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으로 엊그제 주문한 책은 프랑스 작가 로랑 비네의 <언어의 7번째 기능>(영림카디널)이다. 2010년 콩쿠르상 신인상 수상작으로(신인상도 있는 줄 몰랐다) <HHhH>(황금가지)가 소개된 바 있다. 지난해 나온 원작 영화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된 작가인데, <언어의 7번째 기능>은 2015년에 발표한 신작. 흥미롭게도 문학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죽음을 소재로 하고 있다.

˝1980년, 프랑스의 저명한 기호학자이자 문예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세상을 떠난다. 이것은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다. 하지만 롤랑 바르트의 사고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살해당했다. 또한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문서를 지니고 있었다. 너무나 강력하고 위험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숨겨야 했던 비밀, 바로 ‘언어의 7번째 기능‘을 담은 문서였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정보국 수사관 바야르. 그는 우선 롤랑 바르트의 주변 인물들 탐문에 착수한다. 하지만 대학가의 먹물들이 하는 말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그는 뱅센 대학의 젊은 강사, 시몽을 ‘통역사‘로 데리고 다니며 사건의 실마리를 추적하기 시작하고, 이 둘은 이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소설 같은 사건들‘에 휘말리게 된다.˝

얼핏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인데(지적 스릴러 내지 지식인 스릴러?) 바르트의 그 주변의 지식사회에 대해 얼마간 배경지식이 있다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겠다. 제목의 ‘7번째 기능‘은 언어의 6가지 기능에 관한 야콥슨의 이론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나저나 <문학 속의 언어학>(문학과지성사) 같은 야콥슨의 책은 정녕 다시 나오지 않는 것일까 문득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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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에 북리뷰를 다시 격주로 연재하게 되었다. 이번주에 실린 서평을 옮겨놓는다(분량이 전보다 조금 짧아져서 적응이 좀 필요하다). 지난 연휴에 리처드 왓슨의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원더박스)를 읽고 적었다(계기가 되어 미래학 관련서를 몇 권 더 구입했다).



주간경향(18. 03. 06) 인간이 원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설 연휴가 지나고 나니 비로소 한해가 시작되는 듯하다. 서평을 다시 연재하게 되면서 어떤 책을 다룰지 고심하다가 영국의 미래학자 리처드 왓슨의 책을 골랐다. 그의 신간을 손에 든 것도 인공지능 시대가 두려운 사람들에게라는 제목에 이끌려서다(원제는 디지털 대 인간이다). 알파고가 보여준 위력 때문에 부쩍 체감하게 된 인공지능 시대는 과연 어디까지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달라진 세상에서 인간은 여전히 인간일까.


저자도 인간이기에 당연한 선택인 것도 같지만 그가 편을 드는 쪽은 디지털(내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이다. 디지털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인공지능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지만 인공지능의 특이점은 아직 불가능하다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인공지능의 특이점이란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갖게 되는 단계를 가리킨다. 만약 그런 단계의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고, SF영화에서 흔히 보여주듯 거꾸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그런 특이점이 가능하지 않은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한데, 우리가 아직 인간 의식의 작동원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계에서 의식을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방법을 알지 못하면서 언젠가는 인공의식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말하는 것은 저자가 보기에 어불성설에 불과하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따라서 현재로서는 불필요하다. 대신에 필요한 것은 컴퓨터는 인간을 통제하는 도구가 아닌 해방하고 보호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한 컴퓨터 과학자의 기대를 관철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디지털 세계가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하지만, 저자는 여전히 인간적 가치와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세상과 현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끔찍한 불행을 낳을 수 있다. 대표적 사례로 저자가 꼽는 것이 한국인 부부다. 온라인에서 만나 사귀다가 결혼한 김유철과 최미선 부부는 진짜 딸은 집에다 방치한 상태로 디지털 딸을 돌보느라 PC방에서 하루 12시간씩 게임에 몰두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가장 잘 갖춰져 있고 인터넷 평균속도도 가장 빠른 나라에서 발생한 일이라 더 상징적이다.


디지털 기술은 현실을 더 흥미롭게 바꿔줄 수 있지만 현실의 인지를 방해할 가능성도 더 높여놓았다. 디지털화된 현실이 초연결사회를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가까운 인간관계는 더 약화시켰다. 영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의 33퍼센트가 디지털 소통에서 소외를 느낀다고 답했다. 여전히 우리의 마음과 정서는 구석기 시대에 머물러 있는데, 디지털 기술은 폭주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기술의 발달은 분명 이전에 가능하지 않았던 많은 변화와 혁신을 가져왔다. 그렇지만 기계문명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기술을 우리의 목적에 맞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먼저 그려야 한다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18. 03. 02.


P.S. 분량상 여러 주제를 다루지 못했는데, 일단 '디지털 대 인간'이라는 원제는 디지털 딸을 키우느라 진짜 딸을 방치하여 죽게 만든 한국인 부부의 사례에서 가져온 것이다(찾아보니 국내기사에서는 부부의 실명이 뜨지 않았는데, 외신에는 보도가 나간 모양이고 저자도 책에서 실명을 적고 있다. 혹은 외신용 가명인지도 모르겠지만). 책의 유익함은 다양한 사례 소개에 있는데, 영국 사진작가 베이비케이크스 로메로의 작품이 언급되기에 찾아보았다. 디지털 시대의 익숙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풍경이었다. '대화의 죽음' 시리즈 몇 장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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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주문하고 아침에 받은 책은 ‘사후 50주년 기념 결정판‘으로 나온 <김수영 전집>(민음사)이다. 민음사판 전집도 두 종을 갖고 있지만 ‘결정판‘이란 말에 혹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김수영의 현재성‘에 어울리는 새 전집 아닌가.

편자는 민음사 편집주간을 역임한 이영준 교수. 이번 전집 발간으로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2009)와 시선집 <꽃잎>(2016)을 편집한 이력의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번 전집의 미진함에 대한 불평을 이런저런 자리에서 듣고는 했는데 결정판이 말끔하게 해소해주었기를 기대한다. 김수영의 현재적 의의에 대해서 신형철 평론가는 이렇게 적는다.

˝시인 김수영은 한국시사에 최소 두 개의 시학적 발명품을 선사했다. 비속한 일상어로도 계시적 효과를 거두는 기술, 그리고 카오스모스에 가까운 시적 구조로 역동적인 난해함을 창출하는 기술. 시를 쓰는 데에만 사용된 기술이 아니다. 일상적 시어는 제 자신의 속물성을 적발하고 고백함으로써 나날이 거듭나려 했던 그의 사인(私人)적 고투의 반영이고, 카오스모스적 구조는 한국사회가 억압적인 질서정연함이 아니라 해방적인 혼란으로 가득하기를 바랐던 그의 무한 자유를 향한 시민적 신앙의 반영이었다.

그는 각각을 ‘죽음의 연습’과 ‘사랑의 변주’라 불렀는데, 이는 4.19에서 목격한 빛을 5.16 이후의 동굴 속에서도 끝내 잊지 않기 위해 그가 연마한 존재의 기술이기도 했다. 다시 온 세상이 ‘사랑에 미쳐 날 뛸’ 날이 오기를 바랐던 그의 희망은 1987년과 2017년의 시민혁명으로 실현됐으니, 과연 희망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 능력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에게서 배운다. 그러나 아무리 배우고 또 배워도 언제나 새로운 그를 누구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리라. 이 시인ㆍ사인ㆍ시민의 성(聖)삼위일체를 우리는 ‘김수영’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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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친구‘가 한 사람을 가리킨다면 바로 그 사람, 막스 브로트의 <나의 카프카>(솔출판사)가 재번역돼 나왔다. <카프카 평전>(문예출판사, 1981)이라고 정말 오래 전에 나왔다가 절판된 책이다. 나도 도서관 책으로만 구경하고 복사한 기억이 있다. 이번 책은 지난해 완간된 카프카 전집의 서플먼트로 여겨진다. 애초의 평전보다 증면되었는데 다른 글들도 포함되어 있어서다.

˝이 책은 막스 브로트의 가장 중요한 세 개의 저술, ‘프란츠 카프카, 전기‘(1937), ‘프란츠 카프카의 신앙과 학설‘(1948),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에 나타난 절망과 구원‘(1959)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며, 1939년 나치를 피해 팔레스타인으로 망명한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의 유작 및 편지, 엽서, 스케치까지 안전하게 감춰 보존한 자료를 함께 수록하여 더욱 그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구성의 책은 영어판에 없고 아마 독어판으로도 없지 않을까 싶다(확인해보니 한국어판은 독일 피셔출판사판을 옮긴 것이다). 유고 관리자로서 브로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유고가 공개된 이후 현재는 브로트판보다 비평판이 읽히는 추세다), 그리고 카프카에 대한 과도한 유대주의적 해석에 공감하기 어렵지만 카프카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는 점에서 그의 기록과 증언이 의미가 있다.

다음 주부터 카프카에 대한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어서 더욱 반갑다. 박홍규 교수의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푸른들녘)도 이번에 다시 나왔다. 이미 읽은 책이지만 개정된 내용이 있는지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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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작가론이나 연구서는 생각날 때마다 챙겨놓는 편인데 이번에 구입한 책은 이상 관련서들이다. 권영민 교수의 <이상문학대사전>(문학사상, 2017)과 이보영 교수의 <이상 평전>(전북대출판문화원, 2016)이 학계의 성과라면, 이상 사후 가족들의 뒷이야기를 다룬 정철훈의 <오빠 이상, 누이 옥희>(푸른역사, 2018)는 문학담당기자의 발품이 느껴지는 책이다. 이 가운데 <오빠 이상, 누이 옥희>의 소개는 이렇다.

˝저자 정철훈은 우연한 기회에 이상의 누이인 옥희의 아들 문유성 씨를 만나 이상 사후의 가족비사를 녹취할 수 있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베일에 싸인 이상 애사이자 이상 사후에 남겨진 가족들이 어떤 경위를 거쳐 살아남았는지를 규명해 주는 비사였다. 한 걸출한 문학적 천재를 아들로 둔 어머니 박세창 여사와 누이 옥희의 여생, 그 감춰진 이야기는 한국문학사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관심을 갖는 부분은 <오빠 이상, 옥희 누이>가 앞서 나온 <이상문학대사전>이나 <이상 평전>을 보충하거나 교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느냐는 점. 확실한 건 대조해가며 읽어봐야 알겠다. 아무려나 생전의 삶과 문학세계, 그리고 사후의 이야기까지 이 세권이 책이 망라하고 있으니 ‘이상문학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 계산으로 구비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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