이 우리의 고단한 삶을 보듬어 안고 한편으로 우리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예술의 치유 기능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이 특유의 철학적 글쓰기를 통해 써내려간 독특한 책이다. 알랭 드 보통이 미술사가 존 암스트롱과 대화하며 직접 엄선한 전 시대의 빼어난 예술작품 140여 점을 선보이고 있는 이 책은, 한편으로 알랭 드 보통만의 위트 있고 섬세한 필치가 예술작품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더욱 그 빛을 발한다.

책의 구성은 방법론에 이어서 사랑, 자연, 돈, 정치, 네 파트로 돼 있다. 알랭 드 보통 버전의 '예술이란 무엇인가'라고 할 만하다. 화집을 겸한 양장본으로 출간됐지만, 소프트카바의 보급판이 출간된다면 젊은 학생들도 요긴하게 참고할 수 있겠다(문고판으로도 나온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처럼). 저자들의 예술관은 요컨대 '도구로서의 예술'론이다. 이렇게 정리된다.

다른 도구들처럼 예술에도 자연이 원래 우리에게 부여한 한계 너머로 우리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힘이 있다. 예술은 우리의 어떤 타고난 약점들, 이 경우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심리적 결함이라 칭할 수 있는 약점들을 보완해준다. 이 책은 (디자인, 건축, 공예를 포함한) 예술이 관람자를 인도하고, 독려하고, 위로하여 보다 나은 존재가 되도록 이끌 수 있는 치유 매개라고 제언한다.

 

 

예술의 치유력도 그 역량이라면 샤이먼 샤마의 <파워 오브 아트>(아트북스, 2013)도 <영혼의 미술관>과 같이 읽어볼 만하다. 추천사를 붙인 이주헌의 <역사의 미술관>(문학동네, 2011)도 마찬가지다. 덧붙이자면, 최근에 나온 책으론 스벤 스피커의 <빅 아카이브>(홍디자인, 2013)이 미술 관련서로 눈길을 끈다. '마르셀 뒤샹부터 소피 칼까지, 요식주의에서 비롯된 20세기 예술'이 부제. 미술 독자라면 놓치기 아까운 책이다.  

20세기의 예술가들이 아카이브를 어떻게 영감의 원천으로 사용해 왔는가에 대해 통시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인 저자는 아카이브를 영감의 소재로 사용한 20세기 예술가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그 핵심에서 19세기 모더니스트의 아카이브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뒤집는다. 이 책에서 지루하고 단조로운 문서의 조합인 아카이브는 하나의 거대한 영감의 원천으로 떠오른다. 이 책은 다다이스트 몽타주에서부터 20세기 후반의 설치미술까지, 요식주의적 아카이브가 20세기의 예술 관행을 형성한 방식을 탐구한다.

 

정말로 많은 책을 써내고 있는 다산의 저자 자크 아탈리가 이번에 내놓은 것은 특이하게도 전기다. '공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우리에게 빛이 된 23인'이 부제. 목차대로라면 '공자부터 함파테 바까지'다. 함파테 바? 우리에겐 좀 생소한데, '아프리카의 지성'으로 불린 함파테 바(1900-1991)는 아프리카의 작가이자 민속학자다. 기사를 찾아보면,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서재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아마두 함파테 바가 1960년 유네스코 연설에서 했던 말로 인용된다.

 

 

 

국내엔 <들판의 아이>(북스코프, 2008)가 번역돼 있는데(다행히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자전적 성장소설로 보인다.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했지만 영어로도 여러 작품이 번역돼 있다.

 

필시 생경함 때문에 부제에서 빠지게 됐겠지만, 거꾸로 <등대>의 의의는 이런 인물들의 생애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힐데가르트 폰 빙엔' '이븐 루슈드' '마이모니데스' '압델카데르' '슈리마드 라즈찬드라' '발터 라테나우' 등의 이름은 처음 접한다. 일반 독자들에겐 러시아의 여성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도 그런 이름에 속할 것이다(아래 인용에서 '안나 아크나토바'는 '안나 아흐마토바'의 오기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오시프 만델스탐, 안나 아크나토바와 같은 시대 사람이며 러시아 시 영역에서 거대한 인물인 마리나 츠베타예바는 그 저주받은 20세기 전반의 가장 비극적이고 가장 의미삼장한 운명을 살았다.(612쪽)

 

 

츠베타예바의 시집으론 아주 오래전에 나왔던 <오래된 모스끄바의 작은 집들>(고려원, 1994)이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선집으로는 혁명기 러시아 여성시인들의 시들을 모은 <레퀴엠>(고대출판부, 2004)에 일부 시들이 들어 있다('쯔베따예바'로 표기돼 있다). 시는 언어장벽을 고려한다손 치더라라도 그의 산문들과 평전 정도는 소개되면 좋겠다...

 

13.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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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이번주에도 적잖은 책이 나온 만큼 주목할 만한 저자를 고르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 이주에는 범위를 좁혀서 국내 저자로 한정했다. 친숙한 저자 세 명을 골랐다.

 

 

먼저 건축학자 임석재 교수. 올초에 <한국 현대건축의 지평1,2>(인물과사상사, 2013)를 펴낸 데 이어서 가을에는 '한옥의 과학과 미학'을 다룬 <지혜롭고 행복한 집 한옥>(인물과사상사, 2013)을 출간했다. 한옥에 관한 책도 적잖게 나와 있지만 건축분야의 대표 저술가가 바라본 한옥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한옥의 불편함과 관련하여 잘못된 편견이 갖는 문제와 그 배경을 설명한다. 한옥이 결코 불편한 집이 아니며, 설사 일부 불편하더라도 그것이 더 큰 장점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한옥의 불편함에 대해 과학적으로 바로잡는 한편 한옥의 진정한 미학과 장점을 소개한다."

 

 

두번째는 미술사학자이자 미술 에세이스트 이주은 교수. '이주은 벨에포크 산책'이란 부제로 한 미술이야기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이봄, 2013)가 나왔다. 오랜만에 펴낸 단독 저작이 아닌가 싶다. "베스트셀러 <그림에, 마음을 놓다>, <다, 그림이다>의 저자 이주은이 ‘벨 에포크’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저자는 약 100년 전의 문화와 예술,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의 감성을 우리 시대의 눈으로 살펴보면서, 21세기의 거리를 초조한 마음으로 내딛고 있는 우리 자신의 원형을 찾아보려 한다."

 

 

 

세번째는 문학평론가 정여울 씨. 신작 에세이 <잘 잊지 말아요>(알에이치코리아, 2013)가 출간됐다. '당신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특별한 연애담'이 부제. 사랑을 다룬 문학작품들에 대한 정여울식 독서를 한데 모았다. <정여울의 문학멘토링>(메멘토, 2013)이나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21세기북스, 2013)의 책들에서 보여준 대로 독자에게 편하게 다가가는 친근한 말투가 저자의 강점이다. 이번 책의 프롤로그도 이렇게 적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뜨거운 반어법의 씨앗이 숨어 있다. 숨이 끊어질 듯 사랑하면서도 ‘잘 있지 말아요’라고 속삭이고, 편지를 쓰고 싶지만 차마 보내기는커녕 완성할 수조차도 없다. 절대 놓아주고 싶지 않지만 ‘그냥 지금 헤어집시다’라고 선언하고, 그녀를 결연하게 떠나보내면서도 자신의 사랑이 무거운 저울추처럼 그녀에게 평생 매달려 있을 거라는 저주를 서슴지 않는다. 사랑하기에 붙잡을 수 없고, 보낼 수 없기에 차라리 놓아버리는 마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주은 교수와 정여울 평론가는 얼마전 경향신문에서 꼽은 '뉴파워라이터' 20인에도 선정된 바 있다. 이번주에 실린 인터뷰에서 정여울 씨는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모든 글은 내게 편지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면 수신자를 정해놓고 편지를 쓴다고 생각해보는 게 도움이 된다. 대상을 정하면 그 대상에게 할 말은 이미 있는 것이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의 문제만 남는다. 학생들에게는 책에 메모를 하라고 말한다. 책에 메모를 하게 된다면, 그건 그 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뜻이다.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데서 글쓰기가 시작된다.”

그의 글이 갖는 친근함의 비결이겠다...

 

13.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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