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에서 빼놓긴 했지만, 알랭 드 보통과 자크 아탈리도 충분히 주목할 만한 저자다(프리모 레비와 줌파 라이히는 나중에 따로 다루려 한다). 알랭 드 보통이 존 암스트롱과 공저한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문학동네, 2013)과 23인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자크 아탈리의 전기, <자크 아탈리, 등대>(청림출판, 2013)도 최근에 나왔기 때문이다(저자의 이름이 책 제목보다 중요한 저자들이다!).

 

 

<영혼의 미술관>은 한마디로 미술책이다(알랭 드 보통의 2014년 신작은 <뉴스>로 예고돼 있다). '예술은 우리를 어떻게 치유하는가'가 부제인데, 원제가 '치료로서의 예술'이다. 이때 예술은 물론 좁은 의미의 예술, 곧 미술을 뜻한다.

이 책은 예술작품이 우리의 고단한 삶을 보듬어 안고 한편으로 우리 삶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예술의 치유 기능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이 특유의 철학적 글쓰기를 통해 써내려간 독특한 책이다. 알랭 드 보통이 미술사가 존 암스트롱과 대화하며 직접 엄선한 전 시대의 빼어난 예술작품 140여 점을 선보이고 있는 이 책은, 한편으로 알랭 드 보통만의 위트 있고 섬세한 필치가 예술작품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더욱 그 빛을 발한다.

책의 구성은 방법론에 이어서 사랑, 자연, 돈, 정치, 네 파트로 돼 있다. 알랭 드 보통 버전의 '예술이란 무엇인가'라고 할 만하다. 화집을 겸한 양장본으로 출간됐지만, 소프트카바의 보급판이 출간된다면 젊은 학생들도 요긴하게 참고할 수 있겠다(문고판으로도 나온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처럼). 저자들의 예술관은 요컨대 '도구로서의 예술'론이다. 이렇게 정리된다.

다른 도구들처럼 예술에도 자연이 원래 우리에게 부여한 한계 너머로 우리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힘이 있다. 예술은 우리의 어떤 타고난 약점들, 이 경우 몸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심리적 결함이라 칭할 수 있는 약점들을 보완해준다. 이 책은 (디자인, 건축, 공예를 포함한) 예술이 관람자를 인도하고, 독려하고, 위로하여 보다 나은 존재가 되도록 이끌 수 있는 치유 매개라고 제언한다.

 

 

예술의 치유력도 그 역량이라면 샤이먼 샤마의 <파워 오브 아트>(아트북스, 2013)도 <영혼의 미술관>과 같이 읽어볼 만하다. 추천사를 붙인 이주헌의 <역사의 미술관>(문학동네, 2011)도 마찬가지다. 덧붙이자면, 최근에 나온 책으론 스벤 스피커의 <빅 아카이브>(홍디자인, 2013)이 미술 관련서로 눈길을 끈다. '마르셀 뒤샹부터 소피 칼까지, 요식주의에서 비롯된 20세기 예술'이 부제. 미술 독자라면 놓치기 아까운 책이다.  

20세기의 예술가들이 아카이브를 어떻게 영감의 원천으로 사용해 왔는가에 대해 통시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인 저자는 아카이브를 영감의 소재로 사용한 20세기 예술가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그 핵심에서 19세기 모더니스트의 아카이브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뒤집는다. 이 책에서 지루하고 단조로운 문서의 조합인 아카이브는 하나의 거대한 영감의 원천으로 떠오른다. 이 책은 다다이스트 몽타주에서부터 20세기 후반의 설치미술까지, 요식주의적 아카이브가 20세기의 예술 관행을 형성한 방식을 탐구한다.

 

정말로 많은 책을 써내고 있는 다산의 저자 자크 아탈리가 이번에 내놓은 것은 특이하게도 전기다. '공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우리에게 빛이 된 23인'이 부제. 목차대로라면 '공자부터 함파테 바까지'다. 함파테 바? 우리에겐 좀 생소한데, '아프리카의 지성'으로 불린 함파테 바(1900-1991)는 아프리카의 작가이자 민속학자다. 기사를 찾아보면,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서재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아마두 함파테 바가 1960년 유네스코 연설에서 했던 말로 인용된다.

 

 

 

국내엔 <들판의 아이>(북스코프, 2008)가 번역돼 있는데(다행히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자전적 성장소설로 보인다.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했지만 영어로도 여러 작품이 번역돼 있다.

 

필시 생경함 때문에 부제에서 빠지게 됐겠지만, 거꾸로 <등대>의 의의는 이런 인물들의 생애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힐데가르트 폰 빙엔' '이븐 루슈드' '마이모니데스' '압델카데르' '슈리마드 라즈찬드라' '발터 라테나우' 등의 이름은 처음 접한다. 일반 독자들에겐 러시아의 여성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도 그런 이름에 속할 것이다(아래 인용에서 '안나 아크나토바'는 '안나 아흐마토바'의 오기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오시프 만델스탐, 안나 아크나토바와 같은 시대 사람이며 러시아 시 영역에서 거대한 인물인 마리나 츠베타예바는 그 저주받은 20세기 전반의 가장 비극적이고 가장 의미삼장한 운명을 살았다.(612쪽)

 

 

츠베타예바의 시집으론 아주 오래전에 나왔던 <오래된 모스끄바의 작은 집들>(고려원, 1994)이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선집으로는 혁명기 러시아 여성시인들의 시들을 모은 <레퀴엠>(고대출판부, 2004)에 일부 시들이 들어 있다('쯔베따예바'로 표기돼 있다). 시는 언어장벽을 고려한다손 치더라라도 그의 산문들과 평전 정도는 소개되면 좋겠다...

 

13.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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