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나로선 책의 존재만을 확인하는 페이퍼 쓰기다. 그렇다곤 해도 해당 분야 전공자 내지 전공학생들에게는 꽤 의미있을 성싶은 책들인데, 바로 로런스 부시의 <표준>(한울, 2015)과 존 테일러의 <오차 분석 입문>(서울대출판문화원, 2015)이다. 각각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분야의 책으로 분류되는데, 소개를 보면 '표준학'과 '오차 분석학'의 표준이 될 만하다.

 

 

 

서평을 쓰는 입장에서는 이런 책도 나오는구나, 란 사실에 흥미를 갖게 되는데, <표준>은 그래도 읽어볼 수 있을 것 같다. 표준이란 문제와 관련하여 정치, 사회, 문화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기에.

표준이 인간 사회와 권력의 산물이라면 필연적으로 윤리적 함의를 지니게 된다. 저자는 표준에 대한 논의에서 대체로 이 문제가 회피되어왔음을 지적하면서 분석철학과 윤리학의 논의를 끌어와 표준의 윤리적 의미를 탐구한다. 사회학, 경제학, 철학, 윤리학 등의 다양한 학문 경계를 넘나들며 뒤르켐, 하이데거, 애컬로프, 듀이 같은 석학들의 논의에서부터 화장실 변기와 아동낙오방지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검토하고, 네 가지 표준 유형과 좋은 표준을 수립하기 위한 열두 가지 강령을 제시한다.

<오차 분석 입문>은 '자연과학적 측정에서 불확실성의 탐구'가 부제다. 대학교재로 활용될 만한 책인데, 역자는 공과대학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다. 어떤 분야에서 쓰임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전공의 대학생들이 필수적으로 학습해야 할 불확실성의 분석에 대한 입문서로서 세계적으로 최상의 평가를 받고 있다. 학습 교재로뿐만 아니라 실제 연구에서 참고 서적으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불확실성과 오차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오차의 전파, 평균, 표준 편차, 평균의 표준 편차, 가우스 분포, 믿음 한계, 최대 가능도의 원리, 쇼브네트의 판정기준, 가중 평균, 최소제곱 맞추기, 공분산과 상관관계, 이항 분포와 푸아송 분포, 가설의 검정 등의 의미를 쉽고 명확하게 설명한다. 

대학교재나 전공서적으로 분류되는 책을 다루는 일은 드물지만, 사실 인문 분야에서도 어려운 철학서나 이론서처럼 교양 수준을 넘어서는 책들이 많다. 가끔은 이런 자연과학이나 공학 분야의 책들과 견주어보는 게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한데, <오차 분석 입문>은 대학 신입생도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군...

 

16.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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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미우라 쿠니오의 <인간 주자>(창비, 1996)를 읽고, 너무 소략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280쪽 분량이어서 평전으로는 가벼운 축에 속하는 책이었다. 당시로선 주자에 관한 유일한 평전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래도 좀더 분량이 있는 책이 나오면 좋겠다 싶었다. 수징난의 <주자평전>(역사비평사, 2015)이 예고되었을 때 '드디어 나오는군!'이란 느낌을 가졌던 건 그 때문이다.

 

 

그리고 실물이 나왔다. 한데, 상하권 2,400쪽 분량에 책갑만 해도 90,000원대에 이른다(10% 할인가가 88,200원이다). 내가 예상한 분량의 서너 배가 넘는다! 이 정도로 자세한 평전이 나올 만큼 주자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정보가 알려져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좀 과하다는 느낌이다. '주자 매니아'라도 되지 않는 이상 쉽게 책을 손에 들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게다가 독파하려고 한다면 일주일은 꼬박 소요될 듯하다).

 

<인간 주자>가 좀 모자란 듯했다면, <주자평전>은 많이 넘친다. 그게 주자에 대한 내 관심이나 기대치에 비추어 그렇다는 얘기니 독자들마다 사정은 다를 것이다. <인간 주자>도 과도하게 여겨질 독자도 있을 터이고, <주자평전>의 압도적인 분량이 흐뭇한 독자도 없으란 법이 없다. 

주희의 탄생에서 청소년기를 거쳐 학자로서의 삶,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이 상세히 펼쳐진다. 그의 위대한 학문이 여러 학자와의 논변을 거쳐 완성되어가는 과정은 물론이고, 과거에 급제한 뒤 외직으로 보임되어 지방관으로서 펼친 행정, 그리고 평생 고종, 효종, 광종, 영종이라는 네 황제를 섬겼지만 조정에서 경연관으로 실제로 근무한 것은 고작 46일에 불과한 기간에 펼친 정치 이론이 생생하게 전개되고 있다.

여하튼 <주자평전>은 내 관심을 초과한다. 관심 작가의 평전이었다면 또 느낌이 다를 수 있겠지만, 국내 소개된 니체나 헤겔 평전보다 몇 배 두꺼운 주자평전을 읽는다는 건 나로선 과욕으로 여겨진다. 그저 노작이 번역됐다는 사실에 만족할 따름이다...

 

15.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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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를 인양하다 창비시선 391
백무산 지음 / 창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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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그 일로 후회하고 수시로

후회한 일 한 가지는

부산 제3부두 파나마 선적 살물선

떠나는 그 배에 손을 흔들었던 일

 

약속을 하고도 떠나지 않았던 일

그때 떠났더라면 뱃놈으로 늙어갔을지도

남태평양 적도 부근에서 섬 여자 얻어 어부가 되었을지도

그때 떠났더라면

그단스끄 함부르크 조선소 불법체류 노동자가 되었을지도

잠자는 나를 반쯤 겁탈했던

삼등항해사 게이 녀석과 사랑에 빠졌을지도

항구를 그리며 떠도는 삼류 화가가 되었을지도

 

그때 떠났더라면

시베리아 순록 몰이꾼이 되었을지도

볼리비아의 무장 게릴라가 되었을지도

안데스의 목동 가우초가 되었을지도

그때 떠났더라면

이곳에 없는 나 때문에

이렇게 변두리에서 가슴 치는 일로 나이 먹진 않았을지도

 

내게 많던 나는 어디론가 떠나버렸다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내가 아니므로

나는 내가 꾸는 꿈보다 더 가짜일지도 모르지

실현되지 못하고 떠나버린 내가 더 나다울지도 모르지

그런 내가 떠난 곳도 저 먼 변두리

 

세계의 모든 변두리에서 나는 나를 만져볼 수 있네

세계의 변두리를 떠돌고 있는 수많은 나를

 

-84-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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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길다. <왜 우리는 행복을 일에서 찾고, 일을 하며 병들어 갈까>(책세상, 2015). 대개의 직장인이라면 바로 공감하지 않을까. 부제는 '번아웃 시대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저자는 요아힘 바우어로 독일의 신경생리학자다. 알게 모르게 꽤 많은 책들이 소개된 저자(알라딘에서는 '요하임 바우어'란 오기로도 검색된다). 그 가운데 <공감의 심리학>(에코리브르, 2006)이 반응이 좋은 편. 그리고 아마도 이번 책이 어필할 만하다.

 

노동이 우리의 삶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여, 노동으로 인한 건강 문제의 원인을 밝히고 일과 조화를 이루는 행복한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책. 노동은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과거의 노동 환경은 어떠했는지, 노동의 가치는 어떤 사상적 맥락에서 형성되었는지, 일과 삶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등 노동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을 신경생물학적, 심리적, 철학적,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노동 문제를 다룬 책으로 눈에 띄는 국내서는 김혜진의 <비정규 사회>(후마니타스, 2015)다. "비정규직 사회를 보여 주는 한편,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아이러니를 넘어선 세상을 상상하는 책"이다. 노동현실의 또다른 지표가 '최저시급'인데, 2016년 최저시급 6030원의 결정과정을 다룬 <이런 시급 6030원>(북꼼마, 2015)도 시급노동자들이 필독해볼 만하다. 글로벌 노동시장에서의 노동 착취에 대해서는 코린 코리아의 <보이지 않는 손>(나눔의집, 2015)도 '보이는 책'이다. '16인의 노동자들이 들려주는 노동착취의 현실'이 부제. 어떻게 나온 책인가.

노동자의 삶을 통해 글로벌 경제의 이면을 들려주는 책. 저자는 "이 물건을 만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호기심 어린 궁금증으로 전 세계의 노동자들을 만나 구술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동노동, 강제노동, 저임금, 장시간 노동, 불안정 고용, 열악한 노동환경, 이주노동자라는 불안한 신분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관련 문제들을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듣게 되었다.

 

대체로 노동 문제를 다룬 책들의 판매는 저조한 편이다. 책에서 다루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책의 독자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송곳>의 독자이기는 할까. 그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다른 형식의 책이 필요해 보인다...

 

15. 0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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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과 심리학 분야의 책 두 권을 관심도서로 고른다. 리처드 레스택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뇌>(휴머니스트, 2015)와 데이비드 루이스의 <충동의 배후>(세종서적, 2015)다.

 

 

먼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뇌>의 원제는 <빅 퀘스턴: 뇌>이고, '내 마음을 읽기 위해 꼭 필요한 20가지 질문에 뇌과학이 답하다'가 부제. 말 그대로 마음에 관한 20가지 질문에 대한 뇌과학의 대답을 정리해준다. 저자는 신경과학자로 <새로운 뇌>(휘슬러, 2004), <스마트하게 사고하라>(유원북스, 2013) 등의 책이 번역돼 있다. 별로 주목받지 못한 저자이지만 이번 책은 뇌과학 기본서에 해당하면서 흥미로워 보인다.

인간의 마음이 작용하는 다양한 활동에 관한 뇌과학의 이야기를 20가지 질문에 담았다. 두뇌의 지형도부터 감정과 생각의 작용, 스마트폰이 두뇌에 미치는 영향과 멀티태스킹 등 현실 속의 문제들, 그리고 자유의지와 의식에 관한 철학적인 질문까지, 뇌과학을 통해 명석하지만 예민하고 빈틈도 많은 인간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충동의 배후>는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무의식적 충동의 정체를 밝히는 책. 저자는 신경마케팅의 선구자로 국내에는 <뇌를 훔치는 사람들>(청림출판, 2014)가 소개된 바 있다.부제는 '우리 행동을 조종하는 좀비 뇌'. 무엇이 좀비 뇌인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 즉 무의식에서 움직이는 두뇌 작용을 '좀비 뇌'라고 부른다. 인간의 사고 체계는 숙고적 R(reflection) 시스템과 충동적 I(impulse) 시스템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직관적인 I 시스템 사고가 바로 '좀비 뇌'의 작용이다. 사실상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고 있는 이 '좀비 뇌'는 스스로도 이유를 알지 못하는 행동을 조종하고 있다.

좀더 자세한 소개는 이렇다.

현대 뇌과학과 신경학, 생리학의 발전으로 의식은 행동의 선동자라기보다 관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가 어떤 동작을 할 때, 그 동작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의식하기 전에 먼저 특정 동작을 촉발시키는 뇌 활동이 일어난다. 이 책에서는 두뇌 및 인체의 감각들과 충동적 행동의 관계를 탐구하고, 충동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탐구한다. 10대 청소년들은 왜 더 충동적인가, 첫 눈에 빠지는 사랑은 가능한가, 왜 우리는 마트에만 가면 자신도 모르게 물건을 사들이는가, 다이어트 결심은 왜 매번 물거품이 되며, ‘베르테르 효과’라고 불리는 모방 자살은 왜 일어나는가 등등. 또한 간단한 몇 가지 테스트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충동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해야 자제력을 높일 수 있을 지에 대한 실용적인 충고도 제공한다.

거꾸로 이런 충동적 성향을 잘 활용해보고자 하는 것이 '신경마케팅'이겠다. 우리 안의 '좀비 뇌'가 궁금한 독자라면 일독해볼 만하다...

 

15. 0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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