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러시아문화 페스티벌이 개최된다고 한다. 오늘자 한국일보가 전하는 소식이다. '올 가을 러시아 예술이 몰려온다'란 제하에 오미환 기자가 정리해주고 있는 내용을 옮겨온다. 대신에 기사는 축제 홈페이지를 참조하여 몇 가지 보충하면서 재구성했다.

 한국일보(06. 07. 27) 올 가을 러시아 예술이 몰려온다

-러시아 문화의 오늘을 소개하는 대규모 페스티벌이 올 가을 서울과 성남에서 열린다. 한국과 러시아 수교 기념일(9월 30일)을 앞두고 9월 15일부터 열흘 간 ‘한-러 교류축제’라는 이름으로 음악, 무용, 오페라, 연극 공연과 미술 전시회가 이어진다.

-러시아는 광대한 영토 만큼이나 문화의 폭과 깊이가 대단한 나라다. 푸시킨,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 거인들로 우뚝한 문학 뿐 아니라 발레, 오페라, 음악, 미술, 영화 등 여러 분야에서 찬란한 전통을 지닌 예술 강국이다.

-이번 축제는 러시아의 과거가 아닌 현재에 초점을 맞춰 1980년대 말 개혁 개방 이후 지금까지, 즉 오늘의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화를 집중 소개한다. 성남아트센터를 중심으로 열리는 총 6개의 공연 중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올가 포나의 첼랴빈스크 현대무용단만 빼고 다 한국이 첫 방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올해 탄생 100주년인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나 또한 가장 기대를 갖게 되는 작품이다). 한국 초연인 이 작품은 대담한 음악과 에로티시즘 때문에 스탈린 시절 10년간 공연이 금지됐다. 줄거리는 부자와 결혼했지만 권태와 억압에 짓눌린 한 여인의 일탈이 불륜과 살인을 거쳐 자살로 끝난다는 내용이다. 공연예술 분야에서 러시아 최고 영예인 황금마스크 상을 11번이나 받은 헬리콘 오페라단이 가져와서 선보인다.

 

 

 

 

(*)이 오페라의 원작이 이전에 소개한 바대로 얼마전에 번역된 레스코프의 소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소담, 2006)이다. 헬리콘 오페라단?(러시아어로는 '겔리콘') "러시아 국내외에서 60 여 편이 넘는 오페라를 연출하며 ‘러시아 국민 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은 드미트리 버트만 . 그가 러시아의 젊고 재능있는 배우들과 음악가들을 모아 창단한 오페라단이 헬리콘 오페라단"이란다. "1990 년 4 월 10 일 에 창단한 이 헬리콘 오페라단은 7 명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350 명이라는 대규모로 성장한 무서운 오페라단이다 . 한 해 200 회 이상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며 각각 다른 분야에서 11 개의 황금 마스크상을 수상하였고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까지 인기와 호평을 동시에 누리며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홈피는 http://www.helikon.ru/)  

(*)이번 공연의 의의: "쇼스타코비치의 대표적인 오페라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 는 인간 내면의 본성을 발가벗긴다는 점에서 기존의 고전 오페라와는 상당한 차이를 느낄 수 있으며 다양한 음악적 표현기법이 생동감을 불어넣어 오페라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다. 쇼스타코비치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의 대미 가 될 이번 공연은 한국 초연 이자 러시아 오페라단이 노래하는 러시아 오페라 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보기 드문 무대가 될 것이다." 참고로 오페라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제1막 - 남편 지노비는 집을 비우고

제1장 지노비의 젊은 부인 카테리나는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이도 없고, 남편은 지루하고, 날로 쌓여가는 집안일은 카테리나를 미치게 한다. 시아버지 보리스는 결혼한 지 5 년이 지났음에도 자식 하나 낳지 못한다며 카테리나를 못마땅해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지노비가 집을 잠시 떠나있게 되고 보리스는 카테리나에게 정절 맹세를 강요한다. 카테리나는 일꾼 세르게이에게 일탈적 매력을 느끼는데...

제2장 요리사 악시냐는 새로 들어온 하인 세르게이에 대한 소문을 카테리나에게 전한다. 전주인과의 불륜으로 쫓겨나 이리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세르게이는 집안 하인들과 작당하여 악시냐를 겁탈하려 하는데 이 장면을 카테리나가 목격한다. 이를 말리려던 카테리나는 세르게이와 크게 다투는데 강하게 자신을 누르는 그에게 카테리나는 일탈적 매력을 느낀다.

제3장 세르게이는 책을 빌리러 왔다는 핑계를 둘러대며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고 몸이 한참 달아있던 카테리나는 세르게이와 돌이킬 수 없는 뜨거운 밤을 보낸다.

제2막 - 불륜을 들킨 카테리나와 세르게이는 보리스를 독살한다

제4장 며느리에게 음흉한 생각을 품고 있던 보리스는 카테리나의 방 주위를 서성이다 그녀의 방에서 나오는 세르게이를 목격하고는 분노를 터트린다. 보리스는 세르게이를 그 자리에서 붙잡아 채찍으로 마구 두들겨 패고는 창고에 가두어 버린다. 허기를 느낀 보리스는 카테리나에게 음식을 좀 가져오라며 시키는데 앙심을 품은 그녀는 쥐약을 탄 버섯요리를 가져다 먹인다. 시아버지를 독살한 카테리나는 바로 창고로 달려가 세르게이를 풀어준다. 집으로 돌아온 지노비 역시 그들에게 살해당하는데...

제5장 장례식을 가식으로 치른 카테리나는 마음 놓고 세르게이와 한 침대를 쓰며 지내지만 보리스의 혼이 그녀를 가만두질 않는다. 집으로 돌아온 지노비는 아내의 부정한 행각 앞에 카테리나를 책망하며 몰아세운다. 나름 화가 난 그녀는 세르게이와 합세하여 지노비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포도주 창고에 숨겨 버린다.

제3막 - 많은 죄악에도 불구하고 카테리나와 세르게이는 결혼식을 올린다

제6장 남편이 실종된 것으로 소문을 낸 카테리나는 마음을 짓누르는 죄의식에도 불구하고 세르게이와의 결혼식을 거행한다. 결혼식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한 소작농이 정신없는 틈을 타 포도주를 훔쳐 마시려고 창고에 몰래 들어간다. 창고에서 지노비의 시체를 발견한 그는 기겁하여 경찰서로 달려간다. 결혼식장에서 체포당한 카테리나와 세르게이.

제7장 신고를 받은 경찰은 바로 결혼식장으로 달려오지만 초대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구에서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제8장 한편 포도주 창고 자물쇠가 부서져 있는 것을 발견한 카테리나는 집안의 돈을 챙겨 달아나려고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카테리나와 세르게이는 살인죄로 실형 선고를 받는다.

제4막 - 수용소로 끌려가는 중 세르게이는 여자 죄수 소네트카에게 추파를 던지는데

제9장 카테리나와 세르게이는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 가고 있다. 카테리나는 보초를 매수하여 세르게이를 어렵게 만나지만 그는 이미 카테리나에게 싫증이 날만큼 나있다. 세르게이는 새로 알게 된 소네트카의 환심을 사려고 카테리나를 꾀어 그녀의 양말을 빼앗아 낸다. 소네트카가 춥다며 따뜻한 양말 한 켤레를 구해다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랑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카테리나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저주를 느끼며 소네트카를 급류 속으로 떠밀고 스스로도 몸을 던진다. 두 여인의 익사를 뒤로 하고 죄수들은 수용소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유럽에서 1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린 여성 2인조 팝 그룹 타투(t.A.T.u), ‘러시아의 비틀스’로 불리는 러시아 최초의 록 밴드 ‘더 플라워즈’(The Flowers)의 첫 내한도 예정돼 있다.

 

 

 

-2000년에 결성된 타투는 2003년 발표한 음반 ‘All The Things She Said’ 로 영국에서 4주 연속 싱글 차트 1위,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3위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고, 우리나라에서도 플래티넘의 판매고를 올렸다(*타투의 음반은 이미 국내에도 여러 장 나와 있으므로 더 이상의 소개는 불필요하겠다(http://www.youtube.com/watch?v=C37TVelsPiQ). 사실 노래보다는 동성애 코드와 섹스어필로 유명해진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1969년 결성된‘더 플라워즈’는 진부한 구 소련의 팝을 깨부순 혁명가들. 서구사상과 히피를 추종한다는 이유로 강제 해산되기도 했던 이 팀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언론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고, 러시아 밴드로는 처음으로 세계 순회공연을 했다(*홈피는 http://www.flowersrock.ru).

-이번 축제에서 이들은 한국인 3세로 러시아 록의 영웅인 빅토르 최 추모공연을 한다(*과문한 탓에, '더 플라워즈'(러시아어로는 '츠베뜨이')의 노래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러시아의 비틀즈? 하긴 꽃이 있으면 벌레도 끼는 법이지. 아무튼 '빅토르 최' 추모공연이라니까 구미가 당긴다. 성남아트센터가 어디에 있는 건가?)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 미술을 소개한다. 이밖에 그림자극과 피아노 라이브 연주를 결합해 환상적 무대를 연출하는 러시아 극단 뗀의 ‘그림자 극장’(*Ten'이 러시아어로 그림자란 뜻이다), 올가 포나의 첼랴빈스크 현대무용단의 최신작 공연, 모스크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팝스콘서트 등이 준비돼 있다(축제 홈페이지는 http://www.russianfestival.co.kr)

 

 06. 07. 27.

P.S. 중앙일보의 이장직 음악전문기자가 쓴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중앙일보(06. 08. 04) '스탈린 열 받게' 한 바로 그 오페라

-러시아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75)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오페라 대표작 '므첸스크 (마을)의 맥베스 부인'이 세계 각지에서 대거 상연된다. 9월 30일~10월 17일 일곱 차례 무대에 올리는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 프로덕션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2006~2007년 시즌에 토론토 캐나디언 오페라(8회), 제네바 그랑 테아트르(6회), 모스크바 볼쇼이 오페라(3회), 라트비아 국립 오페라(3회), 비스바덴 오페라(1회)가 '맥베스 부인'에 도전한다.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이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키로프 오페라단이 20일 런던 프롬스 축제, 내년 2월 4일 워싱턴 케네디센터에서 콘서트 형식으로도 상연한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마침내 국내 초연된다. 내달부터 열리는 '2006 한러교류축제'(중앙일보.SBS프로덕션 공동주최)의 일환으로 내한하는 모스크바 헬리콘 오페라단의 무대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맥베스 부인'을 번안한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이 원작. 억압과 굴종의 굴레에서 해방을 갈구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다.

-1934년 1월 22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초연 당시 2년간 180회나 상연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2년 후인 36년 1월 소문을 듣고 궁금해 하던 스탈린이 당 간부들을 거느리고 직접 객석에 나타났다. 이틀 후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가 '음악이 아닌 혼란'이라는 제목의 비판 기사를 게재했다. '불온한 좌파가 만들어낸 불협화음'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남편을 살해하는 장면이 암살의 공포에 떨고 있던 스탈린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스탈린은 자신의 모습이 등장인물 중 경찰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를 신호탄으로 러시아 작곡계에는 검열의 회오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 유명한'상연 금지'조치는 러시아 음악사에서 가장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남아있다.

-스탈린이 사망한 지 10년 후인 1963년 1월 8일 모스크바 스타니슬라브스키 극장에서 상연된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바'는 이 작품의 수정판이다. 음색의 급격한 대조, 불협화음,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을 상당히 순화시킨 것이다. 침실에서 벌어지는 여주인공의 유혹 장면의 리얼리티도 훨씬 반감됐다. 소련 당국의 상연 허가를 받아내기 위해 자기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의 팔 다리를 잘라내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만큼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는 얘기다.

-헬리콘 오페라단은 볼쇼이 오페라나 마린스키 극장 같은 유명 단체는 아니지만 러시아 최고 권위의 황금가면상을 11회나 수상한 실력파 오페라단이다. 연출가 드비트리 버트만이 젊은 예술가들을 모아 1990년에 창단했다. 단원 7명으로 출범했지만 지금은 350명 규모로 급성장했다. 무엇보다도 헬리콘 오페라단의 장점은 기존 레퍼토리의 현대적 재해석이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전역을 누비면서 러시아 오페라의 진수를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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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저널, 혹은 좌파저널 '레디앙'에 가끔 들른다(유감스럽게도 '레디앙Redian'이란 신조어(?)는 진보적이지도 좌파적이지도 않다. 화장품 이름 같기도 한 그 단어가 내게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하는 것은 '폼'이다). 두어 번 기사를 옮겨온 것 같기도 한데, 이번에 옮겨오고자 하는 건 윤재실 기자의 '세계의 사회주의자' 연재 중 에리히 프롬(1900-1980)에 관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에서부터 시작된 이 연재는 프랑스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유에까지 이르렀는데, 기자의 품팔이에서 나온 거라고 보기엔 너무 발이 넓어서 무슨 '출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한다(기밀사항일까?). 여하튼 읽어볼 만한 연재이다. 프롬의 책들도 한번쯤 챙겨둘 겸 읽어보기로 한다. 기사의 원타이틀은 '인간적 사회주의 꿈꾼 정신분석학자'인데, 보다 단순하게 '에리히 프롬과 사회주의'로 고쳐단다.  

레디앙(06. 07. 18) 인간적 사회주의 꿈꾼 정신분석학자

"교회는 아직도 대체로 내면의 해방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진보주의자들에서 공산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정당들은 외부의 해방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유일하게 현실적인 목표는 총체적 해방인데, 이러한 목적을 근본적(혹은 혁명적) 휴머니즘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존재의 기술> 중에서)

"휴머니즘적 사회주의는…최대 이윤의 욕구를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장과 자본의 비인간적 힘의 법칙에 따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스스로 계획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생산하는 사회 체제이다."(<불복종에 관하여> 중에서)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의 책으로 유명한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우리에게 심리학자 혹은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만 알려져 있다. 신프로이드 학파의 거장이었던 프롬이 마르크스의 초기사상과 프로이드의 이론을 융합해 인간주의적인 사회주의를 꿈꾼 인물이었고 미국 사회당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폴 로빈슨이 <프로이트 급진주의>에서 꼽고 있는 프로이트 좌파는 빌헬름 라이히, 게자 로하임, 허버트 마르쿠제 등이다. 신프로이드주의 혹은 프로이트 수정주의는 정신분석학의 계보에서 보자면 '프로이트 우파'에 해당한다. 프롬은 포지션은 '프로이트 우파 +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이다. 그의 기본적인 입장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편이다).

 

 

 

 

-프롬은 1900년 3월23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태인 가정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보모는 독실한 유태교 신자였다(*<정신분석과 종교>가 나올 만한 배경이다). 아버지인 나프탈리 프롬은 와인상을 하는 중산계급이었다. 프롬은 1918년 프랑크프루트 대학에 입학해 2학기 동안 법학을 공부한 뒤 하이델베르크대로 옮겨 사회학을 공부했다. 1922년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학위논문은 "유태교의 두 종파에 관한 사회심리학적 연구"였다. 그때까지 유태교가 프롬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1926년에 그는 유태교와 작별한다. 

-그후 베를린정신분석학연구소에서 정신분석을 연구하던 그는 1931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활동근거지이던 프랑크푸르트사회조사연구소에 참여하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예상치 못했던 러시아혁명이 성공하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중심지였던 독일에서는 사회주의 운동이 퇴조하면서 독일의 좌파지식인들은 곤경에 빠졌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돌파구 중의 하나는 "과거의 오류를 규명하고 새로운 행동을 강구하기 위해 마르크스 이론의 근본적인 토대를 재검토하는 것"이었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좌파지식인 서클이었다.



-1923년에 정식으로 설립된 '프랑크푸르트사회조사연구소'는 초기에는 사회변혁의 주도세력으로 노동계급을 상정했지만 "산업사회의 기술적 합리화가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거세했다"고 판단하고 현대사회의 문화적 상부구조를 분석하는 것으로 연구활동의 초점을 옮긴다. 이를 위해서는 정신분석학의 도입이 요구됐다. 이에 따라 프랑크푸르트학파는 1931년, 3명의 정신분석학자를 맞아들였는데 그들은 칼 란트아우어, 하인리히 멩, 그리고 에리히 프롬이었다.

-프롬이 합류함으로써 프랑크푸르트학파는 프로이드와 마르크스의 융합을 본격적으로 시도할 수 있었다. 1932년 '프랑크푸르트사회조사연구소'의 기관지 <사회연구>지에 '정신분석학적 사회심리학의 방법과 과제'를 발표하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프롬은 1933년부터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이 무렵 독일에서는 나치가 득세를 하기 시작했고 독일의 많은 좌파 지식인들처럼 프롬도 망명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먼저 스위스 제네바로 갔다가 1934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콜럼비아대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교류를 지속했던 그는 1939년 프로이드 해석과 평가에 관한 연구소와의 의견차이로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결별했다. 프롬은 이후 정통프로이드주의와도 멀어져 갔다.



-서구의 자본주의도 소비에트의 공산주의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믿었던 프롬은 이때부터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 주목하며 인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주의 이론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소외론의 마르크스이다). 1955년 펴낸 <건전한 사회>는 이러한 그의 사회변혁의 이론과 사상이 제시된 책이다.

-프롬은 자본주의도 소비에트식의 공산주의도 인간성을 짓밟고 관료적 사회구조를 만들어 ‘소외’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데 공통점이 있다고 봤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에 담겨 있는 사상을 더욱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프롬의 생각이었다. 프롬의 사회변혁방법론은 '개인의 내적 변화를 통한 자기 해방과 사회변혁이 동시에 추진돼야한다'는 것과 '사회변혁운동이 정치적 영역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영역에서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런 생각은 <마르크스의 인간개념>, <환상의 사슬을 넘어서>로 이어졌고, 이론뿐 아니라 실천의 영역에서 그는 그가 발딛고 있는 미국에서 사회주의 정당에 몸담으면서 그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프롬은 매카시즘이 기승을 부리던 1950년대 중반 미국 사회당에 가입해 활동을 했고 베트남전 시기에는 평화운동, 반전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반전을 기치로 내걸고 민주당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의 예비후보 경선을 도왔던 프롬은 닉슨의 당선 이후 정치적 활동을 접었다.



-1965년 멕시코국립자치대학(UNAM)에서 정년 퇴직한 뒤에도 <소유냐 존재냐>, <희망의 혁명>등 7권의 책과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프롬은 1980년 3월18일 스위스에서 사망한다. 그가 사망한 뒤 1981년 <불복종에 관하여>가 출간됐는데(*이 책은 번역돼 있지만 이미지가 뜨지 않는다) 이 책에 실려있는 미국 사회당의 강령 초안은 민주노동당의 강령과 비슷한 점이 많은 것이 흥미롭다.

06. 07. 26.

P.S. 프롬의 저작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나 <건전한 사회>가 일찌감치 세계사상전집 등에 들어가 있었을 만큼 국내에는 많이 소개되었고 많이 읽혔다(짐작에, <소유냐 존재냐>나 <사랑의 기술> 같은 책들이 그의 베스트셀러이다. 제목이 '선정적인' 만큼 가장 많은 종의 번역서들이 나와 있기도 하다. 대입논술문제로도 나오고). 그건 그의 주장이 그만큼 상식적이라는 뜻도 된다.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롬에 관한 저작은 아주 드물다. 박홍규 교수의 <우리는 사랑하는가 - 에리히 프롬의 생애와 사상>(필맥, 2004)과 박찬국 교수의 <에리히 프롬과의 대화>(철학과현실사, 2001)가 국내 저자가 쓴 그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길잡이로서 유일하다. 번역서로는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2000년에 독일에서 출간된 논문집을 옮긴 <에리히 프롬의 현대성>(영림카디널, 2003)이 전부이다. 그걸로 충분하다면 사실 아주 경제적인 노릇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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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06. 07. 23)에서 학술동향 기사를 옮겨온다. 이정모(성균관대 심리학과) 교수가 쓴 '인지과학과 제3의 움직임'이 기사의 제목이고 '뇌·신체·환경의 종합…정서와 의식 넘어선 움직임'이 그 부제이다. 인지과학쪽 책들을 교양수준으로는 갖고 있고 더러 읽어본지라 '업계'의 동향에 대해서 한번쯤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로 여겨진다.

 

 

 

 

-마음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탐구에서 등장한 인지과학이 최근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 동안의 인지과학을 지배해온 데카르트적 존재론의 패러다임을 벗어나려는 그러한 움직임이다.

-1950년대 후반에 등장한 인지과학은 그동안 두 단계의 중요 패러다임을 거쳐 왔다고 할 수 있다. 첫 단계는 마음에 대한 컴퓨터 은유를 바탕으로 한 고전적 인지주의 또는 계산주의의 시기로, 인간 언어의 추상적 구조에 바탕하여, 심적 내용은 표상, 심적 과정은 계산으로 개념화하여 마음의 본질을 탐구한 시기였다. 둘째 시기는 이러한 고전적 인지주의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등장한 연결주의와 신경과학의 전개다. 이 시기에는 생물적 뇌의 추상적 구조(연결주의)와, 실제적 구조(신경과학)에 바탕하여 마음을 탐구하되, 언어의 통사적 구조에 바탕한 표상주의는 배격하고, 기호(상징) 이하 수준의 계산, 신경적 계산을 강조한 시기였다.

 

 

 

 

-그러나 전통적 인지주의는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하드웨어의 중요성을 격하시켜 뇌의 탐구를 소홀이 하였다. 심신동일론 관점에 서있다고 볼 수 있는 연결주의나 현재의 신경과학도 근본적으로는 현상을 경험하는 주체와 그 대상인 객체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데카르트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두뇌=마음’의 개념 틀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인지과학에서 제3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심신이원론이건, ‘두뇌=마음’의 심신동일론이건 현대 과학에서 지지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마음은 두뇌 내부의 작용만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두뇌, 신체, 그리고 세계가 연결된 집합체 상의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거슬러 올라가면, 윌리엄 제임스, 듀이, 로티 등의 실용주의 철학자들과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의 대륙의 철학자들이 이미 제기한 것이었지만, 현대 인지과학에서 이러한 주장의 타당성을 먼저 강하게 드러내준 사람들은 철학자들보다는 인공지능 및 로보틱스 연구자들 그리고 발달심리학자들과 신경과학자들이었다.

-인공지능학자인 로드니 브룩스(Rodney A. Brooks, 사진)는 1990년대 초에 그 당시를 풍미하던 내적 표상 조작 중심의 인공지능시스템이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표상이 없는 지능시스템이 앞으로의 로보틱스 연구가 지향하여야 할 방향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한편 발달심리학 연구자들은 어린아이가 걷기를 학습하는 행동 등을 내적 표상 개념이 없이 동역학체계적 틀을 적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함을 보였다. 마음이란, 특정 지식이 표상으로 뇌에 내장됨 없이, 환경과 괴리되지 않은 개체가 환경에 주어진 단서구조들과의 상호작용하는 실시점의 행위에서 일어나는 비표상적 활동이라고 본 것이다.

 

 

 

 

-한편 신경과학자들은 뇌와의 연결이 단절된 척추체계가 통증 감각과 학습에서 일종의 인지적 반응을 보인다는 것과, 신경계가 아닌 전신에 퍼져있는, 호르몬 관련 세포 수용기들이 정서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정서적, 의식적 사건이 뇌만의 사건이 아닐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마음=두뇌’ 식의 단순화된 생각의 위험성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인지과학 내의 경험과학에서의 이러한 논의나 연구 추세는, 철학이 개입하기 이전에는 데카르트적 틀에 대한 산발적 압력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 21세기 초, 현 시점에서 철학이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하였다. 인지과학의 경험과학적 연구의 새 변화들이 어떤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묶일 수 있는가 하는 개념적 기초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음과 뇌가 동일한 것이 아니며, 마음은 뇌를 넘어서, 비신경적 신체, 그리고 환경, 이 셋을 포함한 총체적인 집합체에서 일어나는 그 무엇으로 개념화하여 인지과학의 기초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자연과학적 인지과학과 인문학의 철학을 연결하여 새로운 틀을 이루어 내려는 이러한 작업은 마음의 문제를 협소한 주관적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개념화한 듀이 등의 고전적 실용주의철학자들의 계승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주체와 객체가 괴리되지 않은 세상속의 존재로서의 인간의 일상적 인지를 강조한 하이데거적 재구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움직임의 철학자들이 대부분 ‘동역학체계’ 틀로의 변화를 주창하는 것을 본다면, 과거의 ‘계산의 언어’에서 ‘뇌의 언어’로, 그리고 이제 ‘동역학체계의 언어로’ 개념화하는 작업이 인지과학의 여러 분야에 앞으로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것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뇌, 신체, 환경의 총체로서 마음을 개념화 한 인지과학의 새 틀이 신경과학, 심리학 등에서 생산적인 연구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되려면, 앞으로도 자연과학으로서의 인지과학과 인문학으로서의 철학을 연결하는 추가적 작업이 더 심층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06. 07. 26.

P.S. '마음=뇌'가 아닌 뇌로부터 분리된 마음(혹은 마음으로부터 분리된 뇌)이라... 흠, '사이보그지만 괜찮아!'가 농담만은 아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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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지과학의 현황과 조망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18 23:47 
         교수신문(09. 04. 06) “생각 교환할 수 있는 지적 흥분의 분위기 필요해요” 한국의 인지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인 이정모 성균관대 교수가 얼마 전 『인지과학』(성균관대 출판부)을 펴냈다. 종합과학이자 융합학문으로서 인지과학의 성과를 총체적으로 소개하는 이 책을 통해, 이 교수는 그간의 학문적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인지과학은 인간의 심성을 과학을 통해 해명하자는 야심찬 취지를 바탕으로 한
 
 
2006-07-26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7-26 14:59   좋아요 0 | URL
**님이 AI에 저보다는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인지과학이 철학이나 정신분석학에 제기하는 도전에 관심을 갖고 있는 편입니다. 지젝이 <신체 없는 기관>의 한 장을 할애하고 있기도 하구요...

2006-07-26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창비주간논평(06. 07. 25)에 젊은 소설가 김애란씨가 나섰다. '야간비행'은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그 논평의 제목으로 쓰였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 페이퍼의 제목은 '김애란의 야간비행'이라고 단다. 아울러 작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 올 정초에 이루어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도 자료 차원에서 옮겨다 놓는다.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가 현단계 한국문학의 듬직한 기대주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실 문단에 '김애란'이란 이름이 떠돌 때 나는 문단 마케팅의 일종이겠거니 하고 얕잡아봤었다. 하지만 얼마전에 읽은 그녀의 단편 '성탄특선'(<문학과사회> 여름호)은 마케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파워'를 느끼게 해주었다. <달려라, 아비>(창비, 2005)를 몇 주 전에 사다놓고 아직 손에 못 들고 있지만, 내 식으로 분류하자면 그녀는 현단계 '계급문학'의 가장 높은 성취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 논평 '야간비행'은 그러한 성취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살짝 엿볼 수 있도록 해준다. 작가의 계속적인 질주를 기대한다.

-상경 후, 처음 방을 구하러 다니던 날의 날씨를 기억한다. 8월이었고, 숨막히게 무덥던 날이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비지땀을 흘려가며 낯선 동네를 헤매고 있었다. 서울 물정이라면 둘 다 무지했고, 가진 돈은 터무니없이 적고, 날은 대책없이 덥기만 했던 어느날. 그럴듯한 방을 얻지 못해 소가지를 부리고 있던 나를 길가에 한참 세워두고, 작열하는 도시 한복판에 서 있던 어머니의 얼굴은, 땀과 파운데이션이 뒤범벅된 탓에 진흙처럼 금방 흘러내릴 듯했다. 우리는 너무 지친 나머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집에 들러 얼렁뚱땅 계약을 했다. 이상하리만치 천장이 높은, 깊고 서늘한 방이었다.

-다행히 조건이 맞아 어머니는 내게 몇평의 애잔함을 떼어줄 수 있었다(*단편 '성탄특선'도 방, 이번엔 성탄을 맞아 그에 걸맞는 근사한 섹스를 남들처럼 해보려고 하는 커플의 여관방 구하기 이야기이다. 나는 작가적 체험의 밑바닥에 깔린 정서가 이 '지상의 방 한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남산 전망대에라도 올라가서 서울의 야경을 보노라면 그 수많은 아파트와 집들 사이에 정작 '나의 집' 한칸이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기이한 일이던가!).

-그날의 기다랗던 정오, 이 땅의 지난하고 유구한 상경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방을 구한 뒤, 머리를 맞대고 함께 팥빙수를 먹었다. 깊은 피로 사이로 투명하게 부딪치던 얼음 소리, 하얗게 질려 있던 여름 하늘.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수도(首都)의 볕은, 누군가를 미워해도 좋을 만큼 충분히 강렬했고, 어머니는 버스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연신 땀을 훔쳐댔다. 나는 멀어져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오래전, 셋방을 스무번도 넘게 옮겼다는 아버지의 일기(日氣)도, 그날의 20세기 태양도, 저렇게 크고 어지러웠을까?’라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나는 그날 우리들 머리 위로 떠 있던 크고 둥근 해를, 그 대낮의 따가웠던 서울의 빛을, 잊을 수 없다.

-내가 매일 몸을 뉘었던 방은 어둡고 선득한 곳이었다. 작은 문 안으로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면, 세로로 놓인 관처럼 깊은 내부가 시원하게 나를 맞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방에 책상과 컴퓨터 등 참으로 학생다운 가재를 들여놓았고, 네모난 가구들이 만들어내는 깔끔한 각을 보며 흡족해했다. 나는 자주 밥을 거르고, 밤을 새우고, 술을 마셨지만, 스무살의 내 몸은 지나치게 건강해 아무 때고 벌떡벌떡 일어나 놀러 나갈 수 있었다. 음악은 잘 듣지 않았고, 책은 늘 엎드려서 읽었다. 빨래를 자주 미뤘고, 어머니에게 가끔 세금을 속였던 것도 같다.

-내 몸엔 아직 읽고 쓰는 습관이 배어 있지 않았지만, 이따금 나는 대가리가 커다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써보곤 했다. 시인이신 나의 스승이 좋은 문장이라도 한번 칭찬해주는 날엔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웃었다. 나는 그 작고 불편한 방에 신을 벗고 들어갈 때마다 이상하게 쉬러 간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방을 구하던 날 이후 영원히 내 머리 위를 떠나지 않던 태양, 그 때문인지도 몰랐다.

-비록 고향을 떠나오긴 했지만 나는 내 몫의 그 작은 어둠과 고요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내 몸에 꼭 맞는 그 육면(六面)의 어둠 안에서, 내 가슴팍을 향해 하늘에서 닻처럼 내려온 형광등 줄의 흔들거림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좋아했다. 딸깍이는 스위치 소리 한번에 세계는 일순 조용해졌고, 나는 반듯하게 누워 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언제나, 지나간 빛을 한껏 빨아 통통해진 야광별들이 천장에서 총총 빛나고 있었다. '중국의 붉은 별'도, 루카치의 별도 아닌, 납작 엎드려 가까스로 빛나던 형광색 스티커들.

-그것은 이전 세입자들이 붙여놓은 무수한 별무더기였다(*나의 집 베란다 유리문에도 그런 별무더기가 붙어 있다). 나는 이사오자마자 그 별을 떼어내려 무척 노력했지만, 대체 어떻게 붙였는지 모를 정도로 그것은 손이 닿지 않았고, 희망처럼, 쓸데없이 접착력만 좋았다. 그것은 언제나 거기 있었기 때문에 보고 싶지 않아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보지 않을 수 없다면, 봐버리자고 생각하며, 꼼짝 않고 누워 야광별을 응시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거기 있는 별들의 수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나만한 크기의 몸을 가졌을 허약한 자취생들, 가진 것 없이 서둘러 몸을 섞었을 젊은 부부들, 월급과 적금, 어디론가 송금할 액수를 헤아리며 이마에 손을 얹고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젊은이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이름을 갖고 있었을 많은 사람들. 몇년째 책장에 꽂아둔 채 절대 읽지 않은 오디쎄우스는 아직 내게 '떠난다'는 말도 한번 못 붙여보고 있는데, '이 사람들, 언제 이렇게 많이 떠나오고 또 떠나갔던 것일까?'

-모처럼 찾아온 고요 속에서, 아늑한 어둠을 방해하는 발광물질을 보며, 나는 퍽 심란해했다. 아무래도 좋을 마음으로 '야광별 따위라니!'라며 투덜거렸던 것도 같다. 그런데도 나의 독립과 사생활의 의미는 어떤 통속성 안에서 저 별빛처럼 자꾸만 초라해지는 듯했다. '당신들의 계급'이 아닌 '우리들의 취향'이라는 말이 입속을 맴돌았고, 이 방이 내 방도 당신의 방도 아닌 우리들의 방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나는 그것이 좀 불편했다. 내가 여름을 피해 들어온 곳이, 비지땀을 흘려가며 힘들게 도착한 곳이 결국 비슷한 삶들이 떠나오고 떠나가는, 붙인 별을 보고서야 '아, 밤이구나!'라고 안도할 수 있는 어떤 범박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말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 방의 크기와 높이를 떠나,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잘도 기어들어오는 그 가짜 빛들과 그 별들의 운동 안에서 나 역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루카치를 비틀자면, '야광별과 계급의식' 정도 되겠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결국 나는 별들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 약하고 조금쯤은 천박하지만 그것들이 항상 빛 가까이에 있으려고 한다는 사실과 함께. 그 빛 역시 내가 알아야 할 빛 중에 하나라고 중얼거리며 말이다. 그곳을 떠난 지 몇해가 지났고, 그 방은 이미 헐려 사라졌지만, 이따금 나는 내 성정의 경박하고 아름다운 어떤 부분, 내가 껴안는 상스러움의 어느 부분들은 그 별들의 영향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토성의 영향 아래 있는 우울한 기질의 학자들처럼, 빛을 흡수한 뒤 천천히 사라지는 야광별빛의 영향을 받으며, 나는 길을 걷고, 물건을 사고, 가끔은 그 대가리가 커다란 모니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전화가 오면 다시 벌떡 일어나 놀러 나갔던 것은 아닐까 하고(*김애란, 혹은 '야광별의 영향 아래 있는 작가').

한국일보(06. 11. 06)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김애란씨 인터뷰

“누군가에게 어리다고 말하면, 나이가 아니라 그 말이, 그를 정말 어리게 만드는 경우가 있잖아요? 나이 뒤로 숨고싶을 때 있는데…, 이젠 그러지 못할 것 같아요.”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 김애란(25)씨. 그는 2003년 대산대학문학상을 타며 등단해 이제껏 9편의 단편을 발표했고, 그것들을 묶어 곧 첫 작품집을 내게 될 신인이다(*물론 그 단편집이 <달려라, 아비>이다). 그리고 그는, 경력으로나 나이로나 가장 일찍 한국일보문학상을 탄 작가가 됐다. 그 결정은 파격이었고, 사건이었다. 4시간여의 격론 끝에 그를 낙점한 본심 위원들조차 자신들의 결정에 잠시 숙연했고, 한 심사위원은 “카메라 뒤에 숨어있어야 할 우리가 이 결정으로 하여 카메라 앞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쟁쟁한 선배들 틈에 끼어 본심에 올랐던 당선자 역시 놀랐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첫 반응을 먼저 전했다. “말씀을 드렸더니 ‘누가 장난전화 건 거 아니냐. 제대로 알아보고 다시 연락해라’하시더군요.” 정작 본인의 첫 느낌은 놀랍고 기쁘고…, 뭐 그런 것보다 먼저 ‘찡하더라’고 말했다. 호명된 자신의 이름 때문이 아니라 그 이름이 거느린 가난한 이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질문을 받은 기분’이라고도 했다. “그 질문이 온당한 것이라면 이제 제가 온당한 대답을 해야 할 차례지만, 그 대답을 오래 아껴두고 싶어요. 어쩌면 평생 두고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겠죠. 그렇더라도 서두르고싶진 않아요.” 그가 염두에 둔 질문은 대화의 다른 맥락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왜 쓰는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때문에’나 ‘~위해서’로 이어지는 많은 대답들, 너무 완벽하고 모범적이어서 오히려 거짓말 같은 대답들을 그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답을 구하고 그것을 정답이라고 믿다 보면 결국 속게 될 것 같아요. 차라리 죽을 때까지 몰랐으면 좋겠어요. 죽을 때까지 궁금해 하면서….”

-그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화법도 얼굴 화장도 걸음걸이도 담담하다. 그의 소설도 대체로 그렇게 읽힌다. 당선작 ‘달려라, 아비’에서, 그는 아버지 부재와 가난의 상처를 이야기하지만 결코 고통에 신음하지도 통증을 내색하지도 않는다. 자위하듯 농담으로 얼버무리지도 않으며, 상처의 맥락을 사회화 역사화하지도 않는다. 그 상처는 극복의 대상도 화해의 상대도 아니다. “아픔을 농담처럼 말하는 것 역시 극복하려는 의지가 개입된 거겠죠. 제가 작품에서 말하게 된 상처는 대결이나 화해의 정향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어쩌면 처음부터 농담처럼 주어진 상처일 겁니다.”

-일각에서는 그 낯선 전술을 세대적 감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탈사회, 탈역사적 세대의 감수성이라는 게 그것이다(*김애란의 어떤 소설들이 그런 빌미를 제공하는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작가는 예민한 사회학적 시각을 갖고 있다. 적어도 나는 그것이 이 작가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탈역사적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99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왔고, 지금껏 7년을 살았어요. 그 경험들이 저의 글 어디에든 묻어있겠죠. 곧 제 일상의, 동시대의 이야기를 한 겁니다. 제게는 세대적 공감보다는 계급적 공감이 컸어요.”(*바로 그것이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계급적 공감! 이럴 때 작가로 립서비스를 해주는군.) 

 

 

 

 

-그는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서 보여준 담담한 잔인성,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들이 지닌, 제시에 충실하면서도 뭘 제시했는지 모르게 만드는 은근함을 좋아한다고 말했다(*객관적으로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나름 조숙한 작가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 내용이나 형식이 아니라 전달하는 태도가, 어깨에 힘주지 않고 핏대 세우지 않는 진지함이 부럽다고 말했다(*나는 <달려라, 토끼>의 작가 존 업다이크가 언급될 줄 알았다). “김수영의 시의 치열하면서도 범박한 느낌과 아득한 유머감각…, 그런 거요.”

-그는, 뭔가를 써야겠다는 생각 없이 무의식이 던져주는 한 문장을 옮겨놓고, 그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부르면 계속 써나가는 방식으로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중반부쯤 이르러서야 작품의 구성과 결론을 구상한다는 것이다. “당선작도 그렇게 썼어요. 쓰다 보니 아버지가 뛰어들더군요. 말도 안 붙이고 계속 내버려뒀는데 계속 뛰기에 아버지 이야기가 된 거죠.”

-그는 초등학교시절 동시 숙제를 베껴 냈다가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던 기억이 있고, 그 부끄러움과 뿌듯함의 야릇한 감흥이 오래 남아 소설을 쓰게 된 건지 모르겠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다. 낯가림이 심한 그는 등단하던 해 겨울 현대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인연으로 시상식에 초대돼 멋 모르고 나갔다가, 그가 좋아한다는 성석제(당선자) 씨에게 인사도 못하고, 먹고 싶은 떡도 제대로 못 먹고 나왔다는 얘기를 웃으며 했다.

-그는 여행을 싫어한다고 했다. 귀찮다는 것이다. “이번에 상도 타고 했으니 그 싫어하는 일을 해볼까 해요. 상금으로 카메라 하나 사서 서울을 여행할 생각입니다. 장소로서의 서울이 아니라 관계의 공간으로서의 서울여행!” 문예지 겨울호에 발표할 단편 2편을 끝낸 뒤 써볼 생각이라는 첫 장편소설, 그 첫 문장을 던져줄 ‘무의식’ 공간으로 떠나겠다는 말일까(*그녀의 첫 장편소설을 기대한다).(최윤필 기자)

▲ 김애란씨는

1980년 인천생

199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입학

2003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소설부문) 수상

2005년 대산창작기금 수혜

한겨레(06. 01. 01) 김애란씨는 해가 바뀌어 세는 나이로 스물일곱 살이 됐다. 스물일곱이면 확실히 어린 연배는 아니다. 김승옥씨가 <서울 1964년 겨울>이나 <무진기행> 같은 소설을 쓸 때 나이가 스물댓 살에 불과했고, <광장> 역시 최인훈씨가 비슷한 연치에 쓴 작품이다. 현대문학 초창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적잖은 작가들이 20대 초에 자신의 대표작을 발표하고 서른이 되기 전에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조숙한 천재들’의 시대도 아니고 미숙한 만큼 온갖 가능성이 활짝 열려 있던 현대문학 초창기는 더더욱 아니다. 30, 40대에 등단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마흔 언저리의 작가에게도 언필칭 ‘젊은’이라는 관형어가 얹혀지는 시기다. 그런 점에서 김애란씨는 문단의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작가다.

-지난해 한국 문단이 거둔 최대의 수확 중 하나가 소설가 김애란의 등장이라는 데에 토를 다는 이는 많지 않다. 김씨는 물론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면서 등단했지만, 그의 이름이 문단 안팎에 강렬하게 각인된 것은 지난해 11월 하순에 출간된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창비)에서부터였다. 표제작을 비롯해 아홉 개의 단편이 실린 이 책은 불과 한 달여 만에 판매부수 1만 권을 훌쩍 넘어서면서 연말 문단과 독서계를 달구었다.

 

 

 

 

-책 출간 이후 연말까지 그는 신문과 잡지 인터뷰 10여 차례에 방송 출연도 예닐곱 번을 하는 등 누구보다 바쁘게 세밑을 보냈다.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에 한동안은 전화기를 꺼 놓기도 했다. “그리 중요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말을 반복하고 다니는 게 쑥스러웠어요. 작품보다 이미지가 더 많이 소비될까 봐 걱정도 됐구요. 여러분의 관심은 과분하고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그에 대해 감탄하거나 투정할 일은 아니고, 조용히 책상 앞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었죠.”

-첫 소설집을 낼 때만 해도 그의 생각은 ‘평범한’ 직장에 취직해서 직장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책 출간 이후 청탁이 밀려들어오면서 가을까지는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마감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취업 계획은 당분간 접었어요. 하지만 언젠가 취업은 정말 하고 싶어요. 작가로서 제가 건강했으면 해서예요. 소설이란 혼자 쓰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쓰는 거라고 믿거든요.” “그런데 (본의 아니게 유명해져서) 날 받아 줄 직장이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그는 웃었다. 젊은이답게 잘 웃고 감정에 솔직하지만, 동시에 신중하고 사려 깊은 면모도 뚜렷하다.

-지나간 2005년이 자신에게 어떤 해였는가 묻자 “질문을 많이 받았던 해”라고 재치 있게 받아 넘기더니 이내 진지해진다. “내가 어떤 인간인가 잘 알게 된 해였던 것 같아요. 마치 연애할 때처럼요. 왜, 연애할 때면 내가 모르던 나 자신이 잘 보이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작년은 내가 나 자신을 많이 바라본 해였어요. 때론 흥미롭게, 때론 걱정스럽게. 하지만 상황 한가운데 있어 보니까 내가 생각보단 약하지 않구나 싶었어요.”

 

-그렇다면 2006년의 계획은? “많이 돌아다니고 싶어요. 카메라 하나 사서 서울을 구경하고도 싶구요. 정해진 목적지 없이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내려서는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다시 버스에 타서 모르는 곳으로 가고 하는 식으로요.”

-그는 자신이 처음부터 정해진 주제나 구상이 없이 일단 써 가면서 소설을 완성시키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제 작법을 낭만화하거나 신비화시키려는 건 아니고요, 처음부터 무얼 쓸지 알고 시작하는 것보다는 쓰면서 주제를 ‘발견’해 가는 게 더 즐거워요. 물론 다른 방식으로, 가령 취재를 해서 쓰는 경우도 있죠.”

-선입견과는 달리 니체를 비롯한 철학서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즐겨 읽는다는 이 당돌한 신인은 “독자에게서 ‘마음의 답장’을 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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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6 0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7-26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조정했습니다. 따붙이기를 하다보면 그런 일들이 생깁니다.^^

기인 2006-07-26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첫번째 코멘트 중 '집들 사시에'라는 오타 발견했습니다. 저도 지금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를 읽는 중인데, 시적인 문장에 계속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 퍼갑니다.

로쟈 2006-07-26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정했습니다. 덤으로 야경 이미지도 하나 더 집어넣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최초인 듯싶은데, 미국의 젠더/퀴어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에 대한 단행본 연구서가 출간됐다. 임옥희의 <주디스 버틀러 읽기>(여이연, 2006)이 그것이다(출판사 '여이연'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약칭이다). 그간에 쌓인 마일리지로 어제 책을 주문했기에 내일쯤 받아볼 책인데, 아직 언론의 리뷰가 전혀 뜨지 않아서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게시판에 떠 있는 (출판사측) 소개글을 옮겨온다. '젠더의 조롱과 우울의 철학'은 책의 부제이다.

 

 

  


● 출간 의의: 최근 한국사회에도 젠더 인식의 변화 조짐이 보인다. 친밀감의 행위였던 여학생들의 팔짱끼기, 남학생들의 어깨동무를‘수상쩍은’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군대에서도 동성애 사병에 대한 공식인정을 검토 중이다. 광고, 대중매체, 드라마, 영화 등 이미지 산업에서 성적소수자 이야기가 유행처럼 흘러넘친다. 한국사회의 퀴어한 현상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분석해야 하는가? 이 책은 주디스 버틀러 이론을 꼼꼼히 살펴봄으로써 변화하는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고 분석을 시도하는 최초의 책이 될 것이다.

● 책의 특징
1. 버틀러 이론의 토대가 되는 수많은 서구철학, 정신분석학, 젠더이론의 역사 그리고 버틀러의 텍스트 일곱 권에 나타난 철학적 주제들을 세밀하게 설명해내고 있다.
2. 한국적 퀴어 상황들, 군대내 동성애, 호주제폐지, 트랜스젠더 등의 논의를 통해 젠더에 관한 모든 문제들에 열린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3. 영화, 문학뿐만 아니라 9.11, 애니타힐 사건, 아프간 여성 안주만의 명예살인 등의 다양한 사회적 주제들에 이론을 접목함으로써 이론서의 난해함에서 벗어나 있다.

● 책의 내용
-버틀러의 젠더 철학이론은 과감하다. 한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므로 절대 묻지 말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허를 찌르는 질문들을 해댄다. 이성애 친족구조, 재생산, 근친상간금지, 동성애금지 등에 대해 의심하고 조롱하며 지속적인 탐색작업을 펼친다.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조건들인 국가, 법질서, 젠더, 섹슈얼리티 등을 ‘더 이상 묻지 마, 다쳐’라고 할 지경까지 끌고 나간다(*버틀러의 책으론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안티고네의 주장>이 번역돼 있으며,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의 한 장이 버틀러에게 할애돼 있다).

 

 

 

 

-우리나라의 유림들이 호주제 폐지를 악착같이 반대했던 까닭은 ‘근본’의 훼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모름으로써 근친상간을 범 하게 되면 소위 인간의 탈을 쓰고 금수만도 못하게 된다. 천륜과 인륜의 근간이 되는 것이 근친상간의 금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림들의 공포는 근친과 친족을 만고불변인 것처럼 간주하는 데서 온다. 반면 버틀러는 근친상간금지에 앞서 근친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질문의 초점을 맞춘다. <안티고네>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이성애 핵가족이라는 오이디푸스 가족 자체가 근친상간을 부추기는 핵심공간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 역설을 그녀는 지적한다.

-동성애를 병리적인 것으로 보는 교황청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이성애가 지배적인 우리사회에서 버틀러의 이론은 분명 난감한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노동(성노동, 감정노동, 가사노동), 모성, 재생산에 관한 페미니즘 논의는 가부장제를 수리, 보수, 유지하려는 논의들이지 근본적으로 그것을 부정하는 논의가 아니다. 이에 반해 버틀러는 가부장적인 제도와 법, 국가의 보호 자체를 철저히 거부한다. 이성애 재생산보다는 퀴어의 정치성을 주장하는 그녀의 이론은 불온하다. 그녀의 이론은 위안을 주지 않는다. 기댈 언덕 없는 벼랑 끝에서 생존의 전략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으므로.



● 주디스 버틀러는?
-1956년 미국 출생. 현재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수사학과 비교문학과 교수. 퀴어 이론 분야의 창시자로 <젠더 트러블>(1991)이라는 저서를 통해 단숨에 페미니즘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1990년대 아카데미아의 슈퍼스타이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1993년 <주디!>라는 팬진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난해한 강단 철학자가 마돈나와 같은 마니아층을 거느리는 것, 대중문화와 본격철학의 경계가 해체되는 것, 그 퀴어한 포스트 현상의 중심에 서 있는 이론가이다(*본의와 무관하게 버틀러의 책들을 언제가 여러 권 구하게 되어 나는 덩달아 관심을 가진 척하고 있다. 세어보니 그녀의 책을 6권 갖고 있다).

● 저자 임옥희는?
-버틀러와 같은 해 1956년 태어났으며 수년간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공동대표를 지내면서 많은 여성주의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한국적 상황들을 고민해 왔다. 10여 년 동안 여성문화이론지 <여/성이론> 외 수많은 여성이론관련 서적 출간에 앞장섰다. 현재 한국의 문화를 여성적 시각으로 읽어내고, 이를 이론화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공저서에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한국의 식민지 근대와 여성공간>,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뫼비우스 띠로서 몸>, <모더니즘 문학론>, <여성과 광기>, <보이는 어둠(우울증에 대한 회고)>외에 다수가 있다(*빠진 건 가장 최근에 출간된 번역서 <레닌의 연인 이네사>이다. 소재가 흥미로워 나는 바로 구입했다).

06. 07. 25.

P.S. 참고로 버틀러의 저작 목록이다(굵은 글씨는 국역본이 출간되었거나 근간예정인 책).

2005: Giving An Account of Oneself

2004: Undoing Gender

2004: Precarious Life: The Powers of Mourning and Violence

2000: Contingency, Hegemony, Universality: Contemporary Dialogues on the Left (with Ernesto Laclau and Slavoj Žižek)(*도서출판b에서 근간예정이다.)  

2000: Antigone's Claim: Kinship Between Life and Death (<안티고네의 주장>)

1997: The Psychic Life of Power: Theories in Subjection

1997: Excitable Speech: A Politics of the Performative

1993: Bodies That Matter: On the Discoursive Limits of "Sex"(<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1990: Gender Trouble: Feminism and the Subversion of Identity (*그녀의 출세작.)

1987: Subjects of Desire: Hegelian Reflections in Twentieth-Century France (*버틀러의 박사학위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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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5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7-25 20:15   좋아요 0 | URL
수정했습니다. 확인을 안 하고 쓰면 꼭 실수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