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최초인 듯싶은데, 미국의 젠더/퀴어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에 대한 단행본 연구서가 출간됐다. 임옥희의 <주디스 버틀러 읽기>(여이연, 2006)이 그것이다(출판사 '여이연'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약칭이다). 그간에 쌓인 마일리지로 어제 책을 주문했기에 내일쯤 받아볼 책인데, 아직 언론의 리뷰가 전혀 뜨지 않아서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게시판에 떠 있는 (출판사측) 소개글을 옮겨온다. '젠더의 조롱과 우울의 철학'은 책의 부제이다.



● 출간 의의: 최근 한국사회에도 젠더 인식의 변화 조짐이 보인다. 친밀감의 행위였던 여학생들의 팔짱끼기, 남학생들의 어깨동무를‘수상쩍은’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군대에서도 동성애 사병에 대한 공식인정을 검토 중이다. 광고, 대중매체, 드라마, 영화 등 이미지 산업에서 성적소수자 이야기가 유행처럼 흘러넘친다. 한국사회의 퀴어한 현상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분석해야 하는가? 이 책은 주디스 버틀러 이론을 꼼꼼히 살펴봄으로써 변화하는 한국적 상황을 이해하고 분석을 시도하는 최초의 책이 될 것이다.
● 책의 특징
1. 버틀러 이론의 토대가 되는 수많은 서구철학, 정신분석학, 젠더이론의 역사 그리고 버틀러의 텍스트 일곱 권에 나타난 철학적 주제들을 세밀하게 설명해내고 있다.
2. 한국적 퀴어 상황들, 군대내 동성애, 호주제폐지, 트랜스젠더 등의 논의를 통해 젠더에 관한 모든 문제들에 열린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3. 영화, 문학뿐만 아니라 9.11, 애니타힐 사건, 아프간 여성 안주만의 명예살인 등의 다양한 사회적 주제들에 이론을 접목함으로써 이론서의 난해함에서 벗어나 있다.
● 책의 내용
-버틀러의 젠더 철학이론은 과감하다. 한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므로 절대 묻지 말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허를 찌르는 질문들을 해댄다. 이성애 친족구조, 재생산, 근친상간금지, 동성애금지 등에 대해 의심하고 조롱하며 지속적인 탐색작업을 펼친다.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조건들인 국가, 법질서, 젠더, 섹슈얼리티 등을 ‘더 이상 묻지 마, 다쳐’라고 할 지경까지 끌고 나간다(*버틀러의 책으론 <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안티고네의 주장>이 번역돼 있으며,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의 한 장이 버틀러에게 할애돼 있다).



-우리나라의 유림들이 호주제 폐지를 악착같이 반대했던 까닭은 ‘근본’의 훼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버지를 모름으로써 근친상간을 범 하게 되면 소위 인간의 탈을 쓰고 금수만도 못하게 된다. 천륜과 인륜의 근간이 되는 것이 근친상간의 금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림들의 공포는 근친과 친족을 만고불변인 것처럼 간주하는 데서 온다. 반면 버틀러는 근친상간금지에 앞서 근친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질문의 초점을 맞춘다. <안티고네>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이성애 핵가족이라는 오이디푸스 가족 자체가 근친상간을 부추기는 핵심공간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있는 역설을 그녀는 지적한다.
-동성애를 병리적인 것으로 보는 교황청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이성애가 지배적인 우리사회에서 버틀러의 이론은 분명 난감한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노동(성노동, 감정노동, 가사노동), 모성, 재생산에 관한 페미니즘 논의는 가부장제를 수리, 보수, 유지하려는 논의들이지 근본적으로 그것을 부정하는 논의가 아니다. 이에 반해 버틀러는 가부장적인 제도와 법, 국가의 보호 자체를 철저히 거부한다. 이성애 재생산보다는 퀴어의 정치성을 주장하는 그녀의 이론은 불온하다. 그녀의 이론은 위안을 주지 않는다. 기댈 언덕 없는 벼랑 끝에서 생존의 전략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으므로.

● 주디스 버틀러는?
-1956년 미국 출생. 현재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수사학과 비교문학과 교수. 퀴어 이론 분야의 창시자로 <젠더 트러블>(1991)이라는 저서를 통해 단숨에 페미니즘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1990년대 아카데미아의 슈퍼스타이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1993년 <주디!>라는 팬진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난해한 강단 철학자가 마돈나와 같은 마니아층을 거느리는 것, 대중문화와 본격철학의 경계가 해체되는 것, 그 퀴어한 포스트 현상의 중심에 서 있는 이론가이다(*본의와 무관하게 버틀러의 책들을 언제가 여러 권 구하게 되어 나는 덩달아 관심을 가진 척하고 있다. 세어보니 그녀의 책을 6권 갖고 있다).
● 저자 임옥희는?
-버틀러와 같은 해 1956년 태어났으며 수년간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공동대표를 지내면서 많은 여성주의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한국적 상황들을 고민해 왔다. 10여 년 동안 여성문화이론지 <여/성이론> 외 수많은 여성이론관련 서적 출간에 앞장섰다. 현재 한국의 문화를 여성적 시각으로 읽어내고, 이를 이론화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공저서에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한국의 식민지 근대와 여성공간>,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뫼비우스 띠로서 몸>, <모더니즘 문학론>, <여성과 광기>, <보이는 어둠(우울증에 대한 회고)>외에 다수가 있다(*빠진 건 가장 최근에 출간된 번역서 <레닌의 연인 이네사>이다. 소재가 흥미로워 나는 바로 구입했다).
06. 07. 25.
P.S. 참고로 버틀러의 저작 목록이다(굵은 글씨는 국역본이 출간되었거나 근간예정인 책).
2005: Giving An Account of Oneself

2004: Undoing Gender

2004: Precarious Life: The Powers of Mourning and Violence

2000: Contingency, Hegemony, Universality: Contemporary Dialogues on the Left (with Ernesto Laclau and Slavoj Žižek)(*도서출판b에서 근간예정이다.)

2000: Antigone's Claim: Kinship Between Life and Death (<안티고네의 주장>)

1997: The Psychic Life of Power: Theories in Subjection

1997: Excitable Speech: A Politics of the Performative

1993: Bodies That Matter: On the Discoursive Limits of "Sex"(<의미를 체현하는 육체>)

1990: Gender Trouble: Feminism and the Subversion of Identity (*그녀의 출세작.)

1987: Subjects of Desire: Hegelian Reflections in Twentieth-Century France (*버틀러의 박사학위논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