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강의에서 읽었다. 몇년 전에는 펭귄클래식판으로 읽었는데 품절된지라 이번에는 열린책들판으로 선택했다. 둘다 1891년판의 번역. 연도를 적은 건 어떤 번역본들의 경우 원저의 출간연도가 1890년으로 나와있어서다. 두 개의 판본이 있어서인데 통상적으로는 잡지 발표본(1890년)보다 단행본(1891년)판을 정본으로 간주한다. 형식상의 차이는 1890년판이 13개 장으로 구성된 데 비하여 1891년판은 20개장이고 분량도 증보되었다.

그렇지만 나로선 동성애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는 1890년판에 더 관심이 있다. 1891년판은 문제를 제기한다기보다는 수습하면서 타협한 판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영어판으로 나와있는지 확인해봐야 하고 번역본 가운데 실제로 1890년판 번역본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판본 문제는 기초적이면서도 작품 이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교양강의에서 그런 차이를 비교하는 건 드문 일이긴 한데(그래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프랑켄슈타인> 같은 작품을 강의할 때는 항상 언급한다. <춘향전> 같은 우리 고전도 판본 문제가 본질적이다) 강의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에 좀더 예민해진다. 물론 펭귄판 등에 실린 서문(해설)을 참고하는 것으로 수고를 대신할 수는 있다. 그래도 번역이 있으면 읽어볼 생각이 있기에 간단히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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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작가 조지 엘리엇의 대표작 <미들마치>(주영사)가 재출간되었다. 조지 엘리엇은 후기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올해가 탄생 200주년이기도 해서 <미들마치>가 재출간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1990년대에 금성출판사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왔었기에 재출간이라고 썼는데, 이번에 나온 번역판이 정확히 같은 판이다.

번역에 수정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역자가 같다. 차이라면 두권으로 분권되어 있던 것이 통권으로 나왔다는 점. 무리하게 여겨지는데, 그래서 분량이 1,400쪽이 넘어간다. 책값도 액면으로는 58,000원이므로 과연 구매독자가 얼마나 될지도 궁금하다. 아쉬운 일이지만 가격과 분량 때문에 나로선 강의교재로 쓸 수 없다. ‘그림의 책‘이 한권 더 늘어난 셈. 이전에도 그랬고 엘리엇의 작품으로는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온 <플로스강의 물방앗간>(민음사)을 대표작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연구자들은 보통 이 두 작품을 그의 대표작으로 본다.

이번여름 영국문학강의에서도 조지 엘리엇의 작품은 <플로스강의 물방앗간>을 읽는다. <아담 비드>와 <다니엘 데론다>도 번역돼 있지만 역시 분량과 가격이 맞지 않다. 기대하는 건 <사일러스 마너>와 <미들마치>의 새 완역본이 나오는 것인데 가능한 일일지는 미지수다. 예전판 <미들마치>는 복사본으로 갖고 있는데, 같은 번역본이라면 이번 번역판을 구입할 이유는 없다. 고대하던 책이 나왔지만 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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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뱃살 2019-06-15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자인 이가형씨는 2001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전 판을 그대로 옮긴 것 맞죠.

로쟈 2019-06-16 12:32   좋아요 0 | URL
네, 30년된 번역이니까요.
 

강의 공지다. 영종하늘도서관에서 7월 6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서 '영화 속의 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 원작의 <칠드런 액트>가 7월에 개봉되는 걸 염두에 두고 매큐언 원작과 각색의 영화 두 편을 주제로 골랐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포스터를 참고하시길.


로쟈와 함께 읽는 '영화 속의 문학'


1강 7월 06일_ 이언 매큐언, <체실 비치에서>



2강 7월 27일_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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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곳의 지방강의를 마치고 귀경중이다. 서울역에서는 다시 버스로 환승해야 하기에 자정이 넘어 귀가하게 된다. 요즘은 버스보다도 KTX를 더 자주 타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이동간에 생각난 작품은 체호프의 단편 ‘우수‘다. 가난한 마차꾼 이오나의 이야기. 아들을 잃은 슬픔을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나중에는 마차를 끄는 말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단편에서 아들을 잃은 슬픔보다 이오나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제목을 빌려, 우수에 잠기게 하는 것은 그걸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이동간에는 낯선 사람들 속에서 아무런 대화 없이 묵묵히 시간을 보내야 하니 이오나의 처지와 비슷한 면이 있다. 비록 ‘우수‘의 배경은 겨울이라는 점에서 눈발을 맞으며 고개를 푹 수그린 이오나까지는 흉내내지 못하겠지만 차창으로 비치는 충혈된 눈을 보자니 상태가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무얼 잃어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젊음을 잃어버렸나?

로렌스의 <사랑에 빠진 여인들>(1920)을 강의에서 읽다가 두 여주인공 어슐라와 구드룬의 나이가 스물대여섯임을 다시 확인한다. 소위 ‘사랑에 빠진 여인들‘의 나이다. 지금 기준으로는 아직 어린 나이일 수 있으나 당시에는 세상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나이였기도 하다. 남자 주인공인 버킨과 제럴드는 그보다 조금 위이고. 사실 이 소설에서 연애하는 커플은 버킨과 어슐라, 제럴드와 구드룬 외에 버킨과 제럴드가 추가된다. 이른바 남자 사이의 완벽한 관계를 모색하는 남남커플이다.

<사랑의 빠진 여인들>의 차별성은 제목과는 달리 이 남남커플의 모색에 두어진다. 로렌스의 마지막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는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것이 이러한 남남커플 혹은 남자끼리의 사랑이다. 나는 그것이 로렌스 소설이 수축이라고 생각한다. 이성간의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사랑에 빠진 여인들>의 결론이라면 제목은 ‘사랑에 빠진 남자들‘로 읽어도 틀리지 않는다. 로렌스가 발을 디뎠으되 끝까지 가지 않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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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라면 종강 시즌이다. 대학강의를 그만둔 지 꽤 되었음에도 이럴 때는 편승하고 싶기도 하다. 종강과 방학(물론 성적처리는 빼고). 강의가 일상이다 보니 일상의 피로감이 강의의 피로감으로 대체되었다. 기계가 아니다 보니 이런저런 정념들도 피로를 가중시킨다. 내 경우 강의와 관련하여 가장 큰 스트레스는 강의책과 참고서적을 제때 찾는 것과 필요한 만큼 읽는 것이다. 제때 찾지 못해 다시 구입하거나 구입한 자료들을 제때 읽지 못하는 것이 늘 스트레스가 된다.

가령 워즈워스의 <서곡>(1850)에 대해 강의하기 위해 구입한 책들도 상당히 많은데 극히 일부만 참고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의 중요 판본으로 1805년판도 번역본이 나와있지만(다소 늦게 구입했다), 두 판본을 비교해서 읽어볼 여유는 없었다. 관련 자료들에서 차이에 대한 언급만 읽었을 뿐. 워즈워스 사후에야 출간된 <서곡>은 프랑스혁명에 대한 워즈워스의 견해와 태도 변화가 수정과정에 반영되어 있어서 판본에 대한 꼼꼼한 비교독해가 필요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정도 되면 전공자의 영역이어서 교양강의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런 관점에서 두 판본을 비교한 국내논저를 보지 못해서 이런 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인데 현재로선 그럴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나로선 프랑스혁명과 워스워스의 관계를 러시아혁명과 블로크와의 관계와 비교해보면 유익하겠다고 생각을 했고 강의에서는 그 비교의 포인트를 지적했다. 비단 두 시인의 비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는 <서곡>과 블로크의 서사시 <열둘>이 역사(혁명)을 서사시라는 장르가 어떻게, 어디까지 다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표본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두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동일하게 그 성취와 한계다. 근대소설과 비교될 수 있는 성취와 한계이기도 하다.

더 자세한 해명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기본 자료와 번역서가 갖춰져야 한다. 아쉬운 대로 <서곡>은 두 종의 번역본이 나와있지만 <열둘>은 번역이 절판된 상태에서 다시 나오지 않고 있다(블로크 시선집에서 빠진 건 특이한 일이다). 책은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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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1 2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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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2 06: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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