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변혁 요구를 담은 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인데, 이번주 관심도서 두 권도 그런 흐름을 보여준다. 사회학자 예란 테르보른의 <다른 세계를 요구한다>(홍시, 2011)와 우리에겐 <긍정의 배신>(부키, 2011)으로 소개된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오! 당신들의 나라>(부키, 2011)가 그 두 권의 책이다. 우리는 '당신들의 나라' 말고 '다른 세계를 요구한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한국일보(11. 12. 10) 불안한 현실, 보고만 있을 것인가… 행동하라

 

중동의 여러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재스민 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1%의 가진 자를 위해 99%가 희생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미국 시민들의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나 국내에서 주권 침해 여부로 논란이 가중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운동 등 변화의 물결이 거세다.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 흐름이 된 '세계화(Globalization)'의 상호의존성과 맥이 닿아있다. 세계화는 시장만능주의와 뒤엉키면서 계층간 불평등을 확산시켰지만 동시에 전 세계적인 이슈를 공유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구의 수명을 단축하는 탄소배출에 대한 국가적 합의가 이뤄지고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계층에 대해 귀를 기울이게 된 것도 같은 선상에 있다.

 



스웨덴 출신인 저명한 사회학자 예란 테르보른은 이 책에서 향후 10년간 세계의 공통 과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변화는 서구중심주의와 미국 패권주의 시각을 경계하고 세계의 다양성과 불평등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앞으로 자본주의가 시험대에 오르며, 이슬람 국가와 서구 국가간 대립이 첨예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을 중심으로 떠오르는 아시아와 모습에 대한 예측도 구체적이다.

철학자 니체는 '미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다'라고 했다. 저자 또한 미래를 알기 위해 고대문명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해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일어난 세계화의 양상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교육 노동 결혼 등 인간의 전 생애과정을 역사적ㆍ사회적 관점에서 읽어내는 깊이도 보여준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테르보른은 조언한다. "한국의 문제는 한국인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수많은 한국인들의 고단한 생애과정은 하나의 중대한 과제로 대두됩니다. 이 과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시기 바랍니다." 이 세계에 대한 장기적 전망의 부재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때보다 커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현실을 그저 관망하는 객체가 아닌 참여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변화의 시작은 우리 손에 달렸다.(이인선기자)

 

 

 

경향신문(11. 12. 10) 이미 2년 전 1%의 꼼수를 분석 ‘월가 점령’ 주장

 

저서 <긍정의 배신>에서 자본주의와 긍정주의의 은밀한 공생을 까발린 그가 이번엔 ‘1%의 배신’을 정조준했다. 반박과 조롱, 풍자를 실탄으로 장전했다. 1%를 위한, 1%에 의한, 1%의 세상을 그렸다. 구조조정하면서 게을러서 실업자가 된다고 말하는 그들, 회사 주가가 떨어져도 거액을 챙기는 그들, 불법체류자를 실업률 증가의 원인이라면서 집에선 불법체류자를 부려먹는 그들, 가난한 아이들의 무상진료는 막으면서 애완견에게 항암치료를 해주는 그들, 상냥하게 대출을 권할 땐 언제고 눈 깜짝 안 하고 집을 빼앗아가는 그들…. 현실을 못 보게 만드는 그들의 ‘꼼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긍정주의가 세계 금융위기를 자초했음에도 반성은커녕 되레 몸집을 키우고 있음을 지적한 <긍정의 배신>과 맥이 닿아 있다.

 

 

 

미국의 현실로만 받아들이기엔 공감 가는 얘기가 많다. 아웃소싱과 대량해고의 쓰나미를 맞은 중산층은 날로 오르는 의료비, 연료비, 대학등록금을 대기 위해 버둥댄다. 빚을 갚기 위해 집을 담보로 다시 고금리 대출을 받는다. 임금은 떨어지고 의료보험료가 치솟자 보험을 포기하고 진통제에 의존하는 사람이 늘었다. 부자도 층이 갈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상류층은 고급 매장에서 쇼핑하는 그저 그런 부자들과, 다른 이를 시켜 쇼핑하는 초부유층으로 나뉘었다는 것. 부의 정점에 선 그들은 “로마제국 이래 유례가 없는 사치”를 누리고 있다.

 



이 책은 가진 자들이 정치·경제·사회정책을 이용해 어떻게 중산층과 빈민층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작가 특유의 풍자와 해학은 이 책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복잡한 경제 메커니즘이 술술 풀린다. 소설과 같은 표현은 읽는 속도감을 더한다. ‘스파이’를 보내 직원들을 스토킹하고 심문하는 월마트의 행태를 “냉전 스릴러”에 비유하며 “지극히 폭력적인 형태의 독재”라고 쏘아붙인다.

대학들의 학자금 대출 장사를 언급하는 대목은 웃음, 통쾌, 분노를 유발한다. “여러분의 진정한 목표는 무의미한 청춘의 자유를 뿌리치고 빚의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바로 이런 목적을 위해 우리는 방금 등록금을 인상했습니다. 우리 대학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여러분은 초일류 채무자가 되어…. 여러분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건 2009년이다. 저자는 채무자들의 피와 눈물로 배를 불리는 그들에 대항해 “우리 모두 월스트리트로 행진해 가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물었다. 2년 후 그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정부는 경제정책에서 불평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충고한다. 그래야 추락한 사람들이 무덤으로 직행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또 ‘복지’라는 단어가 너무 급진적으로 생각된다면 ‘생존권’으로 부를 것을 권한다.

강탈과 착취, 탐욕으로 얼룩진 1%의 얘기로 구린내가 나지만 99%의 심정을 시원하게 대변해주고 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하는 1%에 맞서 ‘아는 게 힘’이라고 외치는 듯하다. 저자는 위장취업해 저임금 노동현실을 체험하는 등 “빈곤의 골짜기” 실상을 고발해온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다.(고영득 기자)

 

11. 12. 10.

 

 

 

P.S. <다른 세계를 요구한다>의 저자 예란 테르보른은 오래전에 <권력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의 권력>(백의, 1994)이란 얇은 책으로 처음 소개됐었다. '괴란 테르본'이란 이름으로. 스웨덴식으로 불러준 게 '예란 테르보른'인 듯싶다. 현재는 케임브리지대학의 사회학 교수로 돼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의 학술서'라 할 만한 책 두 권은 진태원 교수가 엮은 <알튀세르 효과>(그린비, 2011)와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광학적 미디어: 1999년 베를린 강의>(현실문화, 2011)다. 키틀러는 독일의 저명한 미디어 학자라 얼핏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매체(미디어)론으로도 읽을 수 있다면, 무관하지도 않다. 관련기사를 묶어서 옮겨놓는다.

 

 

 

경향신문(11. 12. 10) “어떤 지배계급도 매체 독점하려는 순간, 저항 끌어들이게 돼”

 

어느덧 흘러간 이름이 돼 버린,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1918~1990)를 왜 되새기는가. 이 물음에 최근 900쪽 가까운 분량의 <알튀세르 효과>(그린비)를 엮어낸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45·사진)는 지난 7일 연구실에서 일화 한 토막을 꺼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재판이 진행되는 때였어요. 지하철에서 어떤 노인이 ‘우리 회장님이 얼마나 나라를 위하셨는데 감히 구속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서민들이 왜 이 회장을 걱정하는지, 흔히 ‘계급을 배반한다’고 불리는 메커니즘의 작동에 대해 알튀세르가 하나의 대답을 줍니다.”

 

이렇듯 알튀세르 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력이 있다”는 것이 2년6개월간 출간 작업을 해 온 진 교수의 믿음이다. “세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데, 결국 마르크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실패를 되풀이할 수는 없죠. 알튀세르는 처음부터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적 복귀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은 김정한·서관모 등 국내학자 10명과 알튀세르의 주요 제자인 피에르 마슈레 프랑스 릴 3대학 명예교수 등 해외 연구자 9명의 논문으로 구성돼 있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왜 현실사회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로 변질됐는지, 자본주의 국민국가 내부에서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지배구조가 날로 강고화되는지를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설명한다. 이때 이데올로기는 관념이나 사상, 허위의식을 지칭하지 않는다. 물질이며, 장치다. 예를 들면 종교적 믿음도 ‘무릎 꿇고 기도하라, 그러면 믿을 것이다’라는 파스칼의 말이 상징하듯 매주 교회에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장치가 가족과 학교 같은 것들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지배구조에 반항하지 않는 유순한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즉 ‘종속적 주체의 재생산’이다. 진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 문제가 내셔널리즘의 형태로도 나타난다”고 말한다. 한 민족 한 핏줄이라는 민족의식, 국가의 같은 정당한 구성원이라는 국민의식이 이건희 회장과 서민들을 계급으로 나누기보다 동일한 구성원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개인은 독립적 주체이며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더욱 구조를 강고화한다. 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종합하면 결국 이주노동자는 우리 국민이 아니고, 비정규직은 게을러서 그런 것이니 이들을 자본가에 맞서는 연대의 대상이라기보다 ‘적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죠.” 그러나 알튀세르는 개개인을 ‘독립적 주체’로 보는 것을 거부했다. 진 교수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일대일의 사적인 계약 관계로 여겨지면서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관계가 은폐되는 것을 알튀세르는 ‘법 이데올로기’라며 비판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알튀세르의 문제의식은 에티엔 발리바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등 오늘날 가장 뜨겁게 인용되는 현대 철학자들에게 계승되고 있다. 진 교수가 “현대 사상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라도 알튀세르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관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수단을 ‘매체’라고 말했다. 보수 매체들은 종합편성채널로 확장되고 대안매체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규제의 대상에 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알튀세르의 말은 하나의 함의를 던진다. “알튀세르는 매체가 항상 양면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배의 도구가 되지만 저항과 변혁의 거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죠. 어떤 지배계급이나 집단도 매체를 독점하거나 자기 뜻대로 전유하긴 어렵습니다. 만드는 순간 저항의 여지를 끌어들인다는 것이죠.” (황경상기자)

 

 

 

경향신문(11. 12. 10) “미디어는 수신·송신·저장의 데이터 장치일 뿐”

 

독일 미디어 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1943~2011)는 ‘유럽의 마셜 매클루언’ ‘디지털 시대의 데리다’로 불린다. 그의 미디어 이론이 갖는 무게와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별칭이다. 책은 키틀러가 1999년 독일 훔볼트대학에서 진행한 14편의 강연을 묶었다. 한국에선 처음 완역돼 나왔다. 키틀러의 미디어 이론에 앞서 들여다볼 것은 ‘미학’(aesthetics) 관점이다. 그는 미학을 그 어원인 감각으로 이해했다.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인간 지각 기관의 물질성’을 연구하는 것으로 봤다. “미학적 특성은 언제나 기술적 실현 가능성에 의존하는 변수”라는 말도 했다. 기술 환원론적 관점을 가진 키틀러에게 미디어는 ‘데이터 처리 장치’일 뿐이다. 다음은 키틀러의 미디어 정의(定義)를 잘 나타내는 말들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철학을 글로 옮겼을 때 ‘철학 활동에 일반적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라는 논의가 나왔다. 그때 정답은 “인간이 혼을 가지고 철학을 한다”였다. 키틀러는 “나 같은 미디어 역사가라면 ‘모음도 표기할 수 있는 최신식 이오니아 알파벳을 정답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TV는 예술인가 아닌가? 키틀러는 독일의 학술기자이자 영화제작자인 클라우스 짐머링의 “TV는 국제무선통신자문위원회 보고서 407-1에 의거하여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시각의 한 방식”이라는 말을 인용한다.

 

 

 

책은 르네상스 시기 투시도법 패널화에서 사진, 영화, TV를 지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이어지는 미디어 역사를 다룬다. 키틀러는 인간의 손이 지배한 ‘예술적 미디어 시대’, 시간적 과정을 저장·조작할 수 있게 된 ‘아날로그 미디어 시대’, 궁극의 호환 가능성이 실현된 ‘디지털 미디어 시대’로 구분한다. 미디어 역사 서술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이미지 저장, 전송, 처리의 일반 원리”다. 연대순으로 기술과 예술의 상관관계, 정치와 종교 간 맥락을 따져든다.

‘예술적 미디어 시대’에 이미지는 그려진 뒤 교회나 미술관에 놓였다. 글은 일상 언어의 저장 매체인 동시에 대단히 느린 전송 매체다. ‘카메라 옵스큐라(암상자·Camera obscura)’는 이미지 기록(수신), 장치인 ‘매직 랜턴’(환등기·Laterna magica)은 이미지 재생(송신) 장치다. 카메라는 이미지를 저장했다. 키틀러는 이 삼원적 도식에 따라 근대의 미디어사를 개괄한다.

키틀러는 ‘미디어 철학자’라고도 불렸다. ‘미디어 철학’의 특징은 근대 이후 주체로 부상한 ‘인간’을 걷어내는 것이다. 그는 “(아날로그 미디어 시대에) 인간은 더 이상 기록을 지배하고 인식 가능한 우주를 통치하는 군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간 고유 활동이라 여겼던 그리기, 글쓰기, 보기, 듣기, 언어처리, 기억, 인식까지 기계의 몫이 되고, 어떨 때는 기계가 인간보다 더 뛰어나다고 봤다. 인간이나 혼에 관해 알 수 있는 건 그 척도인 기술적 장치뿐이라고 했다.

미디어 철학의 또 다른 특징은 ‘전쟁’이다. 키틀러는 강의에서 미디어의 군사적 맥락을 자주 말한다. 미디어 기술의 시대는 기술적 전쟁의 시기다. ‘전기적 빛’의 발견은 전쟁과 영화를 바꿨다. 키틀러는 “일본군이 야간 공격을 감행하는 순간, 스포트라이트는 전장을 치명적인 영화 스튜디오로 변형시켰다”는 정치철학자 폴 비빌리오의 말을 인용한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감 장면 촬영은 1차 세계대전 때 정찰 목적의 군사 작전에서 비롯됐다. 전쟁이 끝나고 많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영화계에 들어갔다. 키틀러가 ‘전자 기술로 무장한 능동적 눈’이라고 규정한 레이더 분야에서 발견된 사각형 임펄스(충격전류·Impulse)는 근대식 전화망, 컴퓨터 회로, TV 표준의 근간이 됐다. 키틀러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을 통해 TV 기술의 선진국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폭탄이 스스로 적을 추적해서 폭파시키는 ‘자가유도식 무기 체계’의 탄생을 두고, “모든 근대 철학의 주체인 인간은 그냥 잉여가 되었다”고 했다. 키틀러는 의도적으로 TV표준에 미달하는 간섭 이미지의 미학을 표방한 백남준의 예도 든다. 백남준은 독일 작가 칼 오토 괴츠의 영향을 받았는데, 괴츠는 독일 국방군에서 레이더 스크린의 간섭 이미지를 탐구했다. “백남준의 미디어아트는 또 하나의 ‘군수품 오용’ 사례”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파편적으로 소개됐던 키틀러의 미디어 이론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구술을 정리한 강의록이라 난해하진 않지만, ‘디지털 시대의 데리다’를 좇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김종목 기자)

 

11. 12. 09.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12-10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0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3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검찰개혁에 관한 서평을 올린 김에 며칠 전에 읽은 인터뷰기사도 옮겨놓는다. 최근까지 대구지검 수석검사로 재직하다가 사표를 낸 백혜련 변호사가 인터뷰의 주인공이다. 검찰 내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국일보(11. 12. 05) [서화숙의 만남] "정치 검찰 부끄럽다" 사직서 낸 백혜련 前 검사

 

부장검사를 불과 2년 앞둔 수석검사가 사표를 냈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지키지 못하고 있어서 부끄럽다'고 했다. 백혜련(44•사법연수원 29기) 전 대구지검 수석검사. 그가 지난 달 21일 사직서를 내면서 검찰 사내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은 28일 언론에 소개되면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비록 사퇴를 하면서 써낸 글이기는 하지만 상명하복의 분위기가 철저한 검찰 내부에서 자성의 소리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사표가 수리된 다음날인 2일에야 수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백혜련 전 검사는 화장기가 없는 맑은 얼굴이었다. 경기 의왕시 32평 아파트에서 시민운동가인 남편 박완기(47•경실련 경기도협의회 사무처장)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둔 그는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4학년인 자녀에게 사교육은 시켜본 적이 없고 헌옷도 얻어 입히는, 언행일치의 지식인이었다.

_이제 백혜련 변호사인가요?

"1일자로 사표가 처리되었는데 변호사협회에는 월요일(5일) 등록할 예정이라 지금은 자연인, 대한민국 국민 백혜련입니다.(웃음)"

_왜 사표를 냈습니까?

"1년간 미국 연수 갔다가 2009년에 서울지검으로 돌아왔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더군요. 정권의 눈치보기랄까, 줄서기 문화, 이런 게 다시 부활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조금 있다가 피디수첩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검찰역사상 피디수첩은 가장 오욕적인 수사라고 생각해요. 기소가 됐고 무죄가 나서가 아니라 원수사팀이 기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수사팀을 교체해서 했잖아요.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수사는 방향 자체가 이미 결정됐다고 보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재심사건을 맡으면서 힘들었습니다. 재심사건이란 과거에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사건이나 경찰의 가혹행위로 인한 자백사건, 불법체포가 인정되는 사건 같은 것으로 다시 재판을 청구하는 것입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재심사건에 대해 대검에서 '탄력적으로 대응하라'는 지침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무죄인 사건은 무죄구형도 하라고 했고 실제로 무죄구형을 내린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 재심사건에 대해서 법원은 다 무죄를 주고 있어요. 판결을 할 때 돌아가신 분들도 많거든요. 그러면 재판장들이 사죄의 말까지 해요. 그런데 그게 무죄가 났다고 항소 상고까지 하라니까 양심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검찰이 일관되게 처음부터 그랬으면 실망을 하지 않았을 텐데 정부가 바뀌었다고 완전히 달라지니까. 가장 최근에는 한미FTA에 대한 SNS를 단속하려는 것을 보면서 검찰이 시대상황에 너무 뒤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_검찰은 정말 왜 그런 겁니까?

"기본적으로 검찰이 보수적인 집단이긴 합니다. 원래 법조인들 자체가 보수적인 집단이에요. 그러나 이렇게까지 된 데는 정권과 밀착한 분들이 윗분이 되고 그 윗분들의 사고가 전체 검찰에 영향을 미칩니다. 기본적으로 검찰은 상명하복의 조직이라서 검찰총장의 사고가 많이 작용하지요. 취임사가 종북좌익세력 척결이었잖아요. 지휘부가 바뀌면 검찰의 흐름 자체가 바뀝니다. 일선 검사들은 수사하다보면 사건에 매몰이 되거든요. 그래서 전체의 청사진을 그리지 못하고 지도부의 방향이나 지침이 있으면 그 방향으로 매몰되는 경향이 있어요."

_그럴수록 검찰에 남아있으면서 개혁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말을 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하~(한숨) 검찰이 자체적으로 이런 것을 개혁할 동력이 있다 생각했으면 남아있었겠지요. 스스로 변화할 동력 자체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니까 남아있기 힘들더군요. 남편이 시민운동가이니까 두드러지게 보는 분들도 있지만 실상 지난 10년간 검사로서 검찰 본연의 업무에 누구보다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벌어지는 변화는 저 같은 사람이 봐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_어떤 점에서 그렇다는 건가요?

"이걸 바꿔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나오질 않습니다. 평검사들도 힘이 빠져 있달까.

_안에서 이의제기를 전혀 안합니까?

"사적인 모임에서는 많이 하는데 집단화한 상태로 표출하거나 상부에 전달하기는 굉장히 힘든 상태인 것 같아요. 법원보다도 상명하복적인 조직이고 관료주의적인 분위기가 심하다보니까. 게다가 부장검사가 되면 1년마다 자리를 옮기니까 자리를 걸지 않고서는 직언을 하기 힘들지요."

_개인적으로는 바꿔야 한다는 제안을 해봤습니까?

"재심사건에 대해서 대검의 공안담당 연구관들한테 '이미 시대적으로 사회적 판단이나 합의가 내려진 사건인데 굳이 상고를 해야 하냐'고 메신저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대법원도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한다'는 답변이었지만 궁색한 변명이지요."

_시민들 반응이 뜨겁지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제 글이 이렇게 반향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거든요. 그냥 검사로서 마무리하면서 할말은 하고 간다는 느낌으로 썼고 검찰 내에 문제제기가 되기만 바랐습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고 일선에서는 저처럼 생각하는 검사들도 많거든요. 되려 바깥 분들의 반응을 보면서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이렇게 크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검사였던 사람으로서 죄송스럽더라구요. 재개발 비리에 연루되었다가 저한테 조사를 받은 분은 '과거에 검사님의 훈계를 듣고 이제는 재개발 현장에서 주민을 돕는 일을 한다'는 응원메일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_변호사로부터 벤츠와 샤넬백을 받고 동료검사에게 청탁을 한 이소연 전 검사 사건이 터지면서 더 대조적이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검찰 숫자가 늘어나면서 자질이 떨어지는 검사도 늘어나는 측면이 있고 검찰에서 검사들의 비리를 덮어주려는 경향이 있지만 검찰 전체가 그렇게 부패한 조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국철 SLS회장이 돈 줬다는 사람들은 검사장급인데 일부의 자질 문제라고 할 수 있나요?

"그건 수사가 진행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의 말을 일방적으로 믿고 이야기할 상황이 아닙니다. 검찰이라는 조직 자체가 워낙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않고 있긴 하지만 검찰 조직 자체가 부패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_엄청난 검찰 신뢰론자네요.

"과거에는 검찰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관과 기업 사이에 부패고리가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최근에는 몇몇 특수한 검사를 빼고는 과거와 단절됐다고 봅니다. 수사권 조정에서도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으니까 경찰에도 수사권을 나눠주자는 것으로 가지만 검찰보다는 경찰이 훨씬 더 중앙집권적이고 상명하복이 강한 구조거든요. 만약 정권이 개입한다면 검찰이 수사권을 가졌을 때보다 경찰이 수사권을 가졌을 때 더 큰 폐해가 있을 수 있어요."

_문제는 정치검찰이다?

"그에 비하면 부패는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검에서는 그런 위기를 못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트위터나 인터넷에 정치적 의견을 표출하는 것을 범죄시 하려고 하겠지요."

 

  

_정치검찰화를 막는 방법이 있을까요?

"문재인씨 책을 보니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정권의 의지다' 고 했던데 공감합니다. 참여정부와 이명박정부로 손바뀜을 경험해보니까 그걸 확실히 느끼겠어요. 참여정부 시절에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지켜지고 있는지 저도 확실히 몰랐어요. 이건 너무 당연한 거,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보니까 참여정부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정말 많이 지켜줬다는 걸 느끼게 되더라고요."

_지금 와서는 구체적인 수사지시가 많은가요?

"구체적인 지침이나 지시가 아니라도 상층부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수단은 많아요. 계속 반려랄지, 보완수사 이런 걸 통해서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검찰의 기본을 흔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_왜 검사가 되었습니까?

"대학시절(고려대 사회학과)을 나름대로 치열하게 보냈는데 그때 생각했던 사회정의를 검사로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을 92년에 졸업하고 이듬해 결혼을 했는데 그때 사회주의권 붕괴로 고민하던 운동권 출신들이 가는 진로가 대개 세 가지였어요. 대학원 언론계 고시였는데 연줄 없이도 통하는 것은 고시 밖에 없다고 해서 결혼과 동시에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_판사가 될 수 있었다면 판사가 되었겠어요?

"아니요. 시보 생활을 해보니까 판사는 정적이고 검사는 동적이라 제 성격에 맞더군요. 그리고 당시 지도검사님이 굉장히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시고 훌륭하셨어요. 그 분이요? 실은 지금 이경재 대구지검장님이 당시 지도검사였습니다. 지금도 존경합니다."

_세무공무원의 비리를 적발한 것이 유명하더군요.

"서울중앙지검에 있을 때 세무공무원이 5,000만원 뇌물 받은 것을 인지구속(투서나 고발이 아니라 검사가 사건 자체를 미리 파악해서 수사한 사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형사부에서 뇌물사건 같은 것은 인지구속이 힘들어요. 원래는 사장의 세금포탈을 미끼로 운전사가 사장을 협박한 공갈사건인데 수사하다보니 공무원 비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파헤치게 되었지요."

_삼성물산 재개발 비리사건은 열심히 했지만 검사로서는 무죄가 난 사건으로 유명하던데요.

"이 사건도 철거업자가 재개발 아파트 조합장한테 돈을 줬다는 투서 한 장에서 단서를 잡아서 올라가다가 대기업으로까지 확대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컴퓨터 전자수사가 막 시작될 단계였는데 일단 삼성물산에서 증거물인 컴퓨터를 가져온 것까지는 잘했는데, 거기서 분명 증거자료도 나왔는데 그 자료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두 번에 걸쳐서 하면서 증거자료로서 요건을 갖추지 못하게 됐습니다. 당시 송두율 사건에서 안기부로부터 검찰이 자료를 받으면서 2차 자료는 증거로 인정하지 않게 하는 판례가 생겼는데 이에 대한 지침을 명확히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삼성물산에서 수사협조를 하지 않아 전산실을 찾느라 온 층을 다 돌아다니고 전산실 직원조차 모두 조퇴를 해서 정말 어렵사리 서버를 찾았습니다. 다행히 다른 곳에서 가져온 컴퓨터에서 자료가 나와서 승소를 확신했는데 안타깝게 되었지요. 그래도 그 사건을 계기로 재개발 비리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생각합니다."

_앞서 시민 메일도 그렇고 재개발 비리를 많이 수사한 이유가 있습니까?

"한국 사회에서는 집이 갖는 의미가 큽니다. 그런데 재개발 비리를 통해서 조합장과 정비업자한테 빠져가는 돈이 모두 집값 상승으로 이어집니다. 이걸 덮어두면 정상적으로 일해서는 집을 가지기 어렵거든요."

_앞으로는 어떻게 활동하실 건가요?

"사직서 내고 변호사 하면서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사회활동을 하겠다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국민적인 성원과 관심을 보면서 책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검찰개혁을 위해서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좀더 고민해봐야 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_정치쪽으로 간다, 이미 민주당 공천 받고 움직인 거라는 말도 있던데요.

"그런 일은 전혀 없습니다. 지금 제가 정치에 몸을 담는다면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배신하고 왜곡하는 일이겠지요." (서화숙 선임기자)

 

11. 12. 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번주 주간경향(954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검찰 문제가 계속 불거져나와서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오월의봄, 2011)를 다룰 수밖에 없었다. 참여정부의 미완의 개혁이 다음 정부에서는 완수되기를 기대해본다. 대한민국 검찰 문제와 관련해서는 황창화의 <피고인 한명숙과 대한민국 검찰>(위즈덤하우스, 2011), 그리고 문준영의 <법원과 검찰의 탄생>(역사비평사, 2010)을 더 참고할 수 있겠다...

   

주간경향(11. 12. 13) 미완의 검찰개혁, 답은 민주주의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에 이어서 벤츠 검사까지 등장했다. 대한민국 검찰을 둘러싼 스캔들이 비뚤어진 관행과 일부 검사들의 부적절한 처신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문제는 사소하다. 아마도 내부의 시각이 그런 듯싶다. 김준규 전 검찰총장이 비난여론에 맞서 “검찰만큼 깨끗한 데를 어디서 찾겠습니까?”라고 대꾸한 것이 방증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는 시각은 좀 다르다. 수많은 비리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2001년부터 2010년 8월까지 해임된 검사가 단 1명, 면직된 검사가 3명에 불과한 현실은 그 자체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해준다. 검찰 스스로가 자기개혁에 나설 리 없으니 비판과 개혁은 바깥의 몫이다. 검찰을 생각하는 일도 국민의 몫이다. 최소한 우리가 민주공화국에 산다면 말이다.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오월의봄)는 검찰개혁 문제를 다룬 자세한 현황 보고서이자 가이드북이다.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고 더 나아가 개혁의 청사진을 그린다. 참여정부에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에 관여했던 두 저자가 대한민국 검찰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를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면밀하게 기술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저자들이 먼저 짚는 것은 검찰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체제유지를 위한 합법적인 물리력의 핵심으로서 검찰은 그간에 체제와 권력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대한 공로일까? 문제는 이러한 검찰의 기원이 일제하의 사법시스템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데 있다. 당시 식민지 통치의 핵심이 검찰이어서 식민지사법은 ‘검찰사법’이라 불렸다. “철저한 국가우선주의와 전체주의, 검찰의 강력한 권한, 경찰의 인권탄압, 법원과 검찰의 일체화, 관료제에 의해 지배받는 적은 수의 강압적인 판사와 검사, 피의자‧피고인의 무권리 상태, 극소수의 변호사와 미미한 변호활동, 남발하는 고문과 가혹행위 등”이 일제하 형사절차의 특징이었다. 이러한 식민사법을 청산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 대한민국의 형사사법이다.  

물론 인적 청산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많이 알려진 대로 해방이후 사법부의 수장은 대부분 식민지 시절 판검사를 지낸 친일파가 차지했다. 비근한 예로 일제하에서 검사를 했던 이호라는 인물은 해방이후에도 출세 가도를 달려서 법무부 장관과 주일대사를 역임하고 1980년 신군부 쿠데타 이후에는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까지 지냈다. 일제에 부역하던 인물들이 해방이후에도 독재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1958년 진보당 당수였던 조봉암을 전격 체포하여 기소한 것은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정치검찰’이 형사절차를 동원한 대표적 사례다.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또한 경찰과 검찰, 법원이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얼마나 야비하게 사건을 왜곡‧조작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사례다. 준사법기관 내지는 인권옹호기관이라는 검찰의 자임은 그렇듯 한국적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국민을 위한 검찰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검찰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참여정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개혁을 시도했다. 저자들은 1기와 2기에 걸쳐 이루어진 검찰개혁의 과정과 성과, 그리고 한계를 자세히 살피는데,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확실히 보장하고 대검 공안부를 축소함과 동시에 위상을 낮춘 것 등이 성과로 지목된다. 그럼에도 참여정부의 검찰개혁은 실패했거나 최소한 미흡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중립을 넘어서 검찰개혁의 핵심과제인 민주적 통제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데 있다. 곧 검찰의 권력을 분산하고 견제와 감시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구체적으론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 법무부의 문민화, 과거사 정리 등이 달성하지 못한 과제들이다. 따라서 검찰개혁은 성공과 실패가 혼재하고 있다. 실패한 개혁이라기보다는 미완의 개혁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무릇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며 모든 개혁은 ‘계속 개혁’이라는 소회는 그래서 나온다. 물론 계속 개혁은 민주정부만이 추진하고 완결지을 수 있는 과제이다. 검찰개혁을 위해서라도 민주주의가 더 진전되고 강화돼야 한다는 게 저자들과 함께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결론이다

11. 12. 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축 전문지 SPACE(528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지난달에 나온 책을 뒤늦게 받았다. 세라 손튼의 <걸작의 뒷모습>(세미콜론, 2011)을 거리로 삼았다. 일반인에겐 다소 생소한 미술계 뒷얘기들이 흥미로운 책이었다. 

 

공간(11년 11월호) 걸작의 뒷모습

걸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예술가의 손끝에서? <걸작의 뒷모습>의 저자 세라 손튼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위대한 작품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즉 작가와 그의 조수가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후원하는 딜러, 큐레이터, 비평가, 컬렉터들에 의해 비로소 위대한 작품은 완성된다. 그러니 걸작을 낳은 건 ‘작가’가 아니라 ‘미술계’라고 말해야 할까.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문화사회학자인 저자가 보여주는  ‘걸작의 뒷모습’은 실상 ‘미술계의 뒷모습’이다. 고독한 예술가의 초상 대신에 그는 미술계를 움직이는 여러 ‘선수들’의 활동 스케치와 인터뷰를 통해서 이것이 바로 오늘의 미술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미술이란 무엇인가보다 미술계란 무엇인가를 먼저 묻는 것이 순서이겠다.  

미술계는 작가, 딜러, 큐레이터, 비평가, 컬렉터, 옥션 전문가 등 여섯 분야의 ‘선수들’에 의해 움직여진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미술시장을 떠올리겠지만 미술계는 미술시장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다. 저자의 구분에 따르면 “미술시장이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라면 미술계는 사람들이 상주하며 살아가는 공간”이다. 물론 오순도순 사이좋게 살아가는 공간은 아니다. 미술계는 ‘상징의 경제학’에 지배되며 명성과 신용, 미술사적 중요성, 제도권의 인정, 학력, 지능, 부, 컬렉션 규모 등의 요소에 의해 좌우되는 계층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이 미술계의 뒷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저자는 일종의 에스노그라피(민족지학)를 시도한다. 관찰과 청취, 인터뷰, 핵심자료 분석 등을 아우르는 ‘참여관찰법’이 미술계의 사회적 문화적 특징과 내용을 통합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그가 동원한 방법론이다. 250명 이상의 미술계 인사를 인터뷰한 것만으로도 책의 현장감은 충분히 전달된다.     

작품은 대개 고독한 작업의 결과로 탄생하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와 인정은 다수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작가들은 다만 ‘미술처럼 보이는’ 작품을 만들어낼 따름이며, 그것이 ‘미술’이 되는 것은 미술계 사람들의 평판을 등에 업고서이다. 미술계는 어떤 작업의 결과물을 가치 있는 미술로 ‘호명’한다고 말해도 좋겠다. 미술만큼은 아니더라도 미술계의 역사 또한 짧다고만 할 수는 없을 텐데, 유독 지금의 시점에서 미술계가 주목을 끄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지난 10년간이 미술사의 가장 흥미로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미술시장의 전례 없는 호황, 미술관 관객의 급증, 그리고 미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통해서 미술계는 양적으로 비대해졌다. 더 ‘핫(hot)’해졌고, 더 ‘힙(hip)’해졌으며, 더 ‘비싸’졌다. 사람들은 왜 갑자기 미술에 열광하게 됐을까? 저자는 세 가지 가설을 이유로 든다. 먼저 예전보다 더 좋은 교육환경에 노출돼 있다는 점, 그리고 교육받을 기회가 늘긴 했지만 현대인들이 예전보다 더 적게 책을 읽는다는 점, 끝으로 글로벌리즘이 지배하는 시대에 미술은 국제공용어이며 문자언어와 달리 공통의 관심사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그가 꼽은 이유이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미술작품이 매우 비싸다는 사실도 강력한 이유가 된다. 높은 가격에 경매되는 작품이 자주 헤드라인에 오르면서 미술품은 가장 대표적인 ‘럭셔리 아이템’으로 떠올랐고 전 세계 부호들의 관심사가 됐다. 금융위기가 도래하자 웰렘 드 쿠닝의 드로잉이 리먼 브라더스의 주식보다 더 안전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현대미술은 마치 부동산처럼 안정적인 투자대상이 되었다. 미술은 삶을 윤택하게도 해주지만 이제는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한 종목으로도 당당히 인정받는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가 저자가 다섯 국가의 여섯 도시를 돌면서 취재한 일곱 가지 이야기의 배경이다.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면서 제일 먼저 들르게 되는 곳은 뉴욕의 크리스티 옥션이다.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현대미술 경매 행사는 1년에 뉴욕에서 두 번, 그리고 런던에서는 세 번에 걸쳐 열리며, 이들 양대 옥션 하우스가 전체 옥션 시장의 9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미술 컬렉터들에게 옥션은 2차 시장이다. 1차 시장 딜러는 물론 갤러리인데, 갤러리에서 구입하면 가격은 훨씬 싸지만 작가나 작품의 성장 곡선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위험이 따른다. 반면에 옥션에 나오는 작품은 시장의 검증을 거친 뒤라 그만큼 위험이 줄어든다. 옥션 현장의 생생한 중계에 이어서 저자가 안내하는 곳은 LA칼아츠의 비평수업 강의실이다. 1960년대 이후 MFA(미술학 석사) 학위가 작가의 경력으로 인정되면서 유명 미술학교의 석사학위는 미술계에 들어오기 위한 필수 여건이 됐다. 보통 이들 학교의 등록금은 연간 2만 7000달러에 달하므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꽤 돈이 많이 든다. 비록 학생들은 MFA를 Mother-Fucking Artist(빌어먹을 예술가)라고 욕하기도 하지만 작가로서의 사회적 정체성이 화랑, 미술관, 강단 등 다양한 분야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기에 비평 수업의 의의는 과소평가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귀띔이다.   

현대미술의 또 다른 현장은 아트페어이다.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트페어로 꼽히는 스위스의 아트바젤로 안내한다. 갤러리로선 입성하는 일 자체가 화제가 되기는 아트페어다. 그리고 영국으로 건너가면 테이트미술관에서 주관하는 터너상의 시상과정을 밀착하여 지켜보게 된다. 뉴욕에서는 패션의 <보그>에 해당하는 미술전문지 <아트포럼>의 편집부를 찾아가며, 도쿄에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업 스튜디오와 베네치아 비엔날레도 여정에 포함돼 있다. 저자에게는 “매우 길고 느린 여정”이었지만 독자에게는 한바탕 회오리바람 같은 이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적어도 이런 주장에는 공감할 수 있게 된다. 미술계 사람들에게 현대미술은 일종의 종교다.    

11. 12.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