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무도 취하지 않았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아무도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아니다
아무도 만취하지 않았고 시비를 걸지도 않았다

아침이었다 아침부터 취할 수는 없다
추한 일이다 비틀거린 기억은 있다

그랬지 그건 당신도 기억나는 일
당신도 발을 뺄 수 없는 일

취하지 않아도 횡설수설이 가능했다
맥주 한잔으로도 만취할 수 있었다

만취하고도 나는 말이 없었다
기쁜 표정이었지만 기쁘지 않았다
나는 스무살

비틀거리며 이태원에서 귀가했을 때
하숙집 사람들은 모두 자고 있었지

아침에야 보았다 촛불을 켜지 못한 케익
단 한번 촛불을 끄지 못한 케익

아무도 전날의 일은 묻지 않았다
하숙집 사람들은 하나둘 떠났고
나도 떠났다 

스무살을 그렇게 지나쳤다
단 한번의 스무살이 당신에게도 있었지

당신은 비틀거리며 택시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갔지 고개처럼
올라가야 숨이 찰 때쯤 하숙집이 있었지

하숙집 사람들은 모두 자고 있었지
하숙집 사람들은 모두 떠났지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또 군대에 갔지
나는 군대에 갔지

그랬지 그건 당신도 기억나는 일
이듬해 신촌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 욜
터키 영화 욜이었지 길이었지

그날도 지금도 취하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횡설수설하는군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나는 여전히 기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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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먼 멜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얼마전에 새번역 <모비딕>(1851)도 출간되었지만 내게는 올해 멜빌 강의 일정이 없다. <필경사 바틀비>에 대해서만 한 차례 강의하는 것 말고는. 지난해 미국문학 강의에서 할 만큼 했기 때문인데, 그래도 여전히 숙제는 남아있다. <모비딕> 이전과 이후에 대해서 다루는 것. <모비딕> 앞으로는 다섯 편의 장편이 있고(<타이피>만 예전에 번역본이 나왔었다) 뒤로는 두세 편이 있다. 먼저, <모비딕> 이전.

타이피(1846)
오무(1847)
마르디(1849)
레드번(1849)
하얀 자켓(1850)

이들 가운데 첫 소설 <타이피>만 유일하게 해양모험소설로 좀 팔린 것으로 안다(당시 독자들은 실제 모험담으로 생각했다고). 그에 고무돼 연거푸 작품을 써댔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고, 알려진 대로 <모비딕>은 재앙과 같은 실패작으로 남았다. 물론 얼만큼 팔렸느냐는 기준으로. 이후 소설에 대한 열정을 지속적으로 갖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멜빌은 1866년부터 세관 공무원생활을 20년간 하게 된다. <모비딕> 이후의 주요작은(<빌리버드> 같은 후기 문제작을 빼면) 두 작품이다.

피에르 혹은 모호함(1852)
사기꾼(1857)

<피에르, 혹우 모호함>(시공사)이 옃년전에 출간되었는데 같은 역자에 의해 <사기꾼, 그의 가면무도회>(지식의날개)도 이번에 나왔다. 19세기 미국문학을 다시 다룰 순번이 되면(2-3년 뒤가 되지 않을까 한다. 세계문학강의가 3-4년의 로테이션 주기를 갖고 있어서) 필히 읽어보려고 한다. 페이퍼를 예고편으로 미리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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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도서관에서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 대한 강의가 있었다. 계기 삼아서 알베르 티보데의 <귀스타브 플로베르>와 <미친 사랑의 서>에서 플로베르 장을 읽었다. 플로베르와 그의 정부 루이즈 콜레의 관계에 대해서 좀더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가 플로베르 서간집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보이는데(플로베르 서간집은 영어판의 경우 두 권으로 나와있다), 조르주 상드와 주고받은 편지와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많은지 모르겠다(짐작엔 둘다 책 분량은 된다).

<감정교육>의 아르누 부인의 모델인 엘리자 슐레쟁제가 플로베르 인생의 여인으로 얘기되지만 엘리자는 꿈속의 연인이자 문학적 형상에 가깝고 실제 현실에서의 연인은 루이즈 콜레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1846년부터 대략 8년간 지속되었다. 엘리자와 루이즈, 모두 1810년생으로 플로베르보다는 열한살 연상이다. 말년에 긴밀한 교분을 나눈 조르주 상드는 1804년생으로 플로베르보다 열일곱 살이 더 많다. 이렇듯 연상의 여인과 연하남의 관계가 프랑스식 ‘감정교육‘의 기본모델이다(<프랑스식 사랑의 역사> 참조).

플로베르보다 더 적극적인 정부였던 루이즈 콜레와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환멸과 증오로 일단락된다. 결혼을 혐오했던 플로베르는 가끔씩의 만남과 편지교환 상대로서의 정부만을 필요로 했을 뿐이었다(여러 가지로 플로베르는 카프카의 롤 모델이다). 플로베르의 허락 없이 그가 창작에만 열중하며 칩거해 있던 크루아세를 방문했다가 콜레는 냉대를 받기도 했다. 아무튼 슐레쟁제와 콜레, 그리고 상드를 플로베르 인생의 세 여인으로 꼽을 수 있을 듯하다(어머니와 조카딸 같은 가족을 제외하면). 이 여성들이 플로베르의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오후에 몇 자 적으려고 했던 글인데 핸드폰을 몇 시간 유실했다가 찾게 되는 바람에 늦어졌다. 피로하기도 하여 짧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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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펭귄 이야기

13년 전 독서기록이다. 우크라이나 작가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펭귄의 우울>(솔출판사)을 소개하고 있는데 나도 다 읽지 않았다. 이후에 <펭귄의 실종>이 추가로 더 나왔지만 현재는 모두 절판된 상태다. 완전히 잊힌 작가라고 할까. 그래서 ‘사라진 책들‘ 카테고리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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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가 연이어 나왔다. 미국의 사진작가에 대한 평전으로 퍼트리샤 모리스로의 <메이플소프>(을유문화사)와 재즈 아티스트에 대한 평전, 피터 페팅거의 <빌 에반스>. 들어본 이름들이지만 나는 메이플소프의 사진과 빌 에반스의 연주를 다른 사진/연주와 식별할 수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메이플소프에 대해서는 그의 연인이자 동지였던 패티 스미스의 <저스트 키즈>를 읽지 않았기 때문(읽는다면 두 권을 같이 읽어야겠다). 재즈에 대해서도 문외한인 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두 권 모두 좋은 평전임에는 틀림없다. <메이플소프>에 대해선 철학자이자 미술비평가 아서 단토가 ˝정말로 감탄스러운 전기, 용감한 책이다. 저자가 그려 낸 초상의 선명함과 솔직함은 그 집필 대상만큼이나 가치가 있다.˝고 평했다. <빌 에반스>에 대해선 “이 책은 에반스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동반자다.”(보스턴글로브)라는 평을 참고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 재즈에세이에 나오는 것 같은데 빌 에반스에 대한 하루키의 평은 이렇다. “빌 에반스의 연주는 너무나 훌륭하다. 우리는 상당한 문제를 껴안고 있는 자아가 재능이라는 여과 장치를 통과하면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보석이 되어 땅으로 톡톡 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재즈카페 운영자였던 하루키의 견해라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예술가 평전 시리즈도 반갑지만 사실 나로선 작가들의 평전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데(이번주에 구입한 건 빅토르 위고와 숄로호프 평전이다. 로버트 스티븐슨은 배송이 지연되고 있다) 책세상의 ‘위대한 작가들‘ 시리즈가 차츰 절판되는 과정에서 이를 대체할 만한 다른 작가 평전은 눈에 띄지 않는다. 도스토옙스키나 조이스 평전조차도 시중에는 남아있지 않은 게 독서현실이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이런 자리를 빌려 투덜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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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8-31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랠프 엘리슨에 대해 읽는중인데
빌 에반스는 누군지 모르겠으나 재즈라는 단어에 꽃혀~
엘리슨의 이해에, 재즈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나 싶어서요.

로쟈 2019-08-31 19:44   좋아요 0 | URL
그건 선택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