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에 대한 강의를 하다 보면 괴테를 빠트릴 수 없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젊은 베르터의 고뇌>)과 <파우스트>는 해마다, 그리고 <친화력>도 가끔 강의에서 다루게 된다. 괴테와 관련한 자료와 연구서도 해마다 업데이트를 하는 편인데, 이번주에 나온 책으로는 임홍배 교수의 <괴테가 탐사한 근대>(창비, 2014)가 거기에 해당한다. 그런 관련서로 올 하반기에 나온 몇 권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작품 읽기가 아니라 '괴테 읽기' 리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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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가 탐사한 근대- 슈투름 운트 드랑에서 세계문학론까지
임홍배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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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괴테 니체 바그너
승계호 지음, 석기용 옮김 / 반니 / 2014년 11월
29,000원 → 26,1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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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괴테, 토마스 만 그리고 이청준
안삼환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4년 10월
15,000원 → 14,250원(5%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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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손관승 지음 / 새녘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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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인지 열감기인지 하루 종일 앓고서 정신을 차리려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괜히 일을 더 한다는 느낌을 주는 북플 때문인가?). 바로 잠자리에 들 수 없어서 내친 김에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히로세 히로타다의 <인간은 왜 제때 도망치지 못하는가>(모요사, 2014). 부제는 '살아남기 위한 재해심리학'이다. 제목과 부제만으로 어떤 책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우리는 왜 ‘제때 도망치지 못해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가? 주된 이유는 인간심리에 깔려 있는 위험한 덫들 때문이다. 안전함과 편리함에 익숙해진 탓에 위험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해 피난 기회를 놓치거나, 다른 사람들이 도망치지 않아서 좀 더 지켜보다가 위험에 빠져버리거나, 안전요원이나 전문가의 말을 과신하는 바람에 안일하게 기다리다가 도망치지 못해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기후변화, 천재지변, 신종 바이러스, 방사능 누출 등 새로운 유형의 재난과 대규모 복합 재난의 발생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위협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안전한 삶을 유지할 것인가? 이 책은 재해 발생 시 가족과 나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행동 매뉴얼까지 제시하고 있어 ‘재난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고 기억해야 할 책이다. 

'재난공화국' 혹은 '안전후진국'으로 낙인이 찍힌 나라에서 사노라면, 이런 류의 서바이벌 매뉴얼은 필독서다(학교 교실마다 비치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유사도서가 없을 수 없는데, 심리적 재난까지 포함한 재난 대처법을 다룬 데이비드 펠드먼 등의 <슈퍼서바이버>(책읽는수요일, 2014), 극한상황에서의 생존법을 다룬 <생존의 한계>(어크로스, 2014) 등이 올해 나온 책들이다. 상시화되고 있는 위험과 재난을 고려하면 이 분야의 분류 카테고리도 곧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열감기는 어떻게 탈출하나...

 

14. 1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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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좀더 길다.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연암서가, 2014). 주로 피터 싱어의 책들을 번역해온 김성한 교수가 쓴 진화심리학 개설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진화심리학의 이론과 응용 정도라고 해야겠다. 진화심리학에서 얘기하는 건 남녀의 성 특징 내지 성적 행동의 특징까지인데(이게 1부다), 저자는 이를 응용해서 '연애의 기술'까지 다루려고 하기 때문이다(여기까지가 2부). 그리고 할 걸음 더 나아가 연애 코칭에까지(3부는 '연애의 단계'다). 과감한 시도이면서 과욕으로도 보이는데, 저자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왜 동성애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남성은 여성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매혹을 느낄까? 왜 그들이 매혹을 느끼는 대상은 하필이면 동물이 아닌 인간 종의 이성(異性)일까? 노인이나 아기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도록 젊은 남성들을 교육한다고 그러한 남성들이 그들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될까? 왜 젊은 남성은 글래머인 젊은 여성의 나신을 보면 성적인 자극을 받게 될까? 왜 이 세상에서 성범죄를 저질러 전자발찌를 차는 사람은 거의 예외없이 남성들일까? 왜 누구는 연애하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데 왜 누구는 모태 솔로로 살아갈까? (4쪽)

이런 물음을 공유한다면 흥미를 갖고 읽어봐도 좋겠다. 저자가 특별히 배려하고 있는 듯한 '모태 솔로'라면 더더욱. 하지만 생물학적인 답변으로 '인간은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에 이미 이성간의 매혹은 다 해명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좀 의아하긴 하다.

 

 

진화생물학 책은 입문서부터 대학 교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와 있고, 성의 진화 내지 성선택에 관한 내용도 많은 책에서 읽어볼 수 있다. 저자의 강점은 짐짓 시치미를 떼면서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더라도 연애 코칭에까지 나선 것은 좀 과도했다. 특히나 '헌신'이란 자질 혹은 덕목으로 많은 문제를 해명하려고 한다면 말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연애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 남성에게 바라는 특징인 '헌신'이다.(...) 필자가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남녀의 여러 특징 중에서 '헌신'만을 가지고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유는 첫째,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남녀의 생물학적 성 특징 중에서 연애를 잘 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것은 헌신 외에 마땅히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둘째, 만약 남성이 선호하는 여성의 특징 중에서 '헌신'처럼 상대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것이 있다면 이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책에서 소개한 남성의 생물학적 성 특징 중에는 이와 같은 특징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7-8쪽)

그러니까 재력이나 외모, 키, 체격 같은 다른 자질은 거의 결정되어 있는 걸로 보고, 그래도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서 뭔가 개선할 수 있는 것이 '헌신'이라고 보는 듯하다(태도는 노력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통상 더 유리한 것은 '헌신하는 척'하는 게 아닐까?).

 

 

흠, 생각해보니 사례가 없진 않다. 좀 오래된 영화로 문성근, 김희애 주연의 <101번째 프로포즈>(1993)가 있었다. 어떤 내용이던가.

건설회사 계장인 구영섭은 99번이나 선을 봤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는 노총각이다. 그러나 100번째로 첼리스트 정원과 선을 보게 된 영섭은 그녀가 자신에게 너무나 과분한 여자임을 알지만 그녀의 마음을 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죽은 약혼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정원도 성실하고 순수한 영섭의 사랑에 차츰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원이가 꿈에도 잊지 못하는 죽은 약혼자와 너무나도 흡사한 김준기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늘 정원과 세상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던 영섭은 준기의 등장으로 그녀를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고, 예감처럼 정원은 진정한 사랑과 과거의 기억의 혼돈 속에서 준기에게 마음을 돌린다. 영섭은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시험에 합격하는 날 정원에게 자신의 결혼 반지를 받아달라 말하려고 하지만 시헙에 떨어지고 정원에게 주려던 결혼 반지를 강에 던져 버린다. 그러나 정원은 옛사랑의 기억보다 더 진실하고 소중한 또 하나의 사랑을 깨닫고 야간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영섭을 찾아간다.

기억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했던 것 같은데, 결말이 '영화적' 엔딩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헌신만 갖고서 자신에게 '너무나 과분한' 여자에게 대시하여 성공한 사례는 20년쯤 전에, 영화에서 한번 있었다고 할까(다시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주제는 문성근의 헌신이 아니라 김희애의 헌신이로군). 어째서 그런가. 사실 이 또한 진화심리학적 해명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저자의 말대로 헌신은 연애하는 데 참고는 될지언정 결정적이진 않다. 연애 코칭으로선 치명적이지 않나 싶다.

 

 

'연애'라는 말의 용례가 제한적이어서 그렇지, '사랑'이나 '애정'으로 바꿔보면,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는 성립하지 않는다.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을 사랑하는가' 혹은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을 좋아하는가'라고 바꿔보면 알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연애'는 속칭에서 그렇듯이 '성관계'를 뜻하는 정도로 한정되지만, 인간은 유별나서 또 '수간'이란 걸 버젓이 저질러왔다. 그런 사정들을 고려하면 책의 제목은 '왜 당신은 보통 동물이 아닌 인간과 섹스를 하는가' 정도로 눅여서 이해해야겠다. 아니 동성애자뿐 아니라 아무런 성욕도 느끼지 못한다는 무성애자까지 고려하면, '인간끼리의 연애'에 대해서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상당히 곤란하다. 진화심리학과 연애코칭을 결합하고자 한 시도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다...

 

1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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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자본주의 관련서가 몇 권 출간됐지만 자주 다룬 주제이기에 학습법부터 현대사회, 사회적 영성과 관련한 책들로 다섯 권을 골랐다. 타이틀북은 교육학 책이면서 뇌과학서로 분류되는 헨리 뤼디거 등의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와이즈베리, 2014)다. '최신 인지심리학이 밝혀낸 성공적인 학습의 과학'이 부제. 소개는 이렇다.

 

11인의 학자가 10년간 수행한 ‘교육현장 개선을 위한 인지심리학의 응용’ 연구를 집대성한 하버드대학교 출간 교육학 명저! 자기주도학습은 틀렸다. 최고의 선수는 훌륭한 코치의 도움을 받는다. 밑줄 긋기, 강조하기, 벼락치기, 반복 학습, 집중 연습은 안다는 착각을 일으킬 뿐 그렇게 익힌 지식은 금세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지식과 기술을 더 잘 배우고 더 오래 기억하고 필요할 때 즉각 떠올리게 하는 최고의 학습법은 무엇인가? 독보적 실력의 신경외과의사, 미식축구 챔피언 팀 코치, 꼴찌에서 일등이 된 의대생, 농업 기술을 독학으로 익힌 정원사, 88세의 피아니스트와 기억력 대회 우승자까지, 생생한 사례와 함께 과학적으로 검증된 학습법을 소개한다.

내주에 기말시험을 앞둔 중학생 아이가 더 관심이 있을 것 같은 책이지만, 이제 막 새로운 공부에 눈뜬 중년 독자들에게도 도움을 줄지 모른다.  

 

두번째는 독일의 르포작가 그레타 타우베르트의 <소비사회 탈출기>(아비요, 2014). '낭비와 과잉의 황금기가 끝나면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가 부제다. 물론 남의 얘기가 아니다.

점점 심각해져가는 재정 위기, 자원 고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자연 재해는 이런 두려움이 한순간의 심리적 문제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특히나 대량 생산과 과잉 소비로 점철된 오늘날의 경제 시스템은 이미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그레타 타우베르트는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뉴스에 보도되는 것처럼 정말 모든 것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면 어떻게든 최악의 시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여긴 저자는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모든 아이디어들을 1년간의 생존 연습을 통해 실험해보기로 한다.

우리도 점차 이러한 탈출법을 연습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낭비로부터의, 쓰레기로부터의 탈출이 생존의 관건이 되는 시대가 쓰나미처럼 들이닥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세번째 책은 시각과 근대성의 문제를 다룬 <관찰자의 기술>(문화과학사, 2001)의 저자 조너선 크레리의 <24/7 잠의 종말>(문학동네, 2014)이다. '잠을 추방한 테크노자본주의 시대에 관한 보고서'로서 "‘24/7(Twenty-four seven)’ 체제, 즉 ‘하루 24시간, 주 7일 내내’ 돌아가는 산업과 소비의 시대"의 풍경과 일상을 분석하고 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직장인이라면 일독해볼 만한 책이지 싶다(수면 부족의 뇌가 제대로 작동할지는 의문이지만).

 

 

14인의 신학자와 비평가가 쓴 <사회적 영성>(현암사, 2014)이 네번째 책이다. '세월호 이후에도 ‘삶’은 가능한가'를 묻는다. " <사회적 영성>은 우리 사회 감성의 흐름에 대한 성찰을 시도한 책이다. 이성의 영역에서 성찰을 이해 혹은 의사소통이라고 한다면, 마음 · 감성의 영역에서 성찰을 공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이 공감 행위에 관한 신학적 · 인문학적 성찰이 바로 ‘사회적 영성’이다. 이미 우리 주위에는 치유와 배려, 희생과 배품을 말하는 ‘윤리적’ 언설들이 가득하다. 지은이들은 그 안에서 영성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망각해온 공동체적 · 관계적 영성을 찾아내고 그 효과를 새로이 읽어내고자 한다."

 

끝으로 청어람아카데미 대표이자 복음주의 운동가 양희송의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포이에마, 2014). "가나안 성도는 누구이며 왜 교회를 떠났는지, 이들을 탄생시킨 역사적·사회적·문화적 배경은 무엇인지, 아울러 이들의 존재가 한국 교회에 던지는 물음은 무엇이며, 이들이 찾아가는 대안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하나씩 짚어간다." 가나안 성도가 무슨 말인가 싶었더니,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뜻하는 말이다. ‘안 나가’를 뒤집어 나온 말이 ‘가나안’이고, '가나안 성도'란 오늘날 제도 밖에서 신앙을 찾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대략 10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하는데, 전체 그리스도인 수에 비하면 아직은 소수다. 그래도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여하튼 사회적 영성이건 신앙이건 간에 지금의 한국 교회 안에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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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최신 인지심리학이 밝혀낸 성공적인 학습의 과학
헨리 뢰디거 외 지음, 김아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12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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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사회 탈출기- 낭비와 과잉의 황금기가 끝나면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그레타 타우베르트 지음, 이기숙 옮김 / 아비요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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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잠의 종말
조너선 크레리 지음, 김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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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영성- 세월호 이후에도 ‘삶’은 가능한가
김진호 외 지음 / 현암사 / 2014년 1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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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글쓰기를 다룰 때 언젠가는 한번 언급하려던 책이 있다. 이탈리아의 안톤 체호프 전문가 피에로 브루넬로가 엮은 <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청어람미디어, 2014). 부제가 '좋은 신발과 노트 한 권'으로 특이하게도 체호프의 <사할린섬>을 다룬 책이다. <안톤 체호프 사할린섬>(동북아역사재단, 2013)이라고 번역돼 나온 책. 그러니까 <사할린섬> 입문서 겸 체호프적 글쓰기 입문서로 읽을 수 있다고 할까. 체호프의 사할린섬 여행 여정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그가 쓴 보고서가 어떻게 작성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원저는 2004년에 나온 이탈리아어본이고 2008년에 영어본도 출간됐다(다시 확인해보니 영어판은 다른 책이다.브루넬로가 편집하긴 했지만, 영어판은 제목 그대로 '체호프처럼 글쓰는 법'을 다룬다). 한국어판은 이탈리아어본을 옮긴 것인데, 이탈리아어본의 표지는 이렇다. 한국어판의 제목은 영어판에서, 부제는 이탈리아어판 제목에서 가져온 듯하다.

 

 

1890년 체호프가 만난 사할린섬은 지옥 같은 곳이었다. 그는 3개월 간 체류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쓴 보고서 <사할린섬>은 훌륭한 문학작품이라곤 할 수 없어도 강제수용소에 대한 좋은 보고서이다. 마치 인류학적 현지조사의 결과물 같은 이 책은 "강제수용소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하는지, 조사하는 동안 보고서는 어떻게 쓰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저자는 <사할린섬>을 체호프가 의대 박사논문으로 구상했다고 말하는데, 나로선 들은 바가 없어서 이 대목은 체호프의 전기에서 확인해볼 사안이다).  

 

인상적인 건 체호프의 성격에 대한 저자의 평가다. "안톤 체호프는 순진한 사람이다. 그는 식사 초대에 응하고, 낚시를 하거나 길을 가다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언제든 이웃의 말을 믿고, 편견 없이 정직하게 관찰하고, 소식을 직접 확인하고, 눈으로 본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이 글쓰기 못지않게 체호프에세 배울 점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러시아문학 강의>에서 말한 것처럼 바로 '체호프의 놀라운 사교성'이다. "모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노래하는 자와 함께 노래할 수 있고, 술고래와 더불어 취할 수 있는 그의 개방적인 성격" 말이다. 톨스토이처럼 위대한 작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성격이다. 체호프가 알렉세이 수보린에게 보낸 편지글을 빌리자면, "톨스토이 등은 "장군처럼 뼛속 깊이 독재적인 사람들"이다.(16쪽)

 

체호프는 톨스토이를 누구보다 존경했지만, 의사 출신 작가답게 인물이나 (<부활>에 대한 혹평에서도 확인되듯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고 냉정했다. <사할린섬>의 보고서 문체 또한 그런 태도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사할린섬>은 갖고 있는 영어본과 러시아어본을 이사 뒤에 아직 찾지 못해서(한국어본은 또 어디에 있나?), 아직 완독을 미뤄두고 있는데, <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는 좋은 자극이자 길잡이가 되는 책이다(여차하면 영어판도 구해볼까 싶다). 여전히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심지어 아직 읽거나 되읽을 그의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는 게,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겨진다. 내년에는 체호프에 대한 (집중)강의도 계획해봐야겠다... 

 

1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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