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기 전 '오래된 새책'들을 더 골라놓는다. 우연히 발견한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비채, 2013) 덕분에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낚시>(비채, 2013)까지 같이 건졌다. <비행공포>가 더 궁금하지만 <미국의 송어낚시>가 먼저 나왔으니 먼저 다룬다.

 

 

<미국의 송어낚시>는 이미 여러 판본으로 출간됐었는데, 제일 처음은 공역서로 나온 중앙일보사판이었다(내가 소장하고 있는 판본이다. 어느 박스에 들어가 있는지 모르지만). 이후에 효형출판에서, 뒤이어 비채에서 다시 나온 것(비채판도 2006년에 나오고 이번에 다시 찍은 듯싶다). 소개에는 "김성곤 교수가 1991년에 번역.소개한 <미국의 송어낚시>의 재출간판이다."이라고 돼 있는데, 2006년 효형출판판의 소개 같다. "김성곤 교수의 두번째 번역을 거친 이 책은, 1960년대 목가적 꿈을 잃어버린 미국 산업사회를 담담하게 패러디하고 풍자한다." 찾아보니 첫 작품인 <빅서 출신의 남부 장군>(1964)보다 먼저 쓰였지만 그보다 늦은 1967년에 출간됐다. <워터멜론 슈가에서>(비채, 2007)가 그 이듬해에 나왔다. 어떤 의의가 있는 책인가.

 

 

미국 생태문학의 대표작이자 히피운동이 꽃피우던 1960년대 미국 청년들의 ‘성경’이었던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브라우티건의 팬임을 자처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유롭고 순수하며 엉뚱하고 즐거운 사고와 기성 소설의 틀을 낱낱이 해체한 듯 독특한 해방감’이라고 표현한 원작만의 개성과 은유를 모던&클래식 시리즈의 판형에 고스란히 담았다. 작품 세계로 독자를 인도하는 소개글을 첨가하고 번역문을 다듬고 수정해 보다 간결하고 읽기 쉽게 했다. 번역을 맡은 서울대학교 김성곤 교수의 자세한 해설과 생전의 작가와 나눈 인터뷰가 송어낚시 여행을 떠나는 독자들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

 

여성의 성애를 다룬 작품으로 70년대 초반 화제가 됐던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1973)도 국내에 여러 차례 출간됐다(원서는 바로 최근에 40주년 기념판이 나왔다). 검색해보니 <공중에 뜬 나의 맨발>(고려원, 1979), <날아다니는 것이 무서워>(문장, 1979), <날기가 두렵다>(민예사, 1979), <날으는 것이 두렵다>(삼문사, 1981) 등이 초기 번역본들이고, 역시나 절판됐지만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게 <날기가 두렵다>(넥서스, 1995)이다. 지금은 존재감이 없는 작가가 됐지만 한때는 아래 책들이 국내에 모두 번역됐었다.

 

 

 

제일 오른쪽 책은 1942년생인 저자가 쉰 살 때 쓴 자서전으로 <내가 두렵다>(넥서스, 1995)로 번역됐다(원저는 1994년에 나왔다). 아래가 젊은 시절의 에리카 종. 현재는 71세로 노년의 삶을 살고 있다.

 

 

여하튼 <비행공포>는 작년인가 도서관과 헌책방을 뒤져본(검색해본) 적이 있는 책이어서 재출간이 반갑다. '걸작'은 아니더라도 '시대'의 표정을 담고 있는 책들을 요즘 구하고 있기도 하고. 작고한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같은 책 말이다.

 

 

 

그러고 보니 <별들의 고향>도 1973년에 나왔다. <비행공포>와 동갑내기인 셈. 1973년생들도 어느덧 중년을 맞았구나... 

 

13. 10. 20.

 

 

 

P.S. 아, <비행공포>를 왜 찾았는지 생각이 났다. 역시나 지젝 때문이었다. <환상의 돌림병>(인간사랑, 2002)에서 그가 인용한 대목(이 또한 절판됐군). 유명한 세 가지 변기 얘기다.

에리카 종이 거의 잊혀진 그녀의 <비행공포>의 시작부분에 나오는 서로 다른 유럽의 변기에 대한 그 유명한 논의에서 비웃는 식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독일의 화장실은 참으로 제3제국의 공포를 알게 해주는 열쇠이다. 이와 같은 화장실을 만들 수 있는 국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1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