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번역과 번역가' 카테고리의 글을 옮겨놓는다. 이디스 그로스만의 <번역 예찬>(현암사, 2014) 출간을 계기로 번역자 공진호 선생과 번역과 번역비평을 주제로 대담을 가진 적이 있다. 대담의 기획자이자 사회자였던 김신식 편집자가 정리한 글이 프레시안에 기사로 올라왔는데, 그중 일부다(전문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40110130653 참조). 공진호 선생은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문학동네, 2013) 등을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프레시안(14. 01. 10) 오역 '지적질'로 그칠 것인가? 더 좋은 독서를 원한다!

 

(...)

 

읽기, 번역 비평의 출발점

김신식 : 번역 비평을 하려면 일단 책을 읽는 게 순서겠죠. "이 책 번역 참 좋네" 혹은 "덕지덕지 붙은 번역투 참 거슬리네" 하는 반응이 자연스레 나옵니다. 성실한 사람들은 원서도 장바구니에 담고 책이 도착하면 비교해가면서 읽어봅니다. 곧 인상을 찌푸리거나 '오~' 하는 반응도 보이겠죠. 두 분이 번역서를 '따져 읽기' 시작했던 때와 그 경험을 밝혀주신다면.

 

이현우 : 저의 경우 러시아문학을 전공하면서 공부하는 방식의 특성상 원서와 번역서를 비교해서 읽는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인문 번역서들을 주로 읽다가 번역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고요. 대학원 시절에 움베르토 에코나 폴 리쾨르를 영어본으로 읽고 번역하는 스터디 모임을 꾸린 적이 있는데, 한국어 번역본이 상당히 안 좋은 경우가 있었어요. 오역이 눈에 띄면 아무래도 더 주의 깊게 읽게 되니까 결과적으론 번역서 '독해력'을 많이 키우게 됐지요.

 

공진호 : 저는 사실 미국에서 살고 공부를 했기 때문에 원서와 번역서 간 비교 독서를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다만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 번역을 하기 시작하고 한국에 와서 번역서를 접했을 때 많은 오역이 눈에 띄더군요. 대개는 제가 잘 아는 작품의 첫 단락에서 제가 아는 것과 다른 내용을 발견할 때가 많았어요.

 

 

 

가령 이런 것입니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열면 첫 문장에 "the clocks were striking 13."이 나옵니다. 시중에 나온 번역을 보면 "괘종시계가 13시를 알렸다" 혹은 "시계는 13시를 치고 있었다"는 식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오웰은 첫 문장부터 자기 소설 속의 세계가 정상적인 세계와 다르다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13시"라고 하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군대에서나 철도 시간표 같은 경우 24시 시스템으로 시간을 말하잖아요. 시계들의 종소리가 13번 울리고 있었다고 해야 하는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을 13번 치는 시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일제히 여기저기서 시계들이 그 종소리를 울리는 광경을 떠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문구나 실수라면 기억을 못해서 알아채지 못할 텐데, 작중 세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구절이라 기억하는 것이죠. 그런 게 의외로 많더란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번역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현우 선생님의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에 소개된 관련 포스트를 접하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론 문학 작품 번역에 문제점이 많다고 느끼는 편입니다.

 

김신식 : 공진호 선생님이 '로쟈의 저공비행' 이야기를 잠깐 해주셨지만, 이현우 선생님은 예전부터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꾸준하게 번역 비평을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또 번역학 관련해 학계 일도 맡으시면서 학술적인 참여도 하셨구요. 일반 독자와 학계 사이를 오가면서 번역 비평이 어떤 모습으로 정리될 수 있는지 고민해보셨을 듯합니다.

 

이현우 : 마땅한 번역 비평의 모델이란 게 아직 정립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번역 비평에 관한 연구논문을 찾아보시면, 비평의 모델을 고민하는 결과물들이 있습니다. 연구자 스스로 논문 안에 번역 비평을 실천해 적합한 형식과 내용을 제시하는 형태가 많죠. 꼭 학계 사람이 아니더라도 블로그 등 일반 독자가 '뜨겁게' 참여하는 번역 비평 공간도 종종 발견됩니다.

 

김신식 : 번역 비평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까.

 

이현우 : 어느 정도 지식은 필요하겠죠. 특히 독해력. 그런데 번역 비평이라고 해서 소수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독자라면 누구나 관여할 수 있는 서평보다는 문턱이 높을 테지만, 어떤 번역이 좋다, 나쁘다 정도를 식별하고 판별할 수 있다면 자기 몫의 번역 비평을 할 수 있는 거지요.

더불어 '번역을 하는 사람'과 '번역을 비평하는 사람'이 꼭 분리돼 있는 것도 아니고, 대립할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사실 현장 번역가들이 가장 훌륭한 번역 비평가가 될 수도 있지요. 가령 영화 쪽에도 영화감독과 영화비평가를 겸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서로에 대한 조언과 건강한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신식 : 현장에 계신 공진호 선생님은 번역 비평을 유익하게 받아들이시나요?

 

공진호 : 공개적으로 어떤 비평을 받아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번역이론을 공부함으로써 제 자신의 번역과 거리를 두는 경우는 있습니다. 거기에는 '번역밥'을 먹고사는 입장에서 유익한 점이 분명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번역한 결과물에 대한 교정 수단으로 삼고 있지요.

 

번역 비평은 '헐뜯음'이 아니다

이현우 : 번역 비평이라 하면 혹자는 꼭 '번역 비판' 심지어 '번역 비난'으로만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는 않지요. 찬사와 경탄도 얼마든지 가능하잖아요? 번역 비평을 오역 시비로만 여기고, 좋은 번역의 가치를 알리고 번역가 노력과 성취를 평가해주려는 비평은 마치 주례사 비평인 양 치부한다면 아쉬운 노릇이죠.

 

상식적인 말이지만, 비평이 옳다/그르다 식의 재단만 일삼는 건 아니죠. 물론 아직은 번역 비평이라고 하면 오역 비판이 주종이 되곤 합니다. 원론적으로 번역이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고 그런 만큼 또 이견을 허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좋은 번역 vs 나쁜 번역'이라는 구도보다는 '좋은 번역 vs 더 좋은 번역'의 구도로 가는 게 훨씬 생산적이고 바람직하죠. 우리 번역문화도 그런 방향으로 가면 좋겠어요.

 

김신식 : 본디 비평이란 요물의 타고난 업보인지 모르겠으나, 날 선 비평문 자체는 읽는 사람에게 속 시원함을 안겨다주기도 하지만, 때론 당사자에게 엄청난 서운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이 서운함이 간혹 오해를 낳으면 물리적이거나 법적인 충돌로 일어나기도 하죠. 이현우 선생님은 몇 년 전 한 인문서의 오역을 짚다가 번역가 당사자에게 고소를 당하신 적도 있습니다. 번역 비평을 둘러싼 사람들의 정서라고 할까요. 그런 걸 한번 생각해본 기회도 되셨을 법한데요.

 
이현우 : 번역 비평을 둘러싼 호오(好惡)가 있습니다. 아까도 이야기를 꺼냈지만 번역 비평은 아직 '오역 지적질'로만 생각되는 듯해요. 여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번역자나 번역 비평자의 입장을 같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가령 이런 거죠. 번역자 입장에서는 일부 오역에 대한 비판이 작은 잘못은 크게 부풀린다는 인상을 받을 거예요. 1퍼센트의 흠이 99퍼센트의 노력을 가려버린다면 부당하고 억울한 일일 테니 정서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죠. 물론 그렇더라도 자신이 잘못 옮긴 부분이 있다면 흔쾌히 수용하고 정정하는 게 더 성숙한 태도이긴 합니다. 번역에 대한 신뢰감도 심어줄 수 있고요.

 

한편으론 독자 입장도 고려해야 합니다. 어떤 상품에 하자가 있으면 '리콜'을 요구하는 게 당연하지만, 책은 좀 특수합니다. 쇄를 다시 찍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상식 이하의 번역서라면 반품하면 될 테지만(그런 반품이 사실 가능하진 않지요. 내용상의 파본이라고 해서 교환해주진 않으니까요), 부분적인 오류의 문제라면 저로선 독자들끼리라도 교정해서 읽자는 생각입니다. 만약 1퍼센트의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걸 고쳐서 읽자는 겁니다. 오역 문제를 시비 거리로만 끝낼 게 아니라, 더 나온 번역문화, 독서문화로 나아가는 계기로 만드는 게 생산적이죠. 출판사나 역자는 한 번 더 확인해보는 계기가 될 터이고, 독자로선 번역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지 가늠해보면서 읽게 되겠죠.

 

공진호 : 번역 오류가 지적되어도 잘 팔리는 책은 여전히 잘 팔리더라고요. (웃음)

 

이현우 : 제가 들으니 인문서의 경우 구매 독자의 5퍼센트 가량이 완독한다고 해요. 구매 독자와 실제 독자 사이에 차이가 있는 거죠. 그 5퍼센트 독자 중에도 책의 내용을 꼼꼼히 따져가면서 읽는 독자는 극소수일 성싶어요. 번역 비판이나 비평은 그런 제한된 독자들만의 관심사처럼도 보입니다. 그렇더라도 좋은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요건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죠. 인문출판에서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인 상황에서 좋은 번역서, 신뢰할 만한 번역서가 나오게끔 해줄 수 있는 분위기나 문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죠. 이를 위해서라도 '좋은 번역을 위한 감시' 같은 번역 비평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신식 : 번역 비평이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많겠지만 그래도 '오역'을 지적하고 더 적합한 번역을 찾아보는 과정을 기본적으로 배제할 순 없을 듯합니다. 번역 비평은 원문과 번역문이라는 두 텍스트가 있는 상황에서 '오류' '잘못됨'이라는 부분을 드러낼 수밖엔 없을 듯한데요.

 

 

 

공진호 : 오류와 오역은 좀 더 달리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대하는 반응도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자신의 원작보다 나은 번역을 했다고 말한 두 문학 번역가가 있습니다. 그레고리 라밧사와 이디스 그로스먼. 둘 다 당대 최고의 남미 문학 번역가로 불립니다.

 

 

그로스먼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영어로 옮길 때였어요. 번역을 하고 나서 그로스먼은 세르반테스의 '실수에 애착이 간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세르반테스는 경제적으로 늘 쪼들리고 이 때문에 혹사에 시달리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초판본에 오류들이 눈에 띄었나 봐요. 어떤 번역가는 역사상 가장 부주의하게 쓰인 걸작으로 <돈키호테>를 꼽기도 했습니다. 허나 그로스먼은 세르반테스의 부주의를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주목하고 원본에 다가가기 위한 친근한 정서로 해석했죠. 이처럼 오류 혹은 오역도 때론 작품의 일부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이현우 : 원작의 오류를 어떻게 교정해서 옮길 것인가, 그대로 옮길 것인가, 하는 것도 흥미로운 문제지요. 공진호 선생의 말처럼 문학 작품상에서 오류와 오역은 작품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문서 번역, 특히 이론서 번역은 사정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이론서 번역은 쉽게 말하자면 진위 여부를 따져야 하니까요. 마땅한 사례는 아니지만, 가령 슬라보예 지젝을 읽다보면 헤겔 철학이나 라캉 정신분석학의 용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아직 합의가 돼 있지 않은 용어들이 많습니다. 같은 개념을 번역서마다, 번역자마다 달리 옮기게 되면 일반 독자로선 좀 당혹스럽게 되죠. 주이상스(jouissance)라는 단어도 영어로는 쾌락(pleasure)과 구분해서 'enjoyment'라고 옮기는데, 우리말로는 '주이상스' '향유' '향락' '희열' 등으로 다양하게 옮겨지고 있어요.

 
스피노자나 칸트, 들뢰즈의 철학 개념들도 마찬가지로 번역어상으로는 아주 복잡합니다. 교통정리가 필요할 정도에요. 그렇게 되면 사실 소통에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지요. 문학적 표현의 번역에서는 유연함이 발휘될 수 있지만 인문서 번역에서는 개념을 어느 정도 고정해주어야 하는데, 그게 제각각이라면 독서에 부담이 됩니다. 번역자들도 이런 점은 좀 감안해주었으면 싶어요.

 

(...)

 

14.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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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고전 가운데 하나가 번역돼 나왔다. 피터 버거와 토마스 루크만의 <실재의 사회적 구성>(문학과지성사, 2014). 26년 전에 들은 사회학 개론 시간에 책 이름을 처음 접한 듯싶으니까(피터 버거란 이름도 그때 알았지만) 정말 오래 되긴 했다. 원서는 1966년에 나왔다('실재' reality'의 번역이다). 부제는 '지식사회학 논고'.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회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피터 버거와 현상학을 통해 사회학을 재정립하고자 했던 토마스 루크만이 지식사회학을 재정립하고 나아가 사회학을 보는 시각을 뒤바꿀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상학적 접근법을 기반으로 기존의 사상, 이데올로기, 세계관을 대상으로 삼던 지식사회학을 혁신하고, 일상생활의 지식에 기대어 사회와 인간 정체성의 구성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1966년 그 결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20세기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사회학 고전이자, 18개국에 번역되어 가장 많이 읽힌 사회학 서적 중 하나로 꼽힌다.

 

피터 버거의 책으론 <사회학에의 초대>(문예출판사, 1995)와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책세상, 2012)와 함께 사회학 입문 3종 세트로 묶음직하다. 예비사회과학도들이 입학을 앞두고 읽어볼 만하겠다(좀 어려우려나?) 원서는 펭귄판으로도 나와 있다.

 

 

한편 토마스 루크만의 또다른 주저는 알프레드 슈츠와 공저한 <생활세계의 구조>다. 제목에서부터 후설 현상학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내주는데, 슈츠는 현상학적 사회학 연구의 가장 대표적인 학자다. <사회세계의 현상학> 같은 주자가 아직 소개되지 않았지만, 사회학이론서에서 자주 접하던 이름이다.

 

이번주 신간 중에는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국가 간의 정치>)나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저자로서의 인류학자>) 등의 책도 보인다. 내주에 다룰 '이주의 고전' 후보들이다...

 

14.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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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그의 시대 이덕일의 역사특강 1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4년 1월
절판


정도전이 살았던 쉰여섯 해는 현재의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역사는 항상 내적 문제와 외적 문제를 복합적으로 봐야 하는데, 내적으로는 극심한 빈부격차, 즉 사회양극화가 심각했습니다. 소수의 구가세족(舊家勢族)이 나라의 모든 재화를 독차지했습니다. 그래서 조준이 토지개혁 상소문에서 "불쌍한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개천과 구덩이에 빠져 죽는다"라고 말한 것처럼 농민 대부분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들판에 달라붙어 개미처럼 일해도 제 식구는커녕 제 한 입 건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고려 지배층이 이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왕조가 망하고 다른 왕조가 들어선 것입니다.-8-9쪽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떻습니까? 신문보도를 보니 '재활용폐자원 매입세율 공제율'을 약 50퍼센트로 낮춘다는 세법 개정안이 발표되었더군요. 약 200만명으로 추정되는, 폐지나 고물을 주워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겠다는 뜻입니다. <고려사>'식화지(食貨志)'에는 "한 땅의 주인이 대여섯 명이 넘기도 하여 전호(소작인)들은 세금으로 소출의 8-9할을 내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작인들에게 소출의 8-9할을 뜯어가던 고려 사회와 한달에 20-30만원 버는 폐지 줍는 빈민층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한국사회는 과연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까요? 고려는 이런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했고, 그 결과 정도전 같은 인물이 나와서 판을 엎었던 것입니다. -9-10쪽

'By the people', 즉 의민(依民)정치가 제도적으로 불가능했던 왕조시대에는 'For the people', 즉 위민(爲民)의 관점에서 인물을 바라보고 평가해야 합니다. 누가 더 백성을 위하는 사상을 가졌고, 실천에 옮겼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정도전은 토지 문제, 즉 당시의 경제체제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위민의 정치가였습니다. 그의 위민의 시선이 왜 노비제도의 모순에는 가 닿지 못했는지 아쉽습니다만, 혁명적인 토지제도 개혁만으로도 그는 한국사에서 위민정치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단순히 정도전의 일생만 바라보지 않고 성리학과 토지 문제까지 천착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조선이 위화도 회군 세력의 무력에만 의지해서 개창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념, 새로운 경제체제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개국했다는점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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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어젯밤부터 낌새가 있었지만 며칠 한파가 지속된다니 건강에 유의들 하셔야겠다. 사실 북미 지역을 강타하고 있다는 '살인 한파'에  비하면 애교스런 수준이지만. 영하 20도 이하가 계속되고 있고, 체감온도는 심지어 영하 70도까지도 떨어진 곳도 있다고 한다. 기록적인 한파로 2억명이 추위에 시달린다고 하니 얼핏 <설국열차>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기상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를 한파의 원인으로 지목한다는데, 지구 온난화로 편서풍 제트기류가 약해져 극지의 회오리바람(폴라 보텍스)이 북미까지 내려와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방패막이 약해지면서 시베리아성 추위가 남하한 거라는 얘기다.

 

 

 

기후를 키워드로로 삼자니 최근에 나온 <기후문화>(성균관대출판부, 2013)가 떠오른다. <기후전쟁>(영림카디널, 2010)으로 처음 소개됐던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하랄트 벨처가 공저한 책이다. 부제는 '기후 변화와 사회적 현실'.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기후 변화에 대한 연구는 아주 오랫동안 기상학자· 해양학자· 빙하학자들만의 전담 영역이라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아주 ‘인간적인 맥락’에서 초래되었던 기후온난화의 여파 속에서, 기후 변화가 몰고 오는 영향력은 그저 자연과학적이거나 기상학적인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금도 전 지구적으로 관측되는 어마어마한 기후(또는 자연) 변화 앞에서 인간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새로운 도전들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이젠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문화학· 사회학· 철학· 역사학· 법학· 경제학· 문학· 고전 문헌학· 정치학· 저널리즘 등 일반적이고 관습적인 기후 연구의 맥락 외부에 있던 다양한 분야의 필진들이 기후 변화를 둘러싼 다양한 평가들을 분석하면서, 기후 변화의 문제가 어떤 사회적 차원을 획득하는지 그리고 기후 변화가 어떤 이유에서 문화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 문화적 담론 차원에서 기후 변화를 입체적으로 관찰해 낸 결과다.

<기후전쟁>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다룬다. '기후변화가 불러온 사회문화적 결과들'이 부제. 우리의 경우도 한파로 노숙자들이 동사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데, 기후전쟁이 갖는 계급전쟁적 의미다.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인해 개별 국가와 사회는 물론 전 지구적으로 심각한 갈등이 야기되고, 변화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은 폭력을 통해 표출되고 있으며, 인간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에는 무기력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식수와 토지를 둘러싼 분쟁, 인종청소, 빈곤국에서 계속되는 내전 및 끝없는 난민들의 행렬 등 이미 현실이 되어 버린 상황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상기후는 더 이상 자연과학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ㆍ사회ㆍ문화적 문제이기 때문에 기후변화가 계급, 종교적 신념, 그리고 자원에 대한 문제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인간의 공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요컨대 기후가 '문화'이고 '전쟁'이라는 것. <기후전쟁>에 대해 이진우 에너지기후 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이렇게 평했다.

저자는 기후 변화에 사람들이 둔감해지고, 이를 단지 자연현상으로만 인식하게 되는 순간 기후 변화가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간파한다. 기후 변화를 야기한 것은 우리 삶의 방식과 현재 사회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화에 대한 반성’이라는 시각에서 에너지 집약 방식의 서구형 발전 모델이 아니라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추위에 떠는 와중에도 그런 시각의 전환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는 하루가 됐으면 좋겠다...

 

14.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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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귀가길에 보니 경비실에 택배가 잔뜩 쌓여 있어서 카트를 들고 다시 내려갔다 올라왔다. 주된 짐은 출판사에서 보내온 저자용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현암사, 2014)다. 그러고 검색해보니 알라딘에도 입고가 된 모양이다. 이 책은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를 포함해서 단독 저작으론 여덟 번째 책이다. 표나게 많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다고 할 수만도 없게 됐다. 그간 펴낸 책들로만 리스트를 만들어놓은 적이 없기도 해서, 겸사겸사 한데 묶어놓는다. 봄에는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20세기>도 나올 예정이어서 올해 최소한 열 권을 넘길 듯싶다. 주마가편이라고, 한번 더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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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
이현우 지음, 조성민 그림 / 현암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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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독서-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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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 로쟈의 책읽기 201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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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 세계명작을 고쳐 읽고 다시 쓰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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