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라면 종강 시즌이다. 대학강의를 그만둔 지 꽤 되었음에도 이럴 때는 편승하고 싶기도 하다. 종강과 방학(물론 성적처리는 빼고). 강의가 일상이다 보니 일상의 피로감이 강의의 피로감으로 대체되었다. 기계가 아니다 보니 이런저런 정념들도 피로를 가중시킨다. 내 경우 강의와 관련하여 가장 큰 스트레스는 강의책과 참고서적을 제때 찾는 것과 필요한 만큼 읽는 것이다. 제때 찾지 못해 다시 구입하거나 구입한 자료들을 제때 읽지 못하는 것이 늘 스트레스가 된다.

가령 워즈워스의 <서곡>(1850)에 대해 강의하기 위해 구입한 책들도 상당히 많은데 극히 일부만 참고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의 중요 판본으로 1805년판도 번역본이 나와있지만(다소 늦게 구입했다), 두 판본을 비교해서 읽어볼 여유는 없었다. 관련 자료들에서 차이에 대한 언급만 읽었을 뿐. 워즈워스 사후에야 출간된 <서곡>은 프랑스혁명에 대한 워즈워스의 견해와 태도 변화가 수정과정에 반영되어 있어서 판본에 대한 꼼꼼한 비교독해가 필요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정도 되면 전공자의 영역이어서 교양강의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런 관점에서 두 판본을 비교한 국내논저를 보지 못해서 이런 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인데 현재로선 그럴 여유를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나로선 프랑스혁명과 워스워스의 관계를 러시아혁명과 블로크와의 관계와 비교해보면 유익하겠다고 생각을 했고 강의에서는 그 비교의 포인트를 지적했다. 비단 두 시인의 비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는 <서곡>과 블로크의 서사시 <열둘>이 역사(혁명)을 서사시라는 장르가 어떻게, 어디까지 다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표본적인 사례라고 생각한다. 두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동일하게 그 성취와 한계다. 근대소설과 비교될 수 있는 성취와 한계이기도 하다.

더 자세한 해명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기본 자료와 번역서가 갖춰져야 한다. 아쉬운 대로 <서곡>은 두 종의 번역본이 나와있지만 <열둘>은 번역이 절판된 상태에서 다시 나오지 않고 있다(블로크 시선집에서 빠진 건 특이한 일이다). 책은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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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1 2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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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2 06: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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