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가 그레빙의 <독일 노동운동사>(길)가 나왔기에 갖게 된 궁금증이다. 영국의 노동운동사 책은? 궁금할 것도 없었는데, 바로 검색했으면 됐으니까. G.D.H. 콜의 <영국 노동운동의 역사>(책세상)가 나와 있다. 톰슨의 <영국노동계급의 형성>(창비)과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라티오)만 생각이 나서 잠시 가졌던 궁금증이었다. 
















당연하지만, 노동운동과 노동계급의 형성은 분리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독일 노동계급'에 관한 책은 왜 나와있지 않은가 궁금하다. 찾아보니 영어로 된 책 가운데는 <독일 노동계급 1888-1933> 같은 책이 눈에 띈다. 그렇지만 대략 노동운동사나 노동조합을 다룬 책이 더 많다. 톰슨의 책에 견줄 만한 확실한 책은 적어도 영어권에는 없는 듯싶다(독어로는 나와있을지도). 


갑작스레 노동운동이나 노동계급에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면, 그건 아니다. 나의 일차적인 관심은 문학사이고, 노동계급의 형성과 노동문학 내지 민중문학은 자연스레 상관성을 갖는 문제다. 거기서 좀더 나아가면 영문학과 독일문학 간의 차이를 식별하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가정도 해볼 수 있다. 영국과 독일의 노동운동 강도와 노동계급 형성 시기의 차이가 문학사에는 어떻게 반영돼 있는지 질문할 수 있기에. 
















헬가 그레빙의 책은 <유럽 노동운동은 끝났는가>(노동자신문)라는 공저가 1994년에 소개된 바 있다. 국내서로 이병련의 <독일노동운동의 사회삼>(고려대출판부)도 2004년에 나온 관련서다. 그밖에 독일 노동법에 관한 책이 몇 권 있고, 가장 최근에 나온 관련서는 에른스트 윙거의 <노동자. 고통에 관하여.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글항아리)이다. 

















에른스트 윙거는 '파시스트'로서 논란이 되는 작가인데, 앞서 두 권의 소설이 번역됐었다. 20세기 독일 문학을 다룰 때 커리로 고려해봐야겠다. 


"이 책은  '나치즘의 헌법' '파시즘의 마그나카르타'라는 평가를 받는 <노동자: 지배와 형상>(1932)과 <고통에 관하여>(1934)를 국내 초역했다. 아울러 윙거의 사유에 숨겨진 독성에 대한 ‘해독제’로서 작용할 발터 벤야민의 <독일 파시즘의 이론들>을 함께 수록했다. 이로써 '전체주의의 역사철학서'로 악명만 높았던 윙거 초기 사상의 실체를 국내 독자들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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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국립극장 소식지 미르(364호)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애초에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발레 공연과 관련하여 원작 해제 성격의 글을 청탁받았으나 공연은 코로나 사태로 취소되어 글만 남았다. 에이프만의 발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유튜브에서 일부 장면을 볼 수 있다...


미르(20년 5월호)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의 모색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서양문학사의 3대걸작을 꼽으면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함께 바로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들었다. 개인적인 선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건 이 작품들이 부친살해라는 공통주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프로이트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해설 제목이 '도스토옙스키와 부친살해'이기도 하다. 이때 부친살해는 단지 한 가지 주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사의 전개와도 연결되는 핵심 주제다. 















인류사의 전개라고 하면 다소 거창하지만 소포클레스보다 조금 더 거슬러올라가서 그리스비극의 첫번째 거장 아이스킬로스와 만나보자(알려진 대로 그리스비극의 계보는 아이스킬로스에서 소포클레스로, 다시 에우리피데스로이어진다). 아이스킬로스의 대표작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언속적인 복수혈전의 드라마다. 3부작을 구성하는 첫 작품 <아가멤논>은 트로이 원정을 떠난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딸을 제물로 바친 일에 앙심을 품고서 10년만에 돌아온 남편을 아내가 살해하는 이야기다. 두번째 작품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는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세월이 흐른 뒤 아버지에 대한 복수로 어머니를 다시 살해한다. 마지막 작품 <자비로운 여인들>에서는 복수의 여인들에게 쫓기던 오레스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고서 풀려난다. 

결과적으로 아이스킬로스의 3부작은 아들이 아버지의 복수를 통해서 부권적 질서와 법의 통치체제를 구축하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에 대해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라고 평했다. 인류사가 원시 모권 사회에서 부권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을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이 포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사의 단계에 대응하여 부친살해 이전에 모친살해가 있었다. 모친살해와 함께 여성이 정치적 장에서 배제되고 권력은 아버지와 아들의 상속-계승관계로 환원된다. 부친살해라는 주제는 이러한 문명사적 전환을 배경으로 한다.

프로이트가 3대걸작으로 꼽은 <오이디푸스왕><햄릿><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부친살해 테마의 변주이면서 각 국면에 대응한다. <오이디푸스왕>과 <햄릿>이 부친살해 테마를 각각 자기인식의 과정과 개인으로서의 자기발견에 대응시키고 있다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부친살해 이후 형제애(인류애)의 가능성 탐색이라는 과제를 다룬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가장 흔한 독법은 이 작품이 무신론의 도전에 맞서 기독교적 인간 구원론을 변호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주제는 좀더 복잡하게 해석돼야 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먼저 타락한 아버지 표도르가 등장한다. 호색한인 그는 두 아내에게서 얻은 세 아들, 드미트리와 이반, 그리고 알렉세이를 방치했는데, 이들이 장성하여 차례로 그를 찾아온다. 장남 드미트리는 어머니의 유산 문제로 아버지와 법적 분쟁을 벌이던 차에 아버지가 점찍은 여성을 두고서도 아버지와 연적으로 대립한다.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둘째 이반은 드미트리로부터 중재역을 부탁받고, 막내 알렉세이는 신앙이 깊은 청년으로 조시마 장로의 암자에서 지낸다.

작품에서 무신론의 주제는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는 이반의 사상으로 표현되며 이는 그의 서사시 '대심문관'에 집약돼 있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것은 어떠한 금지도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도덕의 불가능성을 함축한다. 부친살해 금지는 가장 강력한 도덕적 금지의 하나인데 그것이 허용된다는 뜻이고 표도르의 사생아 스메르쟈코프는 이를 직접 실행에 옮김으로써 이반의 하수인을 자처한다. 말하자면 이반은 부친살해의 이론적, 논리적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부친살해의 사주자가 된다.

드미트리도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표도르가 피살되자 그에 대한 혐의를 받고 체포된다. 그리고 재판에서 농민 배심원단의 오판으로 말미암아 유죄판결을 받고 시베리아 유형길에 오를 처지가 된다. 이반이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지만 사주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처럼 드미트리 역시 범죄의 책임에서 아주 벗어나지는 못한다. 아버지 표도르에 대한 살의를 공공연하게 내보이고 다닌 인물이 다름아닌 드미트리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면서 정신분열 상태에 빠지게 되는 이반과 달리 드미트리는 책임을 기꺼이 수용하면서 갱생의 가능성을 얻는다.

아버지와 아들들간이 대립 속에서 주로 심부름꾼 역할을 하는 알렉세이는 조시마 장로의 생애전을 기록하며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한다. 그런 알료샤도 시험을 겪게 되는데 성자처럼 존경해온 조시마 장로가 세상을 뗘난 뒤 기적을 기대하지만 좌절된다. 장로의 시신에서 향기는커녕 더 심한 악취가 나면서 알렉세이조차도 회의에 빠지게 된다. 이반이 '대심문관'에서 지적한 대로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기적과 신비와 권위'가 필요하다. 다르게 말하면 "기적이 없다면 신앙은 불가능하다"가 될 것이다. 조시마 장로의 유훈대로 더 넓은 세상에 나가게 될 알렉세이는 기적 없이도 신앙이 가능하다는 것을 긴 우회를 거치더라도 입증해나가야 할 것이다(이것이 쓰이지 않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두번째 이야기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이 부친살해 이후 형제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것은 신의 죽음 이후에도 사랑은 가능한지를 탐색한다는 것과 같다. 흥미롭게도 프로이트는 <토템과 터부>에서 그 윤곽을 제시해놓았다. 여자들을 독점한 강한 원초적 아버지에 맞서서 아들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를 살해한다. 하지만 그로 인한 죄책감에 살인을 금기한다. 두 가지 형태의 인간관계가 여기서 제시되는데 하나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부자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수평적인 형제관계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신과 인간이라는 부자관계를 다시 회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형제적 관계를 모색하려는 시도로서 더 의미깊은 작품이다.

러시아의 세계적 안무가 보리스 에이프만의 발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995) 내한 공연이 5월에 예정돼 있었지만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로 취소됐다. 하지만 추후 무대에 오를 작품을 심도 있게 이해하려면 원작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따라서 도스토옙스키의 원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문제성과 의의에 대해 고민해 봤다. 연극과 발레 등의 공연작품으로 활발하게 무대에 올려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대작 장편의 일부만을 무대화할 수 있을 뿐이어서 사건의 전체 내용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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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책에 대한 10문 10답

12년 전의 문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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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20-05-02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1. 식물의 겨울나기형 하나로 강의에서 들었을 때, 당시 내 삶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50 은 북플 가입 연도.
2,. 완독은 35 권 정도.
3.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결말이...
닉 레인 <미토콘드리아> : 미토콘드리아는 원래 독립적 세균인데 진핵세포 안에 들어와서
지금 같은 세포소기관이 되었다는 사실. 넘 놀라서 유전자 관련 연구원인 동생에게
얘기했더니 학부에서 생물학 전공한 동생이 말했다, 그거 몰랐냐며@@
4. 빌 브리이슨 <나를 부르는 숲>
5. 실제인물이지만 <나무 위 나의 인생>의 마거릿 D. 로우먼.
내가 동경하는 직업인 생태학자로서 숲을 누비는 삶.
6. 줌파 라히리, 오르한 파묵: 가끔 아니지만, 신간 소식에 늘 설렌다.
배수아 번역서 : 가끔 아니지만 작품이 내 취향이다.
7. 이제는 책 선물 할 사람이 없다.
8. 김종원 <한국식물생태보감> 75000 원
9. 책은 나의 강함의 원천.
- 언젠가 아들과의 애착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정신과 의사와 면담한 적이 있다.
세차례 면담후 그는 말했다, 내게서 약해보이지만, 모든 어려움을 혜쳐나갈
어떤 strength 를 느낀다고... 그때 깨달았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지만,
그렇게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니고 글 잘 쓰거나 말을 잘하지는 않지만,
책은 인생의 고통 앞에서 강하게 만들어 준 거 같다.
10. 파올로 조르다노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코로나19 사태를 두고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로쟈 2020-05-02 22:11   좋아요 0 | URL
9번은 책을 써보셔도.^^
 

메이데이에 읽을 만한 책으로 <메이데이>를 꼽는 것은 자연스럽다. 피터 라아보우의 <메이데이>(갈무리).

˝메이데이 130주년에 유명한 역사가 피터 라인보우가 소개하는 메이데이의 진정한 역사를 알아보자. 메이데이는 부자와 권력자들을 두려움에 움츠리게 만들었던 날인 동시에 의회가 재탄생과 소생 그리고 거부의 위대하고도 떠들썩한 날에 세워지는 5월의 기둥을 금지하게 된 날이다. 이 책은 메이데이의 역사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권력이 무너지고 공유지가 회복되며 더 나은 세상이 새로이 태어나리라는 미래의 가능성을 강력하게 제시한다.˝

저자 피터 라인보우는 영국사를 전공한 미국 역사학자로 <히드라>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더불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호소로 기억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선언>(1848)도 필독의 문건이다. 한번 읽은 독자라면 지젝의 <공산당선언 리부트>와 함께 다시 읽어봐도 좋겠다. 책에 붙인 해제 말미에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역설적이지만, 오늘날 마르크스에 충실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젝은 말한다. 지젝의 <공산당 선언> 다시 읽기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지 않으면서 어떻게 마르크스를 충실히 읽어낼 수 있는지, 혹은 따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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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민주주의에서 신의 폭력으로

10년 전에 올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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