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그들'이 너무 많은가?

11년 전에 쓴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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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론>의 철학자 존 롤스의 <도덕철학사 강의>(이학사)가 출간되었다. 출간일로는 어제 나온 책이다. 원저는 진즉 알고 있었고 소장도서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구매내역에 없어서 상황을 판단중이다(구매하려던 책을 구매한 책으로 착각한 것인지도).

˝사회·정치철학의 불후의 명저인 <정의론>의 저자이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 존 롤즈가 하버드대학에서 진행했던 전통적인 도덕철학 강의를 담은 강의록이다. 당대를 선도적으로 이끈 정치철학자 롤즈는 하버드대학에서 30년간 다양한 도덕철학 강의를 펼치며 철학적 윤리학에 대한 오늘날의 접근 방식과 이해 방식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예일오픈코스‘의 책들을 두 권 강의에서 다룬 적이 있기에(그러고 보니 샌델의 하버드 강의 <정의란 무엇인가>도 강의에서 여러 차례 다루었다) 롤스의 강의도 난이도만 적절하다면 강의에서 다룰 수 있겠다 싶다. 물론 샌델처럼 달변의 강의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서도. 아, 샌델의 박사학위논문이 롤스의 자유주의 검토와 비판이라는 사실을(아는 사람은 아는) 말이 나온 김에 적어둔다. <도덕철학사 강의>와 <정의란 무엇인가>를 비교해서 읽어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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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다는 섬모가 좋다
인간다움이 제거된 부드러운 털이 좋다
둥글고 잘 휘어지는 등이 좋다
구불구불 헤엄치는 무정형의 등이 좋다
휩쓸고 지나가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온순한 맨발이 좋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매순간 새롭게 생겨나는 위족이 좋다
때로 썩어가는 먹이를 구하지만
소화시킬 수 없는 것은 다시 내보내는 식포가 좋다
맑은 물에도 살고 짠물에도 살며
너무 많은 물은 머금지 않는 수축포가 좋다
일정한 크기가 되면
둘로 쪼개지는 가난한 영토가 좋다
둘로 나누지만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아서 좋다
 
그는 사랑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찾아온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 끌어안았던 태고의 신비
그 저녁의 온기를 기억해낸 것뿐이다
섬모와 섬모가 닿았던 감촉을 다시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나희덕,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

따로 해석할 게 없는 시들이 좋다. 때로는 아메바가 되고 싶었던 이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시이리라.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황지우) 같은 시를 읽어 마땅한 겨울 마지막날에, 책장에서 우연히 꺼내 펼쳐든 시집에서 아메바를 발견하고 나는 곧바로 아몌바 편이 된다.

다시, 읽던 애덤 스미스로 돌아간다. 평생 독신이었던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대한 해설을 읽던 차였다. 그도 아메바를 그리워한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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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1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난오늘‘의 흔적이 하나도 없어서 다시금 상기한 게 오늘 날짜다. 2월 29일. 그렇지만 오늘은 흔적을 남기게 되니 다음 윤년에는 오늘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일단 이번주 한겨레에 실은 ‘언어의 경계에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로먼 크르즈나릭의 <원더박스>, 바뀐 제목으로는 <역사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원더박스)의 한 대목을 간추렸다. 책 열두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가족‘ 장의 내용이다. 남녀간의 분업 문제 외에 가족간의 대화라는 주제까지 염두에 두고 글을 시작했지만 역시나 분량이 짧았다. 좀더 많이 읽힐 만한 교양서다...
















한겨레(20. 02. 28) 지금 당신에게 ‘원더박스‘가 필요하다면

제목을 보고 짐작할 수 있지만 ‘역사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원제가 아니다. 번역을 언어의 경계 넘기로 정의하자면 이 책은 두 차례 그 경계를 넘어왔는데 처음에는 ‘원더박스’라는 제목이었고 원제 역시 그러하다. 알랭 드 보통과 함께 ‘라이프스타일 철학자’로 불리는 저자 로먼 크르즈나릭은 역사를 ‘원더박스’에 비유한다. 르네상스 시대 ‘호기심의 방’을 뜻하는데 수집가들이 여러 진기한 물건들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공간을 가리킨다. 일종의 보물창고다.

역사라는 보물창고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는가. 크르즈나릭은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역사에서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분명 특이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여전히 잘 몰랐던 역사, 새삼 다시 음미해볼 만한 사실들과 만나게 된다. 저자는 사랑에서 죽음까지 열두 가지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각각의 주제가 모두 흥미롭지만 일례로 가족의 역사를 잠시 살펴본다. 가령 집안에서 남녀의 역할분담은 어떻게 하면 좋은지 질문한다면 역사는 어떤 답변을 들려줄까.

문화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서양의 경우 남자가 일을 하러 집을 떠나는 관행은 19세기에야 등장한다. 즉 남녀의 영역 분리는 산업화의 산물이다. 산업화 이전에는 경제생활과 가정생활이 모두 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집안일은 공동의 소관이었다. 옷감 만들기, 소젖짜기, 물 긷기 등의 집안일에 남녀 구분이 따로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출산 도중 여자가 사망하는 일이 많아서 남자가 양육을 전담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남자 주부가 이상하지 않았고 편부 가정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그랬던 상황이 산업혁명이 가져온 사회, 경제적 변화로 인하여 완전히 바뀌었다. “석탄이 표준 연료가 되어 나무를 대신하자 남자들은 밖에 나가서 석탄을 구매할 충분한 돈을 벌어 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남녀의 역할이 다르다는 ‘분리된 영역’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변화가 공고화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산업화 이후에 남자들은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만 가사에 관여했다. 특히 노동자계급에서는 남자가 가사노동에 참여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의 구분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산물로 20세기 중반이 그 극성기였다. 저자는 제임스 딘 주연의 영화 <이유 없는 반항>(1955)의 한 장면을 예로 드는데, 반항의 아이콘이었던 딘이 불쑥 집에 찾아왔다가 정장 차림에 앞치마를 두른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역겨워하는 장면이다. 육아와 가사는 남자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는 편견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렇지만 남녀의 노동 구분이라는 고정관념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도전받기 시작한다. 결정적인 계기는 피임약과 페미니즘의 등장이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여성이 증가하면서 더 이상 ‘바깥일’이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한국사회에 불러일으킨 반향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에 한정되지 않는다. 물론 미래에 인공자궁이라도 등장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출산은 여성의 몫으로 남겠지만 “젖병을 소독하고, 아기 옷을 사고, 셔츠를 다리고, 으깬 완두콩 요리를 하는 데는 특별히 여성 유전자가 필요하지 않다.”

역사의 교훈은 무엇인가. 현재의 문화와 관행이 결코 고정불변의 것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가 책의 길잡이로 삼은 괴테의 경구는 여전히 곱씹어볼 만하다. “지난 3000년의 역사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살 뿐이다.”

20. 02. 29.







P.S. 크르즈나릭은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멤버이기도 한데, 번역된 책으로는 <일>이 그의 책이다. 더불어 <공감하는 능력>과 <인생은 짧다 카르페 디엠>(더퀘스트)까지 소개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독자층을 얻고 있지 못한 듯하다. <역사가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만 하더라도 '알랭 드 보통이 닐 퍼거슨을 만날 때' 같은 내게는 정확해 보이는데, 정작 하버드대학의 역사학자 닐 퍼거슨이 한국에서는 보통만큼의 인지도를 갖고 있지 못한 게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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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상당수 강의 일정이 취소되거나 연기돼 갑작스레 무급휴가를 갖게 되었다. 강의와는 별도로 써야 할 원고와 교정거리가 쌓여 있으니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원래는 거기에 더해서 매주 10개 안팎의 강의가 있었다. 갑작스레 주어진 시간에 할 만한 생산적인 활동을 궁리해보다가(한시적 실직이기도 하므로)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1353)을 이 참에 읽기로 했다. 정색하고 읽은 적은 없어서다.

오래전에 단테의 <신곡>(1321)은 강의에서 읽었지만 <데카메론>은 다룰 기회가 없었다. 근대소설의 전조로서 <데카메론>과 <캔터베리 이야기> 등을 언젠가 강의에서 다루려고 했지만 무산됐었다. 이래저래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 문학강의가 숙제처럼 남았었는데 코로나 사태를 핑계로 <데카메론>을 읽으려는 것. 1348년 페스트의 참상을 목도하고 구상한 작품으로 알려지기에 ‘코로나 시절‘과 조응하는 면도 있다. 안 그래도 카뮈의 <페스트>(1947)가 이즈음 독자들이 많이 찾는 소설이 되었는데, 그런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데카메론>도 독서목록에 올릴 만하다.

<데카메론>은 열흘간 10명의 화자가 들려주는 100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에 맞추기 위해 나도 열흘간 읽으며 소감을 남기려 한다(작품에서는 평일만 계산하기에 날짜로는 두주간이다). ‘코로나 시절의 독서‘라고나 할까. 강의경력으로 치면 24년차에 이런 일도 겪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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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20-02-29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와 강의 24년차라니 대단하십니다. 강의 8년차인 저도 요즘 강의가 다 없어져서 아내가 대리운전이라도 하라고 타박합니다 ㅠㅠ 데카메론은 제가 고3 때 너무 공부하기 싫어서 이것저것 뒤지다 읽은 책이어요. 의외로 재미있어서, 고전도 재밌구나를 느끼게 해줬습니다. 암튼 빨리 코로나가 종식돼서 로쟈님과 제가 강의를 할 수 있게 되길 빕니다.

로쟈 2020-02-29 14:11   좋아요 0 | URL
아 개강이 연기된거죠? 유급휴가도 눈치보이시나요?^^

마태우스 2020-03-01 22:25   좋아요 0 | URL
그, 그게 아니고요 저도 외부강의로 먹고 살잖습니까. 근데 그게 다 취소됐습니다. ㅜㅜ

로쟈 2020-03-01 23:36   좋아요 1 | URL
부업 말씀인 걸로.^^

오지 2020-02-2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천일야화가 떠오르네요. 천일야화는
열린책들판으로? 건강 보살피시길.

로쟈 2020-02-29 14:12   좋아요 0 | URL
천일야화까지는 다시 손댈 계획이 없지만 중세문학까지 올라가다보면 그리될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