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납작하다고 다 홍어는 아니다

10년 전에 쓴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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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철학적 로고스와 문학적 로고스

15년 전에 러시아에서 쓰고, 14년 전에 올려놓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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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2020-04-27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들을 모아 “로쟈의 노트 혹은 낙서 “ 등등의 제목으로 출판하면 좋을 듯 합니다. 제겐 재미난 글들입니다.

로쟈 2020-04-27 12:50   좋아요 0 | URL
아, 이 글은 <로쟈의 인문학서재>에 들어가있습니다.^^

산책자 2020-04-27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군요! 예전에 읽었는데 지식이 부족해 이해하지 못했나봐요^^나중에 다시 읽어봐야 겠네요
 

존 캐그의 <심연호텔의 철학자들>(필로소픽)의 에피그라프가 헤세 인용이다. <차라투스트라의 귀환>은 <데미안>과 같은 해에 발표되었고 한국어로도 번역돼 있다(에세이집에 들어가 있다). 헤세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글이지만 국내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다. 이 인용문만 하더라도 헤세의 상황과 고민을 바로 엿보게 해준다. 캐그의 책 원제는 ‘니체와 함께하는 하이킹‘이다...

대다수 남자들, 곧 떼거리는 홀로임을 맛본 적이 없다. 그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지만 고작 아내에게 기어가고 새로운 따스함과 새로운 속박에 얌전히 굴복한다. 그들은 결코 혼자가 되지 못하며 결코 그들 자신과 사귀지 못한다.
-헤르만 헤세, 《차라투스트라의 귀환》,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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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콜레주드프랑스  취임연설, '담론의 질서'(1971)가 새로 번역돼 나왔다. 푸코 전공자로 지속적으로 관련서를 펴내고 있는 허경 박사가 옯겼다. 들뢰즈의 <푸코>도 지난해에 다시 번역해 펴냈다.  
















거의 25년쯤 전인데, 푸코의 책들 가운데 <지식의 고고학>과 <담론의 질서>를 정독한 기억이 있다. 번역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애를 먹었는데(영역본과 같이 읽을 수밖에 없었다). <담론의 질서>는 중원문화에서 나온 단독판 외 다른 번역이 잡지나 편역서에 더 실려 있었다(기억에는 '담화의 질서'나 '언술의 질서' 등의 제목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려나 새로 번역돼 나와서 감회를 느끼게 된다. 다시 읽게 되면 25년만의 재회쯤 되겠다.
















자연스레 같이 떠올리게 된 책은 <지식의 고고학>(1969)인데, <말과 사물>(1966)의 후속작이면서 푸코의 연구 프로그램을 가늠하게 해주는 책이다. 번역본이 진작 나왔지만, 내가 보기에는 가장 상태가 안 좋은 푸코 번역서 가운데 하나다. 허경 박사의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 읽기>(2016)가 몇년 전에 나왔는데, 내친 김에 <지식의 고고학>까지도 다시 번역돼 나오면 좋겠다(아, 저작권 문제로 어렵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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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0-04-25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의 고고학 정말 불쾌한 번역이었습니다. 번역자의 저작들마저 무시하게 만드는 멋진 번역..

로쟈 2020-04-25 21:33   좋아요 0 | URL
네, 유감스럽게도..
 

이번주 한겨레에 실은 '언어의 경계에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중기소설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1859)의 의의에 대해서 적었다. 최근 도스토예프스키 전작 읽기 강의에서 다룬 작품이다. 
















한겨레(20. 04. 24) 화해와 조화를 추구했던 도스토옙스키의 희극성


1849년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시베리아에서 혹독한 유형생활과 군복무를 마치고 도스토옙스키가 수도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건 1859년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1846)로 문단의 격찬을 받으며 데뷔한 젊은 도스토옙스키는 마흔을 앞둔 나이가 되었고 작가로서도 재기해야 했다. 유형생활을 소설화한 <죽음의 집의 기록>(1860)이 평단과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어낸 재기작이다.


그렇지만 시베리아에서 귀환하기 전에 도스토옙스키는 두 편의 소설을 <죽음의 집의 기록>보다 한해 먼저 발표했다. 작가 스스로 ‘희극 소설'이라고 부른 <아저씨의 꿈>과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이다. <죄와 벌>(1866)부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에 이르는 후기 걸작들에 견주어 ‘중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은 말 그대로 중간단계로 간주된다. 러시아의 지방도시를 배경으로 한 두 편의 희극 소설이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인데, 도스토옙스키 전집 읽기에 도전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좀처럼 손에 들기 어려운 작품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건너뛸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작품들을 포함하게 되면 도스토옙스키 창작의 전체 그림이 달라진다. <가난한 사람들>과 <분신> 같은 초기작에서부터 도스토옙스키는 앞선 작가 니콜라이 고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이 전해진다). 이 영향은 한편으로 극복의 과제도 짊어지게 하는데, 19세기 중반 러시아 산문소설의 과제는 고골의 유산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바로 고골과의 관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작품이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이다.


소설에는 퇴역 대령이자 지주인 예고르 로스타네프 집의 식객으로 포마 포미치라는 특이한 인물이 등장한다. 외모는 물론 말과 행동이 고골을 모델로 떠올리게 한다. 한갓 식객에 불과하지만 포마는 예고르와 그의 어머니 장군 부인을 완전히 사로잡고서 집안의 폭군으로 군림한다. 모스크바에서 소설 나부랭이를 좀 썼다는 포마는 문학적 첫걸음에서는 쓴맛을 보았지만 대신 기형적인 자만심을 갖게 된다. 장군 부인은 포마를 숭배하고 로스타네프는 그를 무조건 존중하고 환대한다. 그러는 사이에 포마는 농부들을 개선한다면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춤을 금지시키며 꿈까지 통제하려 든다. 심지어는 로스타네프에게 자신을 장군처럼 대우해서 ‘각하’라고 부를 것을 요구한다. 로스타네프는 포마의 무리한 요구에도 그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지만 가정교사와의 밀회 장면을 포마가 목격하고 비난하자 분노가 폭발하여 그를 추방한다.


이런 결말이라면 추악함의 폭로자이자 교정자를 자임했던 고골에 대한 패러디로 읽을 만한 소설이다. 하지만 반전이 덧붙여진다. 마을을 떠나던 포마가 천둥번개에 놀라 쓰러졌다가 되돌아와서는 선의 화신으로 변모한다. 로스타네프의 결혼을 축복하고, 반목했던 모두와 화해한다. 도스토옙스키에게서 희극성은 추악함에 대한 조롱과 풍자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화해와 조화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다만 이 소설에서 화해와 조화는 ‘스쩨빤치꼬보 마을’에 한정된다. 포마-고골에서 포마-도스토옙스키로 거듭난 도스토옙스키는 이후에 ‘죽음의 집’으로서의 러시아와 이 ‘지하’ 세계를 천국(조화의 구현)으로 만드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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