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좀더 길다.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연암서가, 2014). 주로 피터 싱어의 책들을 번역해온 김성한 교수가 쓴 진화심리학 개설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진화심리학의 이론과 응용 정도라고 해야겠다. 진화심리학에서 얘기하는 건 남녀의 성 특징 내지 성적 행동의 특징까지인데(이게 1부다), 저자는 이를 응용해서 '연애의 기술'까지 다루려고 하기 때문이다(여기까지가 2부). 그리고 할 걸음 더 나아가 연애 코칭에까지(3부는 '연애의 단계'다). 과감한 시도이면서 과욕으로도 보이는데, 저자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왜 동성애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남성은 여성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매혹을 느낄까? 왜 그들이 매혹을 느끼는 대상은 하필이면 동물이 아닌 인간 종의 이성(異性)일까? 노인이나 아기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도록 젊은 남성들을 교육한다고 그러한 남성들이 그들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게 될까? 왜 젊은 남성은 글래머인 젊은 여성의 나신을 보면 성적인 자극을 받게 될까? 왜 이 세상에서 성범죄를 저질러 전자발찌를 차는 사람은 거의 예외없이 남성들일까? 왜 누구는 연애하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데 왜 누구는 모태 솔로로 살아갈까? (4쪽)

이런 물음을 공유한다면 흥미를 갖고 읽어봐도 좋겠다. 저자가 특별히 배려하고 있는 듯한 '모태 솔로'라면 더더욱. 하지만 생물학적인 답변으로 '인간은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에 이미 이성간의 매혹은 다 해명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좀 의아하긴 하다.

 

 

진화생물학 책은 입문서부터 대학 교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와 있고, 성의 진화 내지 성선택에 관한 내용도 많은 책에서 읽어볼 수 있다. 저자의 강점은 짐짓 시치미를 떼면서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더라도 연애 코칭에까지 나선 것은 좀 과도했다. 특히나 '헌신'이란 자질 혹은 덕목으로 많은 문제를 해명하려고 한다면 말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연애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것은 여성이 남성에게 바라는 특징인 '헌신'이다.(...) 필자가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남녀의 여러 특징 중에서 '헌신'만을 가지고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유는 첫째,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남녀의 생물학적 성 특징 중에서 연애를 잘 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것은 헌신 외에 마땅히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둘째, 만약 남성이 선호하는 여성의 특징 중에서 '헌신'처럼 상대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 것이 있다면 이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책에서 소개한 남성의 생물학적 성 특징 중에는 이와 같은 특징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7-8쪽)

그러니까 재력이나 외모, 키, 체격 같은 다른 자질은 거의 결정되어 있는 걸로 보고, 그래도 인위적인 노력을 통해서 뭔가 개선할 수 있는 것이 '헌신'이라고 보는 듯하다(태도는 노력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통상 더 유리한 것은 '헌신하는 척'하는 게 아닐까?).

 

 

흠, 생각해보니 사례가 없진 않다. 좀 오래된 영화로 문성근, 김희애 주연의 <101번째 프로포즈>(1993)가 있었다. 어떤 내용이던가.

건설회사 계장인 구영섭은 99번이나 선을 봤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는 노총각이다. 그러나 100번째로 첼리스트 정원과 선을 보게 된 영섭은 그녀가 자신에게 너무나 과분한 여자임을 알지만 그녀의 마음을 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죽은 약혼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정원도 성실하고 순수한 영섭의 사랑에 차츰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원이가 꿈에도 잊지 못하는 죽은 약혼자와 너무나도 흡사한 김준기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늘 정원과 세상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던 영섭은 준기의 등장으로 그녀를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이고, 예감처럼 정원은 진정한 사랑과 과거의 기억의 혼돈 속에서 준기에게 마음을 돌린다. 영섭은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시험에 합격하는 날 정원에게 자신의 결혼 반지를 받아달라 말하려고 하지만 시헙에 떨어지고 정원에게 주려던 결혼 반지를 강에 던져 버린다. 그러나 정원은 옛사랑의 기억보다 더 진실하고 소중한 또 하나의 사랑을 깨닫고 야간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영섭을 찾아간다.

기억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했던 것 같은데, 결말이 '영화적' 엔딩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헌신만 갖고서 자신에게 '너무나 과분한' 여자에게 대시하여 성공한 사례는 20년쯤 전에, 영화에서 한번 있었다고 할까(다시 생각해보니 이 영화의 주제는 문성근의 헌신이 아니라 김희애의 헌신이로군). 어째서 그런가. 사실 이 또한 진화심리학적 해명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저자의 말대로 헌신은 연애하는 데 참고는 될지언정 결정적이진 않다. 연애 코칭으로선 치명적이지 않나 싶다.

 

 

'연애'라는 말의 용례가 제한적이어서 그렇지, '사랑'이나 '애정'으로 바꿔보면,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과 연애를 하는가'는 성립하지 않는다.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을 사랑하는가' 혹은 '왜 당신은 동물이 아닌 인간을 좋아하는가'라고 바꿔보면 알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연애'는 속칭에서 그렇듯이 '성관계'를 뜻하는 정도로 한정되지만, 인간은 유별나서 또 '수간'이란 걸 버젓이 저질러왔다. 그런 사정들을 고려하면 책의 제목은 '왜 당신은 보통 동물이 아닌 인간과 섹스를 하는가' 정도로 눅여서 이해해야겠다. 아니 동성애자뿐 아니라 아무런 성욕도 느끼지 못한다는 무성애자까지 고려하면, '인간끼리의 연애'에 대해서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상당히 곤란하다. 진화심리학과 연애코칭을 결합하고자 한 시도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다...

 

1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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