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28사단에서 발생한 윤모 일병 구타 사망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어제는 대통령의 질책에 이어 육참총장이 사퇴했지만 병영문화가 근본적으로 쇄신되지 않는 한(군대 인권에 대한 인식이 획기적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모두가 예상하는 바대로 이와 유사한 사건은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다. 그게 한국 군대의 현주소다.

 

 

사건의 잔혹함 때문에 안나 폴릿콥스카야의 <러시안 다이어리>(이후, 2014)에 나오는 일화가 떠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러시아의 병영문화가, 특히 신병에게는 최악으로 악명이 높기 때문이다(하지만 윤일병 사건은 한국 군대가 러시아 군대 못지 않다는 걸 단번에 입증했다). 2004년 7월 9일 일기에서 폴릿콥스카야는 한 러시아 사병의 끔찍한 죽음을 소개한다. 예브게니 포몹스키가 그 사병의 이름이다. 애칭은 제냐(예브게니의 애칭이다).

 

 

군 복무에 열의를 갖고 징집 날짜보다도 일찍 자원입대를 했지만, 예브게니의 군복무 기간은 한달 반이 채 되지 않았다. 5월 31일에 입대하여 국경수비대에 배치된 그는 7월 6일에 하계 훈련장에 배속됐고, 7월 9일 두 개의 허리띠로 목이 졸려 숨진 시신으로 발견됐다. 집에는 예브게니가 자살했다는 부대장의 통지서가 전달됐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예브게니는 키가 196센티미터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문제는 발도 컸다는 것. 그에겐 47호의 군화가 맞았지만 그가 지급받은 건 44호짜리였고, 그렇게 발에 맞지 않는 군화를 신고서 40도의 열기 속에서 5킬로미터의 행군을 소화해야 했다. 예브게니는 발에 맞는 더 큰 군화를 요구했지만 그의 고참들은 신병의 그런 요구를 '군기'가 빠진 걸로 보고 본때를 보여주기로 한다. 그들은 반복적으로 에브게니를 구타했고 결국 예브게니는 고문을 당하다가 숨졌다. 살인자들은 그가 자살한 것처럼 위장했고, 사건은 그렇게 종결됐다. 예브게니의 이모 예카테리나 미하일로브나는 영안실에서 본 제냐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이의 몸 전체는 두들겨 맞은 자국이 역력했고, 머리는 멍 자국이 수두룩했지요. 마치 뼈가 없는 것처럼 몸 전체가 물렁물렁했어요. 어디 하나 부러지지 않은 데가 없었죠. 뒤통수에는 묵직한 물체에 맞은 것처럼 움푹 팬 자국이 선명했고, 생식기는 짓뭉개진 채 부어올라 있었어요. 두 다리 역시 부어올라 있고 상처투성이인 데다가 마구 끌려다녔던 것마냥 흐늘거렸죠. 뒷머리는 피부가 완전히 벗겨져 있었는데, 그것 역시 아이가 끌려다니면서 생긴 것 같았어요. 발 위에는 화상 자국이 보였고, 어깨에는 누군가 위에서 세게 누른 듯한 멍 자국이 있었죠. 나는 아이가 고문을 당했고, 그 다음 살인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 아이를 매달았다고 생각해요.(207쪽)

폴릿콥스카야는 사건의 귀결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그나마 한국의 상황이 러시아보다 아주 조금 낫다고 할까. 

발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열여덟 살의 청년 포몹스키 이등병의 비극은, 그럼에도 군대 내의 그런 흉포한 야만성에 대한 사회의 공분을 크게 일으키지 못했다. 그 누구도 국방부 장관 세르게이 이바노프와 FSB 국장 니콜라이 파트루셰프가 러시아 군인들에게 향후 질서 있는 환경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음식, 옷, 신발을 공급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또 그들이 나라의 부름을 받은 청년들의 목숨에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없었다. 모든 것이 전과 다름없이 흘러갔다. 다음 순번의 군인이 또 다시 무참히 살해되기 전까지.(207-8쪽)

러시아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자면, 다음 순번의 구타 희생자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국민으로서 우리는 윤일병 사건의 가해자와 책임자의 처벌과 함께 군문화의 획기적인 혁신을 촉구할 권리가 있다(군 수권자와 수뇌부에게 그럴 의지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군대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국민을 죽이는 군대는, 죽도록 방치하는 군대는 더이상 국민의 군대가 아니니까...

 

14.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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