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학술서'라 할 만한 책 두 권은 진태원 교수가 엮은 <알튀세르 효과>(그린비, 2011)와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광학적 미디어: 1999년 베를린 강의>(현실문화, 2011)다. 키틀러는 독일의 저명한 미디어 학자라 얼핏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매체(미디어)론으로도 읽을 수 있다면, 무관하지도 않다. 관련기사를 묶어서 옮겨놓는다.
경향신문(11. 12. 10) “어떤 지배계급도 매체 독점하려는 순간, 저항 끌어들이게 돼”
어느덧 흘러간 이름이 돼 버린,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1918~1990)를 왜 되새기는가. 이 물음에 최근 900쪽 가까운 분량의 <알튀세르 효과>(그린비)를 엮어낸 진태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45·사진)는 지난 7일 연구실에서 일화 한 토막을 꺼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재판이 진행되는 때였어요. 지하철에서 어떤 노인이 ‘우리 회장님이 얼마나 나라를 위하셨는데 감히 구속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서민들이 왜 이 회장을 걱정하는지, 흔히 ‘계급을 배반한다’고 불리는 메커니즘의 작동에 대해 알튀세르가 하나의 대답을 줍니다.”
이렇듯 알튀세르 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력이 있다”는 것이 2년6개월간 출간 작업을 해 온 진 교수의 믿음이다. “세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데, 결국 마르크스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실패를 되풀이할 수는 없죠. 알튀세르는 처음부터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적 복귀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은 김정한·서관모 등 국내학자 10명과 알튀세르의 주요 제자인 피에르 마슈레 프랑스 릴 3대학 명예교수 등 해외 연구자 9명의 논문으로 구성돼 있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왜 현실사회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독재’로 변질됐는지, 자본주의 국민국가 내부에서 왜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지배구조가 날로 강고화되는지를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설명한다. 이때 이데올로기는 관념이나 사상, 허위의식을 지칭하지 않는다. 물질이며, 장치다. 예를 들면 종교적 믿음도 ‘무릎 꿇고 기도하라, 그러면 믿을 것이다’라는 파스칼의 말이 상징하듯 매주 교회에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장치가 가족과 학교 같은 것들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지배구조에 반항하지 않는 유순한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즉 ‘종속적 주체의 재생산’이다. 진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 문제가 내셔널리즘의 형태로도 나타난다”고 말한다. 한 민족 한 핏줄이라는 민족의식, 국가의 같은 정당한 구성원이라는 국민의식이 이건희 회장과 서민들을 계급으로 나누기보다 동일한 구성원으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개인은 독립적 주체이며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더욱 구조를 강고화한다. 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종합하면 결국 이주노동자는 우리 국민이 아니고, 비정규직은 게을러서 그런 것이니 이들을 자본가에 맞서는 연대의 대상이라기보다 ‘적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죠.” 그러나 알튀세르는 개개인을 ‘독립적 주체’로 보는 것을 거부했다. 진 교수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일대일의 사적인 계약 관계로 여겨지면서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관계가 은폐되는 것을 알튀세르는 ‘법 이데올로기’라며 비판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알튀세르의 문제의식은 에티엔 발리바르,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등 오늘날 가장 뜨겁게 인용되는 현대 철학자들에게 계승되고 있다. 진 교수가 “현대 사상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라도 알튀세르를 재조명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관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수단을 ‘매체’라고 말했다. 보수 매체들은 종합편성채널로 확장되고 대안매체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규제의 대상에 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알튀세르의 말은 하나의 함의를 던진다. “알튀세르는 매체가 항상 양면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배의 도구가 되지만 저항과 변혁의 거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죠. 어떤 지배계급이나 집단도 매체를 독점하거나 자기 뜻대로 전유하긴 어렵습니다. 만드는 순간 저항의 여지를 끌어들인다는 것이죠.” (황경상기자)
경향신문(11. 12. 10) “미디어는 수신·송신·저장의 데이터 장치일 뿐”
독일 미디어 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1943~2011)는 ‘유럽의 마셜 매클루언’ ‘디지털 시대의 데리다’로 불린다. 그의 미디어 이론이 갖는 무게와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별칭이다. 책은 키틀러가 1999년 독일 훔볼트대학에서 진행한 14편의 강연을 묶었다. 한국에선 처음 완역돼 나왔다. 키틀러의 미디어 이론에 앞서 들여다볼 것은 ‘미학’(aesthetics) 관점이다. 그는 미학을 그 어원인 감각으로 이해했다.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인간 지각 기관의 물질성’을 연구하는 것으로 봤다. “미학적 특성은 언제나 기술적 실현 가능성에 의존하는 변수”라는 말도 했다. 기술 환원론적 관점을 가진 키틀러에게 미디어는 ‘데이터 처리 장치’일 뿐이다. 다음은 키틀러의 미디어 정의(定義)를 잘 나타내는 말들이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철학을 글로 옮겼을 때 ‘철학 활동에 일반적으로 쓰일 수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라는 논의가 나왔다. 그때 정답은 “인간이 혼을 가지고 철학을 한다”였다. 키틀러는 “나 같은 미디어 역사가라면 ‘모음도 표기할 수 있는 최신식 이오니아 알파벳을 정답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TV는 예술인가 아닌가? 키틀러는 독일의 학술기자이자 영화제작자인 클라우스 짐머링의 “TV는 국제무선통신자문위원회 보고서 407-1에 의거하여 국제적으로 표준화된 시각의 한 방식”이라는 말을 인용한다.
책은 르네상스 시기 투시도법 패널화에서 사진, 영화, TV를 지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이어지는 미디어 역사를 다룬다. 키틀러는 인간의 손이 지배한 ‘예술적 미디어 시대’, 시간적 과정을 저장·조작할 수 있게 된 ‘아날로그 미디어 시대’, 궁극의 호환 가능성이 실현된 ‘디지털 미디어 시대’로 구분한다. 미디어 역사 서술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이미지 저장, 전송, 처리의 일반 원리”다. 연대순으로 기술과 예술의 상관관계, 정치와 종교 간 맥락을 따져든다.
‘예술적 미디어 시대’에 이미지는 그려진 뒤 교회나 미술관에 놓였다. 글은 일상 언어의 저장 매체인 동시에 대단히 느린 전송 매체다. ‘카메라 옵스큐라(암상자·Camera obscura)’는 이미지 기록(수신), 장치인 ‘매직 랜턴’(환등기·Laterna magica)은 이미지 재생(송신) 장치다. 카메라는 이미지를 저장했다. 키틀러는 이 삼원적 도식에 따라 근대의 미디어사를 개괄한다.
키틀러는 ‘미디어 철학자’라고도 불렸다. ‘미디어 철학’의 특징은 근대 이후 주체로 부상한 ‘인간’을 걷어내는 것이다. 그는 “(아날로그 미디어 시대에) 인간은 더 이상 기록을 지배하고 인식 가능한 우주를 통치하는 군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간 고유 활동이라 여겼던 그리기, 글쓰기, 보기, 듣기, 언어처리, 기억, 인식까지 기계의 몫이 되고, 어떨 때는 기계가 인간보다 더 뛰어나다고 봤다. 인간이나 혼에 관해 알 수 있는 건 그 척도인 기술적 장치뿐이라고 했다.
미디어 철학의 또 다른 특징은 ‘전쟁’이다. 키틀러는 강의에서 미디어의 군사적 맥락을 자주 말한다. 미디어 기술의 시대는 기술적 전쟁의 시기다. ‘전기적 빛’의 발견은 전쟁과 영화를 바꿨다. 키틀러는 “일본군이 야간 공격을 감행하는 순간, 스포트라이트는 전장을 치명적인 영화 스튜디오로 변형시켰다”는 정치철학자 폴 비빌리오의 말을 인용한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감 장면 촬영은 1차 세계대전 때 정찰 목적의 군사 작전에서 비롯됐다. 전쟁이 끝나고 많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영화계에 들어갔다. 키틀러가 ‘전자 기술로 무장한 능동적 눈’이라고 규정한 레이더 분야에서 발견된 사각형 임펄스(충격전류·Impulse)는 근대식 전화망, 컴퓨터 회로, TV 표준의 근간이 됐다. 키틀러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을 통해 TV 기술의 선진국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폭탄이 스스로 적을 추적해서 폭파시키는 ‘자가유도식 무기 체계’의 탄생을 두고, “모든 근대 철학의 주체인 인간은 그냥 잉여가 되었다”고 했다. 키틀러는 의도적으로 TV표준에 미달하는 간섭 이미지의 미학을 표방한 백남준의 예도 든다. 백남준은 독일 작가 칼 오토 괴츠의 영향을 받았는데, 괴츠는 독일 국방군에서 레이더 스크린의 간섭 이미지를 탐구했다. “백남준의 미디어아트는 또 하나의 ‘군수품 오용’ 사례”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파편적으로 소개됐던 키틀러의 미디어 이론을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구술을 정리한 강의록이라 난해하진 않지만, ‘디지털 시대의 데리다’를 좇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김종목 기자)
11. 12.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