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을 급하게 골라놓는다. 열흘간 휴가를 떠나게 돼 당분간은 포스팅이 어려울 듯싶다(하긴 일로 떠나는 여행이지만). 타이틀북은 '인문학자 8인의 절망을 이기는 인문학 명강의'란 부제로 나온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메디치미디어, 2014)다. 그 8인에 끼게 돼 멋쩍지만, 나머지 7인의 강의는 경청해볼 만하다.

 

 

두번째 책은 SBS 다큐 <최후의 제국>을 책으로 담아낸 <최후의 선택 아로파>(아로파, 2014). '고장난 자본주의의 해법을 찾아 65,000km 길을 떠나다'가 부제. "최적의 시스템이라 불렸던 자본주의는 왜 이렇게도 많은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불평등과 부작용으로 고장난 지금의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모두가 행복해지는 경제 시스템’은 없는 걸까"란 질문을 던지고 대안을 모색한다.  

 

 

세번째 책은 스테파노 리베르티의 <땅뺏기>(레디앙, 2014). '새로운 식민주의 현장을 여행하다'가 부제다. 땅뺏기? 비유가 아니다. "이탈리아의 <일마니페스토> 국제부 기자인 스테파노 리베르티는 이 책을 통해서 대우-마다가스카르 정부 간 성사됐던 유형의 거래는, 현재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전형적인 ‘땅뺏기’ 현상의 일환이라고 밝힌다." 그 '대우'가 한국 기업 '대우'다.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아서 더 눈길을 끈다.

 

네번째 책은 후지하라 사다오의 <앙코르와트>(동아시아, 2014). 앙코르와트 안내서가 아니다. '제국주의 오리엔탈리스트와 앙코르 유적의 역사 활극'이 부제. "제국주의시대 프랑스가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물을 반출하는 이야기를 다룬 근대 고고학사에 관한 책"이다. 앙드레 말로의 소설 <왕도>와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다섯번째는 개정판으로 나온 노마 필드의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창비, 2014). 광복절을 기념하여 고른 책이다(그에 맞춰 나온 책이겠고). "일본의 전쟁책임 회피와 역사적 기억의 왜곡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저항을 통해 그렸다는 점에서 출간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던 책으로, 동아시아출판인회의가 ‘동아시아 100권의 인문도서’로 선정하고 한국·중국·일본·홍콩·대만 3개국 5개 지역에서 번역 출간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2011년 일본 재출간에 이어 한국에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출간하게 되었다"는 소개다...

 

여기까지다. 무탈하게 귀환하여 다시 서재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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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인문학자 8인의 절망을 이기는 인문학 명강의
강신주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8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4년 08월 09일에 저장
절판

최후의 선택 아로파- 고장난 자본주의의 해법을 찾아 65,000km 길을 떠나다
SBS 최후의 제국 제작팀.홍기빈 지음 / 아로파 / 2014년 8월
16,000원 → 15,200원(5%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4년 08월 09일에 저장

땅뺏기- 새로운 식민주의 현장을 여행하다
스테파노 리베르티 지음, 유강은 옮김 / 레디앙 / 2014년 8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4년 08월 09일에 저장

앙코르와트- 제국주의 오리엔탈리스트와 앙코르 유적의 역사 활극
후지하라 사다오 지음, 임경택 옮김 / 동아시아 / 2014년 8월
38,000원 → 34,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900원(5% 적립)
2014년 08월 0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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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뉴스레터 독서인에 실은 '독서카페' 칼럼을 옮겨놓는다. 토니 주트의 <재평가>(열린책들, 2014)를 다루면서, 특히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회고와 성찰에 초점을 맞추었다.

 

 

독서인(14년 8월) 재평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려운 문제이지만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열린책들)에서 주인공 유리 지바고는 아주 간명하게 답한다. 병환으로 죽음을 눈앞에 둔 안나 이바노브나에게 그가 건네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 속에 있는 인간,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자 영혼인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당신이며 당신의 의식은 한평생 그것을 호흡하고 자기의 양식으로 삼으며 기쁨으로 삼아 온 것입니다.”


지바고에 따르면 우리의 영혼과 불멸은 모두 타인 속에 존재한다. 흔히 말하는 추억이든 뭐든지 간에 어떤 사람에 대한 기억이 타인들에게 계속 존재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그러니 죽음이란 없으며 우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게 지바고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생각이기도 했다. 소설에서 지바고는 러시아 혁명과 그 이후 격동의 시간을 살다가 모스크바의 거리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지만, 그의 삶이 그걸로 종결되는 건 아니다. 이를 입증하려는 듯이 파스테르나크는 지바고가 남긴 시들은 작품의 마지막 장에 배치했다. 그 시들이 지바고의 ‘사후의 삶’이다. 그는 시를 통해서 기억되고, 그 기억이 남아 있는 한 불멸의 삶을 누린다. 


그러한 불멸이 비단 시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모든 저자는 그들의 책이 계속 읽히는 한 망각에서 불려나와 불멸의 삶을 사는 게 아닐까. 이를테면 지난 2010년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떠난 역사학자 토니 주트도 그러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 현대사를 다룬 <포스트워>(플래닛)로 명성을 얻은 주트는 명망 있는 정치평론가이기도 했는데, 최근에 번역된 <재평가>(열린책들)는 그의 두 직함이 어떤 상승효과를 낳을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무엇을 재평가하고자 하는가.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이란 부제가 그의 의도를 집약해준다.

 


1994년에서 2006년까지 잡지나 신문들에 쓴 평론 모음집에서 주트는 두 가지 주제에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하나는 사상의 역할과 지식인의 책임이고(이 주제는 그가 <지식인의 책임>(오월의봄)에서 따로 다루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지나간 20세기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이다. 역사 또한 지속적으로 소환되고 기억되는 한 우리 곁에 살아있는 역사가 된다. 반대로 역사의 망각이란 곧 죽음과 다를 바 없다. 망각된 역사는 역사의 죽음뿐 아니라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의 죽음을 뜻한다.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는 시대란 죽음의 시대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토니 주트의 묵직하면서도 매력적인 성찰들 가운데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회고와 재평가다. 근래에 이 사건과 관련된 책들이 여럿 소개되면서 부쩍 관심을 갖게 된 때문이다. 가령 그래엄 엘리슨과 필립 젤리코는 국제정치학의 교과서 가운데 하나인 <결정의 엣센스>(모음북스)에서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사태를 20세기 후반 인류가 겪은 가장 중대한 사건으로 평가하고 비밀 해제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여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하고 미‧소 양국의 정책 결정과정을 모델화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또 당시 미 대통령 J.K. 케네디의 동생이자 핵심 측근이었던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의 <13일>(열린책들)은 긴박하게 진행됐던 위기 상황에 대한 현장 증언과 회고를 담고 있으며, 역사학자로서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집행위원회(엑스콤)의 회의 녹취 테이프를 처음 청취한 셀던 스턴의 <존 F. 케네디의 13일>(모던타임스)은 회의 전체 내용을 압축하여 미국 측의 의사결정 과정을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한 책이다. 그리고 제임스 블라이트와 재닛 랭이 엮은 <아마겟돈 레터>(시그마북스)는 미사일 위기 사태의 주요 당사자이자 결정권자인 니키타 흐루쇼프와 피델 카스트로, 그리고 케네디 등이 서로 주고받은 43통의 편지를 시간 순서에 따라 소개하고 있다. 거기에다 문제의 사태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분석을 담은 학술적 연구서로서 이근욱 교수의 <쿠바 미사일 위기>(서강대출판부)도 보탤 수 있다. 


사태의 발단은 무엇이었나. 1962년 10월 14일 미국의 U-2 정찰기가 쿠바 서부 상공을 비행하다가 건설 중인 미사일 기지 세 곳을 포착한다. 소련이 쿠바에 준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치하고 있었고 이러한 사실이 10월 16일 아침에 케네디 대통령에게 보고된다. 미사일 위기 사태의 시작이다.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엑스콤이 소집되었고 결국 22일 저녁 7시에 쿠바 주변 해상에 대한 봉쇄가 결정된다. 특이한 것은 쿠바 내 미사일 배치와 증강 계획이 발각될 가능성에 대비책을 흐루쇼프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인데, 준비가 없기로는 케네디 쪽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사전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미사일 발사기지의 성격과 위험 정도, 그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대응책 등을 긴급하게 결정해야 했다.


케네디의 최종 선택은 부분적인 해상 봉쇄였지만 회의에서는 더 포괄적인 봉쇄, 쿠바 미사일 발사기지 공습, 전면적인 군사적 침공 등 훨씬 더 강경한 대응책들이 제안되었다. 사실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하자 미국은 소련의 대륙간 탄도탄 발사 능력을 과장되게 염려하였고 케네디는 1960년 대선에서 이러한 두려움을 활용했었다. 하지만 쿠바 위기 시점에서 소련은 대륙간 탄도탄 미사일에서 17대 1로 불리한 상태였고 흐루쇼프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흐루쇼프의 목적은 이러한 군사적 결점을 상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새로운 우방 쿠바를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도 있었다. 미국은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카스트로를 제거하기 위한 온갖 공작을 짜내고 있었고 흐루쇼프는 미국이 쿠바를 침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쿠바 내 소련 미사일 기지 건설이라는 발상의 배경이다.

 


미사일 사태 국면에서 흐루쇼프와 케네디는 모두 핵전쟁을 각오할 생각이 없었지만 둘다 그 반대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소련은 포커 게임에서 나쁜 패를 쥐고서도 허세를 부리는 것과 비슷한 처지였는데, 흐루쇼프는 그래도 막판에 판돈을 더 올리고픈 유혹을 억눌렀다. 케네디도 대외적으로 강하게 보이려는 욕구를 갖고 있었지만 중대한 위기 국면에서 놀라운 침착함을 유지하며 가장 온건한 방안을 선택했다. 즉각적인 군사 행동에 앞서 부분적인 해상 봉쇄를 선택한 것이다. 케네디는 비타협적인 선택을 하면서 소련에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미지를 남기고자 했지만 실상 마지막까지도 협상을 모색하면서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거듭 연기하고자 했다. 정작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게 해준 것은 그의 인내와 절제였고 대결보다는 협상을 일관되게 우선시했던 태도였다.


냉전 시대의 가장 큰 위기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었던가에 대한 생생한 자료와 분석은 오늘날의 국제정치적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용한 참고가 된다. 더불어, 시인이 시를 통해서 기억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인은 그의 판단과 행동을 통해서 기억된다는 사실 또한 토니 주트의 성찰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14. 08. 08.

 

 

P.S. <재평가>는 반가운 책이지만(<20세기를 생각한다>도 나옴직하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장을 읽다 보니 교정이 부실한 듯해 아쉽다. 419쪽, "케네디가 10월 9일에 이렇게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에서 케네디가 말한 날짜는 10월 9일이 아니라 10월 19일이다. "사흘 뒤 위기가 시작되었을 때"라고 나가는 문장에서는 '사흘 뒤'가 아니라 '사흘 전'(Three days earlier)이 맞다. "사흘 전 위기가 시작되었을 때"다(즉 10월 16일을 가리킨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1962년 10월 16일에서 28일까지 13일간 벌어졌던 일이다. 역자나 편집자가 기본적인 사실도 확인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다. 425쪽, "소련은 10월 17일 쿠바 상공을 정찰하던 U-2기 한대를 '무심결에' 격추시켰다."에서도 미국 정찰기가 격추된 날짜는 10월 17일이 아니라 27일이다. 이런 사소한 실수들로 책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는 건 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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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책&(430호)에 실은 '키워드로 읽는 인문학 서재'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있어서 '교황'으로 잡았다. 이미 교황 관련서는 수십 종이 나와 있는 성싶은데, 몇 권만 추려서 볼 수밖에 없었다. '교황의 역사'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었지만 분량상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생각에 관해서만 적었다(교황의 이름은 베를골료, 베르골리오, 베르고글리오가 통일되지 않은 채 혼용되고 있다).  

 

 

책&(14년 8월호)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황의 여정

 

8월 방한을 앞두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3월 제266대 교황으로 취임한 이래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선도하고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과 복음의 회복을 강조함으로써 불과 1년 만에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에 미국 ‘타임’지는 교황을 ‘2013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무엇이 전 세계 12억 가톨릭신자뿐 아니라 타종교인과 비종교인에게까지 새 교황에 대한 관심과 존경을 불러 모으게 하는가. 몇 권의 책을 통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생각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교황의 삶을 들여다 보는 데 기본서가 될 만한 책으로 위르겐 에어바허의 <프란치스코 교황>(가톨릭출판사)을 꼽을 수 있다. 독일 출신의 바티칸 전문기자가 쓴 책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과정과 성직자로서의 여정, 그리고 교회 개혁에 대한 그의 생각과 가톨릭교회 내부의 평가 등을 담고 있다. 모든 일은 2013년 3월 13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고 공표됨으로써 시작되었다(한국천주교회에서는 ‘베르골리오’ 대신에 ‘베르골료’라는 표기를 권장하지만, 출간된 다수의 책에서 베르골리오라고 표기하고 있기에 그에 따른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사임하면서 소집된 콘클라베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선출되었다는 전언이었다.

 

 

베르골리오는 선임 교황들이 선택하지 않은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을 선택했는데, 이로써 몇 가지 기록을 세우게 된다. 즉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아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선택한 최초의 교황이며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이고 최초의 예수회 소속 교황이다.


호르헤 베르골리오는 19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이탈리아 피에몬테 출신으로 세계 대공황이 닥치자 당시 유럽과 달리 경제 호황을 누리던 아르헨티나로 이주해왔다. 평범하지만 행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호르헤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3살이 되자 아버지의 권유로 양말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17살에 공업학교에 진학해서는 제약공장에서 일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공장에서 일한 다음에 한 시간 동안 점심을 먹고 저녁 8시까지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다. 추기경이 된 뒤 그는 이 시기의 노동 경험에 대해서 이렇게 회고했다. “저는 제게 일을 시키셨던 아버지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을 하면서, 인간의 선한 모습뿐만 아니라 잔인하고 악한 모습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으니까요.”


십대 시절 공장에서 일하며 다니던 성당에서 젊은 사제를 만나 영적인 체험을 한 호르헤는 스무 살이 되자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리고 1958년 예수회에 입회한다. 예수회 입회자로서 수련기를 거치는 동안 그는 인문학 전반에 대한 기초를 다졌고 대학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강의하기도 했다. 횔덜린의 시를 좋아했고 보르헤스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도 정통했다. 단테의 <신곡>과 알렉산드로 만초니의 <약혼자들>이 그가 특히 아끼는 작품이며 톨킨의 <반지의 제왕>도 관심을 갖고 읽었다. 예수회 신부로 사목하던 베르골리오는 1992년 주교로 서품되고, 2001년 2월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에 서임된다.


바티칸에서 열린 서임식에 많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직접 참석하려고 했지만 그는 서임식 참석 비용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도록 직접 서신까지 썼다. 서임식 예복도 전임 추기경이 입던 옷을 자신의 치수에 맞게 고쳐 입으려고 했을 정도로 그는 청빈하고 소탈했다. 그의 검소함은 교황이 된 이후에도 이어져서 여전히 은으로 된 주교 십자가를 걸고 다니며 고향의 작은 구둣방에서 맞춘 검은 구두를 신는다고 한다. 교황의 이러한 인품은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에도 새겨져 있다. 교황에 따르면, 아시시의 성인 프란치스코는 “청빈과 평화의 수도자이자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여 보호하신 분”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계승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회문제와 복음 전파에 큰 관심을 쏟는다. 아르헨티나 현대 정치사의 굴곡을 몸으로 겪은 그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곳에서 인간이 얼마나 큰 고통에 빠질 수 있는지,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큰 위협에 처할 수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교황이기도 하다.  

 


예수회 신부 안토니오 스파다로와의 대담집 <나의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솔)는 교회의 역할과 성직자의 사명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그가 예수회를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교황은 예수회가 가진 선교성, 공동체, 규율이라는 세 가지가 깊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태생적으로 규율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었지만 예수회원들의 엄격한 규율 준수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혼자 사는 사제가 아니라 공동체 속의 사제이고자 했다. 더불어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예수회란 언제나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를 마음의 중심에 둔다는 것을 가리킨다.


진리에 대한 교황에 생각도 음미해볼 만한데, 그는 결코 절대적 진리에 대해서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절대적이란 말은 모든 관계에서 벗어난다는 뜻을 함축하는데, 그가 보기에 진리란 다른 무엇보다도 ‘관계’를 지칭한다. “진리란 그리스도교 전통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 있는,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결국 진리란 관계인 것이지요!”라고 교황은 강조한다. 그렇기에 진리는 항상 하나의 여정이며 하나의 삶으로서만 우리에게 자신을 내준다고 그는 덧붙인다. 교회에 대한 생각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교황에게 교회란 어머니의 따뜻함을 의미한다. 그는 어떤 교회를 꿈꾸는가. “내가 분명히 보는 바로는 오늘날 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상처를 치료하고 신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능력과, 가까이 머물기, 곁에 있기입니다. 나는 교회를 전투가 끝난 후의 야전병원으로 봅니다.” 이 야전병원에서 가장 우선적인 것은 환자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직무자들은 무엇보다도 자비의 직무자여야 한다고 교황은 말한다. 


남미에서 직접 해방신학을 공부한 신학자 김근수의 <교황과 나>(메디치)는 ‘개혁 교황’으로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탄생과정과 그 의의,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과 행동이 한국사회에 교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짚어본 책이다. 저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읽는 세 가지 코드로 예수회와 성 프란치스코, 그리고 조국 아르헨티나의 현실 세 가지를 들면서 교황이 ‘온건 해방신학자’의 입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지 않으면서 교회개혁을 통해 사회개혁에까지 이르고자 하는 게 교황의 지향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교황의 꿈은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교회다. 한국사회와 한국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지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교황의 방한이 그러한 반성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14. 08. 08.

 

 

P.S. 참고로 교황의 역사에 대해서는 한스 크리스티안 후프의 <교황들>(동화출판사, 2009), 호르스트 푸어만의 <교황의 역사>(길, 2013), P.G. 맥스웰의 <교황의 역사>(갑인공방, 2005) 등을 참고할 수 있다.

 

 

간략한 문고본으로는 프란치스코 키오바로의 <교황의 역사>(시공사, 1998), 두툼한 책으로는 <옥스퍼드 교황 사전>(분도출판사, 2014), 그리고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교황 연대기>(바다출판사, 2014)를 더 참고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의 방한인지라 출판계의 반응도 사뭇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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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문학 분야에서만 골랐는데, 먼저 미국 작가 필립 로스. <미국의 목가>(문학동네, 2014)가 지난 5월에 나온 데 이어서 이번엔 <유령 퇴장>(문학동네, 2014)이다. 2월에 나온 <포트노이의 불평>(문학동네, 2014)까지 포함하면 올해만 해도 벌써 세 작품째. 분기별로 한 작품씩 소개되는 셈이다. 필립 로스의 독자라면(몇 명이나 될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올해가 '기념비적 해'가 될 듯싶다.

 

 

화자이자 작중 인물인 네이선 주커먼이 등장하기에 '주커먼 시리즈'의 하나로 분류되는데, 이 시리즈는 그간에 소개된 '미국 3부작'을 아우른다.

'미국 3부작'(<미국의 목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휴먼 스테인>)을 통해 이제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꽤 알려진 인물 네이선 주커먼은 필립 로스와 마찬가지로 유대인 작가로 나온다. <유령작가>에서 주커먼은 갓 단편소설 하나를 발표한 스물세 살의 문학청년인데 유대인의 전통과 관습을 억압과 규제로 묘사하는 작품을 써서 가족과 유대인 사회와 충돌한다.  

'주커먼 시리즈의 완결판'이라고 하니 시리즈에 취약한 독자라면 비명을 지를 만하다.

 

 

문학동네가 필립 로스에 꽂혀 있다면 민음사는 밀란 쿤데라에 이어서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에 꽂혔다. 10권짜리 전집이 나온다니 말이다. 1차분으로 여섯 권이 한꺼번에 나왔는데, <교차된 운명의 성>과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 두 권은 처음 번역돼 나왔다. 한데 왜 칼비노인가? "칼비노는 알베르토 모라비아, 움베르토 에코 등과 함께 20세기 이탈리아의, 그리고 유럽의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하나이다."(뉴욕타임스)라는 평을 참고하면 되겠다. 아주 오래 전에 칼비노 연구서를 책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적이 있는데, 이제야 용도를 찾은 성싶다. 어디서 찾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진은영 시인의 비평집이 나왔다. <문학의 아토포스>(그린비, 2014). 문학 계간지들을 눈여겨보는 독자라면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책이다. 지난 몇 년간 시와 정치, 문학과 정치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평단의 논쟁에서 중심에 서 있었던 이가 시인 혹은 비평가로서 진은영이었다. 계기는 랑시에르의 <감성의 분할>(도서출판b, 2008)의 소개.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란 주제를 놓고 촉발된 논쟁의 경과와 사후담이 궁금하다면 반가울 법한 비평집이다. 소개는 이렇다.

80년대 이후 한국 문단에서 외면당해 온 ‘예술의 정치성’이 다시금 대두하는 오늘날의 상황, 랑시에르의 사유를 바탕 삼아 ‘정치적인 것’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문학과 정치 사이의 낡은 경계선을 지워 내고 더욱 강력한 미학적-정치적 실험과 실천을 주문하는 이 책은 ‘문학과 정치’ 논쟁을 지켜봐 온 이들에게는 발제자이자 가장 성실한 토론자인 진은영 사유의 종합본으로,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나 미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관련 주제에 관한 탁월한 입문서로, 시인 진은영의 팬들에게는 그녀의 문학을 이해하는 열쇠로 가 닿을 것이다.

14.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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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28사단에서 발생한 윤모 일병 구타 사망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어제는 대통령의 질책에 이어 육참총장이 사퇴했지만 병영문화가 근본적으로 쇄신되지 않는 한(군대 인권에 대한 인식이 획기적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모두가 예상하는 바대로 이와 유사한 사건은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다. 그게 한국 군대의 현주소다.

 

 

사건의 잔혹함 때문에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러시안 다이어리>(이후, 2014)에 나오는 일화가 떠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의 병영문화가, 특히 신병에게는 최악으로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하지만 윤일병 사건은 한국 군대가 러시아 군대 못지 않다는 걸 단번에 입증했다). 2004년 7월 9일 일기에서 폴릿콥스카야는 한 러시아 사병의 끔찍한 죽음을 소개한다. 예브게니 포몹스키가 그 사병의 이름이다. 애칭은 제냐(예브게니의 애칭이다).

 

 

군 복무에 열의를 갖고 징집 날짜보다도 일찍 자원입대를 했지만, 예브게니의 군복무 기간은 한달 반이 채 되지 않았다. 5월 31일에 입대하여 국경수비대에 배치된 그는 7월 6일에 하계 훈련장에 배속됐고, 7월 9일 두 개의 허리띠로 목이 졸려 숨진 시신으로 발견됐다. 집에는 예브게니가 자살했다는 부대장의 통지서가 전달됐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예브게니는 키가 196센티미터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문제는 발도 컸다는 것. 그에겐 47호의 군화가 맞았지만 그가 지급받은 건 44호짜리였고, 그렇게 발에 맞지 않는 군화를 신고서 40도의 열기 속에서 5킬로미터의 행군을 소화해야 했다. 예브게니는 발에 맞는 더 큰 군화를 요구했지만 그의 고참들은 신병의 그런 요구를 '군기'가 빠진 걸로 보고 본때를 보여주기로 한다. 그들은 반복적으로 에브게니를 구타했고 결국 예브게니는 고문을 당하다가 숨졌다. 살인자들은 그가 자살한 것처럼 위장했고, 사건은 그렇게 종결됐다. 예브게니의 이모 예카테리나 미하일로브나는 영안실에서 본 제냐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이의 몸 전체는 두들겨 맞은 자국이 역력했고, 머리는 멍 자국이 수두룩했지요. 마치 뼈가 없는 것처럼 몸 전체가 물렁물렁했어요. 어디 하나 부러지지 않은 데가 없었죠. 뒤통수에는 묵직한 물체에 맞은 것처럼 움푹 팬 자국이 선명했고, 생식기는 짓뭉개진 채 부어올라 있었어요. 두 다리 역시 부어올라 있고 상처투성이인 데다가 마구 끌려다녔던 것마냥 흐늘거렸죠. 뒷머리는 피부가 완전히 벗겨져 있었는데, 그것 역시 아이가 끌려다니면서 생긴 것 같았어요. 발 위에는 화상 자국이 보였고, 어깨에는 누군가 위에서 세게 누른 듯한 멍 자국이 있었죠. 나는 아이가 고문을 당했고, 그 다음 살인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 아이를 매달았다고 생각해요.(207쪽)

폴릿콥스카야는 사건의 귀결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그나마 한국의 상황이 러시아보다 아주 조금 낫다고 할까. 

발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열여덟 살의 청년 포몹스키 이등병의 비극은, 그럼에도 군대 내의 그런 흉포한 야만성에 대한 사회의 공분을 크게 일으키지 못했다. 그 누구도 국방부 장관 세르게이 이바노프와 FSB 국장 니콜라이 파트루셰프가 러시아 군인들에게 향후 질서 있는 환경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음식, 옷, 신발을 공급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또 그들이 나라의 부름을 받은 청년들의 목숨에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든 것이 전과 다름없이 흘러갔다. 다음 순번의 군인이 또 다시 무참히 살해되기 전까지.(207-8쪽)

러시아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자면, 다음 순번의 구타 희생자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국민으로서 우리는 윤일병 사건의 가해자와 책임자의 처벌과 함께 군문화의 획기적인 혁신을 촉구할 권리가 있다(군 수권자와 수뇌부에게 그럴 의지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군대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국민을 죽이는 군대는, 죽도록 방치하는 군대는 더이상 국민의 군대가 아니니까...

 

14.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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