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3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리시울)에 대해 적었는데, 얇은 책임에도 막상 서평에서는 일부 내용만을 언급할 수 있었다. 한 차례 포스팅한 대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구픽)도 최근에 나왔는데, 원서도 엊그제 받은 김에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다(그의 책은 모두 구입했다)...

















주간경향(17. 07. 08) 자본주의, 여전히 강력하지만 구멍 역시 커진다


영국 비평가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먼저 제목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 무엇이 ‘자본주의 리얼리즘’인가.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존립 가능한 정치·경제 체계이며 그 대안은 가능하지 않다는 감각이다. ‘대안은 없다’는 과거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독트린이 그대로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슬로건이다. 저자가 대담에서 인용한 말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자본주의가 싫으면 북한에나 가서 살아라.”

자본주의 이후에 대한 상상이 봉쇄되고 그 대안이 고작 북한이라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무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전위적인 문화비평가로 활약했던 저자는 비록 자본주의가 강고한 현실을 구축하고 있지만 그 대안의 모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이 그의 내기다. 사실 필요한 것은 그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가르는 기준 자체의 변경이다. 지금 현실적이라고 이야기되는 많은 것들이 한때는 불가능한 것이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저자는 라캉 정신분석학의 개념을 빌려서 ‘현실’과 ‘실재’를 구분한다. 현실은 실재에 대한 억압으로 구성되기에 실재는 현실에서 재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의 균열과 비일관성 속에서만 드러나는 어떤 외상적 공백이다. 그러한 실재의 대표 사례가 환경 재앙이다. 가령 원자력 안전신화를 철저하게 무너뜨린 후쿠시마 원전사고만 하더라도 현실로 통합될 수 없는 실재적 사건이다. 그것은 동시에 자본주의의 무한성장 신화에 대한 묵시록적 경고이기도 했다.

환경 재앙에 대한 문제의식은 많이 공유된 상황이라는 판단에서 저자는 두 가지 쟁점을 거기에 추가한다. 하나는 정신건강이고, 관료주의가 다른 하나다. 자본주의는 정신건강을 마치 자연현상인 양 다루고자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날씨가 자연적 사실을 넘어서듯이 정신건강은 그 자체가 정치적 범주에 속한다.

광기뿐 아니라 우울증 같은 경우도 영국에서는 국민건강보험으로 처리되는데,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스트레스와 그 고통 역시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신건강 질환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속 증가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유일한 사회체계이기는커녕 내재적으로 고장나 있으며, 그것이 잘 작동하는 듯이 보이도록 만드는 비용이 아주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승리와 관료주의는 한물간 것으로 취급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더 비대해졌다. 관료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증식한 때문이다. 이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교육현장인데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자로 양성된 학생들과 여전히 훈육적 방식의 교육을 고집하는 교사들 사이의 간극은 극복되지 않는다.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는 비단 영국 사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소위 학교 붕괴 현상은 현단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교육이 당면한 일반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그 구멍 역시 커지고 있다는 것이 명민한 비평가의 진단이고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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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7-0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으면서 그 구멍을 부작용으로만 생각하고
구멍을 메워야 된다는 생각속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자본주의의 끝이 세상의 끝이라 여기고.


로쟈 2019-07-07 10:24   좋아요 0 | URL
그게 자본주의 리얼리즘이죠.~
 

이달에는 5회에 걸쳐 한국현대시 강의도 진행하는데 어제 첫 시간에 다룬 시인은 김소월이다. 선택의 여지도 없다고 할 수 있는데 현대시사의 첫 머리에 오는 시집이 <진달래꽃>(1925)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그에 이어지는 시집이 만해의 <님의 침묵>(1926)이다). 따라서 현대시사 이해의 첫 과제는 소월의 시적 성취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해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의는 유감의 말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데 소월시를 읽을 때 필수자료로 읽을 만한 평전이 아직도 나오지 않아서다. 평전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책이 없지는 않으나 모두 연보를 자세하게 푼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시사의 많은 시인들의 평전이 나와있음에도 유독 소월의 경우에만 그 위상에 걸맞는 평전이 나와있지 않다. 백석과 함께 학계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시인이라는 사실에 비추어도 이례적이면서 불만스러운 현실이다.

결과적으로는 한국 현대시 이해에 온전한 첫발을 내딛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무래도 어정쩡한 모양새밖에 되지 않는데, 나로선 무엇보다도 스승인 김억(김안서)와의 관계가 잘 해명되어야 소월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소월은 김억의 주선에 의해 시들을 발표했다. 요즘식이라면 스승이 제자의 매니저 노릇을 한 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호의적이면서 동시에 불화관계였다. 김억의 진술에만 의존할 수 없는 이유다). 더불어 소월의 독서 경험과 번역작업 등도 제대로 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여건이 아직 갖춰지지 않아서 나는 소월시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가설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작 ‘진달래꽃‘만 하더라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시라는 통상적인 이해는 이 시의 시제가 미래시제라는 것을 간과한다. 오지 않은 이별을 노래한다는 것은 거꾸로 현재의 사랑을 강조하는 것으로도 읽힐 수 있다. 님이 아직 내 곁에 있다면 진달래꽃을 가시는 길에 뿌리겠다는 제스처는 ‘가진 자의 여유‘로 읽힌다. 정반대로 ‘사랑의 기쁨‘을 반어적으로 노래한 시가 되는 것이다. 너무도 잘 알려진 시이건만 ‘진달래꽃‘에 대한 이해조차도 나는 미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시인이 소월이다. 어제 강의에서는 그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언제나 제대로 된 규모의 좋은 평전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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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 2019-07-05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억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와 김소월이 읽은 어떤 번역시와 김소월의 시는 어떤 삼각형의 꼭지점으로 이어져 있을 듯 합니다.

로쟈 2019-07-05 06:29   좋아요 0 | URL
네, 당연히 포함되고요, 그밖에 소월은 투르게네프의 소설을 번역하기도 했고 짧게 일본유학생활도 경험했기에 그에 대한 자세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햄릿이 말했다 죽음보다 
두려운 건 죽음에서 깨어나는 일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죽음이 끝이 아니고 고뇌도 끝나지 않는다면
헛되고 헛된 죽음이라
헛된 삶조차도 구제 못할 죽음이라니
삶보다도 못한 죽음이라니
햄릿은 탄식했다 죽음은 
고작 삶이 꾸는 꿈
무덤 속에서도 유골이 꾸는 꿈
그리고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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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07-02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멋진 시인데요! 게다가 짤이! 컴버비치가 연기한 ntlive 햄릿!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로쟈 2019-07-03 23:21   좋아요 0 | URL
햄릿이 쓴 거죠.~

2019-07-02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3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막국수를 먹으며
씻을 수 없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막국수는 육전막국수
소고기육전이 들어가서 육전막국수
그래도 막국수인데 씻을 수가 없다니
무언가로 보상할 수 없고
회복할 수 없고 씻을 수 없는 일들이
나는 막국수를 먹으며
필연코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인지
씻을 수 없는 일은 끝내 씻을 수 
없는 일이어서 사무라이는 할복을 하고
아이아스는 칼끝에 몸을 던지지
씻을 수 없는 일은 그렇게 씻기는 것일까
그럼에도 씻을 수없는 일일까
막국수처럼 돼버린 일들을
생각하다가 나는
냅킨으로 입을 닦는다
입을 닦는 일이 전부다
아 씻을 수 없는 일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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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엔가 제목만 보고 바로 구입한 책이 조지 스타이너의 <나의 쓰지 않은 책들>(서커스)이다. 번역되면 좋겠다 싶었는데, 이번에 출간되었다. 
















저명한 문학비평가이기도 한 스타이너의 책은 얼마전에 재출간된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와 <하이데거> 정도가 소개된 듯싶은데, 저자의 명망에 비하면 좀 초라해 보인다. 몇 권 더 소개되어도 좋겠다 싶은데, 일단은 <나의 쓰지 않은 책들>부터 재미있게 읽은 준비를 해야겠다. 뉴욕타임스 스 북리뷰의 한 대목.  


"박식가 중의 박식가. 스타이너의 박식함은 그의 문장만큼이나 독보적이다. 치밀하고, 예리하고, 심오하다. 그의 책을 보면 그가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부터 포스트모던 시대까지 모든 문화에 통달해 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어제오늘 내내 침체된 상태에 있었다. 심신이 피폐해졌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거겠지 하며 줄곧 휴식을 취하다가 부랴부랴 이번주 강의자료를 만들고 이제 잠자리에 들려고 한다. 그래도 책 한권은 건졌다는 기분에 작은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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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1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1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