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글쓰기를 다룰 때 언젠가는 한번 언급하려던 책이 있다. 이탈리아의 안톤 체호프 전문가 피에로 브루넬로가 엮은 <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청어람미디어, 2014). 부제가 '좋은 신발과 노트 한 권'으로 특이하게도 체호프의 <사할린섬>을 다룬 책이다. <안톤 체호프 사할린섬>(동북아역사재단, 2013)이라고 번역돼 나온 책. 그러니까 <사할린섬> 입문서 겸 체호프적 글쓰기 입문서로 읽을 수 있다고 할까. 체호프의 사할린섬 여행 여정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그가 쓴 보고서가 어떻게 작성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원저는 2004년에 나온 이탈리아어본이고 2008년에 영어본도 출간됐다(다시 확인해보니 영어판은 다른 책이다.브루넬로가 편집하긴 했지만, 영어판은 제목 그대로 '체호프처럼 글쓰는 법'을 다룬다). 한국어판은 이탈리아어본을 옮긴 것인데, 이탈리아어본의 표지는 이렇다. 한국어판의 제목은 영어판에서, 부제는 이탈리아어판 제목에서 가져온 듯하다.
1890년 체호프가 만난 사할린섬은 지옥 같은 곳이었다. 그는 3개월 간 체류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쓴 보고서 <사할린섬>은 훌륭한 문학작품이라곤 할 수 없어도 강제수용소에 대한 좋은 보고서이다. 마치 인류학적 현지조사의 결과물 같은 이 책은 "강제수용소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하는지, 조사하는 동안 보고서는 어떻게 쓰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저자는 <사할린섬>을 체호프가 의대 박사논문으로 구상했다고 말하는데, 나로선 들은 바가 없어서 이 대목은 체호프의 전기에서 확인해볼 사안이다).
인상적인 건 체호프의 성격에 대한 저자의 평가다. "안톤 체호프는 순진한 사람이다. 그는 식사 초대에 응하고, 낚시를 하거나 길을 가다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언제든 이웃의 말을 믿고, 편견 없이 정직하게 관찰하고, 소식을 직접 확인하고, 눈으로 본 것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이 글쓰기 못지않게 체호프에세 배울 점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러시아문학 강의>에서 말한 것처럼 바로 '체호프의 놀라운 사교성'이다. "모두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노래하는 자와 함께 노래할 수 있고, 술고래와 더불어 취할 수 있는 그의 개방적인 성격" 말이다. 톨스토이처럼 위대한 작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성격이다. 체호프가 알렉세이 수보린에게 보낸 편지글을 빌리자면, "톨스토이 등은 "장군처럼 뼛속 깊이 독재적인 사람들"이다.(16쪽)
체호프는 톨스토이를 누구보다 존경했지만, 의사 출신 작가답게 인물이나 (<부활>에 대한 혹평에서도 확인되듯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고 냉정했다. <사할린섬>의 보고서 문체 또한 그런 태도를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사할린섬>은 갖고 있는 영어본과 러시아어본을 이사 뒤에 아직 찾지 못해서(한국어본은 또 어디에 있나?), 아직 완독을 미뤄두고 있는데, <안톤 체호프처럼 글쓰기>는 좋은 자극이자 길잡이가 되는 책이다(여차하면 영어판도 구해볼까 싶다). 여전히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게, 심지어 아직 읽거나 되읽을 그의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는 게, 다행스럽고 고맙게 여겨진다. 내년에는 체호프에 대한 (집중)강의도 계획해봐야겠다...
14. 11. 30.