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다는 섬모가 좋다
인간다움이 제거된 부드러운 털이 좋다
둥글고 잘 휘어지는 등이 좋다
구불구불 헤엄치는 무정형의 등이 좋다
휩쓸고 지나가도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온순한 맨발이 좋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매순간 새롭게 생겨나는 위족이 좋다
때로 썩어가는 먹이를 구하지만
소화시킬 수 없는 것은 다시 내보내는 식포가 좋다
맑은 물에도 살고 짠물에도 살며
너무 많은 물은 머금지 않는 수축포가 좋다
일정한 크기가 되면
둘로 쪼개지는 가난한 영토가 좋다
둘로 나누지만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아서 좋다
 
그는 사랑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찾아온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 끌어안았던 태고의 신비
그 저녁의 온기를 기억해낸 것뿐이다
섬모와 섬모가 닿았던 감촉을 다시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나희덕, ‘한 아메바가 다른 아메바를‘

따로 해석할 게 없는 시들이 좋다. 때로는 아메바가 되고 싶었던 이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시이리라.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황지우) 같은 시를 읽어 마땅한 겨울 마지막날에, 책장에서 우연히 꺼내 펼쳐든 시집에서 아메바를 발견하고 나는 곧바로 아몌바 편이 된다.

다시, 읽던 애덤 스미스로 돌아간다. 평생 독신이었던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대한 해설을 읽던 차였다. 그도 아메바를 그리워한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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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 1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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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 22: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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